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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경제

  • 성수영 기자
    성수영 기자 문화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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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경제신문 문화부 기자입니다. 미술과 문화재, 문화체육관광부를 취재합니다. 쉽고 재미있게 쓰겠습니다.

  • 미술시장에 부는 봄바람...이중섭·김환기·이건용 4월 경매에 뜬다

    얼어붙었던 국내 미술품 경매시장에 올 들어 훈풍이 불고 있다. 시장 분위기가 좋아지면서 한동안 경매에서 자취를 감췄던 고가의 수작들도 다시 출품되기 시작했다. 제 값을 받고 작품을 팔 수 있으리라는 기대감이 커진 덕분이다.16일 미술계에 따르면 케이옥션이 올 들어 진행한 메이저 경매 낙찰총액은 1월 23억원, 2월 32억원, 3월 42억원 등으로 매달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특히 지난 3월 경매에서는 이우환의 ‘바람과 함께 S8708-5’(9억5000만원), 베르나르 프리츠 ‘Gawk’(2억원) 등 주요 작품들이 성공적으로 새 주인을 찾았다. 지난해 고가 작품 중 상당수가 유찰되거나 출품이 취소됐던 것과 대조적이다.서울옥션도 올해 분위기가 좋다. 지난 3월 경매에서 김환기의 전면점화가 50억원에 낙찰된 사실이 이를 방증한다. 김환기의 전면점화는 한국 현대미술 작품 중 가장 인기가 높고 값도 비싸지만, 불황기에는 좀처럼 경매에 나오지 않는다. 작품이 유찰돼 작품 가치를 깎아 먹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 경매에서는 제 값에 새 주인을 찾았다. 김창열의 100호 크기 대작 ‘물방울’이 9억5000만원에 낙찰되기도 했다.이런 훈풍이 계속될지는 케이옥션과 서울옥션의 4월 경매 결과에서 판가름이 날 전망이다. 좀처럼 보기 힘든 수작들이 이 달 경매에 여럿 나왔기 때문이다. 케이옥션은 오는 24일 서울 신사동 케이옥션 본사에서 4월 경매를 연다.총 130점, 약 148억원어치가 출품되는 이번 경매의 대표작은 이중섭의 작품 ‘시인 구상의 가족’이다. 이중섭은 1955년 친구인 구상의 집에 머무르던 중 구상이 아들과 자전거를 타는 모습을 보고 이 그림을

    2024.04.16 15:47
  • '들리지 않는 사람들의 공화국'에서 소리치는 화가들

    지금 이 순간에도 세계 곳곳에서는 수많은 이들이 굶주림으로 고통받고 있다. 하루 3000원 미만의 돈으로 살아가는 절대빈곤 인구의 수는 2022년 기준 7억명 이상. 전쟁으로 삶이 파괴된 이들도 숱하게 많다. 우크라이나, 중동, 아프리카 등지에서 매년 전쟁으로 희생당하는 사람의 수는 10만명을 넘는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런 사실을 알면서도 모르는 척, 아무 일도 없다는 듯 평온한 일상을 살아간다.그게 꼭 나쁜 건 아니다. 세상 모든 부조리에 분노하는 건 불가능한 일인 데다 바람직하지도 않다. 하지만 마음 한 구석이 왠지 개운치 않은 것 또한 사실이다.서울 성북동 제이슨함 갤러리에서 열리고 있는 ‘데프 리퍼블릭(Deaf Republic)’(들리지 않는 사람들의 공화국) 전시는 이런 복잡한 현실을 다룬 전시다. 우크라이나 출신의 미국 작가 일리야 카민스키의 시집에서 이름을 따왔다. 그의 시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폭력에 저항하기 위해 귀가 들리지 않는 척 한다. 함윤철 대표는 “이 세상에는 수많은 비극과 부조리가 존재하지만 우리는 이를 외면하며 살아간다”며 “그런 태도를 비판하려는 건 아니지만, 이런 모순적인 인식과 상황을 여러 측면에서 조명하는 작품들을 한데 모아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했다.전시는 지난해부터 미술계의 주목을 한몸에 받고 있는 20대 작가 이목하의 작은 정물화 ‘화이트 멜로디 케이크’(2024)로 시작된다. 뭉개지고 상한 생크림 케이크를 그린 작품이다. 해골 등을 통해 죽음과 삶의 허무함을 표현한 17세기 네덜란드·벨기에 지방의 ‘바니타스 정물화’ 전통에서 영향을 받았지만 소재를 현대 한국에 맞게 바꿨다.

    2024.04.15 09:57
  • "엄마가 너무 미워요"…친딸 못 알아본 엄마는 왜 그랬나 [성수영의 그때 그 사람들]

    ‘명사 초청 특강 : 이 시대 최고의 초상화가’.동네에 붙은 현수막을 본 딸의 심장은 쿵 내려앉았습니다. 그림을 그리고 싶다며 날 버리고 떠나간 엄마, 그리고 지금은 성공한 화가이자 유명 인사가 된 엄마를 30년 만에 볼 기회였거든요.나를 본 엄마는 뭐라고 말할까. 미안하다며, 그간 고생이 많았다며 안아줄까. 그렇다면 나는 어떻게 대답해야 할까. 오랜 세월 엄마 없는 아이로 살며 쌓인 설움을 터뜨릴까. 아니면, 세월이 흐르고 여러 일을 겪은 지금, 나도 그때 엄마의 마음을 아주 조금은 이해할 수 있게 됐다고 말해줄까. 강연장 맨 앞줄에 앉아 엄마의 강연을 들으면서도 딸은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강연이 끝나고 열린 칵테일파티에서 마침내 엄마는 딸에게 걸어왔습니다. 딸을 본 엄마는 활짝 웃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 오늘 와주셔서 정말 고마워요. 강연은 잘 들으셨나요? 즐거운 시간 보내세요!” 30년 만에 딸을 만난 엄마는, 이렇게 말한 뒤 또 다른 사람에게로 향했습니다.‘엄마가… 날 못 알아봤어.’ 딸은 그 자리에 그대로 얼어붙었습니다. 칵테일파티가 끝날 때까지, 그렇게 한참을 우두커니 서 있었습니다. 그리고 4년이 흐른 뒤 엄마는 연락 한 통을 받았습니다. 딸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소식이었습니다.인간의 영혼을 들여다본 위대한 휴머니스트 초상화가. 딸을 알아보지 못한 비정한 어머니. 앨리스 닐(1900~1984)의 진짜 얼굴은 둘 중 무엇이었을까요. 닐의 삶이 어땠는지, 어떤 그림을 그렸는지, 이 모녀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그 이야기를 지금부터 시작합니다.*이번 기사에 첨부된 그림 중에서는 남녀의 신체가 그

    2024.04.13 13:18
  • 뉴욕 MoMA "큐레이터 보내 한국 미술 연구시킬 것"

    미국 뉴욕현대미술관(MoMA)이 한국 미술 연구를 위해 국내에 큐레이터를 파견한다. 현대카드와 함께 올해부터 3년동안 진행하는 ‘큐레이터 교류 프로그램’을 통해서다.현대카드와 MoMA는 지난 9일 서울 한남동 현대카드 아트 라이브러리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회사와 미술관의 협력 사업을 대폭 확대할 계획”이라고 발표했다. 현대카드는 2006년 MoMA와 20년간의 협력 파트너십을 맺은 이래 전시 등 다양한 분야에서 협업을 진행해왔다.신규 사업 중 가장 눈에 띄는 건 큐레이터 교류 프로그램이다. MoMA의 분야별 큐레이터들을 한국에 단기 파견하는 게 핵심 내용이다. 세라 스즈키 MoMA 부관장은 이날 서울 한남동 현대카드 아트 라이브러리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큐레이터들을 보내 최근 세계 미술계의 관심을 모으고 있는 한국 근현대미술을 중점 탐구할 것”이라고 했다. 올해 MoMA는 건축·디자인, 드로잉·판화, 영화, 미디어·퍼포먼스, 회화·조각, 사진 등 총 6개 분과의 큐레이터들을 파견할 예정이다. 파견 기간은 2주에서 3개월까지 다양하다큐레이터 교류 프로그램에는 한국 큐레이터들을 MoMA에 파견하는 내용도 포함돼 있다. 선발을 거쳐 뉴욕에 간 큐레이터들은 6개월∼1년가량 현지에 머물며 MoMA의 전시 기획에 참여하고, MoMA의 소장품들을 연구할 기회를 얻게 된다. MoMA 큐레이터들의 서울 체류 비용은 현대카드가, 한국 큐레이터들의 뉴욕 체류 비용은 MoMA가 부담한다. 류수진 현대카드 브랜드본부장은 "한국 미술을 세계에 알리고 국내 미술계 역량 증진에 기여하기 위해 프로그램을 마련했다"고 설명했

    2024.04.10 13:47
  • [이 아침의 화가] 매혹적인 '지옥의 화가'…히에로니무스 보스

    지난 5일 스페인을 대표하는 미술관인 프라도미술관은 “매년 4월 5일을 히에로니무스 보스(1450~1516)의 날로 정해 기념하겠다”고 발표했다. 보스에 대한 기록이 역사 기록에 최초로 등장한 날(1474년 4월 5일)의 550주년을 기념해서다.보스의 별명은 ‘지옥의 화가’다. 사람들의 신앙심을 고취하기 위해 지옥의 풍경을 그렸지만, 그림 실력이 너무 뛰어나 보는 이의 마음을 뒤흔들 정도로 작품이 기괴했기에 붙은 역설적인 별명이다. 보스의 환상적인 화풍은 당대 유럽에서 큰 인기를 끌었다.그의 가장 열렬한 팬 중 한 명이 스페인의 왕 펠리페 2세다. 보스의 사후 펠리페 2세가 그의 작품을 전 유럽에서 긁어모은 덕분에 프라도미술관은 보스의 작품을 가장 많이 보유하고 있는 미술관이 됐다. 20세기 초 초현실주의 화가들에게 영감을 주는 등 후대 예술계에도 많은 영향을 끼쳤다.명성에 비해 보스의 개인적인 삶은 거의 알려져 있지 않다. 편지, 일기 등 개인적인 기록을 거의 남기지 않았기 때문이다. 1450년께 브라반트 공국(지금의 벨기에)에서 태어났고, 서른 살 안팎의 나이에 결혼했으며 66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는 게 확인된 정보의 전부다.성수영 기자

    2024.04.09 18:34
  • 세계 최고 갤러리 소리 듣던 말버러, 왜 스스로 문 닫았나

    프랜시스 베이컨, 마크 로스코 등 현대미술 대표 거장들의 작품을 취급하며 한때 세계 최고 갤러리 중 하나로 이름을 날렸던 말버러 갤러리가 오는 6월 문을 닫는다. 1946년 영국 런던에 처음 문을 연 지 78년 만이다.말버러 갤러리는 지난 4일 “올해 6월부터 갤러리를 폐쇄하고 전시와 작가 관련 활동을 모두 중지한다”고 발표했다. 1946년 오스트리아 출신인 프랭크 로이드와 해리 피셔가 런던에 설립한 말버러 갤러리는 1950~1960년대 프랜시스 베이컨, 루시안 프로이트 등 세계적인 거장들의 작품을 다루며 영향력을 넓혔다. 1963년에는 미국 뉴욕 지점까지 열어 세를 넓혔다. “대서양 양쪽(영국과 미국)에서 독보적인 수준”이라는 게 갤러리에 대한 당시 미술계의 평가였다.말버러 갤러리의 이번 폐쇄 결정은 갤러리의 소유권 문제 때문인 것으로 알려졌다. 말버러 갤러리 관계자는 아트뉴스페이퍼에 “갤러리는 예술가와 갤러리스트의 개인적인 관계에 의존하는 사업인데, 이사회 시스템을 통해 이를 관리하는 건 불가능하다는 결론에 이르렀다”고 했다. 이로 인해 뉴욕, 런던, 마드리드, 바르셀로나에 있는 말버러 갤러리 지점은 모두 문을 닫게 됐다. 갤러리는 향후 수년간 재고 매각에 주력할 방침이다. 창고에 있는 작품 가치는 총 2억5000만달러(약 3380억원)에 이르는 것으로 전해졌다.전 세계적으로도 대를 이어 번성하는 화랑은 많지 않다. 작품을 보는 안목과 사교성 등 갤러리스트의 ‘개인기’, 네트워킹과 노하우 등 암묵지에 의존하는 사업 특성 때문이다. 대부분의 갤러리가 ‘패밀리 비즈니스’로 운영되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미술계 관계자는 “미술품을 사

    2024.04.09 17:40
  • 세계 최고 갤러리 소리 듣던 말보로, 왜 스스로 문 닫았나

    프랜시스 베이컨, 마크 로스코 등 현대미술 대표 거장들의 작품을 취급하며 한때 세계 최고 갤러리 중 하나로 이름을 날렸던 말보로 갤러리가 오는 6월 문을 닫는다. 1946년 영국 런던에 처음 문을 연 지 78년 만이다. 말보로 갤러리는 지난 4일 “올해 6월부터 갤러리를 폐쇄하고 전시와 작가 관련 활동을 모두 중지한다”고 발표했다. 1946년 오스트리아 출신의 프랭크 로이드와 해리 피셔가 런던에 설립한 말보로 갤러리는 1950~1960년대 프랜시스 베이컨, 루시안 프로이트, 오스카 코코슈카, 헨리 무어, 벤 니콜슨, 프랭크 아우어바흐 등 세계적인 거장들의 작품을 다루며 영향력을 넓혔다.1963년에는 미국 뉴욕 지점을 열고 잭슨 폴록과 필립 거스톤 등 미국에서 활동하는 거장들의 작품을 함께 다루기 시작했다. “대서양 양쪽(영국과 미국)에서 독보적인 수준”이라는 게 갤러리에 대한 당시 미술계의 평가였다. 긴 세월 동안 곡절도 많았다. 1970년대 갤러리가 마크 로스코의 유작을 놓고 유족과 법정 공방을 벌이면서 한풀 꺾였다. 로스코는 세상을 떠나기 직전인 1970년 자신의 유작을 말보로갤러리에 위탁하는 계약을 맺었는데, 이 계약이 불공정했으며 갤러리가 유작들을 헐값에 대량으로 팔아넘겨 부당 이득을 취하고 있다는 게 유족의 주장이었다. 재판에서 유족이 승소하면서 1975년 갤러리는 로스코의 유족에 약 600만달러를 지불하고 작품 650여점을 반환하기로 협의했다. 2020년 이사회 구성원들이 경영권을 놓고 서로 소송전을 벌이면서 갤러리가 문을 닫을 뻔한 일도 있었다.말보로 갤러리의 이번 폐쇄 결정은 갤러리의 소유권 문제 때문인 것으로 알려졌다. 말보로 갤러

    2024.04.08 14:14
  • 아무나 고소하다 '빚더미'...'미생 탈출' 시도했던 괴짜 최후 [성수영의 그때 그 사람들]

    고소, 고소, 그리고 또 고소. 남자는 자신의 고객들에게 끊임없이 소송을 걸어댔습니다. 내용은 ‘돈을 더 달라’는 것. 법정에 나갈 때마다 그는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댔습니다. “그런 똥값에 물건을 넘기라고요? 내가 외국인이라서 지금 막 나가는 겁니까?”남자의 이름은 도메니코스 테오토코풀로스. 다만 길고 어려운 그의 그리스식 이름을 기억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엘 그레코’(그리스인)라는 별명으로 불렸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뒤에서 다른 별명을 수군댔습니다. ‘고소왕’, ‘돈에 미친 그리스 놈’이라고요.엘 그레코 자신도 그런 평가를 잘 알고 있었습니다. 이런 소송을 계속해봐야 얻을 게 전혀 없다는 것도요. 사람들을 고소해 돈을 벌기는커녕, 막대한 소송 비용을 대느라 남자는 막대한 빚까지 져야 했습니다. 하지만 그에게는 소송을 걸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었습니다. 오늘은 외국인 사업가였고, 싸움닭이었으며, 가난한 아버지였고, 현대미술의 문을 열어젖힌 위대한 화가, 엘 그레코의 사연을 풀어 봅니다. 섬 동네 출신 ‘미생 화가’엘 그레코의 시작은 더할 나위 없이 좋았습니다. 그의 고향은 그리스 인근의 크레타섬. 소의 머리에 사람 몸을 한 그리스 신화 속 괴물, 미노타우로스 전설로 유명한 이 섬은 당시 베네치아 공화국의 지배를 받고 있었습니다. 1541년 이곳에서 태어난 그는 어린 시절부터 이콘(동방 교회의 종교화)을 그리는 훈련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금세 두각을 드러내 20대 초반에 이미 대가로 대접받았습니다. 자신의 이름을 건 공방을 만들고 고가의 의뢰를 받아 작품들을 그

    2024.04.06 07:57
  • [이 아침의 조각가] 일상 속 예술 추구한 美 현대조각 선구자…리처드 세라

    지난달 26일 85세로 세상을 떠난 리처드 세라(1938~2024)는 미국의 현대 조각을 대표하는 예술가 중 한 명이다. 그는 철판 등 금속성 재료로 제작해 보는 사람을 압도하는 거대한 조각 작품으로 예술계와 대중의 주목을 받았다.세라가 자신을 상징하는 거대한 철 조각 작품을 만들기 시작한 건 1970년대부터다. 어린 시절 아버지가 일하는 조선소를 견학한 경험이 바탕이 됐다. 예술은 손에 잡히지 않는 것을 표현하려고 시도하는 게 아니라 사람들이 직접 만지고 생활하는 공간과 환경에 변화를 줄 수 있어야 한다는 게 세라의 생각이었다. 이런 철학은 주민들과의 갈등을 낳기도 했다. 세라가 1981년 미국 뉴욕 맨해튼에 설치한 36m에 달하는 작품 ‘타이틀드 아크(Titled Arc)’는 이동을 방해한다는 민원이 쏟아지면서 강제 철거되는 수모를 겪었다.하지만 대부분 지역에서 그의 작품은 환영받았고 해당 지역과 미술관의 랜드마크로 자리 잡았다. 2005년 스페인 구겐하임 미술관에 설치된 뒤 영구 전시 중인 ‘시간의 문제(The Matter of Time)’, 2014년 카타르 브루크 자연보호구역에 1㎞ 간격으로 세워진 14∼16m 높이의 강철 기둥 ‘동-서/서-동(East-West/West-East)’ 등이 대표적이다.뉴욕타임스는 “관객들은 그의 작품 속으로 들어가 미로를 탐험하듯 길을 찾고 작품을 만지며 경외감을 받고, 왠지 모를 위안을 받게 된다”고 했다. 성수영 기자

    2024.04.02 18:18
  • 기생충·오징어게임이 '한국적이라서 성공했다'고? [서평]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이다.” K팝과 한식, 드라마와 영화 등 한국산 콘텐츠가 세계적인 인기몰이를 할 때마다 단골로 나오는 분석이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외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한식으로 꼽히는 ‘치킨’은 미국의 딥 프라이드 치킨이 원조다. ‘오징어게임’ 역시 딱지치기와 달고나 게임 등 한국에서만 볼 수 있는 요소가 있기는 하다.하지만 주제는 가계부채와 가족애 등으로 세계 보편적이고, 영상 곳곳에는 서양미술에서 영감을 받은 시각적 요소가 등장한다. ‘기생충’ 역시 빈부격차라는 보편적 소재를 다루고 있다. 한국적 요소가 강한 것만이 성공의 비결은 아니란 얘기다.‘혼종’. 문화 전문 저널리스트인 문소영 기자는 최근 펴낸 <혼종의 나라>에서 최근 한국 대중 문화의 성공 비결이자 특징을 이 단어 하나로 요약한다. 여기서 혼종이라는 단어는 부정적 의미보다는 긍정에 가깝다. 한국처럼 자국과 외국, 전통과 현대 등 여러 가지가 정신없이 뒤섞인 ‘혼종적 환경’에서는 무엇이든 역동적이고 적응력이 강해야 살아남을 수 있다. 기생충과 오징어게임과 같은 인기 콘텐츠들도 이런 환경의 산물이라는 게 저자의 분석이다.예컨대 기생충은 빈부격차와 황금만능주의를 ‘언덕 위 자택-반지하-지하 벙커’라는 공간적 상징과 블랙 유머로 맛깔나게 풀어냈다. ‘한국의 특수성’을 강조했다기보다는 세계인들이 공감할 수 있는 보편적 주제를 남들보다 더 세련되게 풀어낸 게 주효했다는 평가다. 오징어게임에 등장하는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놀이’와 줄다리기 역시 비슷한 게임이 다른 나

    2024.04.02 09:23
  • 신혼여행이 '이별 여행' 됐다…"가난이 뭐길래" 부부의 눈물 [성수영의 그때 그 사람들]

    “저, 혼인신고를 하고 싶은데요….”쭈뼛거리며 등기소에 찾아온 허름한 차림의 중년 남녀 한 쌍. 두 사람이 조금 민망한 표정을 지은 건, 신혼부부라고 하기에 조금 많은 나이 때문이었습니다. 말을 꺼낸 신랑의 나이는 58세, 그 옆에 손을 꼭 잡고 있는 신부는 63세였거든요. 신랑은 말을 이어갔습니다. “저희가 신혼여행을 왔는데요…. 여행을 온 참에 여기서 서류를 내려고요.”사실 이들은 30년 넘게 한 지붕 아래에서 함께 살아온 사이였습니다. 아들 하나 딸 하나씩 낳아 키워서 독립도 시켰고요. 당시 유럽에서 이런 ‘늦은 혼인신고’는 별로 드물지 않은 일이었습니다. 부모님의 허락을 받지 못했다거나, 신분 차이 때문에 사회적인 시선이 신경 쓰인다거나, 돈이 없다는 등의 이유로 정식 결혼을 하지 못했던 사람들이 세월을 이겨내고 마침내 뒤늦게나마 법적인 인정과 축하를 받는 것이었지요.하지만 1897년 8월 5일 영국 웨일스 카디프의 등기소를 찾은 이 부부는, 조금 사정이 달랐습니다. 이들의 신혼여행은 일종의 이별 여행이기도 했거든요. 아내는 불치의 병에 걸려 살날이 얼마 남지 않은 몸. 남편의 몸에도 마찬가지로 종양이 자라고 있었습니다. 그의 이름은 알프레드 시슬레(1839~1899). 훗날 ‘인상주의의 교과서’로 불리는, 그의 애잔한 삶과 작품 이야기. 느긋한 부잣집 도련님이었지만행복이란 상대적인 것입니다. 그러니 행복을 ‘어제보다 오늘, 오늘보다 내일 상황이 나아지는 것’이라고 이야기할 수도 있겠습니다. 가족의 병이 나아졌다든지, 좋아하는 사람과 좀 더 친해졌다든지, 월급이 오른다든지 하는 것들이요.이런 기준

    2024.03.30 08:04
  • 붓 든 순간, 나는 회장님이 아닌 15년차 화가 '씨킴'

    ‘부자의 취미생활.’어떤 이들은 김창일 아라리오 회장(73)이 그리는 작품을 이렇게 얕잡아 부른다. 대학에서 경영학을 전공한 김 회장은 1979년 충남 천안역 앞 작은 버스터미널을 오늘날의 천안종합버스터미널과 신세계백화점 천안아산점, CGV 천안터미널점, 식음료점 등이 합쳐진 복합시설로 키워낸 성공한 기업인이다. “본업이 화가”라는 미술시장 ‘큰손’김 회장은 국내외 유명 작가 작품을 4000여 점 보유한 세계 미술시장의 ‘큰손’이자 여러 갤러리와 미술관을 운영하고 작가를 후원하는 미술계 주요 후원자다. 그러니 그가 그림을 그리는 건 어디까지나 취미에 불과할 게 뻔하다고 지레짐작할 만도 하다.하지만 김 회장은 자신의 본업을 화가로 여긴다. 작가로서의 예명은 ‘씨킴(CI KIM)’. 1999년 처음 개인전을 연 그는 어느덧 25년 경력의 작가가 됐다. 10여 년 전 전문경영인에게 기업 경영을 일임한 뒤 전보다 그림에 더욱 몰두하고 있다. 이때까지 그린 작품은 1만 점이 넘는다. 돈을 벌기 위해서 작업하는 건 결코 아니다. 그런 오해를 받는 게 싫어 “제발 팔아달라”고 애원하는 사람이 있어도 절대 작품을 넘기지 않는다. 천안 아라리오갤러리에서 열리고 있는 씨킴의 17번째 개인전은 그의 미술에 대한 ‘진심’을 확인할 수 있는 자리다.이번 전시의 주제이자 제목은 무지개(RAINBOW). 분홍색 옷을 입고 직접 물감을 칠한 스니커즈를 신은 채 전시장에 나타난 씨킴은 “어린 시절 친구들과 어울리지 못하고 혼자 남산에서 엉뚱한 공상을 하며 놀곤 했는데, 그때 남산 너머로 본 무지개 모습이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며 “그때부터 지금까지

    2024.03.29 18:40
  • 진흙 속이지만…연꽃처럼 '나'로 살겠다

    내 자식, 내 가족, 내 나라가 잘되기를. 다음 생은 이번 생보다 행복하기를. 언젠가는 극락왕생할 수 있기를.이름 없는 한·중·일 여성들의 이 같은 강렬한 염원이 가득 담긴 걸작들이 지금 경기 용인 호암미술관에 나와 있다. 동아시아 여성들의 삶을 불교미술을 통해 조망한 기획전 ‘진흙에 물들지 않는 연꽃처럼’이 열리고 있다. 전통적으로 한·중·일에서 여성은 불교미술의 가장 큰 후원자였다. 이승혜 리움미술관 큐레이터는 “불교미술 작품들은 역사책에 기록되지 않은 과거 여성들의 삶을 돌아보는 훌륭한 창”이라고 설명했다. 동아시아 불교미술을 통해 여성의 삶을 들여다본다는 전시 콘셉트는 처음이다.신선한 주제만큼이나 주목할 만한 건 ‘블록버스터급’ 규모와 출품작 수준이다. 하나하나가 각국이 소장한 주요 문화재다. 국립중앙박물관과 불교중앙박물관 등 국내에서 9곳의 국보 1건과 보물 10건 등 40건, 미국 메트로폴리탄미술관과 독일 쾰른동아시아미술관 등 해외 유수의 미술관에서는 유물 52건을 빌려왔다. 92건 중 절반 이상인 47건은 한국에서 처음 전시되는 작품. 올해 열리는 고미술 전시 중 단연 압도적이다. 95년 만에 만나는 ‘백제의 미소’전시작들의 시대는 백제시대인 7세기 무렵부터 대한제국이 있었던 20세기 초까지를 아우른다. 작품이 제작된 곳도 고려 등 한반도는 물론 원나라와 청나라, 일본 등으로 다양하다. 이 중 가장 시선을 끄는 건 7세기 백제에서 만든 26.7㎝짜리 불상 ‘금동관음보살입상’이다. 1907년 충남 부여에서 한 농부가 발견한 이 불상은 1922년 일본인 수집가에게 팔려 1929년 전시를 마지막으로

    2024.03.28 17:23
  • 95년만에 만나는 '백제의 미소', 잊힌 여성들을 비추다

    내 자식, 내 가족, 내 나라가 잘 되기를. 다음 생은 이번 생보다 행복하기를. 언젠가는 극락왕생할 수 있기를.이름 없는 한·중·일 여성들의 이 같은 강렬한 염원이 가득 담긴 걸작들이 지금 경기 용인 호암미술관에 나와 있다. 동아시아 여성들의 삶을 불교미술을 통해 조망한 기획전 ‘진흙에 물들지 않는 연꽃처럼’이 열리고 있다. 전통적으로 한·중·일에서 여성은 가장 큰 불교미술의 후원자였다. 이승혜 호암미술관 책임연구원은 “불교미술 작품들은 역사책에 기록되지 않은 과거 여성들의 삶을 돌아보는 훌륭한 창”이라고 설명했다. 불교미술을 통해 여성의 삶을 들여다본다는 전시 콘셉트는 사상 처음이다.신선한 주제만큼이나 주목할만한 건 ‘블록버스터급’ 규모와 출품작 수준이다. 하나하나가 각국이 소장한 주요 문화재다. 호암미술관은 리움미술관과 국립중앙박물관 등 9곳의 국보 1건과 보물 10건 등 40건, 미국 메트로폴리탄 미술관과 독일 쾰른 동아시아 미술관 등 해외 유수의 미술관에서 유물 52건을 빌려왔다. 92건 중 절반 이상인 47건은 한국에서 처음 전시되는 작품. 올해 열리는&nb

    2024.03.27 20:25
  • 백남준·윤석남·김길후…시대를 넘어 한자리에

    백남준(1932~2006)이 미래를 내다본 대단한 예술가라는 건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학생들이 보는 교과서에도 ‘미디어아트의 창시자이자 인터넷의 개념을 예견한 거장’이라고 적혀 있다. 하지만 그가 위대한 이유를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도 아는 사람은 생각보다 많지 않다. 젊은 세대는 특히 더 그렇다. 백남준이 예견한 ‘인터넷을 통한 지식과 정보의 자유로운 순환’이라는 개념이 이제 너무나도 당연한 상식이 됐기 때문이다. 백남준의 예지가 너무 정확하고 빠르게 실현된 탓에 인터넷과 스마트폰 시대에 태어난 사람들은 그의 생각이 얼마나 탁월했는지 공감하기 쉽지 않다.더 큰 문제는 작품을 직접 보기가 힘들다는 것이다. 그의 작품은 규모가 워낙 큰 데다 구형 전자제품을 사용한 탓에 전시도, 유지·보수도 어렵다. 그래서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이나 경기 용인 백남준아트센터 같은 대규모 전문 전시장이 아니면 감당하기 어렵다. 백남준의 대작, 윤석남의 존재감서울 소격동 학고재갤러리에서 열리고 있는 3인전 ‘함’은 모처럼 서울에서 백남준의 대표적인 대작을 볼 좋은 기회다. 전시장에서 가장 크고 좋은 공간은 전부 백남준의 1994년작 ‘W3’이 차지하고 있다. W3은 월드와이드웹(WWW)을 상징하는 작품으로, 동일한 영상을 약간의 시차를 두고 상영해 정보가 인터넷을 통해 고속으로 흘러가는 광경을 형상화했다. 이진명 학고재갤러리 이사는 “전기를 워낙 많이 쓰는 작품이라 갤러리 전기 관련 설비를 증설했다”며 웃었다.TV 등을 통해 익살스러운 얼굴을 만들어낸 ‘인터넷 드웰러: mpbdcg.ten.sspv’ 역시 인터넷 세상을 내다본 작품이다. 우찬규

    2024.03.24 17:55
  • '79살 아내가 23세 男과 외도'…진실 알게 된 남편 반응이 [성수영의 그때 그 사람들]

    23살. 아내의 불륜 상대 나이를 알게 된 남자는 기가 찼습니다. 아내의 내연남은 잘나가는 뮤지컬의 주연 배우. 장발이 잘 어울리는 무척 잘생긴 녀석이었습니다. 아내는 내연남을 위해 남편이 평생 번 돈을 흥청망청 써댔습니다. 이때까지 아내의 수많은 불륜을 용서했던 남자였지만 이번만큼은 참을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 이유는 분노가 아니었습니다. ‘아내를 그 젊은 녀석에게 빼앗길 수도 있다’는 두려움 때문이었습니다.79살의 배우자가 56살 어린 애인을 만나고 있다는 건 분통 터지는 황당한 일입니다. 하지만 1973년 초현실주의 거장 살바도르 달리(1904~1989)에게 이는 엄연한 현실이었습니다. 그리고, 너무나도 가슴 아프고 두려운 일이었습니다.대체 이 부부는 어떤 관계였던 걸까요. 무엇이 이들을 이렇게 만들었을까요. 오늘은 그 이야기를 달리의 삶, 작품 세계와 함께 풀어보겠습니다. 금쪽이, 그림 천재 되다스페인 동북부 카탈루냐 지방에는 ‘알 엠포르다’라는 지역이 있습니다. 프랑스 국경과 지중해를 접한 이곳은 시속 129km에 달하는 거센 바람이 수시로 불어오는 동네입니다. 이런 바람은 오랜 세월에 걸쳐 산과 바위를 신비롭고 환상적인 모양으로 깎아냈습니다. 하지만 바람은 이 지역에 사는 사람들의 마음까지도 꺾어 버렸습니다. ‘저 바람은 사람을 미치게 만든다.’ 동네 사람들은 이런 얘기를 주고받곤 했습니다. 정신질환을 앓던 달리의 할아버지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을 때도, 사람들은 그런 얘기를 수군거렸습니다.1904년 태어난 달리는 할아버지의 기질을 물려받았습니다. 극도로 예민하고 섬세한 기질을 타고난 탓에 달리는 어린 시절

    2024.03.23 09:09
  • 아라리오 씨킴은 부자가 취미로 그리는 게 아니다, 작가인데 돈이 많을뿐

    ‘부자의 취미생활’. 어떤 이들은 김창일 아라리오 회장(73)이 그리는 작품을 이렇게 얕잡아 부른다. 대학에서 경영학을 전공한 김 회장은 1979년 천안역 앞 작은 버스터미널을 오늘날의 천안종합버스터미널과 신세계백화점 천안아산점, CGV 천안터미널점, 식음료점 등이 합쳐진 복합시설로 키워낸 성공한 기업인이다. 국내외 유명 작가 작품을 4000여 점 보유한 세계 미술 시장의 ‘큰손’이자 여러 갤러리와 미술관을 운영하고 작가를 후원하는 미술계의 주요 후원자이기도 하다. 그러니 그가 그림을 그리는 건 어디까지나 취미에 불과할 게 뻔하다고 지레짐작할 만도 하다. 하지만 김 회장은 자신의 본업을 화가로 여긴다. 작가로서의 예명은 ‘씨킴(CI KIM)’. 1999년 첫 개인전을 연 그는 어느덧 15년 경력의 작가가 됐다. 10여년 전 전문경영인에게 기업 경영을 일임한 뒤에는 전보다 그림에 더욱 몰두하고 있다. 이때까지 만든 작품 수는 1만점이 넘는다. 돈을 벌기 위해서 작업을 하는 건 결코 아니다. 그런 오해를 받는 게 싫어 “제발 팔아달라”고 애원하는 사람이 있어도 절대 작품을 넘기지 않는다. 천안 아라리오갤러리에서 열리고 있는 씨킴의 17번째 개인전은 그의 미술에 대한 ‘진심’을 확인할 수 있는 자리다. 이번 전시의 주제이자 제목은 무지개(RAINBOW). 핑크색 옷을 입고 직접 물감을 칠한 스니커즈를 신은 채 전시장에 나타난 씨킴은 “어린 시절 친구들과 어울리지 못하고 혼자 남산에서 엉뚱한 공상을 하며 놀곤 했는데, 그때 남산 너머로 본 무지개의 모습이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다”며 “그때부

    2024.03.21 10:37
  • 낙서같지만 '억' 소리나는 작품입니다

    미술에 관심 없는 사람이 보기에 에디 마티네즈(47·사진)의 그림은 어린아이가 그린 낙서 같다. 하지만 미술시장에서의 인기는 뜨겁다. 작품 가격이 수억원대를 호가하는데도 그의 작품은 물감이 마르기가 무섭게 팔려나간다. “웬만한 컬렉터들 집에는 마티네즈 그림이 한 점씩은 있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서울 마곡 스페이스K에서 열리고 있는 마티네즈의 개인전 ‘투 비 컨티뉴드(To Be Continued)’는 그 이유를 직접 알아볼 수 있는 자리다. 전시장에는 2005년부터 최근 작품까지 그의 시기·주제별 작품 30여점이 나와 있다. 작풍은 추상표현주의나 ‘검은 피카소’라는 별명으로 잘 알려진 그라피티 작가 장미셸 바스키아를 연상시킨다.얼핏 보면 ‘나도 그리겠다’는 생각이 들 수도 있다. 하지만 막상 실제로 그림을 그려 보면 마티네즈처럼 가볍고 경쾌하게 캔버스를 채우는 게 쉽지 않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항상 펜과 종이를 들고 다니며 끊임없이 그림을 그리는 작가의 노력, 생동감과 해방감을 연출할 수 있도록 치밀하게 계산된 색과 재료 덕분이다. 그의 작품이 낙서를 연상시키는 건, 파블로 피카소가 인간 본연의 순수한 미감을 추구하면서 “나는 어린아이처럼 그리기 위해 평생을 바쳤다”고 말한 것과 비슷한 맥락이라고 미술계는 해석한다.작가의 ‘화이트아웃’ 연작 중 하나인 높이 3m, 폭 6.7m의 대작 ‘은하계 같은 풍경 - 로지아(Loggia)에서 바라보다’(2023)도 그런 작품이다. 키우던 강아지가 세상을 떠난 후 슬픔을 담아 그린 작품으로, 그림을 그리다 흰색을 덧칠한 뒤 다시 색을 입혀 아련한 느낌을 연출했다. 마티

    2024.03.21 09:09
  • '안녕, 따뜻했던 파리의 겨울'…들라크루아전, 10일 뒤 작별

    지난 겨울 한국에서 가장 흥행한 미술 전시는 단연 ‘미셸 들라크루아, 파리의 벨 에포크’였다.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한가람디자인미술관에서 10일 뒤 막을 내리는 이 전시는 지난 세 달간 인터파크 전시 예매 순위 최상위를 꾸준히 지켰다. 21일까지 전시를 찾은 관객은 총 13만8000여명. 폐막일인 31일까지 15만명 돌파가 확실시된다.“놀랍다”는 게 미술계와 전시업계의 반응이다. 외국인 생존 작가의 전시로는 이례적인 수준의 흥행이라서다. 들라크루아가 누구나 인정하는 거장이거나 한국에서 인지도가 높았던 것도 아니다. 자기 자신을 “거장들의 리그에 속하지 않는 평범한 화가일 뿐”이라고 소개하는 프랑스 노(老)화가가 어떻게 이런 기록을 세운 걸까.흥행의 가장 큰 이유로는 ‘호불호가 없는 따뜻하고 아름다운 화풍’이 꼽힌다. 덕분에 그림을 잘 모르고 미술에 깊은 지식이 없어도 누구나 즐길 수 있다는 게 관객들의 평가다. 한 관객(인터파크 아이디 khb***)은 “추상적이고 어려운 현대미술 작품을 싫어하는지라 이때까지 미술관을 잘 찾지 않았는데, 이번 전시는 관람하는 내내 행복했다”고 평가했다. 함께하는 삶, 연인 간의 사랑, 가족의 단란함 등 따뜻한 그림 주제도 인기에 한 몫 했다. 관객들이 들라크루아의 화풍을 좋아한다는 건 관람객 수보다 굿즈 판매 개수가 더 많다는 사실이 방증한다. 전시를 관람한 사람들이 평균 한 점 이상 굿즈를 샀다는 얘기다.프랑스 파리 특유의 낭만적인 감성을 그림에 담아내는 들라크루아의 탁월한 실력도 호평을 받았다. 한국에 있는 프랑스인들까지 “고향이 떠오른다”며 감탄할

    2024.03.20 14:08
  • [이 아침의 화가] 설악의 화가, 김종학

    원로 화가 김종학(87)의 별명은 ‘설악의 화가’다. 젊은 시절 실험적 추상미술에 몰두한 그가 설악산의 풍경을 그리게 된 건 순탄치 않았던 삶 때문이다. 경기중·고, 서울대 미대를 졸업하고 일본 도쿄 미술대와 미국 뉴욕 프랫대로 유학을 다녀오는 등 엘리트 코스를 밟을 때까지만 해도 그의 미래는 밝아 보였다. 하지만 그림은 팔리지 않았고, 그는 화가로서도 아버지로서도 무능하다는 자책감에 시달렸다. 아내도 그를 떠났다.도망치듯 설악산에 찾아든 김 화백을 살린 것은 아이들에게 ‘화가 아버지’를 기억하게 해줄 100장의 좋은 그림을 그리자는 결심이었다. 눈앞에 펼쳐진 설악산의 절경을 독창적인 화풍으로 그려내면서 그는 한국 화단을 대표하는 구상화가로 우뚝 섰다. 생명력이 가득한 김 화백의 작품은 난해한 현대미술 작품이 주지 못하는 매력을 선사한다는 평가다.의외로 그가 가장 꾸준하게 그려온 그림은 인물화다. 서울 사간동 현대화랑에서 열리고 있는 ‘김종학: 사람이 꽃이다’는 그가 1950년대부터 그린 인물화를 조명하는 전시다. 그는 “꽃이 하나하나 생김새가 모두 다르듯, 사람도 모두 각기 다르게 생겼다”고 말했다. 전시장에는 143점에 달하는 작품이 나와 있다. 대부분 이번 전시를 통해 처음 공개하는 작품이다. 가로 8m 길이의 캔버스에 설악산 야생화를 가득 그린 작품 ‘팬더모니엄(Pandemonium)’ 등 꽃 그림도 있다. 전시는 4월 7일까지.성수영 기자

    2024.03.19 18:39
  • 지드래곤 작품 첫 경매…3000만원부터 시작

    가수 지드래곤(본명 권지용·36)이 그린 그림이 처음으로 경매에 나온다.서울옥션은 오는 29일 서울 신사동 강남센터에서 열리는 ‘컨템포러리 아트 세일’에서 미술품 등 85점(추정가 약 180억원)을 경매에 부친다. 가장 눈에 띄는 건 지드래곤의 작품 ‘Youth is Flower’(사진)다. 2017년 완성한 이 작품은 철제 패널 위에 스프레이와 마커를 뿌리는 방식을 통해 자신을 상징하는 데이지꽃 등을 그린 회화다. 지드래곤이 운영하던 제주도 카페를 인수한 사업가가 카페 내부에 있는 회화를 경매에 올린 것으로 알려졌다. 시작가는 3000만원이다.김환기의 전면점화 ‘3-Ⅴ-71 #203’(추정가 50억~80억원)과 ‘새와 달’(6억~10억원), 윤형근의 대작 ‘Umber 90-66’(7억~10억원) 등도 눈길을 끈다.케이옥션은 20일 3월 경매를 연다. 프랑스 추상화가 베르나르 프리츠의 작품 ‘Gawk’(2억~3억원) 등이 나온다.성수영 기자

    2024.03.19 17:57
  • 백남준·윤석남·김길후… 시대를 넘어서 한 자리에 각자 서다

    백남준(1932~2006)이 미래를 내다본 대단한 예술가라는 건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학생들이 보는 교과서에도 ‘미디어아트의 창시자이자 인터넷의 개념을 예견한 거장’라고 적혀 있다. 하지만 그가 위대한 이유를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도 아는 사람은 생각보다 많지 않다. 젊은 세대는 특히 더 그렇다. 백남준이 예견했던 ‘인터넷을 통한 지식과 정보의 자유로운 순환’이라는 개념이 이제 너무나도 당연한 상식이 됐기 때문이다. 백남준의 예지가 너무 정확하고 빠르게 실현된 탓에, 인터넷과 스마트폰의 시대에 태어난 사람들은 그의 생각이 얼마나 탁월했는지 공감하기 쉽지 않다. 더 큰 문제는 작품을 직접 보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그의 작품은 규모가 워낙 큰 데다 구형 전자제품을 사용한 탓에 전시하기도, 유지·보수하기도 어렵다. 그래서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이나 경기 용인의 백남준아트센터 같은 대규모 전문 전시장이 아니면 감당하기 어렵다. 백남준의 대작, 윤석남의 존재감서울 소격동 학고재갤러리에서 열리고 있는 3인전 ‘함’은 모처럼 서울 시내에서 백남준의 대표적인 대작을 볼 수 있는 좋은 기회다. 전시장에서 가장 크고 좋은 공간은 전부 백남준의 1994년작 ‘W3’이 차지하고 있다. W3은 월드 와이드 웹(WWW)을 상징하는 작품으로, 동일한 영상을 약간의 시차를 두고 상영해 정보가 인터넷을 통해 고속으로 흘러가는 광경을 형상화했다. 이진명 학고재갤러리 이사는 “전기를 워낙 많이 쓰는 작품이라 갤러리 전기 관련 설비를 증설했다”며 웃었다.TV 등을 통해 익살스러운 얼굴의 모습을 만들어낸 ‘인터넷 드웰러:

    2024.03.19 09:07
  • 韓 미술시장에 거세게 부는 '해외 직구' 바람

    믿을 수 있는 오랜 단골 가게에 갈 것인가, 최근 개점한 화려한 해외 유명 브랜드의 한국 지점에 갈 것인가.한국의 미술품 컬렉터들은 요즘 이런 ‘행복한 고민’에 빠져 있다. 최근 2~3년 새 해외 옥션과 갤러리들이 앞다퉈 한국에 사무실을 열고 있어서다. 지난해만 해도 글로벌 톱5 화랑 중 하나인 영국 화이트큐브가 서울 강남구 신사동에 지점을 열었고, 세계 양대 경매사 중 한 곳인 소더비는 한남동에 사무소를 차렸다. 이들이 공격적인 마케팅으로 컬렉터를 끌어모으면서 국내 미술시장 지형도가 바뀌고 있다. 소더비 수수료 인하, 경매시장 흔드나해외 옥션사와 유명 갤러리들이 앞다퉈 한국에 몰려오는 건 ‘돈이 된다’는 판단이 섰기 때문이다. 아시아 미술시장의 중심지였던 홍콩이 2019년 대규모 민주화 시위 등 정치적 불안으로 흔들리고, 세계적 아트페어 프리즈가 2022년부터 서울에서 열리기 시작한 게 직접적인 계기가 됐다.1990년 한국에 진출했다가 2000년대 초 철수한 소더비가 작년 돌아온 것도 같은 맥락이다. 국내 컬렉터들이 한국 작가의 작품을 살 때 국내 옥션 대신 홍콩 등 해외에서 열리는 경매에서 구매하는 ‘직구’(직접구매) 성향이 최근 강해진 것도 영향을 미쳤다. 지난해 홍콩의 소더비, 크리스티, 필립스에서 한국 작가 작품들의 낙찰총액은 930만달러(약 122억원). 이렇게 팔린 작품 중 절반 이상은 국내 고객이 사 간 것으로 알려졌다.여기에 소더비의 경매 수수료 인하 방침이 겹치면서 국내 컬렉터들의 직구 선호 현상은 더욱 강해질 전망이다. 소더비는 오는 5월 21일부터 600만달러(약 79억원) 미만 작품의 경매 수수료를 낙찰가의 20%, 600만달러 이상 초고가

    2024.03.18 18:45
  • '푸른 미소년'으로 영국 발칵...두 남자 관계 어땠길래 [성수영의 그때 그 사람들]

    “이건…. 집 주인이야 별 뜻 없이 걸었겠지만, 회장님을 완전히 엿 먹이는 건데….”1770년 영국 런던에 있는 한 부자의 저택. 저녁 식사에 초대받은 손님들은 벽에 걸린 아름다운 작품, ‘블루 보이’에 감탄하면서도 이런 걱정을 했습니다. 이 그림은 그 존재 자체로 ‘회장님’에게 큰 모욕을 주는 작품이었거든요. 회장님의 이름은 조슈아 레이놀즈(1723~1792). 영국 최고의 화가들이 모인 왕립아카데미의 수장이자 회원들에게 예술 이론을 가르치는 ‘화가들의 화가’였습니다. 그리고 그 역시 오늘 저녁 자리에 참석할 예정이었지요.그런데 그 대단한 회장님이 어째서 고작 소년의 초상화 하나에 모욕을 당한다는 걸까. 이유는 이랬습니다. 먼저 이 그림의 작가는 레이놀즈의 평생의 라이벌, 토마스 게인즈버러(1727~1788). 둘의 사이가 안 좋다는 건 런던 시민이라면 누구나 아는 사실이었지요. 더 큰 문제는, 이 그림이 레이놀즈의 예술 이론을 정면으로 반박하는 작품이었단 겁니다. 레이놀즈는 항상 입버릇처럼 “초록색과 파란색을 너무 많이 쓰면 그림이 이상해진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게인즈버러는 이 말에 반박하기 위해 파란색과 초록색을 있는 대로 다 써서 그림을 그렸습니다. 그리고 그 결과는 보다시피, 예술이었습니다.“이렇게 되면 회장님 얘기가 틀렸다는 건가?” “글쎄, 정말 잘 그리긴 했어.” 한동안 술렁이던 사람들은 갑자기 뒤에서 느껴진 인기척에 흠칫 놀라 조용해졌습니다. 어느새 들어온 레이놀즈가 조용히 그림을 바라보고 있었던 겁니다.한참 물끄러미 그림을 보던 레이놀즈. 마침내 입을 열었

    2024.03.16 13:05
  • 지드래곤 작품 'Youth is Flower' 경매 나온다…시작가 얼마?

    가수 지드래곤(본명 권지용·36)이 7년 전 그린 그림이 경매에 나온다. 경매 시작가는 3000만원이다. 서울옥션은 오는 29일 서울 신사동 강남센터에서 열리는 ‘컨템포러리 아트 세일’에서 미술품 등 85점(추정가 약 180억원)을 경매에 부친다. 가장 눈에 띄는 건 단연 지드래곤의 작품. 지난해 말부터 서울옥션은 경매를 열 때마다 안중근 의사의 유묵 등 화제성이 높은 작품들을 선보이며 대중의 관심을 끌어모으고 있다. 지드래곤 작품 제목은 ‘Youth is Flower’다. 2017년 완성한 이 작품은 철제 패널 위에 스프레이와 마커를 뿌리는 방식을 통해 자신을 상징하는 데이지꽃 등을 그린 회화다. 경매 시작가는 3000만원이다. 지드래곤은 미술시장의 ‘큰손’으로 이름난 미술 애호가다. 지난 2019년 미국 유명 미술 전문지 아트뉴스가 선정한 ‘주목할 만한 컬렉터 50인’에도 든 적이 있다. 하지만 직접 제작한 작품이 경매에 나오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지드래곤의 인기와 인지도를 고려하면 낙찰을 받기 위해 치열한 경합이 벌어질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이 나온다. 홍콩 등 중화권 팬들도 입찰에 나설 가능성이 높다.미술 애호가들이라면 서울옥션 경매에서 한국 현대미술 거장들의 대형 작품을 주목할 만하다. 김환기의 전면점화 '3-Ⅴ-71 #203'(추정가 50억~80억원)이 대표적이다. 올 들어 경매시장에 처음 나온 수십억원대 전면점화다. 김환기의 '새와 달'(6억~10억원), 윤형근의 대작 'Umber 90-66'(7억~10억원) 등도 눈길을 끄는 작품이다.경매 출품작들은 경매 당일(29일)까지 서울옥션 강남센터에서 만나볼 수 있다. 다만 이 중 김환기의 대형 점

    2024.03.13 14:08
  • 한국 미술시장에 부는 '직구' 바람…미술시장도 이젠 '무한경쟁시대'

    ※이 기사는 문화예술 포털 '아르떼'에 3월 13일에 게재됐습니다.믿을 수 있는 오랜 단골 가게에 갈 것인가, 최근 개점한 화려한 해외 유명 브랜드의 한국 지점에 갈 것인가.한국의 미술품 컬렉터들은 요즘 이런 ‘행복한 고민’에 빠져 있다. 최근 2~3년새 해외 옥션과 갤러리들이 앞다퉈 한국에 사무실을 열고 있어서다. 지난해만 해도 글로벌 톱5 화랑 중 하나인 영국 화이트큐브가 서울 신사동에 지점을 열었고, 세계 양대 경매사 중 한 곳인 소더비는 한남동에 사무소를 열었다. 이들이 공격적인 마케팅으로 컬렉터들을 끌어모으면서 국내 미술시장 지형도가 바뀌고 있다. 소더비 수수료 인하, 경매시장 흔드나해외 옥션사와 유명 갤러리들이 앞다퉈 한국에 몰려오는 건 ‘돈이 된다’는 판단이 섰기 때문이다. 아시아 미술 시장의 중시지였던 홍콩이 2019년 대규모 민주화 시위 등 정치적 불안으로 흔들리고, 세계적 아트페어 프리즈가 2022년부터 서울에서 열리기 시작한 게 직접적인 계기가 됐다.1990년 한국에 진출했다가 2000년대 초 철수했던 소더비가 작년 돌아온 것도 같은 맥락이다. 국내 컬렉터들이 한국 작가의 작품을 살 때 국내 옥션 대신 홍콩 등 해외에서 열리는 경매에서 구매하는 ‘직구(직접구매)’ 성향이 최근 강해진 것도 영향을 미쳤다. 지난해 홍콩의 소더비, 크리스티, 필립스에서 한국 작가 작품들의 낙찰총액은 930만달러(약 122억원). 이렇게 팔린 작품 중 절반 이상은 국내 고객이 사간 것으로 알려졌다.여기에 소더비의 경매 수수료 인하 방침이 겹치면서 국내 컬렉터들의 직구 선호 현상은 더욱 강해질 전망이다. 소더비는 오는 5월 21일부

    2024.03.13 08:16
  • [이 아침의 예술가 ] 삐삐롱스타킹을 아시나요...'올해의 작가'된 권병준

    1990년대 ‘삐삐롱스타킹’이라는 밴드가 있었다. 대중성과 작품성을 함께 인정받으며 당대 대중음악계를 풍미했다. 하지만 1997년 지상파 음악방송에서 낸 ‘방송 사고’를 계기로 해체의 길을 걸었다. 그때 카메라를 향해 손가락 욕설을 해 물의를 일으켰던 밴드 보컬(당시 예명 고구마)이 권병준(53)이다. 국립현대미술관이 선정한 ‘2023 올해의 작가상’ 수상자다.서울대 불문과를 졸업한 권병준은 삐삐롱스타킹에서 활동한 뒤 네덜란드 헤이그 왕립음악원으로 유학을 떠났다. 이곳에서 소리와 예술과학을 공부한 그는 관련 엔지니어 및 연구자로 일했다. 이후 귀국해 미술관과 연극 무대를 넘나들며 ‘소리와 공학이 결합된 예술’을 선보이기 시작했다. 그가 이번에 상을 받은 것도 ‘로봇’을 이용한 작품을 통해서다.권병준은 자신이 직접 설계한 로봇들을 전시장에 내놨다. 외나무다리에서 고개를 젓거나(‘외나무다리를 건너는 로봇’), 수도승이 절을 하듯 전시장을 걷는(‘오체투지 사다리봇’) 등 무의미해 보이는 일을 반복하는 로봇을 통해 인간 사회의 부조리를 간접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그의 작품을 만날 수 있는 전시는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3월 31일까지 열린다.성수영 기자

    2024.03.10 19:05
  • 보자마자 "사귀자"는 '민폐男'…무직이던 남자의 '대반전' [성수영의 그때 그 사람들]

    남들이 보기에 형은 상종 못할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행색이 초라한 데다 잘 씻지도 않아서 항상 술과 담배에 찌든 냄새를 풍겼습니다. 건강 관리를 하지 않아 몸에서는 고약한 냄새를 풍겼고요. 게다가 감정 기복은 극단적이었고, 고집도 말도 못 하게 셌습니다. 그런가 하면 형은 구제 불능의 ‘금사빠’(금방 사랑에 빠지는) 기질이 있었습니다. 처음 만난 여성에게 사랑한다고 하거나, 임자가 있는 사람에게 집착해 주변 사람을 엄청나게 불편하게 만들곤 했지요.형은 변변한 직장 없이 부모님에게 얹혀살았습니다. 가족들은 형을 불편하게 여겼습니다. 부모님조차 매일 한숨을 쉬었습니다. 형제자매들은 아예 대놓고 말했습니다. “오빠가 집을 나가서 속을 덜 썩이는 게 엄마 건강에도 도움이 될 거야.”하지만 딱 한 명, 형을 쏙 빼닮은 동생만큼은 달랐습니다. 어디 하나 내세울 것 없는 형. 하지만 오직 동생에게는 형의 내면에서 찬란하게 빛나는 특별한 무언가를 봤습니다. ‘언젠가 형은 역사에 위대한 인물로 남을 거야.’ 동생은 믿었습니다. 동생 역시 형과 지내는 게 편했던 건 아닙니다. 둘은 걸핏하면 소리를 지르며 싸웠습니다. 하지만 어떤 일이 있어도 동생이 형에 대한 믿음과 사랑을 잃은 적은 단 한 번도 없었습니다. 생활비를 대 주며 형을 먹여 살린 것도, 여러 곳을 데리고 다니며 형의 세상을 넓혀준 것도, 칭찬과 따끔한 조언으로 형의 발전을 이끈 것도 모두 동생이었습니다.형의 이름은 빈센트 반 고흐(1853~1890), 동생은 테오 반 고흐(1857~1891). 고흐와 그의 동생 이야기를 지금부터 시작합니다. 쏙 빼닮은 형제빈센트는 3남 3녀 중 장남,

    2024.03.09 09:59
  • '건축계 노벨상' 수상 日 9명 vs. 韓 0명… 왜 이런 차이 생겼나

    ‘건축 노벨상’으로 불리는 프리츠커상의 올해 수상자로 지난 5일(현지시각) 일본의 야마모토 리켄(79)이 선정됐다. 미국 하얏트재단이 1979년 제정한 이 상은 세계에서 가장 유명하고 실력 있는 건축가들만 받을 수 있는 최고 권위의 상이다. 일본인이 이 상을 받은 건 아홉 번째. 이로써 일본은 미국(8명)을 제치고 가장 많은 수상자를 낳은 국가가 됐다.이 소식을 들은 한국 건축계에서는 탄식이 나왔다. 이번 수상으로 인해 한 번도 수상자를 배출하지 못한 한국과 일본의 격차가 9대 0까지 벌어졌기 때문이다. 리켄이 누구길래 이 상을 받은 걸까. 일본은 왜 이렇게 프리츠커상을 많이 받을 수 있었나. 한국에서는 왜 수상자가 나오지 않는 걸까. ‘투명성’으로 소통 추구의외로 리켄의 이름을 아는 한국인들이 많다. 그가 설계한 아파트와 타운하우스가 국내에 있어서다. 판교의 타운하우스인 월든힐스 2단지(2011년 입주)와 서울 세곡동 아파트 보금자리 3단지(2013년 입주)가 그의 작품이다. 하지만 두 건물 모두 완공 후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현관문을 유리로 만들어 안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파격적인 설계 때문이었다. 사생활 침해와 보안 문제 등 논란이 일면서 판교 타운하우스는 초기 미분양 사태를 겪었고, 세곡동 아파트는 현관문에 불투명 시트지를 추가 시공했다.이런 문제가 뻔히 예상됐는데도 리켄이 도발적인 설계를 밀어붙인 건 그의 건축의 핵심 철학이 ‘투명성’이라서다. 풀어서 설명하면 이렇다. 전통 건축물은 외부와 연결돼 있었다. 한옥으로 따지면 마당이나 마루와 같은 공간을 통해 이웃과 인사를 나누는 식이다. 하지만 현대에

    2024.03.06 15:47
  • 빛이 쏟아지는 십자가, 물 속에 지은 절…시골 건물 하나도 美쳤다

    유명 건축가가 설계한 건물들을 중심으로 지역을 돌아보는 ‘건축 기행’은 일본을 여행하는 외국인 관광객의 주요 관광 테마 중 하나다. 그만큼 일본 각지에 아름다운 현대 건축물이 많기 때문이다.일본엔 ‘건축계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프리츠커상을 받은 건축가가 일곱 명이나 있다. 노출 콘크리트를 자유자재로 다루는 안도 다다오는 그중 오사카를 비롯한 관서 지방을 대표하는 건축가다.관서 지방에 있는 안도의 주요 건축 작품에서는 ‘건축이 사람을 끌어모은다’는 말을 체감할 수 있었다. 안도의 걸작으로 꼽히는 ‘물의 절’은 물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듯한 구조, 내부로 쏟아지는 햇살을 통해 불교의 이상향을 표현한 건축이다. 이곳에 가는 길은 매우 불편하다. 고베에서 한 시간에 한두 번꼴로 있는 버스를 타고 40분 넘게 가야 하고, 허허벌판에 내린 뒤에도 한참을 걸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막상 물의 절 내부로 들어서니 사람들로 북적였다. 그중 절반 이상이 외국인 관광객이었다.도시 곳곳에 숨어있는 실용적 건축 작품이 많다는 것도 여행의 매력을 더한다. 오사카 인근 이바라키시의 한적한 주택가에 있는 ‘빛의 교회’가 대표적이다. 빛의 교회는 모든 안도 관련 전시에 한 번도 빠지지 않고 나올 정도로 중요한 작품이다. 규모는 한국의 평균적인 교회보다 작다. 마을 기독교 신자들의 예배만을 위해 지어진 건물이기 때문이다. 기자는 일요일에 열리는 예배를 함께 본다는 조건으로 간신히 건물 안쪽을 살펴볼 수 있었다.오사카의 도서관인 ‘나카노시마 어린이 도서관’, 오카야마에서 은행 건물로 쓰이고 있는 ‘오카야마 신용금고&rsqu

    2024.03.05 1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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