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한국경제

  • 주용석 기자
    주용석 기자 논설위원실
  • 구독
  • 경제부장입니다.
    경제부처를 중심으로 정책과 경제 흐름을 알기 쉽게 전합니다.

  • [천자칼럼] 쿠팡의 구독료 배짱 인상

    쿠팡의 간판 사업은 로켓배송이다. 소비자가 밤 12시 전 물건을 주문하면 다음날까지 받을 수 있다. 배송비는 비회원의 경우 건당 3000원이지만 월 4990원을 내는 유료회원(와우회원)은 무료다. 한 달에 두세 번만 로켓배송을 이용해도 남는 장사다. 여기에 유료 회원은 반품비 공짜, 쿠팡이츠 이용 시 음식 배달료 무료,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인 쿠팡플레이 무제한 시청 등의 혜택을 누릴 수 있다. 쿠팡이 국내 온라인 시장 최강자로 등극한 건 이런 서비스를 내세워 소비자를 묶어두는 록인(lock-in) 효과 덕분이었다.문제는 소비자가 언제까지나 저렴한 서비스를 누리긴 어렵다는 점이다. 처음에 낮은 가격을 미끼로 고객을 늘린 뒤 시장 지배력이 커지면 이를 무기로 가격을 올리는 게 플랫폼 업체의 일반적인 전략이다. 세계 최대 전자상거래 업체 아마존도 그랬다.쿠팡이 와우회원 구독료를 올린 건 그래서 어느 정도 예상 가능한 수순이었다. 그럼에도 쿠팡이 한 번에 구독료를 월 4990원에서 7890원으로 58%나 올린 건 논란이 되고 있다. 쿠팡은 여전히 고객이 누리는 이득이 크다는 입장이다. 와우 회원은 비회원에 비해 연평균 97만원 상당의 비용 절감 혜택을 누리고 있으며 구독료를 감안하면 연간 87만원가량 이익이라는 것이다.하지만 국내 온라인 쇼핑 시장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앞세워 횡포를 부리고 있다는 곱지 않은 시각도 있다. 쿠팡은 2021년에도 와우회원 구독료를 2900원에서 4990원으로 올렸지만 가입자 수는 900만 명에서 1400만 명으로 오히려 더 늘었다. 쿠팡이 이번에도 고객 이탈이 없을 것이라 믿고 가격을 대폭 올렸을 것이다.쿠팡의 가격 인상은 네이버쇼핑 등 다른 플랫폼 업체로까지 파급될 수

    2024.04.12 17:53
  • [천자칼럼] 소고기가 뭐길래

    소고기는 삼국시대부터 함부로 먹을 수 있는 음식이 아니었다. 농경사회에서 소는 귀중한 생산수단이었다. 조선시대엔 관아의 허락 없이 소를 무단 도축·판매하는 게 불법이었다. 우금령(牛禁令)만 22차례 내려졌다. 조선 명종 때 박세번은 무인들과 소를 잡았다가 “반역의 흔적이 있다”는 이유로 처벌받았다. 조선 전기 무인 남이는 몸보신을 위해 소고기를 먹다가 국상 중이란 이유로 체포됐다. 우금령이 폐지된 건 1895년 갑오개혁 이후였다.하지만 조선 후기 박제가가 쓴 <북학의>에 따르면 조선팔도에서 날마다 소 500마리가 도살되고 성균관과 한양 5부 안의 24개 푸줏간, 300여 고을의 관아에서 소고기가 판매됐다고 한다. 성균관에선 공부에 지친 유생들의 보양을 위해 소 도축이 허용됐는데, 여기서 나온 소고기가 시중에 팔리기도 했다. 소고기가 성균관을 먹여 살리는 ‘돈줄’ 역할을 한 것이다.저절로 죽은 소는 허가를 얻어 매매할 수 있었다. 그러다 보니 멀쩡한 소를 잡아놓고 ‘죽은 소’로 눈속임해 파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조선 후기 문인 유만공이 펴낸 <세시풍요>에는 ‘명절이 다가오니 도처에 다리 부러진 소가 많다’는 시구가 나온다. 조선시대 소고기 열풍은 요즘으로 치면 치맥파티 같았다는 말도 있다.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얼마 전 인천 계양에서 유세를 마친 뒤 SNS에 “계양 밤마실 후 삼겹살. 눈이 사르르 감기는 맛”이라는 글과 저녁 먹는 사진을 올려 구설에 올랐다. 딱 봐도 소고기를 먹은 듯한데 ‘삼겹살’을 먹었다고 거짓말을 한 것 아니냐는 논란이다. 당시 이 대표 공식 유튜브 채널을 보면 이 대표가 “소고기

    2024.04.08 18:08
  • [주용석 칼럼] 대만해협은 한국의 생명선

    대만해협은 대만과 중국 본토를 가르는 바다다. 길이 370㎞, 폭 130~410㎞의 좁은 바다지만 매년 전 세계 컨테이너선의 절반가량이 지나는 ‘세계에서 가장 바쁜 해상로’다. 미·중 충돌로 이곳이 막히면 반도체를 비롯해 글로벌 공급망에 일대 혼란이 불가피하다.당연히 남의 일이 아니다. 한국 전체 물동량의 40% 이상이 대만해협을 통과한다. 중동산 원유를 비롯해 각종 원자재와 수입품이 인도양과 믈라카 해협을 거친 뒤 대만해협을 지나 한국으로 온다. 이 코스가 최단 거리다. 한국엔 생명선이나 다름없다. 2022년 해군 추정 결과, 대만해협 유사시 한국은 하루 4452억원의 피해를 본다. 블룸버그통신은 대만 전쟁이 터지면 한국 국내총생산(GDP)의 23%가 날아갈 것으로 추산했다. 대만(40%) 다음으로 피해가 컸다. 일본(13.5%)은 물론 전쟁 당사국인 중국(16.7%)보다 한국이 더 타격을 받는다. 중국이 대만해협을 침공하지 않고 봉쇄하기만 해도 후폭풍이 엄청날 수밖에 없다.군사적 여파는 더 심각하다. 미국 국제전략문제연구소(CSIS)는 지난해 중국의 대만 침공을 가정한 ‘다음 전쟁의 첫 전투’라는 워게임 보고서에서 주한미군 4개 전투비행대대 중 2개 대대가 차출될 수 있다고 봤다. 오산·군산 공군기지와 제주 해군기지 활용 가능성도 거론했다. 대만 전쟁이 터지면 불똥이 한국으로 튈 수 있다는 것이다.중국이 주한미군 투입을 막기 위해 한국 내 미군기지를 공격하거나 북한을 움직여 도발을 꾀하는 시나리오도 배제할 수 없다. 우크라이나에서 전쟁이 터지자 러시아가 북한 무기를 수입하고 한국도 미국의 요구로 우크라이나를 우회 지원하는 게 현실이다. 대만해협은 우크라이나보다

    2024.03.26 17:51
  • [천자칼럼] AI 윙맨

    지난해 영화 ‘탑건 매버릭’이 흥행하자 유럽 방산업체 에어버스디펜스는 ‘모든 매버릭에게는 아이스맨이 필요하다’는 광고를 냈다. 자사가 개발 중인 차세대 전투기가 무인기와 공동 작전을 펼 수 있다고 홍보한 것이다.아이스맨은 1987년 개봉한 오리지널 ‘탑건’에서 주인공 매버릭의 윙맨(wingman)이었다. 전투기는 보통 4대가 한 팀이 돼 작전을 편다. 윙맨은 편대장(탑건)을 호위하며 정찰, 유인, 교란 등 위험 임무를 맡는다. 탑건의 오른팔로 없어선 안 될 존재다.미래 전장에 유인기와 인공지능(AI) 기반 무인 전투기가 팀을 이뤄 임무를 수행하는 ‘멈티(Manned-UManned Teaming)’가 대세가 될 전망이다. ‘AI 윙맨’이 전장의 게임체인저가 된다는 것이다.미 공군은 AI 기반 무인 전투기 개발을 서두르고 있다. 올여름까지 관련 방산업체 2곳을 선정하고 향후 5년간 총 600억달러의 예산을 쏟아부을 예정이라고 한다. 여기엔 중국의 공군력 팽창에 대비하기 위한 측면도 있다.중국은 2022년 에어쇼에서 유인 전투기와 함께 작전하는 무인 전투기 ‘윙맨 드론’ 실물을 공개했다. 중국 측 개발자는 “윙맨 드론은 센서이자, 탄약고이며, 조종사를 위한 지능형 조수”라고 했다. 호주 공군은 2021년 미 보잉사와 함께 무인 전투기 ‘로열 윙맨’ 시험비행에 성공했다. 한국은 2025년 첫 비행, 2027년 유인기와 합동작전을 목표로 무인 편대기를 개발하고 있다.AI 윙맨은 유인기보다 ‘경제적’이다. 미 공군 주력 전투기 F-35는 대당 가격이 1억달러(약 1300억원)에 달하는 반면 AI 무인 전투기는 대당 2000만~3000만달러면 생산할 수 있고 장기적으론 더 낮아질 전망이다.

    2024.03.04 17:56
  • [주용석 칼럼] 국민연금이 '등골 브레이커' 안 되려면

    국책 연구소인 한국개발연구원(KDI)이 국민연금을 신·구연금으로 분리하는 구조개혁을 제안했다. 개혁 이후 낸 보험료는 신연금으로 적립해 나중에 보험료와 운용수익을 돌려주고 개혁 전 구연금은 기존에 약속한 연금을 지급하자는 것이다.현 국민연금은 낸 보험료보다 더 받는 구조다. 보험료율 9%에 소득대체율 40%를 약속한다. 문제는 지속 가능하지 않다는 점이다. 정부 재정계산에 따르면 현 국민연금은 2041년 적자전환하고 2055년 고갈된다. 젊은 세대가 ‘내기만 하고 못 받는 것 아니냐’며 국민연금을 불신하는 이유다. 고갈 이후에도 약속한 연금을 내주려면 미래 세대의 보험료율을 33.4%까지 올려야 한다. 국민연금이 감당하기 어려운 ‘등골 브레이커’가 되는 것이다.이는 현 국민연금이 뒷세대가 앞세대를 부양하는 방식으로 설계됐기 때문이다. 인구가 늘어날 땐 이 방식이 통할 수 있다. 하지만 급속한 저출산·고령화로 젊은 층은 줄고 노인 인구가 빠르게 늘어나는 상황에선 작동하기 어려운 구조다.물론 보험료율과 소득대체율 등을 조정하는 모수개혁을 하면 연금 고갈 시기를 일시적으로 늦출 순 있다. 하지만 근본적인 해법이 되긴 어렵다. 지금 당장 보험료율을 18%로 올려도 2082년이면 기금이 소진된다는 게 재정계산 결과다.그런 점에서 KDI의 구조개혁 방안은 긍정적으로 볼 만하다. 신연금은 기금 고갈 우려가 없다. 낸 보험료에 운용수익만큼만 돌려받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독일 스웨덴 덴마크 싱가포르 등 상당수 국가가 큰 틀에서 이런 방식을 쓰고 있다. KDI는 신연금 아래에서 40% 소득대체율을 달성하려면 보험료율이 15.5%는 돼야 한다고 분석했지만 가입자들

    2024.02.28 17:59
  • [천자칼럼] 우주 PPL

    기원전 1000년께 고대 이집트의 한 직물사는 파피루스를 통해 ‘도망친 노비를 찾아주면 금화를 주겠다’고 알렸다. 현존하는 세계 최고(最古)의 ‘전단 광고’인 셈이다. 1591년 독일에선 세계 첫 신문 광고가 등장했다. 세계 첫 TV 광고는 1941년 7월 미국에서 부로바 시계가 했다. 한국에선 1886년 독일 무역회사 세창양행이 한성주보에 낸 ‘덕상 세창양행 고백(德商世昌洋行告白)’이 근대 광고의 시초다. 당시엔 광고란 말이 쓰이기 전이었고 ‘고백(告白)’이 광고를 뜻했다.시장에서 팔리지 않는 상품은 사장된다. 마케팅 그루 세스 고딘은 “지루한 것은 곧 죽음”이라고 했다. 소비자의 시선을 사로잡기 위해선 차별화한 무엇, 즉 ‘흔한 소떼’가 아니라 ‘보랏빛 소(purple cow)’가 필요하다고 했다.지난 22일 미국 민간기업 인튜이티브머신스의 무인 우주선 오디세우스가 달에 착륙하자 영국 더타임스는 “세계 최초의 달 광고 사례가 만들어졌다”고 보도했다. 오디세우스 표면에 붙은 미국 아웃도어 브랜드 컬럼비아 로고가 이목을 끌면서다.달은 대기가 없어 태양 빛이 닿을 때와 닿지 않을 때의 온도 차가 200도를 훨씬 넘는다고 한다. 이런 극심한 온도 차를 견디기 위해 오디세우스에는 컬럼비아의 의류용 단열소재 ‘옴니히트 인피니티(Omni-Heat Infinity)’가 코팅돼 있다. 이 소재는 1964년 미국 우주항공국(NASA)의 달 탐사 프로그램을 위해 개발됐는데, 컬럼비아에서 겨울철 아웃도어에 적용하면서 대중화했다.민간기업이 주도하는 뉴스페이스 시대가 열리면서 ‘우주 광고’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지난해 달 착륙을 시도했다가 실패한 일본

    2024.02.26 17:47
  • [천자칼럼] 전공의의 자가당착

    가천대 길병원에서 근무하던 소아청소년과 전공의 신모씨가 2019년 2월 당직실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그는 사망 전 한 달간 1주일에 평균 100시간 근무한 것으로 나타났다. 근로복지공단은 과로로 인한 심장병으로 판정했다. ‘전공의 과로사’를 인정한 첫 사례다.전공의는 의대 6년 졸업 후 의사 국가고시에 합격해 의사면허(일반의)를 딴 뒤 전문의가 되기 위해 수련병원에서 일하는 인턴(1년)과 레지던트(3~4년)를 말한다. 총 1만3000여 명으로 약 11만 명인 국내 의사 인력의 10%가 조금 넘는다. 연봉은 평균 7000만원 안팎으로 의사 평균에 훨씬 못 미친다.전공의 생활은 빡빡하기로 정평이 나 있다. 매일 새벽같이 출근해 밤늦게까지 환자를 돌본다. 평일·주말 당직을 서야 해 야근을 밥 먹듯 하고 잠도 제대로 못 잔다. ‘전문의 특별법’은 주당 최대 88시간까지만 근무를 허용하고 36시간 이상 연속 근무(응급상황은 40시간)를 금지하지만 실제로는 지켜지지 않는 경우가 많다.그렇다 보니 대형 병원은 전공의 없이 돌아가지 않는다. 상급종합병원 의사 인력의 30~40%가 전공의다. 의사 파업에서 전공의의 움직임이 결정적 영향력을 갖는 이유다.서울 ‘빅5 병원’을 중심으로 전공의들이 정부의 의대 정원 확대에 반발해 집단행동에 돌입했다. 정부가 그제 주요 수련병원 100곳을 현장 점검한 결과 소속 전공의의 55%인 6415명이 사직서를 냈고 일부는 근무지를 이탈했다. 병원에서 차지하는 자신들의 막대한 비중과 역할을 앞세워 위력시위에 나선 것이다. 젊은 의사들이 환자들의 절박한 상황을 외면하고 번번이 집단행동에 나서는 모습은 ‘히포크라테스 선서’로 대표되는 직업윤리

    2024.02.20 17:58
  • [천자칼럼] 동남아시아의 '세습 민주주의'

    조코 위도도(조코위) 인도네시아 대통령은 민주화의 상징이었다. 군부 엘리트가 주무르던 인도네시아 정계에서 서민 출신으로 2014·2019년 대선에서 연거푸 승리했다. 당시 그의 상대는 ‘철권 통치자’ 수하르토의 사위이자 군 출신인 프라보워 수비안토였다.그런 조코위가 엊그제 대선에선 프라보워를 밀었다. 대신 프라보워는 조코위의 장남, 37세의 기브란 라카부밍 라카 수카르타 시장을 부통령 후보로 발탁했다. 이 과정도 시끄러웠다. 기존 선거법에 따르면 만 40세 이상만 대통령·부통령 선거에 출마할 수 있었다. 그런데 헌법재판소가 지난해 ‘선출직 경력이 있는 자는 나이와 관계없이 출마할 수 있다’며 길을 터줬다. 당시 헌재 소장은 조코위의 매제였다. 조코위는 과거 “한국의 경제 성장과 민주화 동시 달성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며 “인도네시아를 한국처럼 만들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현지에선 조코위가 권력 세습을 위해 군부와 결탁해 민주주의를 후퇴시켰다는 비판이 나온다.인도네시아뿐 아니라 동남아시아에선 세습 정치가 여전하다. 캄보디아에선 38년간 권력을 휘두른 훈센 전 총리의 장남 훈마넷이 지난해 8월 총리에 취임했다. 선거를 치르긴 했지만 결과는 일찌감치 정해져 있었다. 필리핀에선 독재자로 악명을 떨친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전 대통령의 아들과 로드리고 두테르테 전 대통령 딸이 2022년 6월 나란히 대통령과 부통령이 됐다. 태국에선 부패 혐의를 받는 탁신 친나왓 전 총리 가문에서 여동생과 매제까지 3명의 총리가 나왔다. 지난해 총선 때 미국 하버드대 출신 40대가 이끄는 야당 전진당이 돌풍을 일으키며 제1당이 됐지만 군부

    2024.02.15 17:38
  • [천자칼럼] 씁쓸한 러시아 경제 호황

    러시아 경제의 예상 밖 선전이 이목을 끌고 있다. 국제통화기금(IMF)은 러시아 경제가 지난해 3% 성장한 데 이어 올해도 2.6% 성장할 것으로 보고 있다. 서방 제재로 경제가 고꾸라질 것이란 예상과는 정반대 결과다.엘리나 리바코바 피터슨국제경제연구소 객원연구원은 러시아 경제를 “탱크를 만들기 시작한 주유소”에 빗댔다. 전통적 성장 엔진인 석유·가스산업이 버티는 가운데 군수산업이 가세하면서 경제가 질주하고 있다는 것이다.러시아의 올해 국방비는 10조4000억루블로 연방정부 예산(36조6600억루블)의 30%에 달한다. 우크라이나 침공 전인 2021년만 해도 4조루블이 안 됐는데 두 배 넘게 불어났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방비 비중은 2021년 4% 남짓에서 올해 6%로 뛰었다. 경제 성장을 위해 군비 지출을 늘리는 걸 ‘군사 케인스주의(Military Keynesianism)’라고 하는데, 지금 러시아 경제가 그렇다는 분석이 나온다.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지난 2일 군수산업 중심지 툴라를 찾아 “(러시아) 경제가 다른 곳과 달리 성장하고 있으며 구매력 평가 기준으로 유럽 1위, 세계 5위가 됐다”고 의기양양해했다. 푸틴의 자신감이 커지면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길어질 가능성이 커졌다. 미국과 유럽에는 ‘나쁜 뉴스’다. 러시아가 전쟁을 치르면서 북한과 밀착하고 한국과 대립각을 세우는 점도 달갑지 않다.하지만 군비 지출로 경제를 영원히 성장시킬 순 없다. GDP는 특정 기간 소비지출, 투자지출, 정부지출, 순수출의 합이다. 정부가 군비 지출을 늘리면 GDP도 늘어난다. 하지만 한정된 자원이 무기를 만드는 데 투입되면 소비재와 서비스 생산에 쓰일 자원은 줄어든다.

    2024.02.04 17:55
  • [주용석 칼럼] '불황의 청산효과' 누리는 美 경제

    미국의 경제 규모는 한국의 15배가 넘는다. 그런 미국이 지난해 한국(1.4%)보다 높은 2.5% 성장률을 기록했다. 미국 중앙은행(Fed)이 물가를 잡기 위해 기준금리를 연 5.5%까지 올렸는데도 경기 침체는커녕 전년(1.9%)보다 더 성장했다. 국제통화기금(IMF)에 따르면 미국의 성장률은 일본(1.9%), 독일(-0.3%), 영국(0.5%), 프랑스(0.8%), 이탈리아(0.7%) 등 다른 선진국을 압도한다. 항공모함이 구축함보다 빨리 달리는 격이다.인플레이션과의 전쟁도 성과를 내고 있다. 2022년 9%를 넘었던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지난해 12월 3.4%로 내려왔다. 실업률은 3.7%로 완전고용 수준이다. 너무 뜨겁지도 너무 차갑지도 않은 이상적인 경제 상황을 골디락스라고 하는데 지금 미국 경제는 골디락스보다 더 좋다는 말이 나온다.뉴욕증시도 연초부터 사상 최고 수준으로 올라섰다. 애플, 마이크로소프트, 구글, 아마존, 엔비디아, 메타 등 ‘매그니피센트 7’으로 불리는 빅테크들이 강세장을 이끌고 있다.미국 경제가 강한 이유는 뭘까. 혁신적인 경제, 방대한 시장, 세계적인 대학 경쟁력, 우수한 인적자본, 풍부한 천연자원, 꾸준한 이민을 통한 노동력 증가 등 이유는 셀 수 없이 많다.한국에선 거의 주목하지 않지만 중요한 요인이 있다. 바로 고용 유연성이다.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폴 크루그먼 뉴욕시립대 교수가 지난해 뉴욕타임스 칼럼 ‘미국 경제 성공의 비밀’에서 이 대목을 짚었다. 미국은 해고가 쉬운 나라다. 코로나19 때도 유럽 등과 달리 해고를 막지 않았다. 대신 실업급여를 늘렸다. 그 결과 단기적으로 실업률이 치솟았지만 팬데믹을 거치면서 달라진 시장 환경에 맞는 기업 등으로 인력이 쉽게 이동할 수 있었고 이

    2024.01.31 17:54
  • [천자칼럼] 싱가포르

    싱가포르는 말레이반도 끝자락에 걸친 작은 도시 국가다. 영국, 일본의 식민 지배를 거쳐 1965년 말레이시아에서 독립했다. 그때만 해도 ‘곧 없어질 나라’라는 비아냥을 들었다. 서울 크기 정도의 국토 면적에 당시 인구는 530만 명에 불과하고 변변한 산업 기반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 나라가 지금은 세계가 부러워하는 부자 나라가 됐다. 국제통화기금(IMF)이 추정한 지난해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8만4500달러로 세계 5위다. 스위스 국제경영개발대학원(IMD)이 평가한 국가경쟁력은 세계 4위다.싱가포르의 성공은 생존을 위한 끝없는 혁신과 노력의 산물이다. 인도양과 태평양을 잇는 요충지란 지리적 이점을 살려 물류 허브 전략을 펴고, 카지노를 허용해 MICE(기업회의·포상관광·컨벤션·전시회) 산업을 키우고, 파격적인 인센티브로 외국 기업을 유치한 게 그런 사례다.통치 체제가 ‘독재적’이란 점은 싱가포르 비판 때 나오는 단골 메뉴다. 싱가포르는 초대 리콴유 총리와 후계자인 고촉통 총리를 거쳐 지금은 리콴유의 아들 리셴룽 총리가 20년째 집권 중이다. 21세기에도 태형(곤장)이 버젓이 있는 나라다.하지만 싱가포르는 세계에서 가장 기업하기 좋은 나라 중 하나다. 영어가 공용어고 가정부나 베이비시터를 구하기 쉬운 데다 싱가포르국립대(NUS) 등 세계 수준의 대학을 보유해 전 세계 최고급 인재가 몰린다. 세금 부담도 낮다. 상속세, 증여세, 양도소득세가 없고 법인세 최고세율은 17%(한국은 24%), 소득세 최고세율은 22%(한국은 45%)에 불과하다. 한국의 기업가, 자산가들이 낮은 세 부담과 편리한 거주 여건 때문에 싱가포르로 달려간 지 꽤 오래됐다고 한다. 하지만 절세

    2024.01.29 17:50
  • [천자칼럼] 하버드 교재 된 K푸드

    미국 하버드 경영대학원(MBA) 수업은 케이스 스터디(사례 연구)가 중심이다. 학생들은 기업의 성공과 실패 사례를 놓고 교수와 토론을 벌이면서 다양한 경영 기법을 익힌다. 하버드 경영대가 1912년 세계 최초로 도입한 뒤 전 세계 주요 MBA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교습법이다.하버드 경영대 학생들은 졸업 때까지 보통 500~600개의 사례 연구를 접한다. 하버드가 발간하는 경영학 전문지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HBR)’는 전 세계 30만 명 이상의 구독자를 거느리고 있다. 이런 명성 때문에 하버드 경영대의 사례 연구 대상이 되면 기업의 브랜드 인지도와 평판이 높아진다.한국 기업도 심심치 않게 연구 대상에 오른다. 2004년과 2005년 글로벌 마케팅 전략으로 주목받은 삼성전자가 대표적이다. 윤종용 전 삼성전자 부회장은 2009년 HBR에서 애플의 스티브 잡스에 이어 ‘세계에서 가장 성공한 최고경영자(CEO)’ 2위로 평가받기도 했다. 아날로그 시대 ‘2류 기업’이 디지털 시대 승자가 된 배경에 하버드가 주목한 것이다. 신한은행의 조흥은행 합병(2005년), 아모레퍼시픽의 글로벌 전략(2005년), 옛 대우조선해양의 중국 조선사의 도전에 맞선 생존전략(2008년)도 하버드 경영대 교재에 실렸다.2008년엔 SNS 시장을 개척한 싸이월드 보고서가 발간됐고 이듬해엔 SK텔레콤의 사회공헌 활동이 평가받았다. 2010년엔 박현주 미래에셋회장과 미래에셋의 성장 스토리가 다뤄졌고 2015년엔 CJ E&M이 ‘미국에서 한류 확산하기’로 주목받았다. 같은 해 한국 경제를 주제로 한 보고서가 나오기도 했다. 보고서는 한국이 D램, LCD(액정표시장치), 휴대폰뿐 아니라 영화와 K팝에서도 세계 최고 경쟁력을 갖췄지만 고령

    2024.01.15 18:00
  • [천자칼럼] 'Sonny' 대신 '성진'

    <제시의 일기>란 책이 있다. 임시정부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양우조·최선화 부부가 1938년 중국에서 딸을 낳고 8년간 쓴 육아일기다. 제시(Jessie)는 딸 이름이다. 양우조는 “세계 여러 나라 사람들 사이에서 능력 있는 한국인으로 활약하는 데 불편함이 없도록 (딸 이름을 영어로) 지었다”고 썼다. 양우조는 미국 유학파였다.미국에 살면서 영어 이름을 쓰는 사람이 많다. 외국인들이 한국 이름 발음을 어려워할 때가 많기 때문이다. 꼭 우리만 그런 것도 아니다. 인텔 회장을 지낸 앤디 그로브는 헝가리 출신으로 본명은 안드라스 그로프다. 순다르 피차이 구글 최고경영자(CEO)는 인도 태생으로 원래 이름은 순다라라잔 피차이다. 미국에 넘어오면서 미국인들이 발음하기 쉽게 이름을 바꾼 것이다.대중에 기억되는 게 중요한 연예계에선 영어 이름 선호도가 더 클 것이다. 물론 탓할 일은 아니다. 하지만 한국 이름을 부끄러워할 필요도 없다. 넷플릭스 드라마 ‘성난 사람들’로 올해 미국 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서 TV 단막극 부문 작품상·남우주연상·여우주연상을 휩쓴 한국계 이성진 감독은 공식 크레디트에 ‘Lee Sung Jin’으로 표기한다. 그는 이민 1.5세로 어릴 적 미국인들이 자신의 한국 이름을 듣고 웃는 게 부끄러워 소니(Sonny)라는 영어 이름을 썼다. 그러다가 2019년 봉준호 감독이 ‘기생충’으로 아카데미상을 타자 생각을 고쳐먹었다고 한다. 그는 “봉준호, 박찬욱 감독의 이름을 부를 땐 미국인들이 실수하지 않고 정확하게 발음하려고 노력한다”며 “내가 좋은 작품을 만들면 미국인들도 한국 이름을 듣고 웃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했

    2024.01.09 17:10
  • [천자칼럼] 재난 속 기적의 생환

    인간의 생존 조건을 의학계에선 통상 ‘3·3·3법칙’으로 설명한다. 공기는 3분 안에, 물은 3일 안에, 식량은 3주일 안에 공급돼야 버틸 수 있다는 것이다.6400명 이상의 사망자가 발생한 1995년 일본 고베 대지진 때 일본 정부가 구조자 중 생존자 비율을 분석한 결과도 비슷하다. 재해 당일 74.9%에서 2일째 24.2%, 3일째 15.1%, 4일째 5.4%, 5일째 4.8%로, 72시간이 지나면 생존 확률이 한 자릿수로 떨어졌다. 생존자 구조를 위한 골든타임을 72시간으로 보는 이유다.하지만 통념을 깨는 사례도 적지 않다. 1995년 6월 29일 삼풍백화점 붕괴 때 당시 19세 박승현 씨는 음식은 물론 물 한 방울 없이 377시간 만에 무사 구조됐다. 2022년 10월 26일 경북 봉화 아연 광산 붕괴로 190m 갱도 아래 갇힌 광부 2명은 221시간 만에 생환했다. 당시 이들은 커피 믹스를 먹고 갱도 내 물을 마시며 버텼다. 2010년 10월 칠레에선 구리 광산의 지하 700m 갱도에 매몰된 광부 33명이 69일 만에 전원 살아나왔다. 이 실화를 다룬 ‘The 33’이란 영화도 있다.극한 상황에 놓이면 인체는 신진대사를 늦춰 에너지 소비를 최소화하는 식으로 적응력을 발휘한다고 한다. 체내 탄수화물에 이어 지방을 태우고 그래도 모자라면 근육조직을 이루는 단백질을 분해하는 식으로 에너지를 짜낸다.극한 상황에 대처할 수 있는 지식과 장비가 있다면 생존 확률을 더 높일 수 있다. 살겠다는 생존 의지가 있어야 하는 것은 물론이다. 봉화 광산 매몰 때 극적으로 살아나온 박정하 씨(당시 62세)는 절망적 순간마다 “아직 죽을 때가 아니다. 무조건 살아나가야 한다”며 마음을 굳게 먹었다고 한다.일본 이시카와현을 강타한 지진이 난 지 124시간 만인 지

    2024.01.07 17:42
  • [이슈프리즘] 내년 경제도 장밋빛 아니다

    올 연말 송년회에 기획재정부 관료들이 즐겨 쓴 건배사 중 하나가 ‘상고하고(上高下高)’라고 한다. 내년에는 상·하반기 가릴 것 없이 경기가 쭉 회복됐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올 상반기 경기 부진에 1년 내내 ‘상저하고(上低下高)’를 외쳤지만, 하반기에도 경기 회복세가 국민 눈높이에 못 미쳤다는 아쉬움이 담겨 있기도 하다.내년에는 1%대 초반 성장에 그친 올해보다 경제가 나아질 것이란 전망이 많다. 한국은행, 국제통화기금(IMF),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등 주요 기관이 내년에 2%대 초반의 성장을 예상하고 있다. 정부도 성장, 고용, 물가 등 거시지표가 올해보다 나아질 것으로 자신하고 있다.하지만 비관적 시나리오도 있다. LG경영연구원은 내년에도 1%대(1.8%) 성장을 점쳤다. 미국 유럽 일본 등 선진국의 경기 둔화로 세계 경제가 부진에 빠지면서 한국도 타격을 입을 것으로 봤다. 일부 글로벌 투자은행도 내년 한국의 성장률을 1%대로 보고 있다. 2년 연속 1%대 성장은 외환위기나 글로벌 금융위기, 코로나19 위기 때도 없던 일이다. 과거 한국 경제는 위기 때 곤두박질쳤다가도 곧바로 용수철처럼 튀어 올랐지만 지금은 회복 탄력성이 예전 같지 않다.기업들의 체감 온도는 더 낮다. 한 대기업 임원은 ‘정부는 내년에 경기가 회복될 것으로 본다’는 기자의 말에 “정부만 그렇게 본다”며 시큰둥해했다. 한 전직 장관은 사석에서 “두 개의 전쟁을 하는데 경기가 좋을 수 있겠느냐”고 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 이스라엘·하마스 전쟁까지 겹쳐 세계 경제 회복세가 강하지 않을 것이란 얘기다. 요즘엔 하마스를 지지하는 예멘 반군 후티가 홍해를

    2023.12.28 18:11
  • [이슈프리즘] 물가 통제 유감

    리처드 닉슨 전 미국 대통령은 재임 당시인 1971년 8월 물가 통제를 시작했다. 대선이 다가오는데 인플레이션이 기승을 부리자 인기 없는 금리 인상이나 재정지출 삭감 대신 가격 개입을 택한 것이다. 미국에서 전시가 아닌 평시에 이뤄진 첫 물가 통제였다. 하지만 부작용이 속출했다. 텍사스주의 한 양계농장에선 병아리 4만3000마리를 물이 가득 찬 드럼통에 부어 살처분하기도 했다. 국제 시세에 좌우되는 사료값이 오르는데 가격 통제 때문에 닭값을 그만큼 올리지 못한 데 따른 것이다. 이런 사례가 늘면서 슈퍼마켓 선반이 비어갔고 소비자 불만도 커졌다. 물가도 잡히지 않았다. 닉슨의 시도는 값비싼 대가만 치른 채 실패했고, 지금도 물가 통제의 부작용을 보여주는 교과서적 사례로 남았다. 하지만 한국에선 지금도 정부가 툭 하면 가격에 개입한다. 최근 우유, 빵, 아이스크림 등 28개 품목에 전담 공무원을 배정해 매일 가격을 체크하도록 했다. 해외 토픽에나 나올 법한 ‘빵 사무관’ ‘우유 사무관’을 둔 것이다. 각 부처 차관을 물가안정 책임관으로 지정해 부처별로 소관 품목을 책임 관리하도록 했다. 이명박(MB) 정부 때 국민 생활에 밀접한 52개 품목에 담당 공무원을 붙여 가격을 통제했던 MB식 물가관리의 시즌2다. 요즘은 슈링크플레이션으로 불리는 편법 가격 인상을 정조준하고 있다. 가격을 놔둔 채 용량을 줄이는 행위를 막겠다는 것이다. 정부가 물가 잡기에 올인하는 것은 안정되는 듯하던 물가가 다시 불안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달 소비자물가는 1년 전보다 3.8% 오르며 7개월 만에 최대폭으로 상승했다. 정부가 팔짱만 끼고 있기는 어려운 게 한국 정서다. 물론 슈링크플레이션은

    2023.11.20 18:01
  • [이슈프리즘] 1000조짜리 모래성 국민연금

    국민연금 적립금이 최근 1000조원 안팎으로 늘었다고 한다. 적립금만 보면 일본 후생연금(약 2000조원)에 이어 세계 2위다. 하지만 국민연금은 지속 가능성에서 낙제점이다. 32년 뒤면 적립금이 바닥난다는 시간표가 이미 나와 있다. 100년 뒤에도 끄떡없게 설계된 일본 후생연금과는 하늘과 땅 차이다. 후생연금은 100년 뒤에도 1년 치 연금을 내줄 수 있는 재정구조를 갖추고 있다. 국민연금 적립금 1000조원도 모래성이나 다름없다. 나중에 가입자에게 내줘야 할 돈이 훨씬 많기 때문이다. 전영준 한양대 경제금융학부 교수는 지난달 한 토론회에서 가입자에게 내줘야 할 돈인데, 보험료와 적립금으로 충당하지 못하는 미적립 부채가 올해 기준 1825조원이란 계산을 내놨다. 언젠가 보험료나 세금으로 메워야 하는 보이지 않는 빚이 이 정도라는 것이다. 국민연금 가입자 1인당 8200만원꼴이고, 국내총생산(GDP) 대비 80%나 된다. 게다가 이 빚은 2050년 6000조원대, 2090년엔 4경4000조원대로 늘어난다는 게 전 교수의 계산이다. 2090년 GDP 대비로는 300%에 달한다. 한마디로 감당하기 힘든 수준이 된다. 저출산 고령화 여파로 보험료 낼 사람은 줄어드는데 연금 받을 사람은 계속 늘어나면서 국민연금 재정이 망가지는 것이다. 국민연금 개혁이 시급한 이유다. 하지만 총선이 다가오자 정치권은 벌써 발을 빼고 있다. 여야는 국회 연금개혁특별위원회 활동 기한을 총선 이후인 내년 5월로 미루기로 했다. 작년 7월 특위 출범 이후 이렇다 할 결과 없이 허송세월하다가 차기 국회로 공을 떠넘긴 것이다. 이달 말까지 국민연금 개편안을 마련해 국회에 제출해야 하는 정부도 연금 개혁의 필요성을 진지하게 설득하기보다 여론을 살

    2023.10.05 18:40
  • [이슈프리즘] "나랏빚 줄이기가 이렇게 어렵습니다"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모든 위기는 빚에서 나온다. 가계든, 기업이든, 정부든 마찬가지’라는 소신을 갖고 있다. 빚더미를 미래 세대에 넘겨선 안 된다고 본다. 내년 예산안에도 이런 문제의식이 담겼다. 기재부가 짠 내년 예산안에서 총지출 증가율은 올해 대비 2.8%다. 우리 예산 편성에 총지출 개념을 도입한 2005년 이후 가장 낮은 증가율이다. 내년 명목 경제성장률이 4~5%대는 될 것이라고 보면 경제 성장 속도보다 재정지출 증가율을 낮춘 긴축 예산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도 내년 재정지표는 올해보다 더 나빠진다. 재정적자(관리재정수지 기준)는 올해 58조원에서 내년 92조원으로 불어나고, 국내총생산(GDP) 대비 재정적자 비율은 2.6%에서 3.9%로 악화한다. 기재부는 재정준칙 도입을 위해 국가재정법 개정을 추진하면서 법 통과 이전에도 이 비율을 3% 이내로 관리하겠다고 공언해왔는데, 지키지 못한 것이다. 재정적자가 커지다 보니 국가채무도 올해 67조원에 이어 내년에 또 62조원가량 늘어난다. 경기 둔화와 자산시장 침체로 내년 국세 수입이 올해 예산 대비 33조원가량 감소할 것으로 예상되면서 지출을 조금만 늘려도 재정적자와 국가채무가 급격히 불어나는 것이다. 추 부총리도 이 때문에 고민이 많았다고 한다. 그래서 몇 가지 시나리오를 돌려봤다고 했다. GDP 대비 재정적자 비율을 3%로 할 때, 올해보다 약간 개선된 2.5%로 할 때, 균형예산을 위해 0%로 할 때 내년 지출이 각각 어떻게 달라지는지 시뮬레이션을 해봤다는 후문이다. 기재부에 따르면 결과는 각각 -0.6%, -4%, -14%였다. 어떤 경우든 내년 지출 예산을 올해보다 줄여야 한다는 결과가 나온 것이다. 어려운 경제 여건을

    2023.08.29 17:52
  • [이슈프리즘] 5년 만에 트리플 증가라지만…

    지난주 산업활동 동향이 발표되자 기획재정부는 경기가 바닥을 찍고 턴(반등)했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생산, 소비, 투자가 5년4개월 만에 두 달 연속 동반 증가했고, 제조업 생산은 다섯 분기 만에 플러스로 전환했다면서다. 소비심리가 나아졌고 6월에 이어 7월 무역수지도 흑자가 유력하고, 수출시장인 미국 경제도 예상 밖으로 강하다고 한다. 물가,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부실, 가계부채 등 불안 요인이 없지 않지만 큰 틀에서 경기가 회복되고 인플레이션 완화 조짐이 보이는 건 반가운 일이다. 하지만 급한 불을 껐을 뿐 더 큰 숙제가 남아 있다. 경제 체질을 개선하는 일이다. 이제 경제정책의 초점을 잠재성장률을 끌어올리고 생산성을 높이는 데 맞춰야 한다. 단기적인 경기 등락에 일희일비하지 말고 좀 더 시야를 넓혀 보면 한국의 경제성장률은 추세적으로 하락하고 있다. 한국은행 경제통계시스템에서 직선제 이후 각 정부 임기 중 평균 성장률을 살펴봤다. 노태우 정부 9.2%, 김영삼 정부 7.6%, 김대중 정부 5.6%, 노무현 정부 4.7%, 이명박 정부 3.3%, 박근혜 정부 3.0%, 문재인 정부 2.3%였다. 진보냐 보수냐에 상관없이 시간이 흐를수록 성장률이 계속 낮아지고 있다. 윤석열 정부도 이런 흐름을 벗어나긴 쉽지 않을 것이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은 2023~2027년 잠재성장률을 2.0%로 전망한다. 장기 시계는 더 어둡다. 생산성 혁신이 없다면 한국의 장기 경제성장률은 2030년 1.1%, 2040년 0.5%로 떨어지고 2050년엔 성장이 멈출 것(0%)이란 게 KDI의 경고다. 현재 한국의 생산성은 선진국에 못 미친다. 기재부가 이달 초 발표한 하반기 경제정책 방향을 보면 미국의 생산성을 100으로 봤을 때 한국은 61.4에 불과하다.

    2023.07.30 18:14
  • [이슈프리즘] '뻥튀기' 저출산 예산

    저출산 예산만큼 빠르게 늘어난 예산은 찾기 힘들다.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가 출범한 2006년 2조1000억원이던 저출산 예산은 지난해 51조원대로 불어났다. 무려 25배가량 늘었다. 역대 정부마다 추락하는 출산율을 끌어올리기 위해 해마다 예산을 가파르게 늘린 결과다. 저출산 예산으로 잡힌 사업만 지난해 214개에 달한다. 그런데도 출산율은 오히려 추락하고 있다. 2006년 1.13명이던 한국의 출산율은 지난해 0.78명으로 떨어졌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8개 회원국 평균(2020년 기준 1.5명)의 절반 수준이다. 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결혼이나 출산을 늘리는 게 돈만으로 해결되지 않는 건 사실이지만 저출산 예산 자체가 지나치게 부풀려 있고 실제 필요한 곳에 필요한 만큼 돈을 쓰지 못한 것은 아닌지도 따져볼 필요가 있다. 가령 저출산 예산 중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주거지원 예산은 전체 23조원 중 40%(약 10조원)가 이자 차이만 보전하는 사업이다. 주택도시기금에서 청년과 신혼부부에게 시중금리보다 낮은 금리로 주택자금과 전세자금을 빌려주면서 이자 차이만 메워주는 것이다. 이자 차이가 얼마인지는 정확히 알려지지 않았지만, 1%포인트라고 가정하면 실제 들어가는 예산은 약 1000억원, 2%포인트라고 가정하면 2000억원 정도다. 그런데도 저출산 예산은 10조원으로 잡힌다. 실제 혜택보다 크게 여겨지는 착시 효과가 있는 것이다. 고등학교 때부터 산업계 수요에 맞는 교육을 하는 마이스터고와 산학협력 선도대학 육성 사업, 군무원·부사관 인건비 증액, 초·중·고교 태양광 발전시설 설치 등도 저출산 대책으로 분류돼 있다. 누가 봐도 저출산과 직접 관련이 없는 게 뻔한데도 저출산 대응 예산

    2023.07.04 18:06
  • [이슈프리즘] 추경이란 이름의 '돈풀기병(病)'

    추가경정예산이 또다시 화두로 떠올랐다. 연초 정치권에서 제기했다가 ‘성급하다’는 비판에 수면 아래로 내려간 추경론이 역대급 세수 펑크와 전기요금 인상 등을 계기로 다시 불거지고 있다. 박광온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지난달 30일 “1년간 전기요금이 40% 가까이 올랐다”며 취약계층 지원을 위한 ‘에너지 추경’을 정부에 요구했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이달 2일 ‘경제 살리기 추경’을 꺼냈다. 이 대표는 1월 초 신년 기자회견 때부터 코로나 부채 이자 감면 등을 명목으로 ‘30조 추경’을 주장했다. 올해 예산 집행이 시작되자마자 예산을 다시 짜자고 한 것이다. 국민의힘 지도부는 추경에 선을 긋고 있지만 일부 의원은 추경에 우호적이다. 조경태 국민의힘 의원은 연초 전 국민에게 3개월간 매달 10만원씩 난방비를 주자며 ‘난방비 추경론’을 제기했다. 진짜 필요한 경우라면 추경을 못 할 이유가 없다. 하지만 정치권의 추경 요구는 대부분 법적 근거가 빈약하다. 국가재정법 89조는 추경 편성 요건을 ‘전쟁, 대규모 재해, 경기 침체, 대량실업, 남북관계 변화, 경제 협력 같은 중대한 대내외 여건 변화와 법령에 따라 국가가 지급해야 하는 지출 발생·증가’로 제한하고 있다. 지금 상황이 여기에 부합한다고 보기 어렵다. 과거 정치권과 정부는 추경을 연례행사처럼 남발했다. 꼭 필요한 예산은 본예산을 짤 때 집어넣고 추경은 정말 위급한 상황이 아니면 자제하는 게 재정의 ABC인데, 잘 지키지 않았다. 툭하면 추경부터 꺼낼 게 아니라 낭비되는 예산부터 줄이는 게 재정의 정석이다. 안 그래도 줄줄 새는 나랏돈이 너무 많다. 얼마 전 감사원 감사 결과, 지난 3년간 전국 교육청에서

    2023.06.04 17:31
  • [이슈프리즘] 일상이 된, 그래서 불편한 1300원대 환율

    원·달러 환율이 1300원을 넘는 상태가 한 달 넘게 이어지고 있다. 지난해 환율이 1200원, 1300원, 1400원을 돌파하고 1500원대까지 뚫을 기세로 올랐을 때보다는 위기감이 덜하지만 그렇다고 ‘지금이 편안한 환율이냐’ 하면 전혀 그렇지 않다. 한국은행 경제통계시스템(ECOS)에는 1990~2022년 환율이 나온다. 33년간 환율이 1300원을 넘은 건, 외환위기와 글로벌 금융위기를 제외하면 거의 없다. 이 기간 평균 환율은 1063원이다. 이에 비하면 지금 환율은 비정상적으로 높다. 즉 지금 원화 가치는 역사적 평균보다 너무 낮다. 작년에 환율이 뛸 때 주범은 ‘킹달러’였다. 미국 중앙은행(Fed)이 가파르게 기준금리를 올리면서 달러 가치가 초강세였고, 거의 모든 통화가 달러 대비 약세였다. 원화도 마찬가지였다. 지금은 Fed의 금리 인상이 마무리 국면에 들어가면서 킹달러 시대가 저물고 있다. 주요 6개 통화 대비 미국 달러 가치는 올 들어 지난 주말까지 0.8% 떨어졌다. 영국 파운드(3.8%), 스위스프랑(3.1%), 유로(2.4%), 캐나다달러(0.4%) 등 웬만한 선진국 통화는 올해 미국 달러에 강세를 보이고 있다. 반면 원화 가치는 이 기간 달러 대비 5.5% 주저앉았다. 일본 엔(-1.1%), 중국 위안(-0.9%), 호주달러(-1.1%)도 가치가 떨어졌지만, 하락 폭이 원화만큼 크지는 않다. 달러 약세 속에서 유독 원화만 더 약세를 보이는 것이다. 환율은 경제의 종합 성적표라고 한다. 나 홀로 원화 약세는 한국 경제의 펀더멘털(기초체력) 저하를 빼고는 설명하기 힘들다. 당장 수출은 반도체 부진 등이 겹치면서 이달까지 8개월째 뒷걸음치고 있다. 무역수지는 15개월째 적자다. 재정적자는 1분기에만 54조원이 쌓였다. 올해 성장률은 잘해야 1%대 중반이 될

    2023.05.15 17:38
  • [데스크 칼럼] 세수 펑크에도 "돈 쓰겠다" 소리뿐

    “처음 케첩병을 흔들 때는 케첩이 조금씩 나오지만 한 번 제대로 나오기 시작하면 통제가 안 될 정도로 마구 쏟아져 나온다.”이헌재 전 경제부총리가 물가를 ‘케첩병 흔들기’에 빗댄 적이 있다. <경제는 정치다>란 책에서다. 케첩병을 흔들 때처럼 물가도 ‘처음에는 서서히 오르다가 나중에는 통제를 벗어날 수 있다’는 것이다.‘케첩병 이론’이 적용되는 건 물가뿐이 아니다. 나랏빚도 마찬가지다. 처음엔 별로 심각해 보이지 않는데 어느 순간 걷잡을 수 없이 늘어나 버린다. 문재인 정부 5년이 그랬다. 이 기간 국가채무는 400조원 넘게 늘었다. 김대중 정부 85조원, 노무현 정부 165조원, 이명박 정부 180조원, 박근혜 정부 170조원보다 폭발적으로 불어났다. 해마다 80조원 넘게 증가한 셈이다. 나랏빚 1분에 1억 넘게 느는데윤석열 정부는 건전재정을 표방했지만, 올해 국가채무도 67조원 가까이 늘어날 전망이다. 속도가 둔화하긴 했지만 나랏빚이 하루 1800억원, 1분에 1억원 넘게 증가하는 것이다.그래도 지난 2년간은 세수가 119조원이나 더 걷히면서 그럭저럭 버틸 수 있었다. 지금은 정반대다. 올 1, 2월 세수는 1년 전보다 15조7000억원 덜 걷혔다. 이대로면 올해 최소 20조원의 세수 결손이 불가피하다.삼성전자 등 국내 기업 상당수가 올해 실적 부진에 빠졌다. 주식·부동산시장도 긴축 여파로 과거 호황 때만 못하다. 단기간에 세수 회복을 기대하기 어려운 여건이다. 올해부터 4년간 정부가 갚아야 할 이자도 100조원에 육박한다.허리띠를 졸라매야 할 판인데도 정치권은 내년 총선을 앞두고 선심성 정책을 쏟아내고 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대선 때부터 주

    2023.04.12 17:32
  • [데스크 칼럼] SVB 파산의 교훈

    미국 실리콘밸리은행(SVB) 파산으로 촉발된 은행 위기는 글로벌 금융위기로까지 번지진 않았지만 몇 가지 생각할 거리를 남겼다.첫째, 디지털 시대 예금 보장 한도를 어떻게 가져갈 것인가다. SVB는 처음 위기가 알려진 뒤 36시간 만에 파산했다. 고객들이 스마트폰으로 순식간에 55조원 넘는 돈을 빼내면서 ‘스마트폰 뱅크런’이 발생했다. 한국은 이런 일이 안 생길까. 지난해 금리가 가파르게 오르고 레고랜드 사태로 시중자금이 마를 때 한 저축은행에서 하루에 예금이 5%씩 줄어든 때가 있었다고 한다. 고객들이 더 높은 금리를 찾아 밤새 인터넷뱅킹으로 예금을 옮긴 것이다. 단 20일이면 예금이 바닥날 만큼 빠른 속도였다. 이런 상황이 계속되면 5000만원 예금 보장 한도로 뱅크런을 막을 수 있을까. 정치권에서 거론되는 1억원 한도가 충분한지도 의문이다. 금융 시스템 재점검해야둘째, 금융회사 관리감독이 제대로 되고 있느냐다. 지금 한국 금융권에서 ‘약한 고리’로 거론되는 곳은 저축은행, 새마을금고 등이다. 특히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과 연관된 곳이 위험지대로 꼽힌다. 이런 곳에서 문제가 터지면 발권력을 지닌 한국은행이 ‘소방수’로 투입돼야 할 수도 있는데, 한은은 2금융권에 대한 감독권이 없어 발 빠르게 대처하기 어렵다.셋째, 중소형 금융사가 무너져도 시스템 위기로 번질 수 있다는 점이다. SVB는 ‘시스템적으로 중요한 은행(SIB)’이 아니었다. 하지만 파산하자마자 미국 정부가 구조(예금 전액 보장)에 나섰다. 다른 은행으로 뱅크런이 전염되는 걸 막기 위해서다. SVB는 SIB가 아닌데 사실상 SIB가 된 것이다. 정보가 빛의 속도로 전파되는 현대 금

    2023.03.22 17:46
  • [데스크 칼럼] 째깍째깍 '연금폭탄'

    지금 국민연금은 시한폭탄과 같다. 이대로 가면 ‘2041년 기금 적자 전환, 2055년 기금 고갈’이란 재정계산 결과가 나와 있다. 5년 전 계산 때보다 적자 전환 시점은 1년, 고갈 시점은 2년 빨라졌다.급속한 저출산·고령화와 저성장으로 시간이 갈수록 들어오는 돈(보험료)보다 내줘야 할 돈(연금 급여)이 폭발적으로 늘어난다. 개혁하지 않으면 1990년생이 연금을 받기 시작할 때쯤엔 국민연금이 고갈된다. ‘연금 폭탄’이 터지는 것이다. 이들에게 연금을 계속 지급하려면 세금을 걷을 수밖에 없는데, 최악의 경우 소득의 26%(2055년 부과 방식으로 연금 지급 기준)를 보험료로 내야 한다. 지금보다 보험료는 더 내고, 연금은 덜 받거나 늦게 받는 개혁을 하지 않으면 안된다. 국민연금 고갈 빨라져개혁이 쉬운 건 아니다. 국민연금 35년 역사에서 제도 개혁은 1998년과 2007년 단 두 번뿐이었다. 그나마 보험료(9%)는 손대지도 못했다. 김대중 정부는 1998년 소득대체율(생애 평균소득 대비 연금액 비율)을 70%에서 60%로 낮추고 연금 수급 개시 연령을 60세에서 2033년까지 65세로 늦췄다.노무현 정부는 2007년 소득대체율만 40%로 낮췄다. 당초 ‘보험료율 15.9%, 소득대체율 50%’를 추진했지만, 국회 논의 과정에서 보험료율은 놔둔 채 소득대체율만 낮추는 방안이 통과됐다. 연금개혁까지 걸린 시간도 4년이나 됐다. 합의를 이끌어내기가 그만큼 어려웠다. 노무현 정부 대통령 자문 정책기획위원회는 2008년 펴낸 ‘국민연금 개혁’ 보고서에서 “어렵게 연금법이 통과됐으나 초고령사회에 대처할 수 있는 재정 안정화 방안과는 상당한 거리가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고 썼다. ‘절반의

    2023.02.12 17:37
  • [데스크 칼럼] 부동산 대못, 아직도 많다

    윤석열 정부는 지난 정부가 만든 과도한 부동산 규제를 일부 손질했다. ‘저가 2주택 보유자’에게 ‘초고가 1주택자’보다 무거운 세금을 물리는 불공정한 종합부동산세 중과를 일부 없애고, 2주택자 이상자가 주택을 팔 때 적용하던 양도세 중과를 한시적이나마 유예한 게 대표적이다.여론도 나쁘지 않다. 기획재정부가 지난 19~25일 국민·전문가·출입기자 1만4628명에게 ‘올해 최고의 기재부 정책’을 물었더니, ‘과도한 부동산 부담 완화와 양도세·종부세 정상화’가 뽑혔다고 한다. 징벌적 세금에 대출 제한까지하지만 지난 정부가 박아 놓은 ‘부동산 대못’은 아직도 많다. 취득세 중과는 그런 규제 중 하나다. 문재인 정부 이전 주택 취득세는 과표 구간별로 1~3%였다. 집을 사는 사람이 1주택자냐, 2주택자냐를 따지지 않았다. 문재인 정부는 이를 1주택자 1~3%, 조정대상지역(현재 서울·수도권 일부) 2주택자(비조정대상지역은 3주택자) 8%, 조정대상지역 3주택자 이상(비조정대상지역은 4주택자 이상)과 법인은 12%로 바꿨다. 서울에서 10억원짜리 주택을 살 때 무주택자가 사면 취득세로 3000만원만 내면 되지만, 2주택자가 사면 취득세만 1억2000만원을 내야 한다. 다주택자는 집 사지 말라는 얘기나 마찬가지다.문재인 정부는 아파트가 밀집한 주거지를 처음으로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묶기도 했다. 토지거래허가구역에선 집을 사고팔 때 관할 시·군·구청장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 실거주만 허용해 전세를 끼고 집을 사는 걸 못하게 했다. 매수 후 2년간은 전매나 임대도 불가능하다. 거주 이전의 자유와 재산권을 침해한다는 논란이 컸는데,

    2022.12.28 17:48
  • [데스크 칼럼] 불공정 종부세

    서울에서 공시가 25억원짜리 집 한 채를 가진 1세대 1주택자 A씨와 10억원짜리 집 두 채(총 20억원)를 가진 1세대 2주택자 B씨가 있다. 누가 더 세금을 많이 내야 할까. 당연히 A씨일 것 같지만 아니다. 기획재정부의 모의계산을 보면 올해 A씨는 674만원, B씨는 3114만원의 세금을 내야 한다. 종합부동산세 얘기다. B씨가 A씨보다 재산이 5억원 더 적은데 세금은 A씨보다 2400만원가량 더 내는 것이다. 이상한 세금이 한두 가지가 아니겠지만 지금 종부세는 볼수록 황당하다. 상식적이지도, 공정하지도 않다. 재산 적은데 세금 더 낼수도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지난 정부가 조세원칙을 무시하고 종부세법을 개정했기 때문이다. 2018년까지만 해도 종부세는 보유 주택 수에 상관없이 주택 가격에 따라 0.5~2.0%로 단일하게 부과됐다. 문재인 정부는 이 세율을 높였을 뿐 아니라 주택 수에 따라 세율을 차등화했다. 그 결과 현재 종부세율은 1주택자 0.6~3.0%, 2주택 이상(서울 등 조정대상지역 기준) 1.2~6.0%다. 이전에 비해 1주택자 세율도 올라갔지만, 특히 다주택자 세율은 1주택자의 두 배가 됐다. 법인은 더 가혹하다. 조정대상지역에 2채 이상을 보유하면 최고 6% 세율을 적용받는다. 당시 집값이 급등하자 다주택자를 주범으로 지목해 그들을 벌주는 식으로 세법을 고쳤기 때문이다.그 결과가 상식적이지도, 공정하지도 않은 지금의 종부세다. 현행 세법대로면 A씨, B씨 같은 사례가 무수히 나온다. 예컨대 지방 2주택 보유자가 더 비싼 서울 강남의 1주택 보유자보다 세금을 더 내는 일이 생긴다. 이렇다 보니 “지금 종부세는 강남 고가 1주택자에게 유리한 제도”라는 게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다주택자에게 종부세를

    2022.11.13 18:04
  • [데스크 칼럼] RE100 대안으로 뜨는 CF100

    한 대기업 최고경영자(CEO)가 최근 유럽 출장을 다녀온 뒤 직원들을 혼냈다고 한다. 하도 ‘RE100, RE100’ 하길래 RE100이 대세인 줄 알았는데, RE100이 아니라 CF100이 뜨고 있다는 것이었다. 정부 고위 관료가 얼마 전 전해준 얘기다.RE100은 2050년까지 사용 전력의 100%를 태양광, 풍력 등 재생에너지로 충당하자는 캠페인이다. 영국 비영리기구 ‘더 클라이밋 그룹’이 2014년 시작했다. 반면 CF100은 사용 전력 전부를 무탄소(carbon free) 에너지로 채우자는 개념이다. 재생에너지뿐 아니라 탄소 발생이 없는 원전과 수소연료전지까지 활용하자는 것이다.RE100은 지난 대선 TV토론 때 이재명 당시 더불어민주당 후보가 “RE100,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묻자 윤석열 당시 국민의힘 후보가 “그게 뭐죠?”라고 해 화제가 됐다. 최근엔 삼성전자가 RE100에 동참하겠다고 발표해 조명받았다. 한국은 태양광·풍력 여건 나빠하지만 RE100은 말처럼 쉽지 않다. 특히 한국은 더더욱 그렇다. 태양광이나 풍력 발전에 필요한 일조량과 바람의 세기가 나쁘기 때문이다. 조홍종 단국대 경제학과 교수는 “풍력 발전기가 집중 설치된 남해안의 바람 세기는 영국 북해 일대나 독일의 절반도 안 되고 에너지 생산량으로 따지면 거의 세 배 차”라고 말했다. 또 한국은 국토가 좁아 태양광 발전을 하려면 산을 깎고 농지를 밀어내야 한다. 친환경 발전에 친환경적이지 않은 방법이 동원되는 것이다.게다가 재생에너지를 마구잡이로 늘리면 전력 계통망이 불안해진다. 전기는 출력이 일정하게 유지돼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정전이 날 수 있다. 태양광, 풍력은 낮과 밤에 따라, 구름이 끼냐, 안 끼냐에 따라 발전량

    2022.09.28 17:45
  • [데스크 칼럼] 인사공백 해소가 국정쇄신의 시작

    며칠 전 정부 부처 1급 자리가 얼마나 비어 있는지 조사해 ‘먹통 인사…정부가 안 돌아간다’란 기사를 내보냈다(한경 8월 5일자 A1, 3면). 관가에서 “인사가 너무 늦다”는 말이 자주 들리길래 숫자를 파악해봤는데 예상보다 높게 나와 놀랐다.한국경제신문이 21개 중앙부처(18개 부처+금융위원회, 공정위원회, 국무조정실) 1급 자리 103개를 전수조사해 보니 공석이 23개나 됐다. 1급 자리 5개 중 1개가 비어 있는 것이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 고용노동부, 보건복지부, 문화체육관광부는 1급 자리 절반 이상이 펑크나 있었고, 14개 부처는 1급 자리가 1개 이상 공석 상태였다. 윤석열 정부가 출범한 지 100일이 다 돼가는데, 공직사회가 100% 풀가동되기는커녕 곳곳에 숭숭 구멍이 뚫려 있는 것이다. 관가에선 “인사안을 올린 지 두 달이 넘도록 감감무소식”이란 말도 들린다. 곳곳에 빈자리…'먹통' 인사이게 전부가 아니다. 교체 대상으로 결정됐지만 후임자가 정해지지 않아 눌러앉아 있는 1급까지 감안하면 사실상 공석 비율은 더 높다. 1급 인사가 지연되면서 국·과장 인사가 연쇄 차질을 빚는 사례도 수두룩하다. 보건복지부와 공정거래위원회는 더 심각하다. 복지부는 정호영·김승희 장관 후보자가 낙마한 뒤, 공정위는 송옥렬 위원장 후보자가 사퇴한 뒤 새 후보자가 지명되지 않고 있다.‘먹통’ 인사는 업무 공백으로 이어지고 있다. 코로나19가 다시 기승을 부리고 있지만 복지부 장관은 물론 방역 실무 책임자인 복지부 보건의료정책실장마저 공석이다. 국내 총인구가 정부 수립 이후 72년 만에 처음 감소하면서 ‘인구절벽’ 우려가 현실로 닥쳤지

    2022.08.07 17:25
  • [데스크 칼럼] '접시 깨도 OK' 해야 규제 풀린다

    “과거 정부 때 ‘무조건 담보를 잡아야만 대출해주는 건 말이 안 된다. 스타트업이나 벤처기업은 미래 가치를 보고 대출해야 한다’는 지적이 많았어요. 그래서 ‘대출할 때 담보를 잡아야 한다’는 규정을 없앤 적이 있습니다. 이후 국책은행에서 담보를 안 잡고 대출했는데, 대출받은 기업 직원이 대출금을 가지고 튄 사례가 나왔어요. 그러자 ‘왜 담보도 안 잡고 대출했느냐’는 비판이 쏟아졌고, 담당자는 징계를 받았죠.”얼마 전 경제부처 공무원이 기자에게 한 말이다. ‘이전 정부들도 규제개혁을 외쳤는데 왜 잘 안됐느냐’고 묻자 나온 대답이었다. 그는 “그런 일이 있고 나면 공무원들은 몸을 사릴 수밖에 없다”고 했다. 다른 관료는 사석에서 이런 말도 했다. “공무원은 10골을 넣어도 1골을 먹으면 문책을 당합니다. ” "10골 넣고 1골 먹어도 문책"윤석열 정부가 ‘새 정부 경제정책방향’에서 규제개혁을 핵심 과제로 내세웠다. 기업 발목을 잡는 모래주머니를 풀어 투자와 일자리를 늘리고 경제 체질을 정부 주도에서 시장 중심으로 바꾸겠다고 했다. 방향은 맞다. 관건은 실행력이다. 역대 정부도 규제개혁을 외쳤다. 이명박 정부는 ‘규제 전봇대’를 뽑겠다고 했고, 박근혜 정부는 ‘손톱 밑 가시’를 빼주겠다고 했다. 문재인 정부는 ‘혁명적 접근’을 약속했다. 모두 성과는 미흡했다.이유는 여러 가지다. 우선 역대 정부의 규제개혁은 ‘반짝 드라이브’에 그칠 때가 많았다. 정부에서 규제개혁 일을 해본 한 기업인은 “의료 규제나 서비스 산업 규제를 풀려고 하면 직역 단체나 노조, 시민단체들

    2022.06.19 17:52
/ 26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