버클리대 재학시절 유종규박사의 소개로 지헌을 처음 만난지가 꼭 30년
이 되었습니다. 그동안 유박사도 타계하고 이제 또 지헌의 부보에 접하니
그저 어이가 없고, 새삼 인생의 무상을 되새기게 됩니다.

아아 4월30일, 포항에서 거목이 쓰러졌구려. 아차하는 순간 운명의 장난
이 무쌍의 국사를 앗아갔구려.

아아, 아깝습니다. 참으로 참으로 아깝습니다. 이 나라 과학계의 큰 별이
떨어졌습니다. 나라는 보배를 잃었습니다.

지헌을 알게 된 후로 나는 지헌이 가는 곳마다 찾아 갔습니다. 버클리
에서는 수없이 놀러 갔습니다. 메릴랜드의 실버스프링, 독일의 칼스루에
갈때마다 며칠씩 유했습니다.

서로의 전공이 달랐지만 이야기는 항상 재미 있었습니다. 지헌과 현부인
은 한결같이 나를 편안하게 대해 주었습니다. 지헌이 귀국한 이후에도
진양군, 안동군 지례의 지헌고택 그리고 포항, 나는 지헌을 볼때마다 항상
마음이 후련했습니다.

당신의 그 높고 맑은 이상, 아인슈타인과 퇴계선생을 스승으로 삼은 과학
과 도덕, 조국에 대한 정열, 가족에 대한 따뜻한 사랑, 나는 당신으로부터
배운 것이 무척 많았습니다. 지금 이 나라 공사 여러 어려운 문제에 관해
당신처럼 생각하고 행동할수 있는 사람은 상상하기가 어렵습니다.

인생이 아무리 길다해도 결국은 일순에 불과합니다. 파란만장의 생애를
통해 당신은 멋과 빛과 향기를 남겼습니다.

하나의 새 공과대학을 만들어 운영하고 싶다던 당신의 꿈은 기적과도같은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명수공성하였고 완벽한 인간승리를 거두었습니다.

현부인과 출중한 자녀 3남매,그리고 당신의 여러 친지들이 당신의 유지를
성심껏 받들 것입니다. 고이 잠드소서. 만사 한수를 영전에 바칩니다.

고담풍발호회개 억석심군파주배 안입춘양금만루 두견제송일군재 의기높은
이야기 바람같이 나오고, 회포는 좋아라.

그 옛날 그대 찾아 술잔잡던 생각나네.

봄볕이 눈에 드니, 옷깃은 눈물에 젖고 두견은 우뚝한 이 울며 보내네.

1994년5월2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