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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경제

  • 고두현 기자
    고두현 기자 편집국장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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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래된 길이 돌아서서 나를 바라볼 때 [고두현의 아침 시편]

    오래된 길이 돌아서서 나를 바라볼 때고두현늘 뒤따라오던 길이 나를 앞질러 가기 시작한다.지나온 길은 직선 아니면 곡선주저앉아 목 놓고 눈 감아도이 길 아니면 저 길, 그랬던 길이어느 날부터 여러 갈래 여러 각도로내 앞을 질러간다.아침엔 꿈틀대는 리본처럼 푸르게저녁엔 칭칭대는 붕대처럼 하얗게들판 지나 사막 지나 두 팔 벌리고골짜기와 암벽 지나 성긴 돌 틈까지물가에 비친 나뭇가지 따라 흔들리다가바다 바깥 먼 항로를 마구 내달리다가어느 날 낯빛을 바꾸면서 이 길이 맞느냐고남 얘기하듯, 천연덕스레 내 얼굴을 바라보며갈래갈래 절레절레오래된 습관처럼 뒤따라오던 길이 갑자기앞질러 가기 시작하다 잊은 듯돌아서서 나에게 길을 묻는 낯선 풍경.-----------------------------------지난주 편지를 읽고 많은 분이 답을 보내주셨습니다. 다정하고 깊이 있게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몇 편 더 소개해 달라는 말씀이 많아서 용기를 내어 제 시를 한 번 더 읽어드리겠습니다. 표제작 한 편과 제 삶의 첫 길인 탄생의 순간을 그린 시 한 편을 골랐습니다.‘오래된 길이 돌아서서 나를 바라볼 때’는 인생이라는 긴 여정의 한 굽이를 돌아 60이 다 되어서 쓴 시입니다. 별다른 설명을 보탤 것도 없이 느낌대로 음미하면 되겠지요. ‘내가 마구간에서 태어났을 때’도 있었던 일 그대로 쓴 거라 덧붙일 설명이 필요 없습니다.그렇잖아도 이번 시집에는 길의 이미지가 많이 담겨 있습니다. 시집 제목부터 『오래된 길이 돌아서서 나를 바라볼 때』이지요. 개인과 사회, 과거와 현재, 지질과 역사의 단면을 길의 이미지로 치환했습니다. 그 길 위에서 만난 사람과 사물, 사회의 이면, 세계의

    2024.04.18 17:40
  • 패랭이꽃과 카네이션에 얽힌 이야기 [고두현의 아침 시편]

    패랭이꽃(石竹花)                          정습명사람들은 모두 붉은 모란을 좋아해뜰 안 가득 심고 정성껏 가꾸지만누가 잡풀 무성한 초야에예쁜 꽃 있는 줄 알기나 할까.색깔은 달빛 받아 연못에 어리고향기는 바람 따라 숲 언덕 날리는데외진 땅에 있노라니 찾는 귀인 적어아리따운 자태를 농부에게 붙이네.*정습명(鄭襲明, ?~1151) : 고려 문신.초야에 묻혀 사는 처지를 패랭이꽃에 비유하면서 세속의 모란과 대비시킨 시입니다. 고려 문신 정습명의 오언율시이지요. 패랭이꽃은 꽃 모양이 옛 민초들의 모자인 패랭이를 닮았다고 해서 붙은 이름입니다. 문학작품에서도 소시민을 비유하는 꽃으로 자주 쓰이지요.이 시에서 패랭이꽃은 시인 자신을 의미합니다. 정몽주의 10대조인 정습명은 어려서부터 글을 잘 지었다고 해요. 예종 때 과거에 급제해서 내시(內侍, 이때까지는 문신이 맡았으나 의종 이후 환관이 차지)에 임명됐습니다. 임금의 잘못 바로잡지 못하고 끝내…그러나 자신을 알아주는 사람이 드물었다고 합니다. 어느 날 그는 이 시 ‘패랭이꽃’을 읊으며 혼자 한숨을 지었습니다. 이를 알게 된 예종이 감탄해 그를 옥당(玉堂, 한림원)에 특별히 천거했지요. 그러니 이 시가 그의 출세작인 셈입니다. ‘파한집’에 이 얘기가 실려 있습니다.그는 예종에 이어 인종의 총애를 받았고, 의종의 태자 시절 스승까지 맡았지요. <삼국사기> 편찬 감독관으로 김부식, 김효충 등과 함께 작업하기도 했습니다. 그는 말년의 인종에게 “의종을 특별히 잘 보필해달라”는 부탁을 받았습니다. 어릴 때부터 의종을 가르쳤기에 누구보다 장단

    2024.04.15 10:00
  • 목련이 북향으로 피는 까닭 [고두현의 아침 시편]

     목련이 북향으로 피는 까닭                            고두현해마다 목련이 북향으로 피는 것은햇살 잘 받는 남쪽 잎부터 자라기 때문이네.내 마음 남쪽서 망울져 북쪽으로 벙그는 건그대 사는 윗마을에봄이 먼저 닿는 까닭이네.----------------------------최근 새 시집을 출간했습니다. 제목은 <오래된 길이 돌아서서 나를 바라볼 때>입니다. 9년 만에 내놓은 신작 시집이라 마음이 쓰이고 면구스럽고 설레고 걱정도 되고 그렇습니다. 마침 목련꽃이 한창인지라 목련 시 두 편을 읽어드리겠습니다. 목련(木蓮)은 꽃 모양이 연꽃을 닮아서 목련, 은은한 향기가 난초 향 같다고 해서 목란(木蘭)이라고도 부르지요. 자세히 보면 꽃봉오리가 북쪽을 보고 핍니다. 대부분의 꽃이 해바라기하듯 남으로 피는 것과 다르지요. 왜 그럴까요. 따뜻한 햇살을 받는 꽃잎의 엉덩이 쪽이 먼저 부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북향화(北向花)라고도 하지요. 목련은 꽃잎이 커서 한 그루가 꽃을 피우면 주변이 온통 환해집니다. 등불 같은 이 꽃을 볼 수 있는 기간은 불과 열흘 남짓이지만, 그래도 온 세상을 환하게 밝혀주는 등불 덕분에 모두가 새삼 희망을 갖고 용기도 내 봅니다. 목련 관련 시 한 편 더 읽어드릴게요. 꽃자루에 꽃 하나씩 피는 목련꽃 피는 데도 순서가 있다는데네 끝에서 처음 피는 꽃과내 속에서 마지막 피는 꽃이물망초처럼 좌우 교대로 피는 순간은 언제일까.우리 만나고 합치고 꽃 피우느라이만큼 아래위 앞뒤 서로 부볐으니이제는 누가 먼저 꽃씨 열매 품었는지넌지시 속 보여줄 때도 되지 않았을라나 몰라. 그렇습니다. 자연의 이치는

    2024.04.11 15:37
  • 명작의 바탕은 苦心이 아니라 無心 [고두현의 아침 시편]

    날이 개다(新晴)이숭인새로 갠 날씨 좋아 초가 정자에 들르니살구꽃 새로 영글고 버들가지 푸르네시가 이뤄지는 건 무심한 곳에 있는데애써 먼지 낀 책에서 영감을 구걸했네.* 이숭인(李崇仁, 1349~1392): 고려 말 문사이숭인의 칠언절구인데, 맑게 갠 봄날 풍광으로 시의 원리를 일깨워주는 시입니다. 여기저기 덧칠하고 꾸며낸 언사가 아니라 비 온 뒤 벙그는 꽃망울과 버들가지 빛깔처럼 맑고 선명한 것이 좋은 시라는 얘기죠.‘뛰어난 시의 바탕은 고심(苦心)이 아니라 무심(無心)’이라는 이치는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습니다.어릴 때부터 글솜씨가 특출하던 그는 일찌감치 이를 체득한 모양입니다. 그 덕분에 16세에 급제해 21세에 태학(太學) 교수가 되고 이후에도 승진을 거듭했지요. 23세 때에는 명나라 과거에 응시할 고려 문사(文士)를 뽑는 시험에서 수석을 차지했으나 너무 어리다(25세에 미달) 해서 떠나지 못하기도 했습니다. 살아 있는 무심필법(無心筆法)얼마나 뛰어났으면 이색(李穡)이 “이 사람의 문장은 중국에서 구할지라도 많이 얻지 못할 것”이라고 극찬할 정도였지요. 실제로 명나라 태조가 그의 표문(表文)을 보고 “표의 문사가 참으로 놀랍다”고 했고, 중국 사대부들도 탄복했답니다.명 태조가 그를 한번 보고 싶다고 해서 1386년(우왕 12년) 정조사(正朝使)로 방문했는데, 최고의 환대와 파격적인 예우를 받았습니다. 황제는 고관들과 펼친 경연에서 그의 재질이 단연 돋보이자 관 위에다 백옥을 얹어 문창성(文昌星)을 표시하고 관복 한 벌, 벼루 한 개를 따로 선물했지요. 그 벼루는 지금도 후손인 성주 이씨 종가에 보관돼 있습니다.그러나 격랑의 시절 탓에 그는

    2024.04.08 10:00
  • 갈고리 도둑과 나라 도둑 [고두현의 아침 시편]

          4월 장자(莊子)                           고두현성을 쌓고문밖은 비워두라.작은 도둑 경계하여자물쇠 채웠거늘큰 도적이 상자통째로 가져가고갈고리 훔친 자 죽은 뒤엔나라 도둑질한 자제후가 되다니,저 깊은 산문 첩첩냇물 마른 빈 골짜기춤추는 봄나비들아아아 눈뜨고 귀 밝은 것이오늘의 슬픔이다.--------------------며칠 뒤면 국회의원 선거일이군요. 그런데 마음이 편치 않습니다. 저마다 나라를 구하겠다고 큰소리를 치지만 행여 이들이 나라를 망치지나 않을까 걱정입니다. 최선이 아니라 차선, 최악이 아니라 차악을 뽑아야 하는 기로에 설 때 우리는 곤혹스럽지요. 간혹 눈에 띄는 ‘선한 능력자’까지 이 거대한 탁류에 휩쓸리는 게 아닐까 저어됩니다. 앞이 보이지 않을 땐 고전을 펼칩니다. <장자(莊子)> ‘거협(胠篋)’편이 눈길을 끕니다.‘갈고리를 훔친 자는 형벌을 받고 나라를 훔친 자는 제후가 된다(竊鉤者誅 竊國者爲諸侯·절구자주 절국자위제후).’갈고리(鉤)는 쇠로 된 갈고랑이나 혁대 끝을 끼우는 단추를 뜻하니, 좀도둑이 처벌되는 것과 달리 큰 도적이 국권을 장악하는 걸 비꼰 말이지요.이 ‘큰 도적’은 곡식을 되(升)와 말(斗)로 재게 하면 되와 말을 훔치고, 저울로 달게 하면 저울을 훔치며, 인의(仁義)로 행실을 바로잡게 하면 인의를 도적질합니다. 스스로 성(城)을 구축하기는커녕 남이 애써 쌓아 올린 성을 빼앗고 결국에는 그 성에 갇혀 버리기도 하지요.예나 지금이나 나라를 도둑질당하지 않으려면 ‘큰 도적’을 경계해야 합니다. 방법은 무엇일까요. 장자는 “모두가

    2024.04.04 17:10
  • 그해 봄날 완행버스에서 생긴 일 [고두현의 아침 시편]

    빈자리고두현열네 살 봄읍내 가는 완행버스먼저 오른 어머니가 남들 못 앉게먼지 닦는 시늉하며 빈자리 막고 서서더디 타는 날 향해 바삐 손짓할 때빈자리는 남에게 양보하는 것이라고아침저녁 학교에서 못이 박힌 나는못 본 척, 못 들은 척얼굴만 자꾸 화끈거렸는데마흔 고개붐비는 지하철어쩌다 빈자리 날 때마다이젠 여기 앉으세요 어머니없는 먼지 털어가며 몇 번씩 권하지만괜찮다 괜찮다, 아득한 땅속 길천천히 흔들리며 손사래만 연신 치는그 모습 눈에 밟혀 나도 엉거주춤끝내 앉지 못하고.중학교에 갓 들어간 해 봄날, 남해 금산 입구 버스 정류장. 어머니와 함께 읍내 가는 완행버스를 기다리며 서 있었습니다. 햇살은 따사롭고 풍광은 평화로웠습니다. 금산 보리암에 올랐다 돌아가는 외지인들이 도란거리며 얘기꽃을 피우고 있었지요.못 본 척, 못 들은 척 … 얼굴만 화끈쪼그리고 앉아 운동화 끈을 다시 매는 사이에 버스가 금방 왔습니다. 어머니가 먼저 오르고, 제 앞으로 서너 명이 따라 올랐죠. 다급해진 저는 한쪽 신발을 미처 다 매지도 못한 채 서둘러 뒤를 따랐습니다.한 발을 막 올리려는 순간, 앞사람 옆구리께로 어머니 뒷모습이 보였죠. 중간쯤에 난 빈자리를 몸으로 엇비슷하게 막고 서서 한 손으로 저를 바삐 부르는 중이었습니다. 그러면서 다른 손으로는 멀쩡한 자리에 먼지가 묻었다는 듯 부채질을 하고 있었지요.그 모습이 부끄러워 저는 일부러 못 본 척, 못 들은 척했습니다. 빈자리는 노약자나 임신부에게 양보해야 한다고 어릴 때부터 귀에 못이 박히도록 배웠는지라 얼굴이 화끈거리고 무안해서 어쩔 줄 몰랐지요.그럴수록 어머니의 손짓은 더 바빠졌습니다. 자식을 위

    2024.04.01 10:00
  • 서촌에서 만난 200년 전 시인들 [고두현의 아침 시편]

                              송석원(松石園)                                김낙서외상술에 거문고 들고 날마다 오가니두 짝 신발 바닥 구멍 나도 기울 줄 모르네.칠언장편으로 자웅을 다투거니쇠를 치고 공을 때려 진부한 말이 없다네.------------------------------------ 시가 잘 써지지 않는 날에는 옛길을 걷습니다. 오늘은 서울 서촌 수성동(水聲洞) 계곡 아래 옥인동(玉仁洞) 길입니다. 이 동네는 200여 년 전 많은 시인이 모여 시구를 다듬고 합평을 하며 밤을 지새우던 곳이지요. 그들도 시가 잘 써지지 않으면 이 길을 걸었을 것입니다. 서로의 집을 오가며 책장을 더듬고 붓끝을 벼리면서 한 구절이라도 더 빛나는 문장을 얻기 위해 골몰했겠지요. 통인시장 지나 필운대로를 따라 올라가다 길가에서 ‘송석원(松石園) 터’ 푯돌을 만났습니다. 옥인동 47의 33번지, 전봇대 옆 좁은 보도에 차도를 등지고 서 있어서 그냥 지나칠 뻔했습니다. 송석원은 조선 후기 서얼과 중인 중심의 위항시인들이 모여 시회를 열던 곳입니다. 모임을 이끈 서당 훈장 천수경(千壽慶·1758~1818)의 집 이름이기도 하지요. 집 뒤로 큰 소나무와 바위가 있어 그렇게 불렀답니다.  천수경은 모임의 이름을 ‘송석원시사(松石園詩社)’라고 지었습니다. 옥류동 계곡에서 자주 모인다고 해서 ‘옥계시사(玉溪詩社)’라고도 했지요. 시사(詩社)는 시를 짓고 즐기기 위한 모임으로 요즈음의 문학동인과 같습니다. 천수경과 함께 모임을 주도한 서당 친구 장혼(張混)이 <이이엄집(而已广集)>에 밝힌 모임의 의의

    2024.03.28 15:38
  • 프랑스를 사로잡은 한국 현대시인 100명 [고두현의 문화살롱]

    100여 년 전 한국인이 만난 서양 시의 주류는 프랑스였다. 1918년 창간된 국내 첫 주간지 ‘태서문예신보’에 폴 베를렌과 레미 드 구르몽 등 프랑스 시가 실렸다. 이들 시를 소개한 김억 시인의 번역시집 <오뇌의 무도>(1921)에 실린 작품도 전체 85편 중 64편이 프랑스 시였다. 국내 최초의 서양 시 번역시집인 <오뇌의 무도>는 출간되자마자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이후 한국 독자들의 프랑스 시 사랑은 더욱 뜨거워졌다. 8개 대학 한국어 강의 자료 활용이에 반해 한국 시가 프랑스에 소개된 사례는 많지 않다. 한·프랑스 수교 140년을 앞두고 있지만 그동안 양국의 문학 교류는 주로 프랑스 시의 ‘수입’에 의존했다. 최근 들어 분위기가 바뀌고 있다. 한류 붐을 타고 한국어와 한국 시의 위상이 높아지고 있다. 파리시테대 한국학과 입학 경쟁률이 20 대 1, 보르도몽테뉴대 한국어학과 경쟁률은 35 대 1에 이를 정도다. 한국어능력시험인 ‘토픽(TOPIK)’ 응시자도 급증하고 있다. 자국 문화와 언어에 대한 자부심이 남다른 프랑스에서 이례적인 현상이다.지난 14일에는 한국을 대표하는 시인 100명의 시선집이 프랑스어로 번역 출간됐다. 한국 현대시 120년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다. 이 시선집의 제목은 <한국 현대시인선집(Anthologie des potes corens contemporains)>이다.여기에는 한용운 정지용 김소월 백석 윤동주 등 국권 상실기의 시인부터 박목월 구상 김춘수 김수영 김남조 등 전후 시인들, 허영자 이근배 김종해 이건청 오세영 신달자 문정희 최동호 윤석산 나태주 유자효 정호승 기형도 등 산업화 이후 시인들이 망라돼 있다. 시조시인도 10명 포함돼 있다. 문학평론가인 유성호 한양

    2024.03.26 18:53
  • 동백은 왜 '두 번 피는' 꽃일까 [고두현의 아침 시편]

    동백꽃이수복동백꽃은훗시집간 순아 누님이매양 보며 울던 꽃눈 녹은 양지쪽에 피어집에 온 누님을 울리던 꽃.홍치마에 지던하늘 비친 눈물도가녈피고 씁쓸하던 누님의 한숨도오늘토록 나는 몰라 …울어야던 누님도 누님을 울리던 동백꽃도나는 몰라오늘토록 나는 몰라 …지금은 하이얀 촉루가 된누님이 매양 보며 울던 꽃빨간 동백꽃.* 이수복(1924~1986) : 전남 함평 출생.1954년 서정주 추천으로 등단. 시집 <봄비> 출간.동백나무는 다산(多産)의 상징이지요. 열매가 풍성하게 맺혀서 그렇답니다. 동백은 추위 속에서 망울을 터뜨리는 꽃이어서인지 꽃잎도 두껍습니다. 그 속에 향기 대신 꿀을 잔뜩 머금고 있지요.‘훗시집간 누님’의 홍치마에 지던…추위 속에 피는 동백의 꽃가루는 누가 옮기는 걸까요? 뜻밖에도 벌·나비 등의 곤충이 아니라 텃새입니다. 남부 해안이나 섬에 서식하는 동박새가 그 주인공이죠. 꿀을 유난히 좋아하는 동박새는 귀엽고 앙증맞은 몸으로 동백나무 꽃가루를 이리저리 옮기며 중매쟁이 노릇을 합니다.남부 지방에서는 혼례식 초례상에 송죽 대신 동백나무를 주로 꽂았습니다. 사철 푸른 동백잎처럼 변하지 않고 오래 살며 풍요롭기를 바라는 뜻에서였지요. 시집가고 장가갈 때 아이들이 동백나무 가지에 오색종이를 붙여 흔드는 풍습도 이런 축복의 뜻을 담은 것입니다.이수복 시 ‘동백꽃’에는 축복보다 눈물이 먼저 아롱거립니다. 친정 부모 형제와 정든 집을 떠나 출가하는 것만으로는 쉽게 설명할 수 없는 슬픔이 그 속에 녹아 있지요. 그 이유는 바로 ‘훗시집’에 있습니다.처녀가 총각과 결혼하는 게 아니라 남의 집 후처나 재취로

    2024.03.25 10:00
  • 세상에 이런 봄날 풍경이 있다니! [고두현의 아침 시편]

    피파의 노래로버트 브라우닝한 해의 봄하루 중 아침아침 7시언덕에는 진주 이슬 맺히고종달새는 날고달팽이는 가시나무 위에신은 하늘에 계시니모든 것이 평화롭다!------------------영국 시인 로버트 브라우닝의 극시 ‘피파가 지나간다’(Pippa Passes)의 첫 부분입니다. 짧지만 봄날 아침의 평화로운 정경을 절묘하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흔히 ‘봄의 노래’ ‘아침의 노래’라는 제목으로 인용되기도 하지요.시인이 노래하는 봄은 평화로움 그 자체입니다. 언덕에는 진주처럼 영롱한 이슬이 맺히고, 종달새가 하늘 높이 날아다니고, 달팽이는 가시나무 위에 있고, 신은 하늘에, 인간은 땅에 있으니 세상만사 완벽한 질서와 평화를 보여줍니다.이 시의 주인공은 이탈리아의 방직공장에서 일하는 가난한 소녀 피파입니다. 피파는 1년에 단 하루밖에 없는 휴가 날 아침, 희망과 기대에 부풀어 잠에서 깨어납니다. 그리고 길을 걸으며 노래를 흥얼거립니다. 노래는 아침, 점심, 저녁, 밤의 순서로 이어집니다.피파는 이 마을에서 가장 행복해 보이는 네 사람의 삶을 동경하며 그들의 창가를 지나면서 기쁨의 노래를 부릅니다. 하지만 이들은 모두 남모를 고통의 시간을 보내고 있었지요.예를 들면 이렇습니다. 피파가 일하는 공장의 주인은 루카라는 노인입니다. 그의 아내는 한참 젊은 오티마인데, 가난한 독일인 세발드와 불륜 관계입니다. 생활이 어려운 세발드에게 루카가 도움을 줬지만 세발드는 오히려 루카의 아내와 부정한 관계를 맺었습니다. 결국 루카가 이 사실을 알게 됩니다. 그러자 세발드와 오티마는 섣달 그믐날 밤에 루카를 죽이고 맙니다.두 사람은 온실에 마주 앉아 있

    2024.03.21 17:52
  • 사막을 건너는 덴 작은 걸음 수백만 번이 필요하다 [고두현의 인생명언]

    “사막을 횡단하는 것은 단숨에 되지 않는다. 사막을 횡단하려면 작은 걸음들이 수백만 번 필요하다. 그리고 한 걸음 한 걸음이 길의 한 부분이 되고, 경험의 일부가 된다.”세계적인 등반가이자 모험가인 라인홀트 메스너가 <내 안의 사막, 고비를 건너다>라는 책에서 한 말이다.그는 인류 최초로 히말라야의 8000m급 14봉을 완등한 인물. 열다섯 살 때 돌로미테산의 수직 암벽들 속을 누볐고, 스물다섯 살에는 낭가파르바트산의 루팔 벽을 올랐다. 서른다섯에는 단독으로 산소마스크도 없이 에베레스트산 정상에 올랐으며, 마흔다섯엔 남극지방의 한가운데를 밟았다.동상으로 발가락과 손가락을 거의 다 잃은 그는 60세 되던 해에 고비사막 횡단에 나섰다. 전인미답의 극지를 누비던 그가 유럽의회 의원으로 5년간 ‘혹사’당한 뒤 자신을 추스르기 위해 떠난 ‘사막 걷기’ 여행이었다.시간마저 멈춘 듯한 그 공(空)의 한가운데에서 삶의 짐을 내려놓고 자신으로부터 온전히 자유로워지는 순간, 그는 진정한 내면의 소리를 듣고 아름답게 나이 들어가는 것의 의미를 깨달았다.우리는 “살다 보면 누구나 에베레스트보다 더 높은 생의 고비를 만난다”는 그의 성찰과 함께 인생의 사막을 건너는 법을 찬찬히 생각해 볼 수 있다.2004년 5월, 그는 배낭과 물통, 위성항법장치가 내장된 시계만 지닌 채 동고비 사막의 바얀트우카를 출발했다. 유목민들의 천막집을 전전하면서 목동 생활을 하는 유목민의 도움만으로 텅 빈 고비사막을 걸어서 가로질렀다. 고비사막 횡단이라는 힘겨운 행군은 삶의 무게로부터 벗어나 자신을 마주하는 경험이자 잘 늙어가는 방법을 깨닫는 성찰의 시간이었

    2024.03.19 14:50
  • 그 신혼 치마에 먹물 자국이 아직… [고두현의 아침 시편]

    회근시(回詩)정약용육십 년 세월, 눈 깜빡할 새 날아갔으나복사꽃 무성한 봄빛은 신혼 때 같구려.나고 죽는 것과 헤어지는 것이 늙기를 재촉하지만슬픔은 짧았고 기쁨은 길었으니 은혜에 감사하오.이 밤 목란사 노래 소리 더욱 좋고그 옛날 치마에 먹 자국이 아직 남아 있소.나뉘었다 다시 합하는 것이 참으로 우리 모습이니한 쌍의 표주박을 남겨 후손에게 전합시다.* 정약용(1762~1836) : 조선 후기 학자, 시인.다산(茶山) 정약용이 결혼 60주년을 기념해 지은 시입니다. 60회 기념일은 1836년 4월 7일(음력 2월 22일). 15세에 부인 홍 씨와 결혼한 지 딱 60년이 되는 날이죠. 하지만 회혼 잔치를 베풀려던 그날 아침, 안타깝게도 그는 세상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74세의 파란만장한 삶이 잔칫상 사이로 잦아들었지요.이 시는 그가 죽기 사흘 전에 쓴 것입니다. 그러고 보니 생애 마지막 작품이군요. 이로부터 2년 후에 부인은 그의 뒤를 따랐습니다. 이 시에 나오는 부인의 ‘그 옛날 치마’란 조선 시대 여인들이 입던 하피(霞)를 말하지요.아내 치마폭에 한 자씩 새긴 <하피첩>다산은 유배 생활을 오래했습니다. 전남 강진에서만 17년을 지냈지요. 귀양살이 10년째가 되던 해, 부인이 시집올 때 입었던 다홍치마 다섯 폭을 인편으로 보내왔습니다. 젊은 날 행복했던 시절을 떠올리며 남편에 대한 정을 치마에 담아 전하고 싶었을까요.다산은 그런 뜻을 헤아려 치마를 70여 장의 서책 크기로 자르고 다듬었습니다. 요즘으로 치면 B5 용지보다 조금 작은 크기였지요. 그 치마폭에 종이를 붙여 빳빳하게 만든 다음, 먹을 찍어 한 자 한 자 정성껏 글을 썼습니다.이렇게 해서 완성한 것이 그 유명한 <하피첩(霞帖, 노을빛

    2024.03.18 10:00
  • “좋아, 기쁨에 모험을 걸자” [고두현의 아침 시편]

       눈풀꽃               루이즈 글릭내가 어떠했는지, 어떻게 살았는지 아는가.절망이 무엇인지 안다면 당신은분명 겨울의 의미를 이해하리라.나 자신이 살아남으리라고 기대하지 않았다,대지가 나를 내리눌렀기에.내가 다시 깨어날 것이라고는예상하지도 못했다.축축한 흙 속에서 내 몸이다시 반응하는 걸 느끼리라고는.그토록 긴 시간이 흐른 후에가장 이른 봄의차가운 빛 속에서다시 자신을 여는 법을기억해 내면서.나는 지금 두려운가, 그렇다. 하지만당신과 함께 다시외친다.좋아, 기쁨에 모험을 걸자.새로운 세상의 살을 에는 바람 속에서.---------------------------------2020년 노벨문학상을 받은 미국 여성 시인 루이즈 글릭의 작품입니다. 혹한의 동토에서 죽음 직전까지 갔다가 이른 봄 눈 속에서 다시 살아나는 눈풀꽃의 생명력이 눈물겹습니다. 그 꽃은 ‘새로운 세상의 살을 에는 바람 속에서’도 싱싱하게 다짐합니다. ‘나는 지금 두려운가, 그렇다. 하지만/ 당신과 함께 다시/ 외친다./ 좋아, 기쁨에 모험을 걸자’고 말이죠. 글릭은 노벨상을 받은 지 3년 만인 지난해 80세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사인은 암이었다고 합니다. 1968년 시집 <맏이>로 활동을 시작해 14권가량의 시집과 시론, 수필집을 남기고 갔지요. 미국에서는 명성이 높았지만, 우리나라에는 잘 알려지지 않았던 시인입니다. 그나마 류시화 시인의 번역 덕분에 몇몇 작품이 소개돼 있었습니다. 1943년 미국 뉴욕에서 태어난 그는 청소년기에 앓았던 섭식장애, 신경성 식욕부진증으로 학업까지 중단해야 했습니다. 이는 이후의 삶에 커다란 영향을 미쳤습니다. 그런 가운데에서도 퓰리

    2024.03.14 17:14
  • 하멜이 일본으로 탈출한 뒤 받은 54개 질문 [고두현의 문화살롱]

    “전원 사망했습니다.” 370년 전인 1654년 10월, 네덜란드 동인도회사는 무역선 스페르베르호와 화물을 결손 처리하면서 승무원 64명이 모두 사망했다고 발표했다. 바타비아(자카르타)에서 대만을 거쳐 일본으로 가던 배가 악천후 속에서 실종된 지 1년여 만이었다. 나가사키의 인공섬 데지마에 있는 네덜란드 상관(商館) 관리들은 착잡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그로부터 12년이 지난 1666년 9월 14일, 죽었다던 승무원들이 나가사키에 모습을 드러냈다. 회계와 기록을 담당한 서기 헨드릭 하멜 등 8명이었다. 이들은 태풍으로 제주도 앞바다에서 난파당한 뒤 조선에 13년간 억류돼 있다가 작은 배를 구해 극적으로 탈출했다. 일본 고토(五島)열도에서 뱃사람들에게 발견된 일행은 곧 나가사키 부교(奉行·행정책임자)의 집중 심문을 받았다. 일본 외교문서 받고서야 '깜짝'54가지 질문은 매우 날카롭고 치밀했다. 이름과 국적 등 기본 사항에 이어 대포 수와 화물, 억류 경위, 조선의 정세와 군사 장비, 경제 상황, 국제 관계, 문물, 풍습까지 세세하게 캐물었다. 예를 들면 “난파된 곳은 어디이며 사람은 몇 명이고 대포는 몇 문이었나”라는 복합질문을 통해 “제주도 근처, 승무원 64명(생존자 16명 중 8명은 아직도 조선 억류), 대포는 30문” 등의 정보를 입체적으로 파악했다.곧이어 조선에 관한 문답이 집중적으로 오갔다. “무기와 군사 장비는?” “화승총과 칼, 활, 화살, 그밖에 조그만 창도 있다.” “성이나 성채(요새)는?” “고장마다 작은 성채들이 있다. 산 높은 곳에도 성채가 있는데 전쟁이 나면 그리로 피란 간다. 그곳엔 3년분의 식량이 비축돼 있다.&r

    2024.03.12 17:49
  • 봄날 경주역에서 처음 만난 목월과 지훈 [고두현의 아침 시편]

    완화삼 - 목월에게조지훈차운 산 바위 우에 하늘은 멀어산새가 구슬피 울음 운다.구름 흘러가는물길은 칠백 리나그네 긴 소매 꽃잎에 젖어술 익는 강마을의 저녁노을이여.이 밤 자면 저 마을에꽃은 지리라.다정하고 한 많음도 병인 양하여달빛 아래 고요히 흔들리며 가노니…* 조지훈(1920~1968): 경북 영양 출생. 1939년 <문장(文章)>으로 등단. 시집 <풀잎단장> 등.1942년 봄이었습니다. 2년 전 문예지 <문장>으로 등단한 청년 시인 조지훈이 같은 잡지로 데뷔한 박목월에게 편지를 보냈지요. 얼굴은 모르지만 잡지에 실린 주소를 찾아 문우(文友)의 근황을 묻고 언제 한번 보자고 썼습니다. 며칠 뒤 목월의 답장이 도착했죠.“경주박물관에는 지금 노오란 산수유 꽃이 한창입니다. 늘 외롭게 가서 보곤 하던 싸느란 옥적(玉笛)을 마음속 임과 함께 볼 수 있는 감격을 지금부터 기다리겠습니다.”한지에 이름 써서 들고 기다린 목월지훈은 그길로 집을 나섰습니다. 서울역에서 출발한 기차가 경주 건천역에 도착한 것은 늦은 오후의 해거름 무렵이었지요. 한가로운 시골역의 플랫폼에 내리자 한지에 자기 이름을 써서 들고 선 목월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그때 지훈은 스물둘, 목월은 스물일곱 살이었죠. 두 젊은이는 경주 시내 여관방에서 문학과 삶을 얘기하며 거의 매일 밤을 새다시피 했습니다. 낮에는 목월의 안내로 불국사며 석굴암이며 왕릉 숲길을 거닐었지요.그렇게 열흘 이상 어울리고서야 둘은 헤어졌습니다. 지훈은 고향인 경북 영양의 옛집에 들러 목월에게 고맙다는 편지를 보내며 목월을 위해 쓴 시 한 편을 동봉했지요. 그 시가 바로 ‘목월에게’라는 부제를 단 ‘완화

    2024.03.11 10:00
  • 백거이가 10대 때 쓴 놀라운 시 [고두현의 아침 시편]

     옛 언덕의 풀 이별 노래                        백거이언덕 위에 우거진 풀들해마다 한 번 시들었다 무성해진다네.들불을 놓아도 다 타지 않고봄바람 불면 다시 돋아난다네.방초는 멀리 뻗어 옛길을 덮고맑은 하늘 푸른 빛은 황폐한 성까지 닿네.또 그대를 떠나보내니이별의 슬픔 가득하다네. 賦得古原草 送別離離原上草 一歲一枯榮野火燒不盡 春風吹又生遠芳侵古道 晴翠接荒城又送王孫去 萋萋滿別情-------------------------------당나라 시인 백거이(白居易)가 10대 시절에 쓴 시입니다. 원문 제목은 ‘부득고원초송별’인데, ‘초(草)’라는 제목으로도 알려져 있습니다. 백거이가 15세, 혹은 18세 때였다고 합니다. 시험을 보러 수도 장안(長安)에 처음 갔다가 당시 이름난 시인인 고황(顧況)을 찾아갔지요. 고황은 소년의 이름이 ‘거이(居易)’인 것을 보고 이에 빗대어 “장안의 쌀값이 비싸니 살기가 어려울 텐데(長安米貴 居住不易)”라며 조롱했습니다. 그러나 백거이가 이 시를 보여주자 “이런 재주가 있다면 살아가기가 쉬울 것(有才如此 居亦容易)”이라며 감탄했다고 합니다. 이때의 칭찬 덕분에 소년 백거이의 이름이 널리 퍼졌지요. 시 원문에 나오는 ‘야화(野火)’는 들판의 마른 풀을 태우기 위해 지르는 불을 가리킵니다. ‘야화소부진 춘풍취우생(野火燒不盡 春風吹又生)’은 들불을 놓아도 풀은 완전히 다 타 없어지지 않고 봄이 되면 다시 파릇파릇 돋아나는 것을 묘사한 것이죠. 간결하면서도 깊은 함의를 지닌 이 구절이 바로 이 시의 백미입니다. 이 명구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해석이

    2024.03.07 17:54
  • 인재는 가까이 있다 [고두현의 아침 시편]

    눈 내리는 저녁 숲가에 서서                     로버트 프로스트이 숲이 누구의 숲인지 알 것 같네.그의 집 마을에 있어도.그는 모를 것이네, 나 여기 멈춰 서그의 숲에 눈 쌓이는 것 보고 있음을.내 작은 말은 이상하게 생각하는 게 틀림없네.한 해의 가장 어두운 이때근처에 농가 하나 없는 숲과얼어붙은 호수 사이에 멈춰 서 있음을.무슨 착오가 있는지 묻기라도 하듯그는 마구를 흔들어 종을 울리네.달리 들려오는 건 부드러운 바람과솜털 같은 눈송이 내리는 소리뿐.숲은 아름답고, 어둡고, 깊네.하지만 나에게는 지켜야 할 약속이 있네.잠들기 전 가야 할 몇 마일의 길이 있네.잠들기 전 가야 할 몇 마일의 길이 있네.--------------------------------- 미국 시인 로버트 프로스트(1874~1963)의 시를 읽으면서 ‘지켜야 할 약속’의 또 다른 의미를 생각합니다. 다음 대화를 한번 볼까요. “세상에서 가장 많은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사람이다.” “그렇다면 가장 적은 것은?” “그것도 사람이다.” 일본 장수 구로다 조이스와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주고받은 말입니다. 대화 속의 ‘사람’을 ‘인재’로 바꿔놓으면 금방 통하지요. 이 대화는 침몰 직전의 아사히 맥주를 회생시킨 히구치 히로타로가 자주 인용한 대목입니다. 그는 평범한 샐러리맨으로 출발해 ‘기적의 전문경영인’으로 추앙받은 인물입니다.  모두가 “일손은 충분한데 인재가 없다”고 말하지요. 하지만 막상 어떻게 해야 하는가 하는 문제 앞에서는 망설입니다. 일반 직원들도 “나는 열심히 하는데 제대로 인정해주지

    2024.02.29 17:24
  • 160년 전 우주선 상상한 쥘 베른 … 비결은 'SF 노트' [고두현의 문화살롱]

    ‘과학소설(SF)의 아버지’로 불리는 프랑스 작가 쥘 베른(1828~1905). 그는 약 160년 전 지구에서 달나라까지 가는 방법을 아주 상세하게 묘사했다. 그의 예측은 놀라울 정도로 들어맞았다. 달까지의 표준 비행시간과 우주선 무게, 로켓 발사 시기와 장소, 역추진 로켓과 우주선의 해상 귀환 등 놀라운 게 한두 개가 아니다.그가 우주 탐험 소설 <지구에서 달까지>(1865)와 <달나라 탐험>(1869)을 발표한 것은 아폴로 11호의 달 착륙(1969)보다 100년 앞선 시기였다. 소설 속에서 달나라로 향하는 엄청난 크기의 대포가 발사된 장소는 미국 남부 플로리다. 지구의 자전 속도를 최대한 이용하기 위해 미국에서 위도가 가장 낮은 지역 중 한 곳을 택한 것이다. 지금의 케네디우주센터가 있는 지역이다. 역추진 로켓, 바다 귀환도 닮아대포가 달에 도착하기까지 걸린 시간도 아폴로 11호와 같이 나흘이다. 우주선에 탄 사람이 세 명이고 역추진을 통해 지구로 돌아온다는 점, 착륙의 충격을 줄이기 위해 스플래시다운(우주선의 해상 착수)이라는 방법을 생각해낸 것도 똑같다. 태평양에 착수한 지점이 소설 속의 위치와 겨우 4㎞밖에 떨어지지 않은 곳이었으니 더욱 놀랄 일이다. 우주여행이 생체에 미치는 영향을 조사하기 위해 동물을 이용한다는 발상까지 닮았다.그는 이렇게 기막힌 상상력을 어떻게 키운 것일까. 성장 과정에서부터 특별한 감각을 체화했다. 프랑스 서부 최대 무역항인 낭트에서 태어난 그는 어릴 때부터 대서양과 그 너머의 땅을 동경했다. 틈만 나면 <로빈슨 크루소> 같은 해양 모험소설을 찾아 읽었다. 기숙학교 여교사가 하는 이야기도 허투루 듣지 않았다. 그 여교사는 30년 전 바다

    2024.02.27 18:18
  • 명검의 날은 단련 없이 서지 않는다 [고두현의 아침 시편]

      희망가                 문병란 얼음장 밑에서도 고기는 헤엄을 치고 눈보라 속에서도 매화는 꽃망울을 튼다. 절망 속에서도 삶의 끈기는 희망을 찾고 사막의 고통 속에서도 인간은 오아시스의 그늘을 찾는다. 눈 덮인 겨울의 밭고랑에서도 보리는 뿌리를 뻗고 마늘은 빙점에서도 그 매운 맛 향기를 지닌다. 절망은 희망의 어머니 고통은 행복의 스승 시련 없이 성취는 오지 않고 단련 없이 명검은 날이 서지 않는다. 꿈꾸는 자여, 어둠 속에서 멀리 반짝이는 별빛을 따라 긴 고행길 멈추지 말라 인생항로 파도는 높고 폭풍우 몰아쳐 배는 흔들려도 한 고비 지나면 구름 뒤 태양은 다시 뜨고 고요한 뱃길 순항의 내일이 꼭 찾아온다. --------------------------------- 여기 드라마틱한 삶이 있습니다. 노숙자에서 억만장자가 된 남자 이야기입니다. 그는 1954년 미국 시카고 인근의 밀워키에서 태어났습니다. 4남매 중 막내였는데, 날마다 의붓아버지의 폭력에 시달렸습니다. 여덟 살 때부터는 남의 집에 입양돼 여러 곳을 전전해야 했지요. 그나마 용기를 북돋워 주는 어머니와 삼촌들 덕분에 학업은 계속할 수 있었습니다. 우수한 성적으로 고등학교를 졸업했지만, 형편이 어려워 대학 진학은 포기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해군에 입대했다가 제대한 뒤 샌프란시스코에서 가정을 꾸린 그는 의료기 세일즈맨으로 겨우 생계를 유지했지요. 하지만 의료기 영업은 부진했고, 빈곤 속에서 아내와의 관계도 삐거덕거렸습니다.  극심한 생활고에 시달리던 그는 우연히 만난 주식

    2024.02.22 17:18
  • “바람과 파도는 언제나 유능한 뱃사람 편” [고두현의 인생명언]

    “바람과 파도는 언제나 유능한 뱃사람의 편이다.”<로마제국 쇠망사>를 쓴 영국 역사가 에드워드 기번의 명언이다. “거친 파도가 유능한 뱃사람을 만든다”는 영국 속담과도 닮았다.기번은 독신 생활을 하며 26년간 로마사를 연구한 끝에 필생의 대작을 완성했다. 그가 찾은 로마제국의 강성 비결은 거센 바다의 폭풍우 같은 역경을 이겨낸 응전과 도전의 힘이었다. 로마가 멸망한 것은 이 같은 역경을 극복하지 못했기 때문이다.돛에 의지했던 범선(帆船) 시절, 뱃사람들이 가장 무서워한 건 무풍지대였다. 맞바람이라도 불면 역풍을 활용해 나아갈 수 있지만 바람이 안 불면 오도 가도 못했다. 바람 한 점 없는 적도 부근이나 북위·남위 25~35도는 ‘죽음의 바다’였다. 이곳에 갇히면 소설과 영화에 나오듯 선원들이 다 죽고 배는 유령선이 된다.동력으로 항해하는 기선(汽船) 시대에는 무풍 대신 폭풍과 파도가 가장 큰 적이 됐다. 세계기상기구(WMO)에 기록된 파도의 최고 높이는 29.1m로, 아파트 10층 규모였다. 영국 해양조사선이 2000년 2월 8일 밤 스코틀랜드 서쪽 250㎞ 해상에서 관측했다.파도는 해수면의 강한 바람에서 생긴다. 그래서 풍파(風波)라고 한다. 파도의 가장 높은 곳은 ‘마루’, 가장 낮은 곳은 ‘골’, 마루와 골 사이의 수직 높이는 ‘파고(波高)’다. ‘파장(波長)’은 앞 파도 마루와 뒤 파도 마루 사이, 골과 골 사이의 수평 거리를 뜻한다. 뱃사람들은 파고와 파장을 눈으로 재면서 파도가 얼마나 세게 밀려올지 판단한다.여기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면 배가 부서지고 목숨을 잃는다. 서양인들이 “전쟁에 나가게 되면 한 번 기도하고,

    2024.02.19 17:09
  • 오랑캐 땅에 간 그녀…봄이 와도 봄 같지 않네 [고두현의 아침 시편]

    소군원(昭君怨)                              동방규오랑캐 땅이라 화초가 없어봄이 와도 봄 같지가 않구나저절로 옷 허리띠 느슨해진 건몸매를 가꾸기 위함이 아니라네.* 동방규(東方) : 중국 당나라 때 시인.‘소군원(昭君怨)’은 당나라 시인 동방규(東方)가 쓴 시입니다. 그의 생몰 연대는 정확하지 않고, 측천무후 때 좌사(左史, 사관)를 지낸 사실만 전해옵니다. 그러나 이 시 덕분에 후세에 길이 남는 시인이 됐지요.시의 주인공은 기원전 30년 무렵 한(漢) 원제의 궁녀였던 왕소군(王昭君)입니다. 양갓집 딸로 꽃다운 나이에 궁녀가 된 그녀는 절세미인이었죠. 훗날 서시(西施), 양귀비(楊貴妃), 초선(貂蟬)과 함께 중국 4대 미인으로 불렸습니다.절세미인을 추녀로 그린 화가 때문에원제는 이미 3000여 명의 여인을 거느리고 있었죠. 그래서 궁중 화가에게 새 궁녀들의 초상화를 그리게 해서 그걸 보고 간택했습니다. 궁녀들이 궁중 화가에게 뇌물을 주며 잘 그려달라고 부탁했는데, 뇌물 액수에 따라 미색이 달라졌다고 합니다.그러나 왕소군은 그러지 않았죠. 결과는 뻔했습니다. 그녀의 초상화는 실물보다 못했죠. 얼굴에는 보기 싫은 점까지 찍혀 있었습니다.어느 날 북방 흉노족장이 한나라 여인과 결혼하겠다고 청했습니다. 화친이 필요한 원제는 승낙했죠. 그때 낙점된 궁녀가 왕소군입니다. 그런데 작별 인사하러 온 왕소군을 본 원제는 깜짝 놀랐습니다. 그림과 달리 천하절색이었기 때문이죠. ‘초상화 비리’를 알게 된 원제는 그 자리에서 화가의 목을 날려버렸지만 흉노족장과의 약속은 지켜야 했습니다.‘낙안(落雁)’과 ‘

    2024.02.19 10:00
  • 자벌레가 몸을 구부리는 까닭은 [고두현의 아침 시편]

    자벌레야이색자벌레야 너는 왜 구부리느냐.심하게 구부리면 네 뼈가 꺾어지고자벌레야 너는 왜 펴느냐.심하게 펴면 네 몸이 욕을 보느니잠시 폈다 또 잠시 구부려일생 동안 거스름이 없구나.이런 까닭에 옛사람 학문은먼저 사람에게 격물을 가르쳤는데어찌하여 지금 사람들은한결같이 요로만 추구하는가.학문 강습은 쉬지 않는 게 귀하고공을 펼침에는 법칙이 있다네.더구나 조관(朝官)의 반열에서야자용(自用)하면 남이 꼭 진노하리라.이것으로 인해 밝은 덕을 얻으면상제가 밝게 굽어 임할 것이니기거 동작에 두 마음이 없어지면끝내 자벌레 시를 지을 것도 없으리.-----------------------------고려 시대 목은(牧隱) 이색(李穡, 1328~1396)이 지은 시입니다. 시인은 미세하기 짝이 없는 자벌레의 움직임을 자세하게 관찰하면서 그 속에 담긴 삶의 깊은 이치를 말하고 있습니다. 또 자기 잇속을 챙기려고 굽신거리는 세인들의 행태를 비판하고, 자신은 그렇게 살지 않겠노라고 다짐하기도 하지요.이 시에 나오는 ‘자용(自用)’은 제멋대로 하는 걸 의미합니다. 공자가 “어리석으면서도 자용(自用, 남의 말을 듣지 않고 자기 생각대로만 하는 것)하기를 좋아하고, 지위가 낮으면서도 자전(自專, 자기 마음대로 결정하여 처리하는 것)하기를 좋아하고, 지금 세상에 나서 옛 도를 행하려 한다면 이러한 사람은 재앙이 그 몸에 미칠 것”이라고 한 데서 온 말이지요.자벌레는 길이를 재는 자처럼 생겼습니다. 한자로는 자 척(尺), 자벌레 확(蠖)을 써서 척확(尺蠖)이라고 하지요. 자나방과의 애벌레를 가리키는데, 나뭇가지나 큰 잎 위를 자

    2024.02.15 17:10
  • ‘나이를 먹는다’와 ‘나이가 든다’는 것 [고두현의 아침 시편]

    어머니와 설날김종해우리의 설날은 어머니가 빚어주셨다밤새도록 자지 않고눈 오는 소리를 흰 떡으로 빚으시는어머니 곁에서나는 애기까치가 되어 날아올랐다빨간 화롯불 가에서내 꿈은 달아오르고밖에는 그해의 가장 아름다운 눈이 내렸다매화꽃이 눈 속에서 날리는어머니의 나라어머니가 이고 오신 하늘 한 자락에누이는 동백꽃 수를 놓았다섣달 그믐날 어머니의 도마 위에산은 내려와서 산나물로 엎드리고바다는 올라와서 비늘을 털었다어머니가 밤새 빚어놓은새해 아침 하늘 위에내가 날린 방패연이 날아오르고어머니는 햇살로내 연실을 끌어올려 주셨다---------------------------설날이 하루 앞으로 다가왔습니다. 김종해 시인은 밤새 자지 않고 식구들을 위해 떡을 빚으며 도마를 두드리는 ‘어머니의 나라’를 통해 설날 풍경을 되살려냈군요. 그 곁에서 애기까치가 되어 날아오르는 아이의 꿈, 새해 아침 하늘 위로 날린 방패연, 그 연실을 팽팽하게 끌어올려 주는 ‘어머니의 햇살’이 정겹고 아름답습니다.오늘은 ‘나이를 먹는다’는 것과 ‘나이가 든다’는 것의 의미를 생각해 봅니다. 예부터 나이는 떡국으로 먹는다고 했던가요? “쪼끄만 게… 야, 너 떡국 몇 그릇 먹었어?” “여덟 그릇 먹었다. 왜? 어쩔래!”어릴 적 아이들과 말싸움할 때 흔히 주고받던 소리죠. 저마다 떡국 먹은 햇수로 나이를 따지며 어른들 흉내를 내곤 했습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우리는 왜 나이를 ‘먹는다’고 말할까요? 세상에 ‘나서’ 살아온 햇수를 계산하는 방법에 그 답이 있습니다.‘나이’의 단위 ‘살’은 ‘설’에서 유래했다고

    2024.02.08 16:42
  • "내가 살아난다면 1초도 허비하지 않을 텐데!" [고두현의 문화살롱]

    1849년 겨울, 칼바람이 몰아치는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세묘놉스키 연병장. 수천 군중이 지켜보는 가운데 반체제 지식인들이 끌려 나왔다. 한 장교가 “죄인들을 반역죄로 다스려 모두 총살한다”고 선고했다. 무장한 병사들이 머리에 두건을 씌웠다. 곧이어 사격 대열을 갖췄다. 일제히 총알을 장전하는 소리, 총구를 겨누고 방아쇠에 손가락을 갖다 대는 병사들….일촉즉발의 순간, 기적이 일어났다. “멈추시오!” 황제의 시종무관이 특사령을 갖고 황급히 달려왔다. 숨을 죽였던 사형수들의 입에서 짧은 탄성이 터졌다. 이날 두 번째 줄에 서 있던 사형수 중 한 명은 28세 청년 작가 도스토옙스키(1821~1881). 죽음 직전에 회생한 그는 강제 노동형으로 감형돼 시베리아 수용소에서 4년간 유형 생활을 한다. 인생이 장엄하고 비옥하려면그는 당시 죽다 살아난 체험과 심리 변화를 장편소설 <백치>에 이렇게 묘사했다. “만일 내가 죽지 않는다면 어떨까, 만일 생명을 되찾게 된다면 어떨까, 그것은 얼마나 무한한 것이 될까, 그리고 그 무한한 시간이 완전히 내 것이 된다면, 그렇게 된다면 나는 1분의 1초를 100년으로 연장시켜 어느 하나도 잃어버리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그 1분의 1초를 정확하게 계산해서 한순간도 헛되이 낭비하지 않을 것이다.”삶과 죽음의 경계에 선 그의 내면이 너무도 생생하다. 그는 <죄와 벌>에서도 죽음 직전의 심정을 이렇게 표현했다. “사형 선고를 받은 어떤 사람이 죽기 한 시간 전에 이런 말을 했다던가, 생각했다던가. (…) 평생, 1천 년 동안, 아니 영원히 1아르신(0.7㎡)밖에 안 되는 공간에 서 있어야 한다고 할지라도, 그래도 지금 죽

    2024.02.06 18:01
  • 청년 릴케가 루 살로메에게 바친 사랑시 [고두현의 아침 시편]

    내 눈의 빛을 꺼주소서    라이너 마리아 릴케                   내 눈의 빛을 꺼주소서, 그래도 나는 당신을 볼 수 있습니다,내 귀를 막아주소서, 그래도 나는 당신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습니다,발이 없어도 당신에게 갈 수 있고,입이 없어도 당신의 이름을 부를 수 있습니다.내 팔을 부러뜨려주소서, 나는 손으로 하듯내 가슴으로 당신을 끌어안을 것입니다,내 심장을 막아주소서, 그러면 나의 뇌가 고동칠 것입니다,내 뇌에 불을 지르면, 나는 당신을피에 실어 나르겠습니다.* 라이너 마리아 릴케(1875~1926): 프라하 출신의 오스트리아 시인.시인 릴케가 22세 때인 1897년 5월 12일. 독일 뮌헨의 한 소설가 집에서 다과회가 열렸습니다. 그 자리에서 릴케는 14세 연상의 여인 루 살로메(1861~1937)에게 흠뻑 빠졌습니다. 그녀는 당대 최고 지식인이자 예술가들을 매료시킨 ‘세기의 여인’이었지요. 철학자 니체와 정신분석학자 프로이트도 그녀에게 반했습니다.무명 시인이던 릴케는 제대로 말도 붙여보지 못했습니다. 마음속 깊이 솟아오르는 격정을 애써 누르기만 했죠. 집으로 돌아온 그는 망설이다가 그녀에게 편지를 썼습니다. “당신과 내가 보낸 어제의 그 황혼의 시간은 처음이 아니었습니다”로 시작하는 달콤한 편지였지요.모성 결핍 시인과 미모·지성 겸비한 뮤즈처음이 아니라는 말은 무슨 뜻일까요. 그는 1년 전 그녀의 에세이집 <유대인 예수>를 읽고 감명 받아 익명으로 몇 편의 시를 보낸 적이 있습니다. 책을 통해 이미 깊은 교감이 있었다는 얘기죠. 그는 과감하게 “그 황혼의 시간에 나는 당신과 단둘이서만 있었습니다”라는 밀

    2024.02.05 10:00
  • 그가 끝까지 말하지 않은 비밀 [고두현의 아침 시편]

       우리 동네 느티나무들                     신경림산비알에 돌밭에 저절로 나서저희들끼리 자라면서재재발거리고 떠들어쌓고밀고 당기고 간지럼질도 시키고시새우고 토라지고 다투고시든 잎 생기면 서로 떼어 주고아픈 곳은 만져도 주고끌어안기도 하고 기대기도 하고이렇게 저희들끼리 자라서는늙으면 동무나무 썩은 가질랑슬쩍 잘라 주기도 하고세월에 곪고 터진 상처는긴 혀로 핥아 주기도 하다가열매보다 아름다운 이야기들을머리와 어깨와 다리에가지와 줄기에주렁주렁 달았다가는별 많은 밤을 골라 그것들을하나하나 떼어 온 고을에 뿌리는우리 동네 늙은 느티나무들------------------------느티나무에겐 비밀이 많습니다. 겨울눈을 감추고 봄을 기다리는 모습부터 뭔가 내밀한 사연을 안고 있는 것 같습니다. 추위가 꺾이고 바람결이 부드러워지면 연한 햇가지를 슬며시 내밀지요. 봄이 제대로 왔는지 조심스레 살피는 햇가지들의 움직임은 느리고 은밀합니다.꽃을 피울 때도 그렇습니다. 4~5월이 되면 가지의 잎겨드랑이에서 연녹색 꽃을 살살 밀어내지요. 놀랍게도 수꽃과 암꽃을 한 몸에 피웁니다. 수꽃은 햇가지 아래쪽에 여러 송이로 돋는데, 자세히 보면 수술이 4~6개 있습니다. 암꽃은 햇가지 끝에 한 송이만 피지요. 암술 한 개에 퇴화된 헛수술을 거느리기도 합니다.느티나무 꽃은 여느 나무와 달리 녹색입니다. 꽃잎이 없어 눈에 잘 띄지 않기 때문에 아는 사람이 드물지요. 벌과 나비를 유인하는 향기도 없습니다. 자세히 관찰하지 않으면 보이지 않습니다. 세상에 꽃을 감추는 나무도 있다니! 믿기 어려운 일이지요.하지만 이 볼품없는 꽃은 느

    2024.02.01 11:21
  • 거기서 내가 사랑에 빠질 줄은… [고두현의 아침 시편]

    내가 라이오네스로 떠났을 때토머스 하디백 마일 밖 라이오네스로내가 떠났을 때나뭇가지 위에 서리는 내리고별빛이 외로운 나를 비췄지.백 마일 밖 라이오네스로내가 떠났을 때.라이오네스에 내가 머물 때거기서 무슨 일이 생길지어떤 예언자도 감히 말 못 하고가장 현명한 마법사도 짐작 못 했지.라이오네스에 내가 머물 때거기서 무슨 일이 생길지.내가 라이오네스에서 돌아왔을 때눈에 마법을 띠고 돌아왔을 때모두 말 없는 예감으로 눈여겨보았지.나의 드물고 깊이 모를 광채를내가 라이오네스에서 돌아왔을 때눈에 마법을 띠고 돌아왔을 때!* 토머스 하디(1840~1928): 소설 <테스>로 유명한 영국 작가이자 뛰어난 시인, 극작가.토머스 하디가 남긴 연애시입니다. 그는 영국 남부에 있는 도체스터에서 태어났습니다. 철도도 들어오지 않는 외진 곳이었지요. 아버지는 석공이었고, 어머니는 독서를 좋아하는 사람이었습니다.어린 시절의 하디는 내성적이고 몸이 약했습니다. 그가 학교에서 받은 교육은 약 8년뿐이었죠. 16세 때 건축사무소 수습공으로 들어간 뒤, 건축 업무와 소설·시 쓰기를 병행했습니다.건축기사와 귀족 딸의 은밀한 만남그의 시 중 가장 달콤한 것으로 꼽히는 ‘내가 라이오네스로 떠났을 때’는 서른 살 때의 사랑을 그린 것입니다. 그때 그에겐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요?그해 봄 하디는 교회 건물을 수리하기 위해 콘월주에 있는 세인트줄리엇으로 파견됐습니다. 그곳 목사관에 에마 기퍼드라는 처녀가 있었죠. 성격이 활발하고 문학적 감수성이 풍부한 아가씨였습니다.그녀는 하디의 창작에 아주 특별한 관심을 보였고, 둘은 곧 사랑에 빠졌지요. 그녀는 귀족 변호사

    2024.01.29 10:00
  • 새우잠을 자더라도 고래꿈을 꾸라 [고두현의 아침 시편]

       고래의 꿈                       송찬호나는 늘 고래의 꿈을 꾼다언젠가 고래를 만나면 그에게 줄물을 내뿜는 작은 화분 하나도 키우고 있다깊은 밤 나는 심해의 고래방송국에 주파수를 맞추고그들이 동료를 부르거나 먹이를 찾을 때 노래하는길고 아름다운 허밍에 귀 기울이곤 한다맑은 날이면 아득히 망원경 코끝까지 걸어가수평선 너머 고래의 항로를 지켜보기도 한다누군가는 이런 말을 한다 고래는 사라져버렸어그런 커다란 꿈은 이미 존재하지도 않아하지만 나는 바다의 목로에 앉아 여전히 고래의 이야길 한다해마들이 진주의 계곡을 발견했대농게 가족이 새 뻘집으로 이사를 한다더군봐, 화분에서 분수가 벌써 이만큼 자랐는걸……내게는 아직 많은 날들이 남아 있다 내일은 5마력의 동력을배에 더 얹어야겠다 깨진 파도의 유리창을 갈아 끼워야겠다저 아래 물밑을 쏜살같이 흐르는 어뢰의 아이들 손을 잡고 해협을 달려봐야겠다누구나 그러하듯 내게도 오랜 꿈이 있다하얗게 물을 뿜어 올리는 화분 하나 등에 얹고어린 고래로 돌아오는 꿈---------------------새우잠을 자더라도 고래꿈을 꾸라고 했죠? 시인은 작은 화분 하나를 키우며 심해의 고래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고래는 대양의 커다란 꿈, 즉 희망을 가리키지요. 사람들이 고래는 사라져 버렸다고 말하지만, 시인은 여전히 희망의 이야기에 주파수를 맞춥니다. 다른 사람들이 들을 수 없는 고래의 이야기를 그가 들을 수 있는 것은 이 때문입니다. 그는 밤마다 자신의 꿈이 이뤄지길 소망하며 길고 아름다운 고래의 허밍에 귀를 기울이지요. 그러면서 희망을 위해 5마력의 동력을

    2024.01.25 17:33
  • '불행한 철학자' 쇼펜하우어의 행복론 [고두현의 문화살롱]

    독일 철학자 쇼펜하우어는 오랫동안 아웃사이더였다. 63세 때까지 ‘무명’이었다. 학계에서 따돌림당했고 대중적인 인기도 없었다. 성격이 모난 데다 얼굴이 못생겼으며, 여자를 미워해 죽을 때까지 독신으로 지냈다. 32세에 베를린대 강사가 됐지만, 당대 최고 스타 헤겔에게 맞서 강좌를 개설했다가 수강생이 한 명도 없는 참패를 당했다.이후 교수직을 포기하고 고독과 좌절, 공포와 망상에 사로잡혀 지냈다. 죽음을 두려워한 나머지 이발사에게 면도하지 못하게 하는 등 엽기 행각으로 비웃음까지 샀다. 그는 이 세상을 비참하고 음침한 곳이라고 여겼다. 유행에 뒤떨어진 옷차림으로 극도의 금욕 생활을 고집하기도 했다. 이런 배경에서 그의 비관주의와 염세주의가 싹텄다. 고슴도치처럼 적절한 간격을30세에 철학서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를 펴냈으나 아무런 주목도 받지 못했다. 그는 당시의 ‘합리적 이성론’에 반기를 들면서 이 세계가 비합리적이고 맹목적인 ‘의지’(욕망)에 의해 움직일 뿐이라고 주장했다. 욕망은 채우고 채워도 충족될 수 없기에 인생이 고통스럽다며 이를 넘어서는 방법은 충동과 욕구를 거스르는 철저한 금욕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그의 주장에 귀를 기울인 사람은 없었다.그의 인생에 반전이 일어난 것은 노년기였다. 63세 때 펴낸 얇은 책 <소품과 부록>이 뜻밖의 호응을 얻었다. 이 책은 딱딱한 철학서가 아니라 청춘을 위한 에세이였다. 명쾌한 인생 격언을 문학적 재치와 유머로 풀어낸 덕분에 그는 탁월한 글쓰기와 최고급 산문의 주인공으로 떠올랐다. 70세 생일에는 유럽 각국의 축사가 쇄도했다. 훗날 니체와 아인슈타인, 바그너

    2024.01.23 18:02
  • 여관방 벽지에 쓴 인생시 '죽편' [고두현의 아침 시편]

    죽편(竹篇)1 - 여행서정춘여기서부터, -멀다칸칸마다 밤이 깊은푸른 기차를 타고대꽃이 피는 마을까지백 년이 걸린다.* 서정춘 : 1941년 전남 순천 출생. 1968년 신아일보 신춘문예로 등단. 시집 <죽편>, <봄, 파르티잔>, <귀>, <물방울은 즐겁다> 등 출간. 박용래문학상, 순천문학상, 최계락문학상, 유심작품상 등 수상.인생을 대나무와 기차에 비유한 명시입니다. ‘죽편’은 가객 장사익의 노래로도 유명하지요. 서정춘 시인이 1980년대 후반, 허름한 여관방에서 누군가를 종일 기다리다 번개같이 떠오른 시구를 벽지에 휘갈겨 썼다고 합니다.“그날 혼자 여관방에서 ‘인생이란 대체 뭐길래 내가 여기까지 왔나, 왜 왔나, 여기서 얼마나 더 기다려야 하나… 온갖 상념으로 7시간을 뒤척였죠. 그런데 갑자기 ‘여기서부터, -멀다’라는 시구가 번개같이 떠오르는 거예요. 종이가 없어서 그걸 여관 벽지에다 썼지요….”이 시의 ‘칸칸마다 밤이 깊은/ 푸른 기차’는 끝없는 인생의 여정을 닮았습니다. 시인은 ‘여기서부터,’라고 쉼표를 찍어 반박자 쉰 다음, 하이픈을 그어 또 호흡을 조절하면서 ‘대꽃이 피는 마을까지’가 얼마나 먼지를 절묘하게 표현했지요. 5행 37자 압축미의 극치입니다.4년 동안 80번 이상 고치고 또 고친 시원래 초고는 25행이 넘었다고 합니다. 여관방도 등장하고 몇 시간이나 사람을 기다리던 얘기도 들어 있고, 이래저래 군더더기가 많았다는군요. 그는 이 시를 4년 동안 80번 이상 고치고 또 고쳤습니다. 그러면서 고향 순천에 많던 대나무와 대나무 막대를 가랑이에 끼고 기차놀이하던 기억, 거기에 대나무의 수직 이미지와

    2024.01.22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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