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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경제

  • 신경훈 기자
    신경훈 기자 한경디지털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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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필름의 추억] 서울시민 3분의1 몰린 '창경원 벚꽃놀이'가 사라지고 난 후

    시위대일까요? 아니면, 재난을 피해 이동 이동하는 피란민일까요? 사람들이 1976년 4월 18일 서울 종로구 와룡동 창경원(창경궁) 주변을 가득 메우고 있습니다. 차도와 인도는 물론 고가차도까지 인파가 몰려들었습니다. 이들은 시위대도 피란민도 아닙니다. 봄을 맞아 벚꽃놀이를 즐기기 위해 창경원으로 들어가려는 행락객들입니다.일요일인 이날 하루에만 무려 17만여 명이 창경원에 입장했습니다. 벚꽃놀이 행사로 인해 창경궁 인근의 도로의 차동차 통행이 전면 금지됐습니다. 방문객들은 안국동이나 혜화동부터 걸어서 행사장에 들어가야 했습니다. 워낙 사람들이 많이 몰려, 입장에만 1시간이 훨씬 넘게 걸렸습니다. 그래도 상춘객들은 끊임없이 몰려들었습니다. 벚꽃이 아무리  좋다고는 해도, 왜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사고의 위험을 무릅쓰고 창경원을 향했을까요? 그 이유는 간단했습니다. 198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서울엔 시민들이 나들이 갈 만한 장소가 별로 없어서였습니다. 춥고 긴 한반도의 겨울을 보낸 한국인들에게 봄꽃은 특별히 반가운 존재였습니다. 그런데 만개한 벚꽃을 보며 봄 기운을 만끽할 곳이 서울엔 딱 창경원 뿐이었습니다. 1971년 한 일간지 보도에 따르면 밤벚꽃놀이 기간 한 달 동안 150여만 명이 창경원을 찾았습니다. 주말엔 하루 20만 명이 벚꽃놀이를 즐겼습니다. 1970년대 4월 중순~5월 중순 한달 동안 약 150만~200만 명이 창경원에 몰려들었습니다. 당시 서울 인구가 600만 명 정도인 것을 생각하면, 유아와 노약자를 제외하면 웬만한 사람은 한 번쯤 창경원 벚꽃축제장을 찾은 셈입니다. 이 정도면 브라질 삼바축제에 못지않은 열기가 아닐 수 없습니다.밤이 되면

    2024.03.20 09:00
  • "스스로를 안아준 적 있나요"… 사진 찍다 먹먹해진 모델들

    “당신은 자신을 안아본 적이 있나요? 없다면, 지금 자기의 몸을 한번 안아보세요.” 누군가에게 이런 말을 듣는다면, 우리는 어떤 반응을 보일까? 사진가 김지연은 사람들에게 이런 뜻밖의 요청을 했다. 그리고 그 청에 응한 아흔 아홉 사람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았다. 그 작품들로 꾸민 김씨의 사진전 '99명의 포옹'이 서울 청운동 류가헌에서 지난 12일 개막했다. 작가의 18번째 개인전이다. 사람들은 뜬금없는 사진가의 부탁에, 어색해하다가 서서히 스스로를 안아주었다. 어떤 이는 쑥스러운 나머지 제대로 자기 몸을 끌어안지 못했다. 자기를 감싸며, '나'에 대해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다며 눈시울을 붉히는 모델도 몇 있었다. 사진 속 인물들의 동작은 비슷하지만, 표정은 모두 다르다. 쑥스러운 웃음을 짓고, 행복한 미소를 띠고, 놀란 얼굴을 보이고, 상념에 잠겨 있기도 하다. 동작 하나 때문에 사람들의 얼굴로부터 이렇게 다채로운 감정을 볼 수 있다는 것이 흥미롭다. "자신에게 실망스럽고, 삶에 지쳤던 어느 날, 제 자신을 껴안았습니다. 갑자기 나에 대한 안쓰러움, 고마움, 서러움 등 여러 감정이 솟구쳐오르는 경험을 했습니다. 그 순간, 자기 자신을 이해하고 위로하지 못하면 결국 타인과 세상을 온전히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 뒤로 이 작업을 시작했습니다."모델들의 연령층은 20대부터 70대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관람객들은 그들의 다양한 표정을 감상하며 인물들에게 어떤 사연이 있을까 생각한다. 그런데 어느 순간 감상자들은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게 된다. 작가는 '정미소', '낡은 방', '근대화 상회', '삼

    2024.03.13 14:02
  • 만개한 꽃인가, 우주의 성단인가…독일 현대사진 거장이 펼쳐보인 색의 향연

    거대한 평원에 기기묘묘한 형상이 펼쳐졌다. 식물의 잎이나 꽃 같기도 하고 생물체 같기도 한 형체들은 무리를 지어 나선형으로 끊임없이 이어진다. 또한 개체들 사이는 다채로운 색채가 구름처럼 채우고 있다. 온갖 꽃들이 만개한 군락지나, 허블망원경이 포착한 성단(星團)이 아닐까?이 신비로운 형체와 색의 퍼레이드는 서울 삼청동 PKM갤러리에서 열리고 있는 독일 사진계의 거장 토마스 루프의 개인전 'd.o.p.e'에 전시된 연작의 하나다. 작가가 디지털로 창조한 이미지를 카페트에 인화한 작품들이다. 루프는 이것이 그림이기도 하고 동시에 사진이기도 하다고 말한다. 이미징 소프트웨어를 사용해 만들었으니 회화적 작업이고, 카페트에 프린트를 했으니 사진이기도 하다는 뜻이다. 사실 작가에게 장르 구분은 의미 없다. 현재 자신이 빠져들어 있는 예술 활동의 결과물을 보여줄 뿐이다.루프가 2022년부터 발표한 'd.o.p.e'는 영국의 문인 올더스 헉슬리의 작품 '지각의 문(The doors of perception)'에서 모티브를 얻었다. 헉슬리는 메스칼린이라는 환각 물질을 자신에게 투약하는 '환각 실험'을 통해초월적 감각의 세계를 경험했고 그것을 작품에서 묘사했었다. 루프는 이 연작에서 환상적인 세계를 펼쳐놓았다. 현실에선 볼 수도 체험할 수도 없는 새로운 우주를 만들어낸 것이다.루프의 작품들엔 작은 개체들이 모여 프랙탈 구조를 이뤘다. 독립적이면서도 서로 닮은, 작은 단위들이 이어져, 개체의 모습과 비슷한 모양의 거대한 구조를 형성하는 것이 프랙탈 구조다. 작가는 이를 통해, 과거에 없었지만 미래에 보게 될 존재를 미리 드러내려고 했다고 말한다. 생명체도 아니고 무생물

    2024.03.07 17:08
  • [필름의 추억] 아이들로 가득 찬 학교운동장…가난했지만 희망 넘쳤던 시절

    1959년 서울 남대문국민학교 교문 앞 풍경입니다.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어머니들이 아이들 손을 잡고 교문에 들어서고 있습니다. 이때 한국의 1인당 GDP는 세계 최저 수준이었습니다. 그래서 사진 오른쪽에서 보이는 어린이처럼 많은 청소년들이 고무신을 신고 다녔습니다. 그런데 말끔한 정장 차림의 아이들이 눈길을 끕니다. 가난했지만 한국의 어머니들의 자식을 잘 입히고 공부시키려는 열망이 엄청났습니다. 명절에나 입을 법한 한복을 입고 입학식장을 찾은 그 모습에서 그 시대 어머니들의 마음을 읽어볼 수 있습니다.아이들이 진지한 표정으로 선생님을 따라 동작을 취하고 있습니다. 1964년 서울의 한 초등학교 신입생들이 '율동'을 배우는 장면입니다. 유치원 교육이 드물었던 그 시절, 아이들은 초등학교에 입학해 춤과 노래를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난생처음 율동을 따라 하는 아이들의 표정엔 호기심과 당혹감이 함께 담겨있습니다. 1966년 서울의 한 초등학교 개학식. 입학식과 개학식을 마친 아이들이 줄을 서서 교실로 이동하고 있습니다. 짧게 자른 머리에 옷차림도 촌스럽지만 어린이들의 표정은 밝기만 합니다. 베이비붐 세대로 불리는 이들은 현재와 비교할 수 없이 열악한 환경에서 학교에 다녔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뭐든 열심히 하면 다 잘될 것이라는 희망에 가득차 있었습니다.1979년 서울 미동국민한교 방학식 날 1학년 어린이들의 표정입니다. 한 학기의 학교생활을 마치고 여름방학을 맞는 아이들의 얼굴이 해맑습니다. 사진기자의 요청으로 통지표(성적표)를 한 손으로 높이 들어 보이고 있습니다. 수우미양가 성적은 제각각이었겠지만, 아이들의 얼굴에는 그늘이 없습

    2024.02.29 16:30
  • 순수예술사진 계간지 AP9 2호 발행

    순수예술사진 전문 계간지 AP9 2호가 발행됐다. 이번 호 표지는 제롬 드 펠링히가 찍은 헐리우드 배우 할리 베리 인물사진이다. 손을 볼에 대고 정면을 응시한 할리 베리의 눈빛이 감상자에게 말을 걸어오는 듯하다. 문화예술공간 인터뷰는 허용무 동신대 학술문화정보원장을 통해 한국 최초의 카메라 박물관인 이경모카메라박물관에 대해 소개하고 있다. 작가들의 작품을 소개하는 '포커스1'에선 사진가 한정식의 '공(空)은 열려있다'를 게재했다. 흑백사진의 묵직한 힘이 한국의 정신미학을 보여준다. '포커스2'는 강리의 '조화(Harmony)'다. 말라가는  붉은 꽃들과 그 곁에 선 푸른 잎의 나무. 아무 관련 없어 보이는 그들이 대화를 나누는 듯한 기묘한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포커스3'에는 김정현의 '또한 바람과도 같다 #18'를,  '포커스4'엔 장영애의 한국화작품  '광장에서'를 올렸다. 나무를 찍은 흑백 사진과, 화사하면서도 신비한 색채가 충만한 그림의 조화가 감상자의 시선을 끈다.'작업실 탐방'에선 김정현 홍익대 초빙교수를 만났다. 국내 유일의 카본프린트 작가인 김 작가의 예술과 암실작업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박승환 발행인은 "AP9은 인화지 수준의 종이를 사용해 지면을 그대로 액자에 넣어 걸어 둘 수 있게 제작됐다"며 "순수 예술의 대중화에 기여하려는 뜻으로 기획했다"고 말한다.신경훈 디지털자산센터장 khshin@hankyung.com

    2024.02.16 17:01
  • 골목길 가로등이 푸근해지는 순간들

    사진가 박경순이 어린 시절 골목길 가로등과 창문의 불빛에서 느낀 따뜻한 감정을 담은 작품으로 꾸민 사진전 ‘초혼(初昏)’이 지난 13일 서울 종로 갤러리 공간미끌에서 개막했다. 2023년 대한민국국제포토페스티벌 ‘공간미끌상’ 수상 기념 초대전이다.전시 제목 초혼은 ‘해가 지고 처음으로 어두워 올 때’를 뜻한다. 작가는 전국의 주택가를 다니며 어두워지기 시작할 무렵, 가로등 불빛에 희미하게 드러난 집과 하늘, 불을 밝힌 작은 창문, 숲에 떠오른 달빛 등을 담았다. 어둠이 내리면 사람들은 집으로 향한다.집 앞 골목길을 비추는 가로등, 그리고 불이 켜진 우리 집 창문은 안도와 휴식의 빛이다. 특히 긴 여행 끝에 되돌아와 맞이하는 동네의 불빛에서 우리는 가족과 이웃의 포근함을 먼저 느낀다. 작가는 유년 시절 마을과 불빛에서 경험한 이런 온기를 현실에서 다시 찾아 ‘초혼’ 연작으로 담아냈다. 전시는 오는 25일까지.신경훈 기자

    2024.02.14 19:02
  • 희미한 불빛들이 골목길을 포근하게 비춰주는 신비의 찰나

    우리는 밤이 사라진 세계에 살고 있다. 네온사인과 LED조명이 밝힌 도시의 밤은 화려하기만 하다. 가로등 불빛의 고마움을 느끼지 못할 정도다. 하지만 1970~80년대 주택가는 달랐다. 어두워지기 시작하면, 골목엔 가로등이 불을 밝혔고, 사람들은 그 불빛을 보며 안도감과 평온함을 느낄 수 있었다.사진가 박경순이 어린 시절 골목길 가로등과 창문의 불빛에서 느꼈던 따뜻한 감정을 담은 작품으로 꾸민 사진전 '초혼(初昏)'이 13일 서울 종로 갤러리 공간미끌에서 개막했다. 2023년 대한민국국제포토페스티벌 '공간미끌상' 수상 기념 초대전이다.  전시 제목 초혼은 '해가 지고 처음으로 어두워올 때'를 뜻한다. 작가는 전국의 주택가를 다니며 어두워지기 시작할 무렵, 가로등 불빛에 희미하게 드러난 집과 하늘, 불을 밝힌 작은 창문, 숲에 떠오른 달빛 등을 담았다.어둠이 내려오면 사람들은 집으로 향한다. 집 앞 골목길을 비추는 가로등, 그리고 불이 켜진 우리집 창문은 안도와 휴식의 빛이다. 특히 긴 여행 끝에 되돌아 와 맞이하는 동네의 불빛에서 우리는 가족과 이웃의 포근함을 먼저 느낀다. 작가는 유년시절 마을과 불빛에서 경험했던 이런 온기를 현실에서 다시 찾아 '초혼' 연작으로 담아냈다. 아파트와 달리, 주택가 골목은 특별한 조형미를 간직하고 있다. 작가는 소위 '매직 아워(magic hour)'에 불빛과 집과 하늘을 함께 담아, 낮에 체험할 수 없는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처럼 신비한 색채를 재현했다. 건축물, 가로등, 창문, 하늘이 조화를 이룬 장면들은, 일상적인 풍경 사진에서 벗어나 색면주의 추상화같은 새로운 시각적 체험도 제공한다. 박 작가는 "같

    2024.02.14 15:47
  • [필름의 추억] 명동 뒤덮었던 주식주문표…거리로 나온 1980~1990년대 한국 투자자들

    서울 명동 하늘과 거리가 온통 흰 종이로 뒤덮였습니다. 영화의 한 장면같은 이 순간은 1992년 8월 21일, 주가 하락에 분노한 투자자들이 서울 명동 증권가 옥상에 올라가 주식매매주문표를 뿌리는 상황입니다.  코리아디스카운트 논란이 거셉니다. 한국 상장기업의 주식 가치 평가 수준이 유사한 외국 상장기업에 비해 낮게 형성되는 현상이 지속되고 있어서입니다. 지난 1월 주요 20개국 가운데 한국 주식시장이 가장 부진했습니다. 그 결과, 투자자들의 자금도 많이 줄어들고 있습니다. 1월 한달 동안 국내 투자자 예탁금이 무려 9조원이나 감소했다고 합니다. 투자자들이 미국 등 해외 주식에 투자하고 있는 것입니다.그런데 이런 코리아디스카운트 논란은 21세기의 현상만은 아니었습니다. 우리나라 경제가 고속성장의 가도를 달리고 있던 1980~1990년대에도 한국 주식시장은 투자자들을 화나게 했었습니다. 해외 투자가 불가능했던 1980~1990년대, 한국의 투자자들은 어떤 방법으로 코리아디스카운트에 대응했을까요? 그 방법은 의외로 단순했습니다. 투자자들은 민주화운동과 노사분규 때처럼 시위를 벌였습니다. 다른 특별한 대응방법이 없어서였습니다. 1989년 11월 7일 투자자들이 서울 여의도 증권거래소에서 시위를 하고 있습니다. '국민재산 배상하라'고 적은 현수막을 펼치고 구호를 외치고 있습니다. 주가 하락이 계속되고 회복 조짐이 보이지 않자, 투자자들이 증시 부양책을 요구하며 실력행사에 나선 것이었습니다. 1989년 3월31일 종가 기준으로 종합주가지수 1003을 기록했습니다. 사상 처음 1000을 돌파해, 많은 국민들이 주식 계좌를 개설하고 투자에 나섰습니다. 하지만 종합주가지수

    2024.02.08 14:00
  • [이 아침의 사진가] 매일 숨 쉬듯 찍었다…'전시만 160번' 최광호

    최광호는 ‘숨을 쉬듯 사진을 찍는’ 사진가다. 매일, 만나는 모든 상황을 사진 찍는다. 그런 열정으로 그는 지난 50여 년 동안 무려 160여 차례 전시를 열었다. 고교 시절부터 작업한 사진들로 첫 개인전 ‘심상일기’(1977)를 개최했다. 자신의 실루엣을 찍은 장면과 복도 끝 창문을 다중 촬영한 장면 등으로 삶에 대한 고민을 시각적으로 드러냈다.남다른 미학적 탐구는 일본 유학 시절, 한 장의 필름과 이어진 다음 컷의 절반을 함께 인화한 ‘한컷 반’ 연작으로 이어졌다. 이런 창작열로 그는 고성 산불 현장으로 달려갔다. 거기에서 인간의 맨몸과 잿더미 숲을 함께 찍은 ‘땅의 숨소리’(1996)는 절망에서 새싹이 움트는 생명의 경이로움을 극적으로 보여준 작품이다.본질적인 것에 대한 호기심이 충만했던 작가는 자신의 몸에 감광액을 바르고 인화지에 자국을 내 인화한 ‘포토그램-육체’(1979)를 시작으로, 지금까지 포토그램 작업을 이어오고 있다. 카메라를 통하지 않고 존재의 본래 가치를 직접 드러내려는 시도인 것이다.작가의 올해 첫 개인전 ‘생각의 순환’이 경남 창원 광호1019갤러리에서 개막했다. 물고기, 꽃, 나뭇잎 등 온갖 사물이 빛과 만나 탄생한 포토그램 작품들이 오는 13일까지 선보인다.신경훈 기자

    2024.02.01 18:40
  • '진짜 사진'에 '내 맘대로' 색을 입히다

    사진 찍던 순간의 내 감정을 고스란히 사진에 담을 수는 없을까.사진가 박현진은 과거 국내외 곳곳에서 찍은 풍경 사진들을 보며, 촬영 당시 그곳에서 받은 느낌이 사진에 제대로 드러나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는 촬영자의 감정을 온전히 담을 방법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사진이 ‘디지털 파일’이라는 것을 떠올렸고, 이내 사진 파일에 담긴 색의 구성 요소들을 제거했다.작가는 흐릿한 흑백의 윤곽만 남은 사진에 자신의 기억을 반영한 색을 입히기 시작했다. 정교함과 인내가 필요한 작업이었다. 피사체의 원래 형태는 그대로 유지한 채, 사물의 색만 바꾼 그 결과물들은 환상적이었다. 별도의 설명이 없으면 여지없이 회화 작품으로 보였다. 풍경 사진에 자기의 ‘추억의 색채’를 입혀 재탄생시킨 것이다.그 작품들로 꾸민 초대전 ‘로망스’가 광주광역시 롯데갤러리에서 개막했다. 오래된 주택 앞에 서 있는 나무 한 그루와 그 뒤로 지나가는 사람. 스페인 세비야에서 촬영한 작품 ‘seville-211’은 붉고 노란 색이 풍성하다. 뜨거운 날씨와 정열적이던 스페인 사람들에 대한 기억을 이런 색으로 표현한 것이다.짙은 나무 한 그루, 그 뒤의 연둣빛 벽면에 드리운 나무 그림자. 파스텔로 그린 것처럼 보이는 ‘lisbon-211’은 포르투갈 리스본의 거리 사진에 당시 그곳에서 받은 청량감을 입힌 것이다. 이렇게 작가 개인의 내면과 기억, 미적 감각 등이 고스란히 반영된 ‘로망스’ 연작은 사진과 회화의 경계를 넘나든 작업이다.박 작가는 “우리는 같은 사물을 마주하더라도 개인의 심리 상태, 피사체와의 관계 등에 따라 다르게 받아들인다”며 &ldquo

    2024.01.29 18:41
  • 사진과 그림의 경계는 어디일까… 실제 풍경에 내 멋대로 색채를 입히다

    사진 찍던 순간의 내 감정을 고스란히 사진에 담을 수는 없을까?사진가 박현진은 과거에 국내외 곳곳에서 찍었던 풍경 사진들을 보며, 촬영 당시 그곳에서 받았던 느낌이 사진에는 제대로 드러나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어 작가는 촬영자의 감정을 온전히 담을 할 방법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그는 사진이 '디지털 파일'이라는 것을 떠올렸고, 이내 사진 파일에 담긴 색의 구성 요소들을 제거했다.작가는 흐릿한 흑백의 윤곽만 남은 사진에, 자신의 기억을 반영한 색채를 입히기 시작했다. 정교함과 인내가 필요한 작업이었다. 피사체의 원래 형태는 그대로 유지한 채, 사물의 색만 바꾼 그 결과물들은 환상적이었다. 별도의 설명이 없으면, 여지없이 회화 작품으로 보였다.  풍경 사진에 자신의 '추억의 색채'를 입혀 재탄생시킨 것이었다. 그 작품들로 꾸민 초대전 '로망스'가 광주광역시 롯데갤러리에서 개막했다. 오래된 주택 앞에 서 있는 잎이 무성한 나무 한 그루와 그 뒤로 지나가는 사람. 스페인 세비야에서 촬영한 작품 'seville-211'은 붉고 노란 색이 풍성하다. 뜨거웠던 날씨와 정열적이었던 스페인 사람들에 대한 기억을 이런 색으로 표현한 것이다.짙은 나무 한 그루, 그 뒤의 연두 빛 벽면에 드리운 나무 그림자. 파스텔로 그린 것처럼 보이는 'lisbon-211'은 포르투갈 리스본의 거리 사진에 당시 그곳에서 받았던 '청량감'을 입힌 것이다. 이렇게 작가 개인의 내면과 기억, 미적 감각 등이 고스란히 반영된 '로망스' 연작은 사진과 회화의 경계를 넘나든 작업이다.박 작가는 "우리는 같은 사물을 마주하더라도, 개인의 심리 상태, 피

    2024.01.28 11:39
  • [필름의 추억] 효창운동장 얼려 스케이트 탄 열정…빙상스포츠 강국엔 이유 있었다

    동계스포츠의 계절이다. 2024 강원동계청소년올림픽대회가 지난 19일 개막, 전세계 78개국 1800여 명의 선수들이 열띤 시합을 치르고 있다.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도 성공적으로 개최한 경험이 있는 한국은 동계스포츠의 강국으로 자리잡았다. 동계올림픽에서의 성적만을 봐도 인상적이다. 1992년 알베르빌 올림픽에서 김기훈이 사상 첫 금메달(김기훈 쇼트트랙 1000m)을 땄다. 이 대회를 시작으로 한국은 올림픽 쇼트트랙에서만 95개의 메달을 따냈다. 세계 최강의 전력이다. 상대적으로 열세인 스피드스케이팅 부문에서도 2010년 밴쿠버에선 모태범과 이상화가 각각 500m에서 금메달을 땄다. 이상화는 2014 소치올림픽에서 대회 2연패라는 한국 스피드 스케이트 사상 기념비적인 기록을 세웠다. 피겨에선 김연아가 밴쿠버올림픽에서 압도적 기량으로 우승해, 전세계인에게 감동을 줬다. 그 배경엔 한반도의 '추위'가 있다. 1960년대만 하더라도 겨울철 서울 한강 전체가 꽁꽁 얼 정도로 추웠다. 기후변화의 영향도 없던 때라서 강들은 겨우내 얼어있었다. 또한 겨울은 유난히 길었다. 긴 겨울 시민들은 스케이트를 들고 가까운 강과 저수지로 나갔다. 특별한 겨울 스포츠나 놀이가 없던 때 스케이트는 한국인에게 거의 유일한 겨울 스포츠이자 놀이였다.1959년 12월 서울 한강교 아래서 시민들이 스케이트를 타고 있다. 나무 울타리를 친 스케이트장이 꽤 넓직하다. 탁트인 한강 위 은반에서 겨울 바람을 가르며 스케이트를 타는 사람들의 기분은 상상 이상이었을 것이다. 1963년 서울 효창운동장이 스케이트장으로 변신했다. 서울시가 스케이트를 좋아하는 시민들을 위해 평평하고 넓은 효창운동장에 물을

    2024.01.26 09:00
  • 사진으로 담아낸 구원의 메시지

    사진 작품으로 구원의 메시지를 전할 수 있을까. 흑백 아날로그 사진의 거장 마이클 케나(71)는 사제가 되는 길목에서 돌아나와 카메라를 손에 쥐었다. 예술을 통해 위안과 희망을 줄 수 있다는 믿음에서였다.서울 삼청동 공근혜갤러리에서 열리는 ‘마이클 케나, 뉴 코리아&잉글랜드’ 전은 렌즈의 뒤편에서 평생을 보낸 케나의 미션을 확인할 수 있는 기회다. 그의 대표작은 물론 잉글랜드에서 찍은 초기작과 한국에서 찍은 최신작을 두루 만나볼 수 있다.전시장에서는 1970년대 중반~1980년대 잉글랜드에서 촬영한 작가의 초기작이 관람객을 맞는다. 그 가운데 ‘파도’(1981)가 눈길을 끈다. 적막한 해변 도로와 그 뒤로 솟구쳐오르는 파도, 그리고 하늘을 함께 담은 이 장면은 세계 주요 미술관에 소장된 케나의 초기 대표작이다.작가가 2023년 한국 전남과 충남 등지에서 나무와 갯벌과 바다를 촬영한 신작들도 특유의 고즈넉하고 초현실적인 분위기로 충만하다.하늘, 바다, 육지가 몽환적으로 분할돼 있는 프랑스의 해변, 일본 홋카이도의 눈 쌓인 언덕을 사선으로 가로지른 희미한 울타리를 찍은 작품들은 감상자를 풍경 너머 존재하는 무한한 휴식과 위안의 세계로 이끌어 간다. 암실 작업으로 인화한 그의 사진들은 디지털 사진에서 만나기 어려운 ‘무채색의 정교함’을 경험하게 한다. 전시는 다음달 3일까지.신경훈 기자

    2024.01.14 18:37
  • 사진은 어떻게 구원의 메시지가 되는가… 평생을 구도자로 보낸 흑백사진의 거장

    사진 작품으로 구원의 메시지를 전할 수 있을까? 깊은 가톨릭 신앙으로 청소년 시절 7년이나 신학교에 다녔던 한 영국 청년이 신학대학 과정 진학을 앞두고 사제의 길을 포기했다. 그리고 예술대학에 들어가 사진을 전공했다. 스스로 발견한 예술에 대한 재능과 열정을 주체할 수 없어서였다. 예술을 통해 사람들에게 위안과 희망을 줄 수 있다는 믿음으로 인생의 항로를 바꾼 그가 바로 흑백 아날로그 사진의 거장 마이클 케나(71)다. 그의 대표작은 물론 영국 잉글랜드에서 찍은 초기작과 한국에서 찍은 최신작을 두루 만나볼 수 있는 사진전 ‘마이클 케나, 뉴 코리아 & 잉글랜드’전이 오는 2월3일까지 서울 삼청동 공근혜갤러리에서 열린다. 전시장 초입, 1970년대 중반~1980년대 잉글랜드에서 촬영한 작가의 초기작들이 관람객을 맞는다. 한국에 처음 전시되는 이 작품들은 주택가의 가로등, 공원의 나무 등 일상의 평범한 사물들을 단순한 구도와 미묘한 빛으로 보여주고 있다. 그래서 그의 대표작과 미학적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것을 금세 알아차릴 수 있다. 그 가운데 ‘파도’(1981)가 눈길을 끈다. 적막한 해변 도로와 그 뒤로 솟구쳐오르는 파도, 그리고 하늘을 함께 담은 이 장면은 전 세계 주요 미술관에 소장된 케나의 초기 대표작이다. 작가가 2023년 한국 전남과 충남 등지에서 나무와 갯벌과 바다를 촬영한 신작들도 특유의 고즈넉하고 초현실적인 분위기로 충만하다. 강한 빛이 없는 시간, 긴 노출로 촬영한 그의 작품들에서 시간대를 가늠하기 어렵다. 또한 지리적 특성도 나타나지 않는다. 그래서 아무도 눈길 주지 않을 것 같은 외딴 나무 한 그루가 우주의 중심에 선 생명

    2024.01.14 09:49
  • 반상 제왕들의 소탈한 일상...국내 첫 바둑 사진전 이시용의 '흑과 백 그 사이'

    한국 유일의 바둑 전문 사진작가 이시용의 첫 개인전 '흑과 백 그 사이'가 서울 종로2가 갤러리 공간미끌에서 2일부터 10일까지 열린다. 바둑을 주제로 여는 국내 첫 사진전이다. 이씨가 월간 '바둑'의 사진기자로 10여 년 동안 일하며 담은 바둑 대국 장면들과 프로기사들의 일상의 모습 가운데 30여 점을 전시한다. 한국과 일본의 바둑계의 전설 조치훈 9단과 조훈현 9단의 거리 포옹 장면은 색다른 감흥을 선사한다. 2015년 8월 한국 현대바둑 70주년 기념으로 두 사람은 특별 대국을 가졌다. 회식자리에서 술에 얼큰히 취한 조치훈 9단이 조훈현 9단을 껴안았고, 이시용 작가가 이 순간을 놓치지 않고 카메라에 담은 것이다. '동생' 조치훈 9단의 어리광 섞인 표정과, '형님' 조훈현 9단의 편안한 웃음이 두 거장의 인간적인 면모를 극적으로 보여준다. 또한 이창호 9단이 테니스를 하는 장면, 오유진 9단이 짓굳은 표정으로 최정 9단의 뒤에서 목을 감싸고 있는 장면 등 냉철하고 고독한 반상의 제왕들의 일상과 소탈한 모습들은 감상자들에게 색다른 재미를 준다. 이시용 작가는 "바둑은 흑과 백이 공존해야 성립될 수 있다"며 "프로 바둑기사들이 사는 냉철한 반상의 세상과 바둑판 밖 편안한 일상 모습을 함께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신경훈 디지털자산센터장 khshin@hankyung.com

    2023.12.01 18:00
  • [이 아침의 사진가] 호크니에 영감 준 사진가들의 '롤모델'

    사진가 앙드레 케르테츠(1894~1985)는 20세기 사진가들이 가장 추앙하는 인물로 평가받는다. 사진이 현실을 기록하는 매체였던 시절, 케르테츠는 독창적 시선으로 일상에서 의미심장한 장면들을 포착해냈다. 헝가리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난 그는 상업학교를 졸업하고 증권거래소에 취업했다. 사진을 독학하면서 틈틈이 사진 잡지에 기고하던 그는 1차 세계대전이 터지자 사진병으로 입대해 전쟁을 기록했다. 군에서 자신의 재능을 확신한 케르테츠는 전역 후 파리로 건너가 유명 잡지와 계약을 맺고 전업 사진가로 활동하기 시작했다. 파리 생활은 다다이스트들과 만나게 해주는 등 활력을 불어넣어줬다. 1928년엔 만 레이와 함께 제1회 ‘앙당팡당전’에 참가해 자신만의 미학을 확고히 구축해 나갔다. 화가 피에트 몬드리안의 인터뷰 도중 케르테츠는 책상 위 안경, 재떨이, 파이프 등을 찍어 기사의 메인 사진으로 게재한 일화를 남겼다. 그때 찍은 사진 ‘몬드리안의 안경과 파이프’는 20세기 걸작 중 하나로 평가받는다. 또한 수영장 물속에서 헤엄치는 남성의 전신을 촬영한 ‘수영하는 사람’(1917)은 화가 데이비드 호크니에게 영감을 준 것으로도 유명하다. 볼록거울에 비친 인체를 담은 ‘왜곡’ 시리즈와 프랑스 파리 풍경 연작 등을 보면 평범한 소재에서 초현실적 분위기를 담아내는 그의 능력을 실감할 수 있다. 신경훈 기자 khshin@hankyung.com

    2023.11.09 17:45
  • "휴대폰으론 못 느낀다"…모바일시대에 창간한 사진잡지 'AP-9'

    잡지 읽는 사람을 찾아보기 어려운 모바일과 온라인 시대에, 사진 전문 잡지가 창간됐다. 사진예술 전문 계간지 'AP-9'이다. 창간호는 타블로이드 12면으로, 순수 사진예술 작품과 작가를 소개하는 콘텐츠로 꾸몄다. '시대를 역행하는' 이번 종이 잡지의 발행인은 박승환 전주대 교수다. 그는 지난 16년 동안 '전주국제사진제'의 운영위원장을 맡아 수익성 없는 예술행사를 이끌어온 사진작가 겸 전시기획자다. 창간호 표지는 벨기에 사진가 제롬 드 펠링히의 작품 '조니 뎁'이 장식했다. 긴 머리에, 수염을 기르고 찢어진 모자를 쓴 미국 헐리우드 배우가 시가에 성냥불을 붙이고 있는 장면이다. 강렬한 눈빛으로 이 잡지의 미래를 기대해 달라는 메시지를 전하는 듯하다. AP-9의 가장 인상적인 지면은 한가운데 지면인 6면과 7면이다. 양면에 걸쳐 한장의 사진을 게재해, 좌우로 펼치면 가로 65cm 세로 47cm나 되는 큰 작품이 나타난다. 바로 빼서 액자에 넣을 수 있게 한 것이다. 종이는 130g 랑데뷰지를 사용해서 사진 인화지 못지 않은 해상도를 보장한다. 이번 호엔 지난 2019년 남미 칠레를 휩쓸었던 시민 저항운동의 현장을 담은 박비오의 '18일 이후, 광장'이 게재됐다. 이어 사진가 강리의 작품 '이노베이션(Innovation)'이 배치됐다. 와인 글라스 윗 부분이 산산히 부서져 공중에 흩어지는 순간을 담은 장면인데, 눈으로는 볼 수 없고 오직 카메라를 통해서만 만날 수 있는, 현실이지만 초현실적인 순간이다. 사진작가가 일하는 공간을 찾은 '작업실 탐방', 사진 작품에 시를 붙인 '김혜원의 시로 읽는 사진, 사진으로 읽는 시' 등 연재물도 이어진다. 박승환 발행인은 "휴대폰이나 모니터로는 사진 작품의 감흥을 제대로

    2023.11.09 10:20
  • 프랑스 파리에서 열리는 한국 문화해설사들의 한국 고궁 사진전

    한국의 문화해설사들이 한국 고궁을 촬영한 사진으로 프랑스 파리 한복판에서 사진전을 연다. 6일(현지시간) 프랑스 파리 라 카피탈 갤러리에서 개막한 '한국 궁궐의 역사'전이다. 사진가 백승우 등 '우리문화숨결' 회원 8명이 함께 참여한 이번 전시에선 조선 궁궐의 미학을 보여주는 작품 16점이 다음달 2일까지 선보인다. 정부기관이 아닌 민간단체가 한국 문화를 주제로 프랑스 파리에서 전시를 여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번 전시작들은 한국의 문화를 소개하는 기존의 정형화된 홍보 사진과는 사뭇 다르다. 우리 옛 건축물을 중심으로, 향로, 한복, 보자기 등 옛 사물들을 등장시켜, 한국의 미를 한층 다채로운 시선으로 전달한다. 우리 문화의 외형적 아름다움은 물론, 촬영자의 독특한 시각도 함께 담아낸 작품들이다. '우리문화숨결'은 백씨 등이 한국의 궁궐 등 문화재 해설 활동을 통해 우리 문화 유산을 알리는 활동을 해온 비영리 시민활동단체다. '우리문화숨결' 회원들은 사진가 백승우의 주도로 문화해설과 함께 사진작업을 병행해왔다. 이번 전시에는 백씨 외에 김현기, 노혜선, 문경희, 신해정, 이혁, 정지근, 한숙은 등의 문화해설사 겸 사진가들이 참여했다. 이 행사를 기획한 백승우 작가는 "유럽인들에게 한국 전통문화의 진면목을 전하기 위해 이 전시를 기획했다"며 "새로운 시각을 통해 우리 문화의 독특한 미학을 전해줄 것"이라고 말했다. 백승우는 호텔 내부와 창밖을 함께 담은 'Window:창' 연작으로 국내외에 알려진 사진가 겸 호텔리어(하얏트 한국지역 재무담당 전무)다. 그는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여러 차례 초대전에서, 전시기간 중 작품이 매진되는 성과를 거뒀었다. 그는 201

    2023.11.07 16:00
  • 꽃이 들려주는 생명과 죽음의 이야기, 김예랑 사진전 '멈춰진 춤'

    사진가 김예랑의 개인전 '멈춰진 춤'이 7일 서울 연남동 화인페이퍼갤러리에서 개막한다. 꽃을 소재로 작업을 이어온 김예랑이 대형 카메라와 4x5인치 필름으로 촬영한 뒤, 19세기 인화 방식인 검프린트로 인화한 작품 21점을 19일까지 선보인다. 스튜디오에서 여러 종류의 꽃을 다양한 화병에 꽃아 촬영한 '멈춰진 춤' 연작 각각의 장면엔 저마다 다른 동작과 표정을 짓는 의인화된 꽃들이 등장한다. 한 생명체의 가장 화려한 절정을 상징하는 꽃을 담은 사진이지만, 화사하지만은 않다. 어린 꽃봉오리, 만개한 꽃송이 그리고 시든 꽃잎들이 뒤섞여 갖가지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마치 희로애락이 교차하는 인생의 단면들을 차례로 감상하는 느낌이다. 꽃을 통해 삶을 표현한 '꽃의 초상'이다. 그래서 김예랑의 작품은 17세기 네덜란드 바니타스 정물화의 전통을 잇고 있다.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 즉 아리따운 자태가 10일을 넘기지 못하고 시들고 마는 꽃은 헛되다는 뜻의 바니타스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오브제였다. 작가는 "모든 생명은 죽음을 피할 수 없다"며 "꽃을 통해 시간의 흐름을 거스르지 못하는 생명체의 한계성을 역설적으로 표현하려고 했다"고 말했다. '멈춰진 춤'은 생명과 죽음이라는 묵직한 주제 외에도 또 하나의 볼거리를 제공한다. 검프린트 인화 특유의 깊은 색조다. 한 장의 작품을 위해 인화지에 직접 물감을 바르고 노광을 주는 과정을 여러 차례 반복해야 하는 검프린트 작업을 통해 얻은 차분한 색감은 디지털 사진에서 발견할 수 없는 '색의 무게'를 경험하게 한다. 모처럼 정통사진의 매력에 흠뻑 빠져들게 하는 전시다. 신경훈 디지털자산센터장 khshin@hankyung.com

    2023.11.06 17:10
  • [필름의 추억] 타계 3주기, 이건희의 '결정적 순간들'

    한 사람의 인생에는 '결정적 순간들'이 있기 마련이다. 25일 3주기를 맞는 고 이건희 삼성 회장의 삶에도 그런 순간들이 있었다. 변방의 2류 기업 삼성을 세계 일류로 급성장시켰던 그의 삶을 몇 단어로 요약하기는 어렵다. 그래도 그가 세상을 떠난 뒤 우리에게 남긴 것들 가운데 가장 강렬한 두 단어를 꼽자면 '신경영' 과 '이건희 컬렉션'이 아닐까. 한경의 옛 필름들 속에서 그의 삶을 예언하는 듯한 장면들을 찾을 수 있었다. 대단한 뉴스의 현장은 아니지만,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순간들이다. 장면1, 1982년 4월 23일 경기 용인의 호암미술관 개관식. 이병철 회장 및 문화계 주요 인사들과 함께 전시작을 살펴보는 이건희 부회장의 표정은 사뭇 진지하다. 호암미술관은 이병철 회장이 설립한 삼성문화재단이 세웠다. 민간 미술관으로는 동양 최대의 호암미술관은 이병철 회장이 기증한 1100여 점의 문화재와 미술품을 중심으로 총 1600점의 작품으로 문을 열었다. 이 가운데는 국보 138호인 국내 유일 가야금관을 비롯해 국보 7점, 보물도 4점이 포함돼 있었다. 가야금관이 일반에게 공개된 것은 이때가 처음이었다. 박수근, 김환기 등의 작품도 들어 있었다. 박수근의 '소와 아이들'도 전시됐다. 예술을 사랑하고, 예술에 투자하고, 예술의 향기를 세상과 공유한 이건희 회장의 삶은 이렇게 아버지 이병철 회장으로부터 시작된 것이었다. 전시장을 함께 둘러보는 아버지와 아들. 이 장면이 사진 찍히고 약 40년 뒤, 2만3284 점의 '이건희 컬렉션'이 국립중앙박물관과 국립현대미술관 등에 기증됐다. 이건희 회장 타계 후 '이건희 컬렉션' 전시가 전국에서 이어지고 있고, 전시장은 관람객들로 붐빈다. 아버지가 뿌린

    2023.10.24 16:00
  • [이 아침의 사진가] 현실과 환상 그 사이 어디쯤 위치한 '계단'

    한 여인이 아이를 안고 계단을 올라간다. 사선으로 보이는 가지런한 계단의 음영 한가운데 포착된 인물의 움직임이 고요한 수면에 번지는 작은 파문 같다. 현실과 환상, 구상과 추상의 중간쯤에 있는 듯한 이 작품은 러시아 구축주의를 이끌었던 사진가, 화가, 그래픽 디자이너 알렉산드르 로드첸코가 1929년 촬영한 ‘계단’이다. 볼셰비키혁명 이후 로드첸코는 또래의 젊은 예술가들과 함께 구축주의에 매료됐다. 산업적 재료를 사용하거나 단순하고 기하학적 구조의 미술 작품으로 대중의 삶과 정신을 고양시키자는 뜻이었다. 그는 이념을 위해 회화를 떠나 그래픽 디자인 작업에 몰두했다. 그런데 로드첸코는 1920년대 유럽의 사진 작품을 접하고 또다시 사진으로 방향을 틀었다. 디자인 실력은 사진에서 꽃을 피웠다. 간결하고 역동적인 사선 구도 속에 사물을 배치한 그의 독특한 작품들은 감상자의 시선을 사로잡았고 여러 매체의 표지를 장식했다. 그러나 그의 사진들이 사회주의적이지 않다는 공산당과 비평가들의 비난 속에 로드첸코는 우울한 말년을 보내야 했다. 그의 작품들은 경기 성남시 아트스페이스J에서 열리고 있는 ‘파이오니어스(개척자들)’ 전에서 오는 26일까지 만나볼 수 있다. 신경훈 기자 khshin@hankyung.com

    2023.10.11 18:12
  • [필름의 추억] 최윤희부터 신유빈까지…아시안게임이 낳은 '국민여동생들'

    올림픽과 같은 대규모 체육대회를 통해 '스타'가 탄생한다. 빼어난 성적을 거둔 선수는 물론, 특별한 '스토리'를 가진 선수는 대중의 사랑을 한몸에 받게된다. 아시안게임이 올림픽에 비해 비중이 낮다고 하지만, 아시안게임을 통해 여러 선수들이 혜성처럼 '국민 동생'으로 떠오르기도 했다. 과거 한국에서 아시안게임을 통해 떠오른 대표적인 인물은 수영의 최윤희다. 그는 15세였던 1982년 제9회 뉴델리아시아경기대회에 출전 여자 배영100m,여자 배영200m, 여자 개인혼영200m에서 금메달을, 여자 혼계영400m에서 동메달을 목에 걸었다. 여자 수영의 불모지였던 당시 15세 최윤희의 활약은 열광적 환호를 받았다. 최윤희의 언니 최윤정도 출전해 은메달 3개, 동메달 1개를 땄다. '수영 국대 자매'라는 특별한 이야기로 인해 더욱 깊은 인상을 줬다. 한국의 언론은 최윤희를 '아시아의 인어'로 부르기 시작했고, 최윤희 자매에 대한 뉴스와 스토리가 폭풍처럼 이어졌다. 최윤희는 1986년 서울아시안게임에서도 금메달 2개와 동메달 2개를 땄다. 긴 생머리에 한복을 곱게 차려입고 시상대에 오른 최윤희는 또한번 국민적 관심과 인기를 한몸에 받았다. 21세기 김연아급 인기였다. 최윤희는 한국의 첫 '스포츠 스타'였다. 그전에도 인기 있는 운동선수들은 많았다. 하지만 TV광고에도 등장하는 등, 운동선수가 연예인 수준의 관심과 인기를 누린 것은 최윤희가 최초였다. 탁구의 현정화도 아시안게임을 통해 스포츠스타로 등장했다. 만 16세의 나이로 현정화는 1986년 서울 아시안게임에 국가대표로 선발돼, 양영자 등과 함께 여자 탁구 단체전에서 금메달을 획득했다. 피노키오란 별명을 얻을 정도로, 애띠고 귀여운 용모

    2023.10.06 13:30
  • 정전 70년, 아물지 않은 상처를 들여다 보다...제16회 전주국제사진제

    전북 전주에선 해마다 가을의 시작을 알리는 문화 축제가 열린다. 전주 서학동 일대에서 열리는 전주국제사진제다. 올해 제16회 전구국제사진진제가 '정전 70년'을 주제로 7일~22일 열린다. 주제전 '블랙 투어(Black Tour)_분단기행'은 아직도 끝나지 않은 한국전쟁이 남긴 역사적 개인적 의미를 되돌아보게 하는 작품들로 꾸며졌다. 현재 전쟁이 벌어지고 있는 우크라이나에서 종군 사진가들이 찍은 작품들을 모은 특별전도 눈길을 끈다. 주제전과 특별전 외에 해외특별전, 전주 로컬문화사진전 등으로 구성된 올해 행사엔 380여 점의 작품들이 서학아트스페이스, 아트갤러리전주, 전주향교, 서학동사진미술관 등 전주 서학동 일대에서 관람객을 맞는다. 올해의 주제전 '블랙투어_분단기행'은 한국전 정전 70주년의 의미를 되새기는 뜻으로 기획됐다. '블랙투어(Black Tour)'는 전쟁이나 재난 등 비극적 사건이 남긴 흔적을 돌아보는 여행을 뜻한다. 이번 주제전은 그 제목처럼, 분단의 결과로 남은 현장, 개인의 기록, 분단이 불러온 왜곡과 뒤틀림의 역사를 형상화한 작품들로 구성돼 있다. 박종우의 '역설의 풍경_DMZ'는 분단 후 처음으로 비무장지대를 담은 작품들이다. 박종우는 지난 2010년, 한국전쟁 60주년을 맞아 국방부의 의뢰로 1년 동안 임진강 하구에서 동해안에 이르는 비무장지대 248km 구간 곳곳을 촬영했다. 그가 '금단의 땅'에서 담은 철책과 초소, 군인들과 군사시설, 생태계 사진들은 분단의 아픔과 70년 동안 개발의 손길이 닿지 않은 비경을 동시에 경험하게 한다. 노순택의 '멀미'는 북한을 담은 사진들이다. 중국과 북한의 국경을 지나가는 덜컹대는 버스 안에서 창을 통해 남의 물건을 훔치듯 북한 지

    2023.10.03 13:43
  • [필름의 추억] 추석 선물 판도 뒤집은 참치캔의 혁명

    추석을 앞둔 1979년 10월2일 서울 신세계백화점 매장에 설탕부대가 가득 쌓여 있습니다. 당시 추석 선물로 많이 찾았던 제품이 설탕이었습니다. 지금 설탕을 선물하는 경우는 거의 없지만, 설탕은 1950년대부터 1970년대까지 가장 인기 있는 명절 선물이었습니다. 조미료, 밀가루 등과 함께 '3백' 제품이 대세였던 시절이었죠. 1975년의 언론 보도에 따르면, 식품회사들은 서민들의 명절 선물용으로 설탕, 통조림, 조미료 등으로 구성된 1000원대의 선물세트 개발에 주력했다고 합니다. 물론 고소득계층이나 기업들은 2000원~1만원 수준의 정육, 파인애플 등 수입 과일 선물세트도 많이 구입했습니다. 양주와 구두표도 중산층의 인기 선물이었죠. 추석 선물의 트렌드를 일순간에 바꾼 사건은 1984년 '참치캔'의 등장이었습니다. 동원산업이 내놓은 '동원참치'는 한국인에게 생소했던 참치의 맛을 전파했습니다. 참치 특유의 고소하고 기름진 맛과 한국의 맵고 칼칼한 음식과 절묘하게 조화를 이뤄 빠르게 한국인의 입맛을 사로잡았습니다. 다양한 참치 요리방법도 등장해, 1980년대 후반 참치는 국민적 사랑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자연스럽게 명절 선물세트의 절대 강자로 등극했습니다. 위 사진은 1991년 9월 18일 서울 현대백화점의 추석선물세트 판매코너입니다. 참치캔을 가득 채운 선물세트가 매대를 장악하고 있습니다. 1991년 보도에 따르면 참치캔 시장은 1989년~1990년 2년 동안 무려 3배나 성장했다고 합니다. 또한 1990년과 1991년 사이 명절때마다 3000만~4000만개의 참치캔이 팔렸습니다. 명절엔 거의 전 국민이 하나씩 참치캔을 선물로 받았다는 얘기입니다. 이 자그마한 캔 하나가 우리나라 명절의 선물 풍속도를 확 바

    2023.09.27 11:14
  • 사진의 새 물결을 보다…제9회 대한민국국제포토페스티벌 개막

    제9회 대한민국국제포토페스티벌이 26일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 제3, 제4 전시실에서 개막한다. 올해는 '뉴 웨이브, 새로운 물결'을 주제로 국내외 120명의 작가들의 작품 1000여 점이 오는 10월 1일까지 전시된다. 올해의 주전시는 영국 기반의 예술재단 인스파이어레이트(Inspirate)와 사진기획자 겸 예술감독 양정아씨가 공동으로 기획했다. 인스파이어레이트가 주관한 사진공모전 'AIS Open 2023'에서 최종 선정된 사진가들의 작품들이 선보인다. 영국, 미국, 네덜란드, 스페인, 방글라데시 등 다양한 국적의 사진가들의 세계관을 반영한 독창적 작품들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폴란드 태생 네덜란드 국적의 에밀리아 마르틴은 우주의 신비와 경이로움에 대한 경험을 일상의 사물과 상황을 통해 드러낸 작품들을 선보인다. 방글라데시 작가 파르자나 아크타르는 여인들의 초상 사진에 자연과 도시의 이미지를 중첩시켜 방글라데시 여성의 삶의 들여다 봤다. 라우라 산 세군도는 스페인 출신으로, 인물과 정물 사진들을 통해, 작가의 인간과 사물의 존재에 대한 사유를 드러냈다. 중국 사진가 리피 예는 인간의 문명이 닿지 않은 자연의 풍경을 통해 시원의 아름다움을 부각시켰다. 마리사 다울링은 영국 사진가로, 초원에서 청소년들이 풀을 뽑고, 식물의 꽃잎과 씨앗을 갖고 노는 장면들로, 자연 속에서의 개인의 독특한 경험과 느낌을 포착했다. 특별전의 주제는 '상식의 재구성'으로 2개 섹션으로 구성돼 있다. 조선희가 치유의 과정을 담은 '나의 우주다'를 선보이고 강주현은 조각과 사진을 동시에 구현해 보여주는 입체사진 드로잉 '순간-연속의 변주'를 전시한다. 한국 사진의 미래를 가늠해볼

    2023.09.25 17:48
  • [이 아침의 사진가] 그림 흉내내던 사진, 독립시킨 스티글리츠

    정장 차림의 위층 사람들은 무심한 표정으로 먼 곳을 바라보고 있다. 남루한 행색의 아래층 사람들은 지친 표정이 역력하다. 미국 근대사진의 아버지로 불리는 앨프리드 스티글리츠(1864~1946)가 1907년 대형 여객선의 일등 선실과 삼등 선실을 한 프레임에 담은 작품 '삼등선실'의 풍경이다. 당시 세계 최대 산업국가로 부상한 미국의 계층 간 차이를 시각적으로 드러낸 이 장면은 현대 사진의 전환점과 같은 작품이었다. 스티글리츠는 20세기 초 우아하고 고상한 그림을 흉내 내던 사진을 회화로부터 독립시킨 인물이다. 그 출발점은 1893년 촬영한 ‘종착역’이었다. 한겨울 도심에서 마차를 끄는 말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수증기를 찍어 회화에서 보여줄 수 없는 역동성과 현실감을 담아냈다. 이 같은 사진을 확산하기 위해 스티글리츠는 1902년 ‘사진분리파’를 결성하고, 이듬해 ‘카메라 워크’를 창간했다. 이어 그는 대표작 ‘삼등선실’을 촬영해 평범한 일상에서도 미적 완성도 높은 작품을 담을 수 있다는 것을 증명했다. 또한 뉴욕에 갤러리291을 열어 마티스, 피카소 같은 작가들의 작품을 미국에서 전시하는 등 미국 예술의 발전을 이끌었다. 신경훈 기자 khshin@hankyung.com

    2023.09.14 18:38
  • [이 아침의 사진가] 사진 고유의 미학 개척…美작가 이모전 커닝햄

    목련 꽃술이 고운 모습을 드러냈다. 역광을 받은 꽃술의 자태는 부드럽고 관능적이기까지 하다. 피사체의 일부만 과감하게 잘라내 촬영한 이 사진은 20세기 미국의 대표 여성 사진가 이모전 커닝햄(1883~1976)이 1925년 촬영한 ‘목련꽃(Magnolia Blossom)’이다. 당시 사진은 회화를 모방하거나 현실을 기록하는 다큐멘터리에 머물러 있었다. 커닝햄은 새로운 시선으로 사진 고유의 미학을 개척한 예술가였다. 대학에서 화학을 전공한 그는 독일까지 가 사진을 공부한 뒤 귀국해 ‘목련’ 등 독창적 식물 연작을 발표했다. 이어 1920년대 후반, 그는 소위 ‘F-64 그룹’에 참여했다. 카메라에서 구현할 수 있는 가장 작은 조리개값으로 피사체를 극도로 정밀하게 찍으려는 시도였다. 커닝햄은 정물뿐 아니라 프리다 칼로, 거트루드 스타인 등 시대의 아이콘과 같은 인물의 개성을 섬세하게 담은 인물 사진을 남겼다. 그의 거리 사진도 특별했다. 카메라를 숨기고 도시의 사람과 풍경을 촬영해 자연스럽고 감수성이 넘쳤다. 커닝햄의 다채로운 작품 활동은 사망 직전까지 무려 72년 동안 이어졌다. 그의 대표작이 경기 성남시 아트스페이스J에서 9월 5일 개막하는 ‘선구자들(Pioneers)’ 전에 초대돼 10월 26일까지 선보인다. 신경훈 기자 khshin@hankyung.com

    2023.08.30 18:13
  • [필름의 추억] 23년 경영인, 23년 야인…사진으로 보는 김석원 전 쌍용그룹 회장의 전성기

    지난 26일 78세의 나이로 별세한 김석원 전 쌍용그룹 회장은 명암이 뚜렷한 삶을 살았던 '비운의 기업인'이었습니다. 30세란 젊은 나이에 쌍용그룹 회장에 올라, 쌍용그룹을 재계 6위까지 성장시키며 전성기를 누렸지만, 55세의 젊은 나이에 경영에서 물러난 뒤 야인으로 지내왔습니다. 중간에 약 2년 동안의 국회의원 활동을 제외하면, 김 전 회장의 인생은 23년의 기업경영, 23년의 야인생활로 정리됩니다. 한경이 1960~1990년대 필름으로 구축한 디지털자산 가운데 김 전 회장의 취임 기자회견부터, 메르세데스-벤츠와의 계약식 장면 등 그의 전성기 사진들을 모아서 정리했습니다. 서른살에 회장 취임 1975년 3월8일 김석원 쌍용그룹 회장이 현대경제일보(현 한국경제신문)와 취임 인터뷰를 했습니다. 준수한 외모와 '댄디'한 차림의 청년이었던 김 회장은 여유있는 표정과 자신감 넘치는 말투로 기자들의 질문에 대답했습니다. 쌍용그룹 창업주인 부친 김성곤 회장의 갑작스런 별세로 젊은 나이에 쌍용그룹의 경영을 맡게된 김 전 회장은 미국 브랜다이스대학교에서 경제학을 공부한 뒤 귀국, 해병대에서 군복무를 마치고 쌍용그룹에 합류해 부친 밑에서 일하고 있었습니다. 한국보이스카우트연맹 총재 취임...고성 잼버리 성공 이끈 김석원 김 전 회장은 1982년 한국보이스카우트연맹 총재로 취임했습니다. 그는 취임하면서부터 잼버리대회 한국 유치를 도모했습니다. 김 전 회장은 주도면밀한 유치작전을 펼쳤고 1985년 4개국의 경합 끝에 한국 고성이 개최지로 선정됐습니다. 1991년 고성 세계스카우트잼버리대회는 스카우트 역사상 최고의 대회였다는 평가를 얻었습니다. 사상 최초로 공산권에서도 참가했

    2023.08.28 15:30
  • [이 아침의 사진가] 도시의 변화를 기록하다…사진작가 울리히 뷔스트

    작은 가로수, 낡은 벽돌담, 굴뚝 그리고 미국 담배 광고판. 묘한 이질감이 뒤섞인 거리를 담은 이 사진은 사진가 울리히 뷔스트(1949~)가 옛 동독 도시 마그데부르크에서 1998년 찍은 것이다. 허물어져 가는 동독의 공장, 자본주의의 물결, 그리고 거리에 심은 새로운 생명이 변화의 한가운데 있는 도시의 이야기를 보여준다. 뷔스트는 동베를린의 도시계획자였다. 사진 에디터 일도 겸하던 그는 1980년대 들어 전업 작가로 변신했다. 당시 해체와 재건이 급속히 이뤄지던 동독의 도시들은 무궁무진한 예술적 소재를 제공했다. 도시의 평범한 건축물과 거리, 사물에서 느낀 인생과 사회 그리고 역사에 대한 자신의 감수성을 지난 40여 년 동안 사진에 담아왔다. 그는 첫 연작 ‘슈타트빌더(도시풍경)’에서 옛 독일 모습을 간직한 도시와 그 가운데 무계획적으로 들어선 새 건축물로부터 작가 특유의 풍자와 감성을 포착해냈다. 통일 이후에도 작가는 도시와 전원을 오가며 일상의 사물에서 서사와 조형미를 구축한 작품을 꾸준히 발표해 독일 사진예술계의 독보적인 존재로 자리 잡았다. 한국과 독일의 수교 140주년을 기념한 사진전 ‘도시산책자: 울리히 뷔스트의 사진’이 부산 해운대구 고은사진미술관에서 최근 개막했다. 11월 5일까지 124점의 작품을 선보인다. 신경훈 기자 khshin@hankyung.com

    2023.08.18 18:28
  • 시간과 공간을 넘어서다…김태근 사진전 '탈주와 노마드적 사유'

    사진가 김태근 개인전 '탈주와 노마드적 사유'가 지난 15일 서울 인사동 갤러리강호에서 개막했다. 일반 렌즈가 아닌 '핀홀'로 영화의 30초 분량을 한 프레임에 담아 환상적이고 추상적 이미지를 보여주는 작품 35점이 22일까지 전시된다. 핀홀은 이른바 카메라의 원리인 '카메라 옵스큐라'를 가능하게 하는 밀폐된 상자에 뚫린 작은 구멍이다. 필홀을 통과한 빛은 상자의 내부 벽면에 닿아 바깥의 풍경을 거꾸로 보여준다. 이 자연 현상의 발견이 결국 카메라의 발명으로 이어졌었다. 핀홀은 기존 광학렌즈와 달리, 왜곡이 없다. 또한 일반 렌즈에서 구현할 수 없는 좁은 조리개 값이 가능하다. 그래서 작가는 핀홀을 사용해 극도로 높은 감도로 촬영할 수 있었고 일반 렌즈로 얻을 수 없는 거친 입자를 실현했다. 또한 김태근은 '현실을 기록하는 매체'라는 사진에 대한 고정관념을 탈피해 영화를 피사체로 삼았다. 이번 연작들은 30초 분량의 영화를 핀홀을 장착한 카메라로 한 프레임에 담은 작품들다. 영화 1초가 24장의 필름으로 이뤄져 있으니, 김태근의 작품 하나엔 약 720 장의 장면들이 녹아 들어 있다. 즉, 한 장의 사진에 여러 시간대와 공간을 동시에 포착한 것이다. 이런 복잡한 과정을 통해 얻은 김씨의 작품들은 추상표현주의 회화작품처럼 난해하고 신비하다. 작가는 이번 작품에 대해 "현실이 아닌 다른 장르의 예술을 피사체로 삼아, 다양한 시간대와 공간을 한 프레임에 담으려는 시도"라고 말했다. 전시기획자 원춘호씨는 김씨의 이번 전시가 "사진예술의 영역을 넓히려는 의미 있는 작업"이라고 평가했다. 신경훈 디지털자산센터장 khshin@hankyung.com

    2023.08.16 1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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