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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경제

  • 유병연 기자
    유병연 기자 논설위원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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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천자칼럼] 꿈을 파는 명품 LVMH

    애플을 ‘IT(정보기술)업계의 명품’으로 만들고 싶었던 스티브 잡스가 생전 세계 최대 명품 제국 루이비통모에헤네시(LVMH)의 베르나르 아르노 회장을 만난 적이 있다. 아르노 회장이 “몇십 년 후에도 아이폰이 존재할까? 그건 모르겠지만, 그때도 사람들은 돔페리뇽(LVMH가 판매하는 고급 샴페인)을 마시고 있을 거요”라고 하자 잡스도 고개를 끄덕였다고 한다. 문화와 역사를 파는 명품 사업의 불멸성을 대변하는 일화다.LVMH는 사명처럼 1971년 주류회사인 모엣 샹동과 헤네시가 합친 뒤 1987년 명품 패션 브랜드 루이비통을 합병해 그룹 면모를 갖췄다. 이후 크리스챤 디올을 비롯해 셀린느, 불가리, 티파니 등을 인수해 75개 호화 브랜드를 거느렸다. 아르노의 경영철학은 “나는 꿈을 파는 상인이며, LVMH는 소비자에게 꿈을 판다”는 것이다.LVMH 매출은 지난해에도 13% 증가해 불황을 이겼다. 올초 이 회사 주가가 뛰면서 아르노 회장은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를 밀어내고 세계 최고 부호 자리에 올랐다. 외신에 따르면 LVMH는 작년 235억유로(약 34조5000억원)어치를 수출해 프랑스 전체 수출의 4%를 차지했다. 와인 치즈 등 전체 농업 부문(3.2%) 비중보다 높다. 이를 놓고 아르노 회장이 셋째와 넷째 아들까지 그룹 이사회에 합류시키면서 승계를 둘러싼 논란이 일자 국가 경제에 대한 기여도를 강조하기 위해 여론전에 나섰다는 곱지 않은 시각도 있다. 이 중 넷째 아들 프레데릭 아르노는 걸그룹 블랙핑크 멤버 리사와 열애설이 불거져 국내에도 잘 알려진 인물이다.보도 배경이 어찌 됐든 LVMH를 비롯한 에르메스, 샤넬, 구찌의 모기업 케링 등 명품 기업이 프랑스 경제를 떠받치고 있는

    2024.04.19 17:57
  • [유병연 칼럼] 거대한 행동주의 펀드가 된 국민연금

    OCI그룹과의 통합 추진 과정에서 촉발된 한미약품그룹 모녀와 형제간 팽팽했던 경영권 분쟁. 국내외 의결권 자문사들의 찬반 의견마저 엇갈리면서 이 회사 지분 7.66%를 보유한 국민연금의 결정에 초미의 관심이 쏠렸다. 지난달 27일 열린 주주총회에 앞서 국민연금이 회장 모녀 측을 지지하면서 승부가 기우는 듯했지만 소액주주들이 대거 형제 손을 들어 판세가 뒤집혔다. 이번 한미약품 주총에선 무력화됐지만, 국민연금이 기업 경영에 캐스팅보트를 휘두르는 사례가 크게 느는 추세다. 올해 주총만 해도 행동주의 펀드가 신임 사장 선임에 반대해 치열한 표 경쟁이 벌어진 KT&G, 동업자 가문 간 갈등이 표 대결로 이어진 고려아연 등 전선이 형성된 곳곳에서 국민연금이 캐스팅보트를 쥐었다.국민연금은 1000조원이 넘는 국민 노후자금을 굴린다. 이 중 국내 주식시장에 148조원을 투입해 281곳 상장사 지분 5% 이상을 확보하고 있다. 이런 연금이 시장은 물론 기업 경영을 좌지우지할 정도로 위세를 떨치는 모습은 우려스럽다. 경영권 분쟁이 늘고, 행동주의 펀드 공격이 잦아지는 가운데 국민연금이 적극성을 넘어 공격적인 의결권 행사에 나서면서 ‘거대한 행동주의 펀드’가 돼가고 있다는 얘기가 나올 정도다.문제는 이런 무소불위 권력에 비해 독립성과 중립성이 확보돼 있지 않다는 점이다.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는 까다롭고 민감한 이슈가 발생하면 그 판단을 산하 수탁자책임전문위원회(수탁위)에 넘긴다. 수탁위는 총 9명의 위원으로 구성되는데, 이 중 상근 전문위원 3명과 외부 전문가 3명은 각각 사용자단체, 근로자단체, 지역가입자 단체에서 1명씩 추천한 인물이고 나머지 3명은 전문가

    2024.04.09 17:35
  • [천자칼럼] 스타게이트 프로젝트

    공상과학(SF)영화의 기념비적 걸작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1968년 개봉)는 영화사상 가장 논쟁적인 작품 중 하나다. 인간의 경계적 호기심을 기반으로 미지의 우주와 인류의 진화, 기술 권력, 인공지능(AI)의 미래 등 심오한 문제를 정면으로 제기해서다. 이 영화는 인류에게 문명의 지혜를 준 ‘검은 돌기둥’의 정체를 밝히기 위해 목성으로 향하던 디스커버리호에서 우주선을 제어하는 AI 할(HAL 9000)이 반란을 일으키며 위기가 고조된다. 하지만 주인공이 스타게이트라는 우주 통로를 통해 다른 차원으로 이동해 새롭게 진화한 존재로 재탄생하며 막을 내린다. 여기서 스타게이트는 AI의 위협을 극복한 인류의 승리를 상징한다.1994년 개봉한 영화 ‘스타게이트’는 이런 우주의 초공간 이동장치를 전면에 내걸었다. 스타게이트를 발견한 미 공군이 비밀리에 게이트를 작동해 외계인들과 교류하며, 지구와 우주를 위협하는 세력에 대항하는 내용을 담았다. 1997년 드라마 시리즈로도 제작돼 10년간 방영을 이어가 최장수 SF 드라마의 반열에 올랐다.마이크로소프트(MS)와 챗GPT 개발사 오픈AI가 1000억달러(약 135조원)를 들여 슈퍼컴퓨터를 포함한 데이터센터를 구축할 계획이라고 한다. 일명 ‘스타게이트 프로젝트’다. 이 데이터센터의 핵심은 슈퍼컴퓨터. 차세대 거대 AI 모델의 훈련과 구동을 위해 맞춤 설계한 첨단 AI 반도체 수백만 개를 사용해 현존하는 최고 슈퍼컴퓨터(미국의 프런티어) 성능의 최소 250배 이상이 될 것이라고 한다. 이르면 2028년 선보일 스타게이트가 영화처럼 인간의 지식과 상상력을 넘어서는 초지능 시대를 앞당기고, AI와 공존하는 새로운 차원의 미래를 여는

    2024.04.01 17:56
  • [유병연 칼럼] 사외이사 독립, 사람만 바꾼다고 되겠나

    주주총회 시즌이 돌아왔다. 올해 핵심 이슈 중 하나는 ‘경영진 거수기’라는 비판이 커진 사외이사 변화다. 빅테크(대형 기술기업) 출신 외국 기업 임원이나 여성을 영입하려는 시도가 눈에 띈다. 하지만 여전히 국내 30대 그룹이 추천한 신규 사외이사(103명) 중 67%는 교수, 관료, 법조인 출신이다. 전문적인 사외이사 인력풀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상황에서 인력 다양성을 높인다고 거수기라는 오명이 불식될지도 의문이다.사외이사는 대주주 견제·감시를 위한 제도다. 외환위기 과정에서 독단적 오너 경영의 부작용이 드러나자 국제통화기금(IMF) 권고에 따라 1998년 2월 도입됐다. 상장법인은 이사 총수의 4분의 1 이상, 자산총액 2조원 이상 상장사는 전체 이사 수의 과반(최소 3인 이상)을 사외이사로 선임해야 한다. 시행 26년이 지나 자리를 잡을 때도 됐지만 독립성을 둘러싼 논란은 끊이지 않는다. 오히려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원인으로 지목받는 상황이다.최근 소유분산 기업의 최고경영자(CEO) 연임 시도 과정에서 드러난 사외이사의 일탈은 충격적이다. 포스코는 지난해 8월 캐나다에서 초호화 이사회를 열며 총 7억원에 가까운 경비를 썼다. 참석자 1인당 하루 평균 숙박비로 175만원, 미쉐린 식당 식사와 최고급 와인 등 식대로 1억원을 지출했고, 전세기와 전세 헬기까지 이용했다고 한다. KT&G는 2012년부터 거의 매년 수천만원을 들여 사외이사들에게 외유성 해외여행을 보내줬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이러니 사외이사가 경영진 견제보다는 CEO를 방어하고 ‘셀프 연임’을 돕는 참호 역할을 하고 있다는 비난에 속수무책이다.이런 모습은 같은 사외이사제를 운용하는 미국과

    2024.03.13 18:07
  • [천자칼럼] 장학금 살포

    고려 예종은 중앙 교육기관인 국자감을 국학으로 개편하는 교육 개혁을 단행했다. 사학 융성으로 위축된 관학을 진흥하기 위한 조치였다. 그러면서 교육 재정을 뒷받침하기 위해 1119년 일종의 장학재단인 양현고(養賢庫)를 설치하고, 우수 학생에게 장학금을 지급하는 제도를 시행했다. 국가장학금 제도의 시초로 알려져 있다.조선시대에는 대표 관학인 성균관을 비롯해 서원, 향교 등에서 다양한 민관 장학금을 운영했다. 성적이 우수하지만 집안 형편이 어려운 학생에게 주는 장려금 성격으로, 유교 교육의 중요한 토대가 됐다. 근대 들어 서양 교육 제도가 도입되면서 장학금 제도도 근대화됐다. 1886년 관립장학원이 설치됐고, 1911년에는 조선교육령에 따라 교육회 장학금이 제도화됐다.지금과 같은 모습의 국가장학금 제도가 도입된 것은 ‘반값 등록금’이 화두로 떠오른 이명박 정부 시절이었다. 기존 기초생활수급자, 저소득층 성적 우수자 장학금 등을 국가장학금이라는 이름으로 통합하고, 가계소득 중간층까지로 재정 지원을 확대했다. 이때부터 장학금은 성적이 우수한 학생의 전유물이 아니라 기회균등을 위한 사회 부조에 가까워졌다. 현재는 기초·차상위계층에는 전액을, 이외 가구는 소득과 재산으로 산출한 소득(소득인정액)을 1~10구간으로 나눠 연간 350만~570만원을 준다.윤석열 대통령이 그제 ‘청년의 힘으로 도약하는 대한민국’을 주제로 연 민생토론회에서 “국가장학금 수급 대상을 150만 명까지 늘리겠다”고 밝혔다. 전체 200만 명 대학생 중 100만 명이 국가장학금을 받고 있는데, 소득 기준 하위 50%에서 75%까지로 대상을 확대하겠다는 것이다. 연 200만원씩만

    2024.03.06 17:59
  • [천자칼럼] 성감별 금지법은 사라졌지만…

    진화생물학에 ‘피셔의 원리’라는 이론이 있다. 성 생식을 통해 자손을 생산하는 대부분 종의 암수 성비가 1 대 1에 수렴하는 이유를 설명하는 것이다. 인간은 태어날 때는 남자 아기가 여자 아기보다 많지만, 청소년기를 지나면서 점차 1 대 1에 가까워진다. 남자아이 평균 사망률이 여아보다 좀 더 높기 때문이다. 일부다처, 일처다부로 사는 동물 종도 군집 내 암수 비율은 대체로 1 대 1이다. 우연을 가장한 자연의 필연적 섭리다.이런 섭리를 유일하게 거스르는 종은 인간이다. 한국 중국 인도 등 남아 선호가 뿌리 깊은 나라에선 여아 낙태가 무분별하게 이뤄지기도 했다. 우리나라는 1980년 105.3명으로 자연 성비(여아 100명당 남아 약 105명)와 비슷했던 신생아 성비가 1985년 109.4명, 1990년 116.5명으로 악화했다. 이런 성비 불균형을 막기 위해 1987년 도입한 게 태아 성감별 금지법이다.이 법이 제정 37년 만에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헌법재판소가 그제 의료인이 임신 32주 이전에 임신부나 가족에게 태아의 성별을 알려주는 행위를 금지한 의료법 조항에 위헌 결정을 내리면서다. 성평등 의식이 확산하고 성비 불균형이 해소된 만큼 부모의 알권리를 과도하게 침해하는 태아 성감별 금지는 타당성을 잃었다는 판단이다.문제는 낙태법 폐지 이후 입법 공백이다. 헌재는 2019년 형법상 임신중절을 전면 금지한 처벌 조항이 임신한 여성의 자기 결정권을 과도하게 제한한다며 헌법 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그러면서 눈앞의 혼란을 막기 위해 2020년 말까지 유예기간을 주며 국회에 대체입법을 주문했다. 하지만 임신 14주, 임신 24주 등 낙태 허용 기준을 두고 5년이 다 되도록 답보 상태다. 이런 상황에서 태아 성감

    2024.02.29 17:59
  • [천자칼럼] 중국의 신기술 폭격

    중국 샤오미는 한때 ‘대륙의 실수’의 대명사였다. 낮은 가격에 비해 종종 성능이 뛰어난 제품을 출시하지만 의도치 않은 실수라는 조롱이었다. 이 회사 스마트폰에는 ‘애플 짝퉁’이란 수식어가 따라다녔다. 그랬던 샤오미가 지난 26일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열린 모바일월드콩그레스(MWC)에서 공개한 첫 번째 전기차 ‘SU7’에 세계적 이목이 쏠렸다. 다음날 샤오미가 모방했던 미국 애플이 10년간 공들여 온 전기차 애플카 개발을 포기한다는 소식이 나온 것은 아이러니다.샤오미뿐 아니라 MWC 2024에서 관람객이 북적이는 곳 중 열에 아홉은 중국 기업 전시장이었다. 레노버는 세계 최초의 투명 디스플레이 노트북을 전시했고, 전자업체 아너 부스에선 시선(視線)으로 작동하는 스마트폰에 박수가 쏟아졌다. 이렇게 중국은 올해 초 미국에서 열린 세계 최대 가전전시회 CES에 이어 유럽에서 열린 최대 이동통신 박람회 MWC마저 대륙의 실수가 아닌 기술 공습 무대로 만들었다.중국의 ‘기술 굴기’는 이미 세계 산업지도를 뒤흔들고 있다. 호주전략정책연구소가 최근 내놓은 글로벌 핵심 경쟁 현황 보고서에 따르면 총 64개 첨단 기술별 국가경쟁력 순위에서 중국은 53개 부문에서 1위를 차지해 미국(11개)을 눌렀다. 국가 연구 역량을 나타내는 주요 지표인 SCI 논문 건수와 인용 횟수 역시 세계 1위다. 미국을 밀어내고 세계 최다 특허 출원국에도 올랐다.중국 정부가 ‘제조 2025’ 목표를 세우고 2015년부터 지원을 집중한 결과 우리 기술력을 넘어서는 산업이 속출하고 있다. 전기차를 앞세워 작년 글로벌 자동차 수출 1위에 등극했고, 2차전지 분야에서도 한국을 앞질렀다. 미래 핵

    2024.02.28 17:57
  • [유병연 칼럼] 플랫폼법에 도사린 거대한 행정 편의주의

    중국 사회에는 근대까지 전족(纏足)이란 관습이 있었다. 여성의 발을 옥죄어 기형적으로 작게 만드는 가학적 행위였다. 음양사상을 심미관에 투명해 작은 발을 여성미의 극치로 추앙했다는 것은 그럴듯한 변명일 뿐, 실상은 여성 활동력을 제한해 조용한 규방에 머무르며 남성에게 의존하도록 하는 거대한 권위적 이데올로기의 압제였다.플랫폼업계에 이런 ‘전족 공포’가 커지고 있다. 공정거래위원회가 지난해 말 국무회의 보고를 통해 플랫폼 공정경쟁 촉진법(플랫폼법) 추진을 공식화하면서다. 아직 세부 내용이 공개되지 않았지만 크고 힘센 온라인 플랫폼 기업을 ‘시장지배적 사업자’로 지정해 자사 우대·끼워팔기 등 반칙행위를 금지한다는 게 골자다. 거대 플랫폼 사업자의 불공정 행위를 막고 경쟁을 촉진한다는 그럴듯한 명분이지만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 특정 플랫폼을 지배적 사업자로 지정해 ‘사전 규제’하는 방식부터 그렇다. 경쟁법을 두고 있는 세계 어느 나라도 이처럼 지배적 사업자를 사전에 지정하는 사례는 없다. 삼성전자나 현대자동차의 국내 시장 점유율이 높다고 해서 사전 규제하지는 않는다. 게다가 공정위가 열거한 플랫폼의 반칙행위는 현행 공정거래법의 시장지배적 지위 남용 조항으로 충분히 규율이 가능한 것들이다.“플랫폼 시장은 전통시장에 비해 독과점화가 빠르게 진행되는 만큼 기존의 사후적 경쟁법으로는 반칙 행위와 시정 조치 사이에 시차가 발생해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문제’가 반복된다”는 게 공정위가 밝힌 사전 규제 취지다. 얼핏 그럴듯하게 들리지만, 공정위가 역량 부족으로 인해 편한 방식을 선택한다

    2024.02.05 17:48
  • [유병연 칼럼] 국민연금, 포스코 개입 기준은 뭔가

    2017년 대선 전후 ‘킹크랩 사건’으로 불린 댓글 조작으로 세상을 떠들썩하게 한 일명 드루킹과 그가 조직한 경제적공진화모임(경공모) 재판 과정에서 새롭게 드러난 사실은 ‘국민연금 장악 시도’였다. 당시 특검팀이 공개한 ‘외부용’으로 제작된 경공모 설명자료에는 “대선에서 승리해 정권을 장악하고, 국민연금공단을 통해 재벌 지배 및 구조 변경을 추진한다”는 내용이 들어 있었다. 국민연금을 장악해 기업을 좌지우지하겠다는 ‘연금 사회주의’ 구현 목표를 감추지 않았다. 그럴 만큼 국민연금은 무소불위 ‘자본 권력’이 돼 버렸다. 시장과 기업에 미치는 영향력은 세계적으로 비견할 사례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커졌다.지난해 이후 재계 서열 5위 포스코그룹과 12위 KT그룹 수장이 잇따라 추풍낙엽 신세가 된 것은 국민연금의 위력을 다시금 실감하게 한 사례다. 김태현 국민연금공단 이사장은 지난해 말 느닷없이 포스코 CEO후보추천위원회(후추위)의 차기 회장 선출 절차를 질타했다. “기존의 사외이사만으로 구성된 후추위가 공정하고 주주 이익을 충분히 대변할 수 있는지 의문”이라는 이유에서다. 그로부터 1주일 만에 최정우 현 회장이 차기 회장 선임 후보군에서 제외됐다는 소식이 나왔다. 이는 KT 사태의 데자뷔였다. 국민연금은 지난해 초 KT그룹 이사회가 구현모 당시 대표의 연임을 추진하려고 하자 이를 직격했다. 결국 최고경영자(CEO) 선임을 두 차례나 뒤엎은 끝에 경영 공백은 5개월이 지나서야 마무리됐다.두 회사 모두 지난해 역대 최대 실적을 냈다. 주가도 승승장구였다. 이를 기반으로 연임(KT)과 3연임(포스코)이 무난할 것이

    2024.01.04 17:51
  • [천자칼럼] 억만장자

    순자산 10억달러(약 1조2800억원) 이상인 사람을 가리키는 억만장자(billionaire)는 초부자를 상징하는 용어다. 이런 억만장자 순위를 평가하는 것으로 블룸버그의 ‘억만장자 지수’가 있다. 주로 보유 지분 가치를 기반으로 세계 부자 순위를 매일 경신한다. 이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최고 부자는 일론 머스크 테슬라·스페이스X 최고경영자(CEO)다. 그의 순자산은 총 2324억달러(약 301조2000억원)에 달했다. 지난 한 해 무려 954억달러(약 123조8000억원)를 늘려 베르나르 아르노 루이비통모에헤네시(LVMH) 회장에게 넘겨준 1등 자리를 되찾았다.세계 500대 억만장자 명단을 보면 기술 혁신을 주도한 빅테크 창업자가 대거 이름을 올렸다. 10대 부자로 좁혀 봐도 머스크를 비롯해 제프 베이조스(아마존 창업자·3위), 빌 게이츠(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4위), 마크 저커버그(메타 CEO·6위), 래리 페이지(구글 공동창업자·7위) 등 첨단 혁신가가 8개 자리를 휩쓸었다. 지난해 인플레이션에 따른 고금리 환경과 경기 침체 우려 속에서도 인공지능(AI) 열풍에 힘입어 기술주들이 기록적인 강세를 보여 재산을 불렸다.한국인으로는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228위)이 유일하게 이름을 올렸다. 대만 8명, 일본 5명, 싱가포르 4명이 포함된 것과 대조적이다. 지난해 6월 말만 해도 권혁빈 스마일게이트 창업자가 세계 423위에 오르고, 2021년에는 김범수 카카오 창업자가 이 회장을 제치고 한국 최고 부자로 등극하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은 이 회장 홀로 자리를 지키는 형국이다.한국에 글로벌 억만장자가 적은 원인으로는 세계에서 가장 악명 높은 징벌적 상속세와 함께 그동안 우리의 성장 모델이던 패스트 팔로어

    2023.12.31 17:11
  • [책마을] "트럼프 돌아오면 한국에 더 많은 군비 요구할 것"

    “우리는 세계를 위한 경찰이 아니다.”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이 한마디에 동맹에 대한 미국의 속내가 담겨 있다. 당파를 초월해 많은 미 국민이 트럼프가 제기한 동맹의 무임승차를 문제로 느끼는 게 현실이다. “이익을 바탕으로 하지 않는 동맹이 존재하기는 어렵다”는 국제 정치학의 대가 마틴 와이트의 말을 빌리지 않더라도 냉혹할 정도로 이익을 계산하는 것은 국제정치는 물론 동맹관계의 본능이다.북한을 비롯해 중국 러시아와 인접한 한국에 한·미 동맹 관계 변화는 생존과 직결된 사안이다. 한국을 보는 미국의 달라진 시선을 이해해야 하는 당위론이다.저자는 “도대체 우리가 왜 한국을 지켜줘야 하느냐”는 미국의 질문을 끌어들인다. 그러면서 세상이 한국을 중심으로 돌아간다는 소위 ‘한반도 천동설’에 빠진 우리의 동맹관을 상기시킨다. 우리 외교 전략은 줄곧 세계가 북한 문제에 관심을 기울여줄 것을 촉구하면서 상대가 원하는 반대급부에 대해선 일말의 고민조차 없었다고 일갈한다. 부담은 최소로 지면서 혜택은 최대한 받겠다는 심보가 한반도 천동설을 키웠다는 것이다.지금껏 미국은 이런 행동을 알면서 눈감아줬지만 한국 경제 규모가 세계 10번째로 커지고 중국이 미국의 최대 위협으로 부상하면서 셈법이 달라지고 있다는 지적이다. 미국은 몸집이 커진 한국에 합당한 책임과 역할을 능동적으로 해주기를 바라고 있다. 이런 상황 속에 한반도 천동설에 입각한 전략을 세우다가는 큰 낭패를 당하기 십상이다. “한국은 스스로 변해야 한다. 더 이상 약한 국가인 것처럼 행동해서는 안 된다”는 존 햄리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소장

    2023.12.22 17:35
  • 한국에 대한 미국의 본심은? 펜타곤 출입기자의 섬찟한 시각 [책마을]

    “우리는 세계를 위한 경찰이 아니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이 한마디에 동맹에 대한 미국의 속내가 담겨 있다. 당파를 초월해 많은 미 국민이 트럼프가 제기한 동맹의 무임승차를 문제로 느끼고 있는 게 현실이다. “이익을 바탕으로 하지 않는 동맹이 존재하기는 어렵다”는 국제 정치학의 대가 마틴 와이트의 말을 빌리지 않더라도 냉혹할 정도로 이익을 계산하는 것은 국제정치는 물론 동맹관계의 본능이다. 북한을 비롯해 중국, 러시아와 인접한 한국에 한미 동맹 관계 변화는 생존에 직결된 사안이다. 한국을 보는 미국의 달라진 시선을 이해해야 하는 당위론이다. 저자는 “도대체 우리가 왜 한국을 지켜줘야 하느냐”는 미국의 질문을 끌어들인다. 그러면서 세상이 한국을 중심으로 돌아간다는 소위 ‘한반도 천동설’에 빠진 우리의 동맹관을 상기시킨다. 우리 외교 전략은 줄곧 세계가 북한 문제에 관심을 기울여줄 것을 촉구하면서 상대가 원하는 반대급부에 대해선 일말의 고민조차 없었다고 일갈한다. 부담은 최소로 지면서 혜택은 최대한 받겠다는 심보가 한반도 천동설을 키웠다는 것이다. 지금껏 미국은 이런 행동을 알면서 눈감아줬지만, 한국의 경제 규모가 세계 10번째로 커지고 중국이 미국의 최대 위협으로 부상하면서 셈법이 달라지고 있다는 지적이다. 미국은 몸집이 커진 한국에 합당한 책임과 역할을 능동적으로 해주기를 바라고 있다. 이런 상황 속에서 한반도 천동설에 입각한 전략을 세우다가는 큰 낭패를 당하기 십상이다. “한국은 스스로 변해야 한다. 더 이상 약한 국가인 것처럼 행동해서는 안된다”는 존 햄리 전략국제문제

    2023.12.21 10:32
  • [이슈프리즘] '70대'는 면죄부가 아니다

    홍콩 항셍중국기업지수(홍콩 H지수) 흐름에 따라 수익률이 결정되는 주가연계증권(ELS)이 시한폭탄으로 떠올랐다. 은행이 2021년 대거 판매한 이 상품의 만기가 도래하는 가운데 지수가 폭락해 대규모 원금 손실이 잇따르면서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이와 관련해 최근 “은행이 70대 이상 고령층에게 복잡한 고난도 상품을 권유하는 것 자체가 적합한가”라며 판매사를 직격했다. 그러면서 “(은행이) 무지성으로 소비자 피해 (예방) 조치가 마련됐다고 운운하는 것은 자기 면피”라고 일갈했다. 그의 발언처럼 70대 이상은 ‘금융 약자’로 통한다. 대부분 소득이 끊겨 어려운 데다 금융이해력도 떨어져서다. 통계청에 따르면 70대 고령가구의 42%는 저축액이 1000만원 미만이다. 70대의 금융이해력은 61.1점(한국은행·금감원의 2022년 전 국민 금융이해력 조사 결과)으로 전 연령 평균(66.5점)을 밑돈다. 이런 고령층에게 은행이 원금 손실이 발생할 수 있는 상품을 권유한 것 자체가 무지성이라는 지적은 일리 있게 들린다. 그런데 ELS 가입자만 떼어 놓고 보면 달리 볼 여지가 있다. 금감원이 2018년 6월 말 기준으로 ELS로 대변되는 파생결합증권 개인투자자 현황을 조사한 적이 있다. 이 결과 1인당 평균 투자금액은 6290만원이었다. ELS는 주로 돈 좀 있는 사람들의 투자 수단이라는 의미다. 전체 투자자 75만 명 중 50대가 29.8%로 가장 많았다. 이어 40대(21.5%), 60대(21.2%) 순이었다. 70대와 80대 비중은 각각 7.7%와 1.3%에 불과했다. 그런데 1인당 평균 투자금액은 70·80대가 압도적인 것으로 드러났다. 80대 이상 가입자의 평균 투자액은 1억7230만원에 달했다. 70대도 1억230만원이었다. 60대(7530만원)와 50대(6500만원), 40대(5410만원)

    2023.12.11 18:06
  • 우리 역사 속에 숨겨진 '승자의 시각'을 통쾌하게 비틀다 [책마을]

    베네데토 크로체가 역사를 ‘승자의 역사’로 언급했듯이 역사는 기록하는 시대상이나 기록자가 가진 사상의 세례를 받아 왜곡되고 뒤틀릴 수 있다. “사실은 스스로 말하는 게 아니라 역사가가 말을 걸 때만 말한다”는 레오폴트 폰 랑케의 주장처럼 실상 기록이 아닌 해석의 영역인 것이다. 그럼에도 한번 권위에 의해 사실로서 지위를 인정받으면 신성불가침의 성역으로 바뀌어 난공불락의 면허를 받게 된다. 이런 역사의 권위에 도전장을 내민 책이 나왔다. 그것도 역사학자가 아닌 정통 관료 출신의 손에서다. 최중경 전 지식경제부 장관이 쓴 ‘잘못 쓰인 한국사의 결정적 순간들’은 권위적 역사에 대한 통렬한 테러다. 실패한 우리 역사에 주목해 역사의 변곡점에서 펼쳐진 은폐, 왜곡, 과장, 편견을 재구성한다. 읽으면 읽을수록 무릎을 치게 만드는 책이다. 그는 시종일관 기존 역사 상식을 깨거나, 역사적 인물이나 사건의 평가를 달리하는 주장을 편다. 삼국시대부터 조선 후기까지 역사적 변곡점 기록에 서린 ‘승자의 왜곡’을 파고든다. 만약 백제군이 5000명밖에 안 되고, 의자왕의 실정으로 민심이 피폐해졌다면 신라는 무엇 때문에 당나라 군대를 불러들였을까. 신라 혼자의 힘으로도 충분했을 텐데. 앞뒤가 맞지 않는 역사 서술은 백제 멸망의 과정에서 뭔가 숨기고 있다는 증거라는 것이다. ‘병자호란은 미개하고 폭력적인 만주족이 선량한 문화국 조선을 유린한 것이며, 만주족에 고개를 숙이지 않는 절개를 높이 기린다’라는 역사 서술은 국내 정치 투쟁의 명분을 지키고자 국가 안보를 포기함으로써 백성을 고난과 치욕으로 몰아넣은 무서운 집단 이기주의 정치 세력에 의해 조작된

    2023.11.17 10:02
  • [유병연 칼럼] '빚 폭탄' 키우는 전액보증 대출

    거대한 빚더미는 한국 경제를 위협하는 최대 뇌관이다. 그 규모부터 위협적이다. 가계부채는 지난 상반기 말 기준 1800조원을 넘어섰다. 우리나라의 사적 부채라고 할 수 있는 전세보증금 약 1000조원을 고려하면 총 가계부채는 대략 3000조원에 달한다. 자영업자 대출 역시 1043조원을 넘어 역대 최대 기록을 갈아치웠다. 고금리와 함께 급속히 불어나는 부실은 시한폭탄이 돼 스멀스멀 다가오고 있다. 빚으로 빚을 돌려막는 개인이 늘면서 3개 이상 금융기관에서 돈을 빌린 다중채무자 수는 지난 6월 말 기준 448만 명, 이들의 대출 잔액은 572조원을 웃돈다. 90일 이상 대출 원리금을 연체해 ‘금융채무 불이행자’로 등록된 자영업자는 5만2061명으로, 2021년 말에 비해 82%나 증가했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최근 금융통화위원회 회의 직후 “자기 돈이 아니라 레버리지(차입)를 쓰는 분들이 많은데, 금리가 다시 연 1%대로 예전처럼 떨어질 거라고 생각한다면 경고해 드린다”고 말했다. 하지만 돈을 빌린 개인이나 자영업자 탓만 할 수 없는 것은 이면에 과잉 대출을 조장하는 금융기관의 모럴해저드(도덕적 해이)가 자리 잡고 있어서다. 전세자금 대출이 대표적이다. 이 대출은 주택도시보증기금(HUG), 서울보증보험(SGI), 한국주택금융공사 등에서 사실상 100%까지 보증해준다. 서민 주거 안정을 돕는다는 취지다. 공적기관이 전액 보증해주니 은행들로선 아무 위험 없이 앉아서 돈을 벌 수 있다. 심지어 가짜 대출 서류가 와도 신경 쓸 필요조차 없다. 빌려주면 빌려줄수록 돈을 버는 구조인 만큼 대출이 남발되는 것은 당연한 결과다. 세입자가 받은 대출자금이 계약을 통해 집주인에게 지급되는 전세 특성상 결국

    2023.10.23 17:57
  • [유병연 칼럼] K를 떼야 K팝이 산다

    방시혁 하이브 이사회 의장은 지난해부터 1년의 절반 이상을 미국에 머물고 있다. 요즘 들어선 거의 살다시피 한다. 하이브가 글로벌 음반사인 유니버설뮤직그룹과 손잡고 설립한 합작사 ‘하이브×게펜 레코드’가 선보이는 글로벌 걸그룹 오디션 프로그램을 진두지휘하기 위해서다. 그를 몰아세우는 것은 등골 서늘한 위기감이다. 방 의장은 지난 3월 관훈포럼에서 “지금의 성취에 안주하면 한순간에 도태할 것”이라며 K팝 위기론을 처음으로 공론화했다. 지난해 미국에서 가장 많이 팔린 음반 10개 중 7개가 BTS, 투모로우바이투게더, 스트레이키즈, 트와이스 등 K팝 가수의 것이었다. 이런 호황을 타고 지난해 우리나라의 음반 수출액은 2억3311만달러(약 3100억원)로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다. 파행 운영으로 국가 망신 사태를 초래할 뻔한 잼버리 행사의 피날레는 K팝의 위상과 영향력을 다시금 확인한 자리였다. BTS로 인한 국가 브랜드 가치 상승과 경제적 낙수 효과는 올림픽 개최보다 크다는 분석도 있다. 그만큼 K팝은 압도적 영향력을 가진 국가 전략산업이다. 이처럼 화려한 K팝의 성공 이면에서 위기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세계 대중음악 지표인 빌보드 핫100 차트에 K팝 아티스트가 진입한 횟수는 지난해 26회로 전년 대비 53% 급감했다. 한류의 보루로 여겨지는 동남아시아 주요국에 대한 음반 수출은 지난해 전년 대비 30%가량 줄었다. 베트남을 제외한 대부분 국가에 대한 수출이 감소한 가운데 인도네시아에선 60% 넘는 추락세를 보였다. K팝 경쟁력의 핵심인 아이돌 육성 시스템을 모방한 그룹이 세계 곳곳에서 우후죽순처럼 등장하는 것은 위협적이다. BTS의 뒤를 이을 확실한 차세대 글로벌 스타가

    2023.09.18 18:00
  • [천자칼럼] 교사의 억대 부업

    과거 서당은 주로 ‘궁생원(窮生員)’이라는 궁핍한 시골 선비들이 운영했다. 학동으로부터는 주로 쌀이나 곡물 등 학채를 수업료로 받았다. 하지만 이것만으로 생계유지가 어려운 탓에 부업을 하는 훈장이 많았다. 마을 사람들의 소장(訴狀)이나 편지를 대신 써 주는 게 이들의 주요 돈벌이였다. 현대 교사들의 은밀한 부업이 붐을 이룬 것은 과외가 성행한 1960~1970년대다. 중학교와 고등학교 입시가 치열해지면서 현직 교사의 불법 과외가 활개 쳤다. 학교가 끝나자마자 대기해 있는 자가용을 타고 매일 두어 팀을 뛰는 교사 모습이 낯설지 않았다. 1980년 과외 전면 금지 조치 전까지 교사의 비밀과외는 사회적 문제였다. 요즘 교사의 가장 흔한 부업 중 하나는 유튜브다. 일명 쌤튜버(선생님+유튜버)다. 수업 노하우를 담은 교육법 등을 올려 호응을 얻기도 한다. 하지만 교실에서 브이로그(일상 콘텐츠)를 촬영하는 교사가 늘면서 ‘학생 초상권 침해, 교사의 본업 소홀’ 등을 이유로 금지해 달라는 국민청원이 청와대 게시판에 오르기도 한다. 교사는 국가공무원법에 따라 계속적으로 재산상 이익을 취하는 영리업무를 할 수 없다. 그 외에는 직무 능률을 떨어뜨리거나 공무에 부당한 영향을 끼치지 않는 선에서 소속 기관장의 허가를 받아 겸직이 가능하다. 국공립 교사는 물론 국가공무원법을 준용받는 사립교사도 마찬가지다. 교육부 실태조사 결과 2021년 6월 말 기준 총 교원 50만859명 가운데 5671명이 겸직 허가를 받고 활동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유형별로는 외부 강의가 1925명(33.9%)으로 가장 많았다. 이어 기관·단체 임원(15.8%), 유튜브(14%), 자료 개발 및 출제(8.4%), 임대업(8.1%), 저술(7.1%) 등 순이었다.

    2023.08.22 17:55
  • [유병연 칼럼] 보조금 모럴해저드에 '신용 처벌' 어떤가

    고용시장의 모럴해저드를 조장하는 실업급여 개혁이 ‘달콤한 시럽 급여’라는 정치인의 실언 한마디에 동력을 잃은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한 직장에서 해고와 재취업을 반복하며 실업급여를 받은 사례까지 있다고 한다. 이런 일로 인해 급여 재원인 고용보험기금은 파탄 지경이다. 이처럼 ‘눈먼 돈’을 제 돈처럼 빼먹는 보조금 체리피커(혜택만 빼먹는 소비자)의 일탈 행위는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는 문제다. 보조금은 예산 외에 국가에서 특정 목적을 위해 관리·지원하는 돈이다. 정부가 일정 요건을 갖춘 개인과 사업자에게 급여형으로 지급하거나 민간단체에 사업비 일부를 보조한다. 문재인 정부 첫해인 2017년 59조원에서 2021년 98조원으로 늘어난 데 이어 지난해에는 100조원을 넘어섰다. 현재 국가보조금 사업은 정부 주도 1000여 개, 지방자치단체 주도 1만6000여 개와 공공기관의 개별 사업을 포함하면 2만여 개로 추산된다. 개인이 발품만 팔면 받을 수 있는 보조금만 수십 가지다. 세금에 비해 관리가 소홀한 탓에 ‘먼저 받아 챙기는 게 임자’가 돼버린 지 오래다. 국민권익위원회가 접수한 보조금 부정수급 신고 건수는 2016년 593건에서 2021년 1598건으로 급증하는 추세다. 소득과 재산을 숨기고 기초생활보장 지원금을 받는 일은 다반사다. 한 화물차 기사는 운전 사업을 그만둔 뒤에도 200차례에 걸쳐 유가 보조금 1800만원을 부정하게 타내다가 꼬리가 잡혔다. 위장 이혼 후 배우자와 세대를 분리하는 방법으로 소득을 축소해 주거급여를 부당하게 받은 사례도 있다. 이마저도 빙산의 일각이다. 이런 체리피커의 모럴해저드는 우리 사회 곳곳에 만연해 있다. 병원을 돌아다니는 ‘의료 쇼핑’ 환자

    2023.08.21 18:17
  • [천자칼럼] '꿈의 기술' 테마주의 결말

    ‘근대 과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아이작 뉴턴의 은밀한 별칭은 ‘최후의 연금술사’다. 그는 말년으로 갈수록 물리학보다 연금술에 더 많은 시간을 투자했고, 영국 조폐국장 재임 시절에는 실제 시도까지 한 것으로 알려졌다. 고대 이집트에서 근대에 이르기까지 뉴턴을 비롯해 동서고금의 수많은 과학자와 장인들이 값싼 금속을 황금으로 바꾸는 연구에 몰두했다. 그렇지만 대개 사기술로 판명 났다. 뉴턴이 살던 당시 영국은 연금술로 인한 사기가 판치자 이를 처벌하는 법률까지 제정했다. 이처럼 ‘꿈의 기술’에 대한 갈망은 종종 탐욕과 결탁해 기만과 손실을 낳는다. 미국 실리콘밸리 사상 최대 사기극으로 꼽히는 테라노스 사건은 탐욕이 잉태한 현대판 연금술로 꼽힌다. “피 한 방울만 뽑으면 250가지 이상의 질병을 검사할 수 있는 기술을 만들어냈다”고 호언한 엘리자베스 홈스는 ‘여자 스티브 잡스’로 추앙받았다. 테라노스의 가치는 90억달러(약 11조원)에 달했고, 그는 불과 서른 살이라는 나이에 미국에서 가장 부유한 여성 억만장자가 됐다. 하지만 그의 사기 행각이 드러나자 회사 가치는 곧바로 0달러로 추락했다. 그는 11년 징역형까지 선고받았다. 국내에서 신기술 개발에 대한 과도한 기대가 빚은 참사의 대표 사례는 황우석 사태다. 황 교수가 줄기세포 복제에 성공했다는 소식에 시장에선 테마를 형성하며 일부 바이오 업체 주가가 10배 이상 치솟기도 했다. 최근 LK-99가 과학계를 흔들었다. 국내 연구진이 상온에서 저항이 사라지는 꿈의 물질을 개발했다는 소식에 ‘인류 역사 이래 최고의 발견’이라는 찬사가 쏟아졌고, 주식시장에서는 ‘초전도체 테마주’ 광풍이 불었다. 개

    2023.08.18 17:55
  • [유병연 칼럼] AI를 수능 시험 과목으로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이 재임 기간 내내 찬사를 보낸 한국 교육은 이제 없다. 그가 “한국에선 국가 건설자(Nation Builders)로 존중받고 있다”던 교사가 잇따라 극단적 선택을 한다. 당시도 비대했던 사교육은 ‘이권 카르텔’로 지목될 정도로 기형화됐다. 이보다 더 큰 위협은 이면에 가려져 있는 ‘시대적 인재 양성’이란 본연의 역할 상실이다. 교권을 회복하고 사교육을 잡는 것만으로 한국의 죽은 교실을 깨울 수는 없다. 물적 자원이 부족한 우리나라에 교육을 통한 인재 육성은 국가 명운이 달린 일이다. 한국 사회에서 수능(대학수학능력시험)의 막강한 영향력을 감안할 때 학생들의 전인적 성장이나 사회에 필요한 역량을 기르는 방법으로 수능보다 효과적인 수단은 없다. 그런데 하루가 다르게 바뀌는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수능 과목은 30년째 제자리걸음이다. 1994년 수능이 본격 시행된 이후 국어·수학·영어를 기본으로 윤리·사회·지리·물리·화학·생물 등을 추가하는 과목 구성은 별반 바뀐 게 없다. 그나마 2017년부터 한국사가 선택에서 필수로 바뀌고, 2018년 영어 절대평가가 도입된 게 과목 차원의 변화라면 변화였다. 이런 답습적 관행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국제 학업 성취도 평가(PISA)에서 부작용의 일단을 드러낸다. 3년마다 주기적으로 이뤄지는 이 조사의 최근 결과(2021년)를 보면 한국은 최상위권이었던 읽기·수학·과학 분야에서 모두 중국과 싱가포르에 밀렸다. 무엇보다 충격적인 것은 우리 청소년의 디지털 문해력을 의미하는 디지털 리터러시 수준이 멕시코, 브라질, 콜롬비아와 함께 최하위 집단에 포함됐다는 점이다. 세계는 인공지능(AI) 혁명 중이다. 미국 매사추세

    2023.07.31 17:47
  • [유병연 칼럼] 감사 거부하는 노조·시민단체의 타락

    농협·수협·신협 등 상호금융권에 외부감사 논란이 한창이다. 금융위원회가 1년에 한 번 외부감사를 의무화하는 제도 변경을 추진하면서다. 상호금융권 단위 조합은 현재 2년 또는 4년마다 외부감사를 받는다. 수협은 자산 300억원 이상인 경우, 산림조합과 새마을금고는 자산 500억원 이상인 경우 2년마다 받고 있다. 자산 500억원 이상 농협의 감사 주기는 4년이다. 그런데 이들 조합은 형평성을 들어 일률적으로 4년으로 늘려달라고 아우성친다고 한다. 2017년부터 지난해 8월까지 이들 농·수·신협에서 발생한 횡령 사고는 총 140건, 피해 규모는 286억3800만원에 달했다. 이런 상황에서 무늬만 조합일 뿐 사실상 금융업을 하는 이들이 감사 주기를 늘려달라고 하는 요구는 어이없다. 외부감사를 놓고 벌이는 갈등이 사회 곳곳에서 전선을 형성하고 있다. 가장 뜨거운 곳은 시민단체와 노동조합이다. 정부가 1억원(현행 3억원) 이상의 민간 보조금 사업은 외부 회계법인 검증을 받도록 하자 시민단체 반발이 거세다. 앞서 이달 초 대통령실이 민간단체 국고보조금 일제 감사를 실시한 결과, 1조1000억원 규모의 사업에서 1865건의 부정·비리가 적발됐다. 부정 사용 금액만 314억원에 달했다. 우리 사회의 권력으로 등장했지만, 이권 카르텔로 타락해 버린 비영리단체의 민낯을 고스란히 드러냈다. 노조 행태는 더욱 가관이다. 조합원이 1000명 이상인 노조에 고용노동부가 회계장부 비치·보존 여부를 보고하라고 요구하자 조직적인 거부 사태까지 벌였다. 노조 역시 국민 세금으로 활동을 지원받는 만큼 이에 상응하는 공공성과 투명성이 필수라는 사실은 상식이다. 현행 노조법도 6개월에 1회 이상 회계감사를 실시하고

    2023.06.22 17:57
  • [천자칼럼] 애덤 스미스

    ‘성서 이래 가장 위대한 책’이라고 평가받는 (1776)의 저자 애덤 스미스는 1723년 영국 스코틀랜드 동해안의 작은 항구도시 커콜디에서 세관 공무원의 아들로 태어났다. 편모슬하 가정에서 성장한 그는 작은 키에 낯가림이 심하고 혼잣말을 즐겨했다고 한다. 평생 독신으로 어머니를 모시고 살았다. 그가 평생 몰두한 관심사는 ‘어떻게 하면 인간 사회가 질서 속에 잘 살 수 있을까’였다. 이런 관점에서 그의 연구는 인류 행복에 바치는 헌사였다. 글래스고대 교수로 활동하던 1759년 내놓은 이 첫 작품이다. 인간 행동에 대한 고찰과 도덕 판단의 기준을 연구한 명저로 명성을 얻었다. 이후 교수직을 사임하고 2년여간 유럽 대륙을 돌며 견문을 넓혔다. 여행에서 돌아온 뒤 약 10년간 고향에서 은둔 생활하며 쓴 책이 불후의 명저 이다. 원제는 ‘국부의 형성과 그 본질에 관한 연구’로 국가와 민족을 부강하게 하는 원천이 무엇인지에 대한 통찰이었다. 당시는 유럽이 근대적 국가로 통합되면서 경제적 국가주의인 중상주의가 지배하던 시기였다. 스미스는 자유시장 철학을 통해 중상주의 규제에 반대하고 공정하고 자유로운 경쟁을 주창했다. 무엇보다 자유시장 원리 아래에선 개인이 이기심에 입각해 경제행위를 하면 시장의 가격조정 메커니즘이 작용해 사회적 이익을 극대화한다는 ‘보이지 않는 손’이라는 혁명적 개념을 제시했다. 당시만 해도 철학과 정치학의 한 단편이던 경제학의 문을 열고, 자본주의의 초석을 제공했다는 평가다. 그가 ‘경제학의 창시자’이자 ‘자본주의의 아버지’로 불리는 이유다. 그런 보이지 않는 손이란 표현이 600여 쪽 분량의 에서 단 한 번밖에 나오지 않는다는 사실

    2023.05.24 17:42
  • [유병연 칼럼] 이런 패륜 부모가 또 어딨나

    내리사랑은 있어도 치사랑은 없다고 했던가. 사랑은 물처럼 부모에서 자식에게로 흐르는 게 본능이요 본성이다. 자식에게 사랑을 베풀지 않는 것은 인간의 도리에 어긋나는 패륜에 다름 아니다. 그런데 이런 패륜 행각을 국가가 조직적으로 자행하는 나라가 있다. 바로 대한민국이다. 국민연금은 우리 아이들을 상대로 벌이는 전형적인 폰지 사기다. 새로 가입하는 사람의 돈을 이미 가입한 기성세대에게 지급하는 연금 구조는 신규 투자자 돈으로 기존 투자자에게 수익을 나눠주는 다단계 금융 사기와 다르지 않다. 애초 조금 내고 많이 받아 가도록 설계한 구조 탓이다. 현재의 보험료율(소득 대비 국민연금 납부액)은 9%. 이를 그대로 두면 2055년에 기금이 완전히 고갈된다. 국민연금 수령 자격(만 65세)이 생기는 1990년생부터는 연금을 한 푼도 못 받는다는 얘기다. 국민연금은 공무원·군인연금과 달리 연금 지급을 국가가 책임진다는 명문 규정이 없다. 이런 기만적 농간이 법과 제도라는 미명 아래 버젓이 벌어지는 상황이다. 국가 재정 지원이 없다면 매년 지급하는 연금을 그해 가입자가 내는 보험료로 채워야 한다. 지금 태어난 아이들이 40대가 될 때쯤엔 전체 급여(근로자 기준)의 42.1%에 해당하는 돈을 회사와 절반씩 나눠 부담해야 한다. 이처럼 파탄이 예고된 국민연금에서 벗어나기 위해 일부 젊은이는 해지 방법을 찾기도 한다. 하지만 사망이나 해외 이주 등으로 지극히 제한돼 빠져나갈 구멍도 없다. 이런데도 국민연금 개혁은 소리만 요란할 뿐 지지부진하다. 국회와 정부의 공 넘기기에 논의조차 실종 상태다. 유일한 처방은 ‘더 내고, 덜 받는 안’이라는 것은 삼척동자도 안다. 그런데도 정

    2023.05.21 17:57
  • 20세기 유럽 역사를 뒤흔든 12명의 지도자 [책마을]

    ‘영웅이 시대를 만드나, 시대가 영웅을 만드나.’ 이런 다소 상투적이지만 난제인 질문을 안고 이 책을 열기 바란다. 이라는 제목에서 풍기는 인상은 토머스 칼라일의 ‘영웅 숭배론’이다. 하지만 실체는 헤겔의 ‘시대 영웅론’을 기반으로 한 변주작에 가깝다. 이 책은 말한다. 예외적 시대는 예외적인 지도자를 만든다고. 그 예외성의 공통분모는 ‘체제의 위기’다. 그런 상황이 만들어낸 유럽 지도자들의 리더십을 통해 20세기 유럽 정치사와 권력의 조건을 해부한다. 영웅적 서사의 내러티브보다는 분석을 바탕으로 한 한 권의 통찰 보고서다. 각자 다른 배경과 시대 상황에 등장한 12명의 유럽 지도자를 도전적으로 분석하는 과정에서 어떻게 스스로 만들어내지 않은 환경을 성공적으로 활용하고 근본적인, 때로는 고도로 파괴적인 변화를 끌어냈는가를 파헤쳐 교집합을 찾아내려고 시도한다. 이 책은 권력 쟁취에 성공한 승자의 기록이다. 볼셰비키 혁명의 지도자 레닌을 시작으로 파시즘의 창시자 무솔리니, 전쟁과 학살의 선동자 히틀러, 공포의 정치가 스탈린이 이 책의 전반부를 연다. 이어 영국의 전쟁영웅 처칠, 대독 저항 운동을 지휘한 ‘자유 프랑스’의 지도자 드골, 폐허 위에 서독을 재건한 아데나워, 스페인 내전의 국민파 반란 지도자 프랑코, 유고슬라비아의 절대 권력자 티토가 중반부를 구성한다. 강한 영국을 만든 ‘철의 여인’ 대처, 소련을 개방의 길로 이끈 새로운 유럽의 건설자 고르바초프, 통일독일의 총리이자 유럽 통합의 견인차 콜이 종반부를 장식한다. 주로 두 차례의 세계대전이 남긴 폭력과 증오, 야만의 시대를 관통한 시대적 권력들이다. 하지만 과정과 유산은 서

    2023.05.21 11:07
  • [책마을] 20세기 유럽 역사를 뒤흔든 12명의 지도자

    ‘영웅이 시대를 만드나, 시대가 영웅을 만드나.’ 이런 다소 상투적이지만 난제인 질문을 안고 이 책을 열기 바란다. 이라는 제목에서 풍기는 인상은 토머스 칼라일의 ‘영웅 숭배론’이다. 하지만 실체는 헤겔의 ‘시대 영웅론’을 기반으로 한 변주작에 가깝다. 이 책은 말한다. 예외적 시대는 예외적인 지도자를 만든다고. 그 예외성의 공통분모는 ‘체제의 위기’다. 그런 상황이 만들어낸 유럽 지도자들의 리더십을 통해 20세기 유럽 정치사와 권력의 조건을 해부한다. 영웅적 서사의 내러티브보다는 분석을 바탕으로 한 한 권의 통찰 보고서다. 각자 다른 배경과 시대 상황에 등장한 12명의 유럽 지도자를 도전적으로 분석하는 과정에서 어떻게 스스로 만들어내지 않은 환경을 성공적으로 활용하고 근본적인, 때로는 고도로 파괴적인 변화를 끌어냈는가를 파헤쳐 교집합을 찾아내려고 시도한다. 이 책은 권력 쟁취에 성공한 승자의 기록이다. 볼셰비키 혁명의 지도자 레닌을 시작으로 파시즘의 창시자 무솔리니, 전쟁과 학살의 선동자 히틀러, 공포의 정치가 스탈린이 이 책의 전반부를 연다. 이어 영국의 전쟁영웅 처칠, 대독 저항 운동을 지휘한 ‘자유 프랑스’의 지도자 드골, 폐허 위에 서독을 재건한 아데나워, 스페인 내전의 국민파 반란 지도자 프랑코, 유고슬라비아의 절대 권력자 티토가 중반부를 구성한다. 강한 영국을 만든 ‘철의 여인’ 대처, 소련을 개방의 길로 이끈 새로운 유럽의 건설자 고르바초프, 통일독일의 총리이자 유럽 통합의 견인차 콜이 종반부를 장식한다. 주로 두 차례의 세계대전이 남긴 폭력과 증오, 야만의 시대를 관통한 시대적 권력들이다. 하지만 과정과 유산은 서

    2023.05.19 18:46
  • [유병연 칼럼] 강남 코인 납치사건 방조자들

    최근 서울 강남 한복판에서 벌어져 사회적 충격을 안긴 40대 여성 납치 살해 사건은 암호화폐(코인) 투자 실패가 부른 참극이다. 이 사건의 중심에는 소위 ‘김치코인’인 퓨리에버가 있다. 이 코인은 2020년 11월 2000원 선에서 코인거래소에 신규 상장한 뒤 불과 한 달 만에 1만354원까지 치솟았지만, 현재는 1원 안팎으로 99.9% 이상 폭락한 채 상장폐지를 앞두고 있다. 퓨리에버는 도대체 어떤 코인일까. 이를 알기 위해 코인 시장의 증권신고서 격인 백서를 열어 보면 눈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깨끗한 공기의 중요성을 경각시키기 위해 대한민국 국회와 협력한다’는 사업 비전부터 그렇다. 난데없는 로봇 태권브이가 곳곳에 등장해 눈을 현혹하지만, 내용은 대학 리포트를 짜깁기한 듯 허접하기 짝이 없다. 코인 발행처와 설립자 실체는 물론 재정 상태조차 파악하기 어려울 정도로 불투명하다. 이런 백서를 기반으로 발행된 코인이 국내 3대 거래소 중 한 곳에 버젓이 상장돼 한때 시가총액이 2000억원에 육박했다는 사실을 믿기 어렵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 무분별한 상장을 통해 배를 불린 거래소에 1차 책임이 있지만 이를 방치 또는 방조한 정부 당국도 비난을 피하기 어렵다. 2017년 비트코인 1차 광풍 때부터 투자자 보호 문제가 꾸준히 제기됐다. 한국거래소, 한국예탁결제원, 증권금융회사 등으로 역할이 분리된 증권시장과 달리 가상자산 시장에서는 거래소가 상장에서부터 예탁, 매매, 결제 등 모든 업무를 수행했다. 부실 상장과 불공정거래 행위로 인한 이용자 피해는 예고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기본 중의 기본인 백서에 대한 정보공개 기준조차 없어 투자자는 위험에 고스란히 노출됐

    2023.04.25 17:47
  • [천자칼럼] 감산(減産) 게임

    박정호 SK하이닉스 부회장은 지난달 29일 경기 이천 본사에서 열린 주주총회에서 ‘죄수의 딜레마’를 언급했다. 죄수의 딜레마란 협력이 모두에게 최선이지만 자신의 이익을 고려한 선택 때문에 모두에게 좋지 않은 결과를 가져온다는 게임이론 모델이다. 그는 D램 업계가 처한 상황을 죄수의 딜레마에 빗대며 “다운사이클(침체기)에서 공급이 초과하면 가격 하락 속도가 빨라질 수밖에 없다”고 답답함을 토로했다. 업계에선 감산에 나서지 않는 삼성전자를 염두에 둔 발언이라는 해석이 나왔다.반도체산업은 가장 대표적인 게임 현장이다. 삼성전자는 반도체 혹한기에 생산량을 늘리며 ‘치킨게임’의 승자가 됐다. 1990년대 들어 일본 반도체 업체들이 줄줄이 투자를 줄일 때 과감하게 늘려 마침내 세계 정상 자리에 올랐다. 이후 2001년과 2008년 등 반도체가 빙하기를 맞을 때마다 가격 경쟁을 벌여 모두 승리한 경험이 있다. 1990년대 15개 업체에 달한 D램 반도체 시장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마이크론의 과점 구조로 재편된 것은 그 결과다. 삼성전자가 1993년 메모리 반도체 분야 1위에 오른 이후 줄곧 패권을 유지해온 배경이기도 하다.이런 삼성전자가 지난 7일 반도체 감산을 공식화했다. ‘인위적 감산은 없다’던 그동안의 방침에서 전격 선회한 것이다. 삼성전자의 인위적 감산은 반도체 대공황기이자 국내 외환위기 때인 1998년 이후 처음이다. 이번 감산 소식에 증시가 환호했다. 반도체 치킨게임이 해소될 것이란 안도감에서다. 고객사들의 구매 심리를 자극하는 촉매로 작용해 가격 반등을 앞당기는 계기가 될 것이란 예상이다. D램 가격 반등 시기가 올 4분기 정도에서 3

    2023.04.09 18:08
  • [유병연의 논점과 관점] 공공 청사를 예식장으로 개방하라

    예식장 예약이 하늘의 별 따기다. 코로나19 사태로 인한 사회적 거리두기로 미뤄왔던 결혼식을 하려는 예비부부들이 몰리면서다. 황금 시간대인 주말 낮 예약은 이미 올 상반기까지 마감된 곳이 대부분이다. “(식장이 꽉 찬 탓에) 결혼을 연말이나 내년으로 넘겨야 할 것 같다”는 하소연이 나온다. 비용은 더욱더 부담이다. 결혼정보업체의 ‘2023 결혼 비용 실태 보고서’에 따르면 예식비용은 평균 1390만원으로 전년의 1278만원보다 8.76% 증가했다. 이 중 예식홀이 1057만원으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다.전국 호화 청사 활용법그런데 결혼식에 안성맞춤인 공간이 전국에 널려 있다. 요지마다 들어서 있는 지자체와 공공기관의 호화 청사다. 국민 세금으로 운영되지만, 내부 임직원과 자녀에게만 예식을 허용하는 곳이 상당수다. 권위적인 청사 문을 열어 주말 시민들에게 예식장으로 개방하는 것은 어떨까. 대부분 멋들어진 강당과 넓고 편한 주차장을 갖추고 있어 하객을 맞기에 안성맞춤이다. 식사는 케이터링 서비스로 구내식당을 이용할 수 있을 것이다. 주변 식당을 활용한다면 지역 경기 활성화에도 도움이 된다.물가가 오르고 이자가 뛰는 데다 세금까지 늘면서 서민들은 삼중고를 겪고 있다. 명목 임금은 소폭 늘었다고 하지만 인플레이션 탓에 실질 소득은 감소하는 추세다. 이런 상황에서 청사를 예비부부에게 개방하는 것은 작지만 의미 있는 생활 복지가 될 것이다. 이런 방안은 현장에 널려 있다. 지역 내 초등학생들에게 하교 후 저녁밥을 제공하는 ‘어린이 전용 식당’이 좋은 예다. 서울 강동구는 집에 홀로 있는 아이들 식사 때문에 일손을 놓고 허겁지겁 퇴근하는 맞벌이 부

    2023.03.21 17:50
  • [천자칼럼] 꿀벌의 경고

    꿀벌은 잘 알려진 사회적 동물이다. 꿀벌 군집은 여왕벌 한 마리와 일벌, 수벌이라는 큰 축 안에 채집, 정찰, 전투, 건축, 육아 등을 담당하는 약 1만5000~2만 마리 개체로 이뤄진 사회다. 모든 활동은 여왕벌이 지배한다고 알려졌지만 사실이 아니다. 이들은 중요한 결정을 내리기 위해 집단 지성을 활용한다. 구성원이 너무 많아져 새 집터를 찾을 때가 대표적이다. 정찰대가 10여 개 집터 후보지를 물색한 뒤 나름의 숙의를 거쳐 민주적인 방법으로 최적의 장소를 선택한다. 이 같은 사회적 행동과 집단 지성은 3000만 년 이상 종을 유지해온 비결이다. 인류(약 20만 년)의 150배에 달하는 세월이다.이런 꿀벌이 멸종 위기에 처했다. 지난해 전국적으로 78억 마리(전체의 17.8%)가 사라진 데 이어 올해는 100억 마리 이상이 추가로 자취를 감출 것이란 전망이다. 세계적 현상이기도 하다. 매년 유럽에서 30%, 남아프리카 29%, 중국에서 13%의 꿀벌이 실종되고 있다고 한다. 이런 추세라면 2035년 무렵에는 지구에서 영원히 사라질 것이라는 게 유엔의 경고다. 이들이 사라지는 이유는 분명치 않다. 살충제, 도시화, 온난화, 대기오염 등이 생존을 위협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대부분 인간 활동에서 기인한 것이다.꿀벌이 사라지면 꽃가루를 옮기는 수분에 막대한 지장이 생긴다. 세계 식량 생산량의 약 75%가 꿀벌 등의 수분 매개에 의존하며, 세계 식량의 90%를 차지하는 100대 주요 작물 중 87종을 생산하는 데 꿀벌이 영향을 미친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은 국내 꿀벌의 수분 매개 가치를 벌꿀 생산액(약 4000억원)의 15배 수준인 연 5조8000억원 이상으로 평가했다. 세계 농업에 기여하는 가치는 253조원(약 2030억달러)에 이른다고 한다.

    2023.02.21 17:56
  • [유병연 칼럼] '규제 덫'에 갇힌 자율주행 로봇

    대통령 직속 규제개혁위원회 공동위원장인 한덕수 국무총리가 지난해 6월 서울 마곡에 있는 한 자율주행 로봇 전문기업을 방문한 자리에서 1960년대 제정된 도로교통법이 도마 위에 올랐다. 이 법이 배달 로봇을 ‘자동차’로 분류하는 탓에 자율주행 로봇임에도 반드시 운전자가 동행해야 한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다. 영국에서 증기자동차가 등장하자 자동차 앞에서 붉은 깃발을 들고 걸으며 보행자에게 차의 접근을 알리는 기수(旗手)를 의무화한 1860년대 ‘붉은 깃발법’을 연상케 하는 황당 규제였다.그렇다면 지금은 배달 로봇이 잘 달리고 있을까. 안타깝게도 아니다. 이번에는 개인정보보호법에 발목이 잡혔다. 카메라로 정보를 수집하는 로봇이 안전하게 주행하기 위해선 주행 영상을 저장하고 학습해 사물 인식 능력을 높이는 게 필수다. 하지만 배달 로봇이 자유롭게 달릴 수 있도록 허용한 ‘규제 샌드박스’ 지역 내에서도 배달 중 촬영한 개인(영상) 정보는 지체 없이 삭제해야 한다. 민원이나 충돌 사고 등에 대비해 비식별화(모자이크) 조치를 한 뒤 저장하더라도 최대 보관 기간은 며칠에 불과하다. 이런 탓에 미국과 중국에선 일상화하고 있는 배달 로봇이 한국에선 공회전 중이다.이 같은 규제 환경에선 ‘모빌리티 혁명’으로 통하는 테슬라의 자율주행 기술은 애초 시도조차 불가능하다. 테슬라는 라이다(빛 레이더)와 정밀지도를 기반으로 하는 현대자동차와 달리 주로 카메라로 획득한 영상을 기반으로 강화학습을 통해 자율주행을 구현해서다. 만일 일론 머스크가 한국에서 창업했다면 범법 회사로 낙인찍혀 문을 닫아야 했을 것이다. 이런 숨 막히는 규제 탓

    2023.02.14 17: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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