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은 생각을 바꾸고, 글은 세상을 바꿉니다.
11만 명.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지난 10일 막을 내린 ‘구본창의 항해(Voyage)’ 전시를 본 관람객 수다. 지난해 12월 14일 개막해 약 3개월간 열렸으니, 매일 1400명가량이 다녀간 셈이다. 1988년 미술관 개관 이후 생존작가 전시로는 하루평균 최다 관람객 수 기록이다. 관람 시간은 보통 3~4시간, 한 번에 도저히 다 못 봤다거나 또 보고 싶다는 사람이 많아 마지막 날까지 ‘N차 관람 열풍’도 불었다. 하루 한 번 현장 모집으로 열리는 전시 해설 프로그램엔 50명씩 몰렸다. 수집품 600점, 작품 500점 등 1100점이 전시됐으니 어쩌면 예고된 흥행이었는지도 모르겠다.‘구본창의 항해’ 전시가 우리에게 남긴 건 이렇듯 곧 휘발해버릴 숫자만이 아니다. 한 사람이 40년 넘게 일생을 던져 수집한 예술적 성취, 오직 카메라를 들었기에 넘나들 수 있었던 장르의 경계, 무엇보다 쓸모를 다하거나 잊혔던 것들에 다시 숨을 불어넣은 사진가의 연민이 그곳에 있었다. “구본창의 사물 사진은-아름다움을 고백한다”(김영민 서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평론의 문장처럼, 작가의 항해에 승선한 사람들은 모처럼 배웠다. 사소한 풍경과 평범한 사물을 조금 다르게 바라보고 기억하는 방식을, 이미지가 넘쳐나는 시대에 진정한 아름다움이란 무엇인지를. 파격과 실험 -사진이 아닌 사진들이번 전시는 구본창 작가의 국내 첫 공립미술관 개인전이었다. 71세의 사진가, 일찌감치 전 세계에 이름을 알린 그가 여태 공공 미술관에서 개인전 한 번 연 적 없었다는 사실은 그동안 미술계가 사진이라는 장르를 어떻게 바라봤는지를 시사하는 다소 씁쓸한 대목이기도 하다.구본창 작가는 ‘달항아리 사진’으
11만 명.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지난 10일 막을 내린 ‘구본창의 항해(Voyage)’ 전시를 본 관람객 수다. 지난해 12월 14일 개막해 약 3개월 간 열렸으니, 매일 약 1400명이 다녀간 셈이다. 1988년 미술관 개관 이래 생존작가 전시로는 일평균 최다 관람객 수 기록이다. 관람시간은 보통 3~4시간, 한 번에 도저히 다 못 봤다거나 또 보고 싶다는 사람들이 많아 마지막날까지 'N차 관람 열풍'도 불었다. 하루 한 번 현장 모집으로 열리는 전시 해설 프로그램엔 50명씩 몰렸다. 수집품 600점, 작품 500점 등 1100점이 전시됐으니 어쩌면 예고된 흥행이었는 지도 모르겠다. ‘구본창의 항해’ 전시가 우리에게 남긴 건 이렇듯 곧 휘발해버릴 숫자만이 아니다. 한 사람이 40년 넘게 일생을 던져 수집한 예술적 성취, 오직 카메라를 들었기에 넘나들 수 있었던 장르의 경계, 무엇보다 쓸모를 다하거나 잊혀졌던 것들에 다시 숨을 불어넣은 사진가의 연민이 그곳에 있었다. “구본창의 사물 사진은-아름다움을 고백한다”(김영민 서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평론의 문장처럼, 작가의 항해에 승선한 사람들은
‘어차피 창작자에게 고독이란 벗어날 수 없는 굴레이자 함께 가야 할 동반자이다. 모든 창작의 순간은 혼자만의 시간을 통해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사진가 구본창(71)이 자신의 에세이 <공명의 시간을 담다>에 썼던 말이다. 스스로를 지극히 내향적인 사람이라 정의하는 그는, 아마도 인터뷰하기 가장 어려웠던 인물 중 하나로 남을 것 같다. 말수가 적거나 수줍음을 타서가 아니다. 그의 대규모 회고전 ‘구본창의 항해’ 폐막을 나흘 앞둔 지난 6일 오후 서울시립미술관. 작가를 알아본 전시 관람객들이 한 걸음 옮길 때마다 사인을 받거나 함께 사진을 찍자며 줄을 늘어서서다. 고독을 평생 친구로 여기며 살았다는 구 작가는 한 사람 한 사람 정성껏 이름을 묻고 기꺼이 응답했다. 흰머리가 성성한 작가의 믿기 어려운 수준의 ‘아이돌 스타급 인기’를 실감하며, 예정보다 20여분이 지나서야 겨우 인터뷰 장소에서 마주 앉을 수 있었다. ▶▶ 11만명 승선한 <구본창의 항해>가 우리에게 남긴 것- 전문 읽기 ▷팬덤이 있는 건 알았지만, 이 정도였습니까. -얼떨떨 합니다. 45년을 카메라와 살았는데 이런 적은
살아가며 느끼는 그 수많은 감정에도 모양이 있을까. 스치듯 지나간 감정의 조각들이 결국 나라면, 그것은 대체 어디서 시작돼 지금의 모양에 이르렀을까.주가희(KAI, JU·47)는 그런 감정을 탐구하고 표현하는 작가(사진)다. 지난 6일부터 서울 인사동 마루아트센터에서 열리고 있는 첫 개인전 ‘From Scratch-감정의 기하학’엔 그가 지난 5개월을 집 안에서 한 발짝도 나오지 않은 채 작업한, 30여 점의 마음 조각이 한 데 모였다. 마루아트센터는 그룹전을 주로 해온 KAI, JU 작가의 신작들로 기획 초대전을 열었다. 판화 기법으로 주로 작업거친 표면 위에 자리 잡은, 반듯한 선들은 육각형을 이룬다. 그 육각형 안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정교하게 긋고 지나간 선, 무심히 긁힌 흔적, 흩뿌려진 점들이 기하학적 모양으로 한 화면 속에 존재한다. 검정에서 출발한 도형들은 하도 벗겨져 흰색에 가까운 옅은 회색으로, 아직 짙은 회색으로, 먹색으로도 존재한다. 이들은 대부분 중첩되고, 연결되며 그렇게 화면 위를 가로지른다. 멀리서 보면 규칙적이고 매끈한 선들이, 가까이서 보면 흠집과 상처로 가득하다. 누군가의 깊은 마음속에 들어온 것 같은 착각을 일으킨다.보이지 않는 감정을 들여다볼 수 있는 이 작업엔 여러 도구로 누르고 찍고 또 긁어내는, 여러 단계를 거친 판화 기법이 주로 쓰였다. 그 바탕은 작가가 홈메이드로 만든 5㎜ 두께의 두툼한 닥종이. 우둘투둘한 캔버스의 표면은 작가가 한지의 재료인 닥 섬유를 구입해 집 욕조에 물을 받아 일일이 풀어헤친 뒤 나무 틀에 올려 말리는 수십 번의 작업 끝에 완성됐다. 살아남은 종이 위에 잉크를 찍어내고, 그 위를 깎아내는 음각 기법, 일부는 볼
살아가며 느끼는 그 수 많은 감정들에도 모양이 있을까. 스치듯 지나간 감정의 조각들이 결국 나라면, 그것은 대체 어디서 시작돼 지금의 모양에 이르렀을까. 주가희(KAI, JU· 47)는 그런 감정을 탐구하고 표현하는 작가다. 지난 6일부터 서울 인사동 마루아트센터에서 열리고 있는 첫 개인전 'From Scratch -감정의 기하학'엔 그가 지난 5개월을 집 안에서 한 발자국도 나오지 않은 채 작업한, 30여 점의 마음 조각들이 한 데 모였다. 마루아트센터는 그룹전을 주로 해온 KAI, JU 작가의 신작들로 기획 초대전을 열었다. 거친 표면 위에 자리 잡은, 반듯한 선들은 육각형을 이룬다. 그 육각형 안을 자세히 들여다 보면 정교하게 긋고 지나간 선, 무심히 긁힌 흔적, 흩뿌려진 점들이 기하학적 모양으로 한 화면 속에 존재한다. 검정에서 출발한 도형들은 하도 벗겨져 흰색에 가까운 옅은 회색으로, 아직 짙은 회색으로, 먹색으로도 존재한다. 이들은 대부분 중첩되고, 연결되며 그렇게 화면 위를 가로지른다. 멀리서 보면 규칙적이고 매끈한 선들이, 가까이서 보면 흠집과 상처로 가득하다. 누군가의 깊은 마음 속에 들어온 것같은 착각을 일으킨다. 보이지 않는 감정을 들여볼 수 있는 이 작업엔 여러 도구로 누르고 찍고 또 긁어내는, 여러 단계를 거친 판화 기법이 주로 쓰였다. 그 바탕은 작가가 홈메이드로 만든 5㎜두께의 두툼한 닥종이. 우둘투둘한 캔버스의 표면은 작가가 한지의 재료인 닥 섬유를 구입해 집 욕조에 물을 받아 일일이 풀어헤친 뒤 나무 틀에 올려 말리는 수십 번의 작업 끝에 완성됐다. 절반 이상의 종이는 버려진다. 살아남은 종이 위에 잉크를 찍어내고, 그 위
킬리언 머피가 영화 ‘오펜하이머’로 생애 첫 아카데미(오스카) 남우주연상을 차지했다. 머피는 10일(현지시간) 미국 로스앤젤레스(LA) 돌비 극장에서 열린 제96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남우주연상 수상자로 호명됐다. 머피는 ‘오펜하이머’에 대해 “가장 창의적이고 가장 만족스러운 영화”라고 수상 소감을 밝혔다.▶[영화 오펜하이머 리뷰] https://www.arte.co.kr/stage/review/article/2425 1996년 데뷔 이래 처음으로 아카데미 남우주연상 후보에 오른 그는 단번에 수상까지 하는 영광을 안았다. 머피가 오스카 남우주연상을 받을 것이라는 예측은 지난해 ‘오펜하이머’가 개봉한 이후부터 줄곧 이어져 왔다. 그는 올해 초 영국 아카데미, 골든글로브, 미국배우조합상 등에서 잇따라 남우주연상을 차지하며 이런 예상에 무게를 실었다. 머피를 제치고 크리틱스초이스 시상식 등에서 남우주연상을 가져간 ‘바튼 아카데미’의 폴 지오메티가 대항마가 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오기도 했지만 오펜하이머의 무게감을 이기지 못했다. 크리스토퍼 놀런 감독이 연출한 ‘오펜하이머’는 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국의 원자폭탄 개발 프로젝트를 주도한 물리학자 로버트 오펜하이머의 삶을 그린 작품이다. 주인공 오펜하이머 역을 소화한 머피는 세상을 구하기 위해선 세상을 완전히 파괴할 수도 있는 무기를 개발해야 하는 과학자로서의 고뇌를 사실적으로 소화했다는 평을 들었다.1976년 아일랜드의 교육계 집안에서 태어난 머피는 대학에서 법학을 공부했다. 음악과 연극에 더 관심이 많았던 그는 연극 무대와 단편영화, TV 시리즈 등에 출연하며 배우 경력을 쌓았
배우 엠마 스톤이 요르고스 란티모스 감독의 '가여운 것들'로 생애 두 번째 아카데미(오스카) 여우주연상 트로피를 거머쥐었다. 스톤은 10일(현지시간) 미국 로스앤젤레스 돌비 극장에서 열린 제96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여우주연상 수상자로 호명됐다. 무대에 오른 그는 수상 소감에서 감정에 벅찬 듯 요르고스 감독을 향해 "벨라(엠마가 연기한 주인공)로 살게 해줘 고맙다"고 소감을 밝혔다. 스톤이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받은 것은 2016년 '라라랜드'로 첫 수상한 이후 8년 만이다. 그는 '라라랜드'와 '가여운 것들'로 두 번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후보에 올라 모두 수상하는 기록도 남겼다. 스톤은 올해 초부터 '가여운 것들'로 영국 아카데미, 골든글로브, 크리틱스초이스 등 굵직한 시상식에서 잇따라 수상하며 아카데미에서도 여우주연상을 받을 수 있을지 관심을 모았다. 그는 '플라워 킬링 문'의 릴리 글래드스톤과 각축을 벌였지만, 결국 트로피의 주인공이 됐다.'가여운 것들'은 스톤이 란티모스 감독과 네 번째로 호흡을 맞춘 작품이다. 스톤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가 천재 외과 의사에 의해 되살아난 '여자 프랑켄슈타인' 벨라 역을 맡았다. 성인 여성의 몸으로 유아기부터 지적인 인간으로 성장하는 과정을 실감 나게 연기해 관객과 평단의 박수를 받았다.할리우드 톱스타인 그가 파격적인 베드신과 노출신에 도전했다는 점도 높은 평가를 얻었다. 1988년 미국 애리조나주에서 태어난 스톤은 어린 시절부터 배우의 꿈을 꾸며 아역으로 활동했다. 2007년 코미디 영화 '슈퍼배드'로 이름을 알린 그는 흥행작 '좀비랜드'(2009)를
전 세계 갤러리들이 컬렉터들을 매혹하기 위해 한자리에 모이는 아트페어. 지난달 29일부터 나흘간 미국 로스앤젤레스 산타모니카공항에서 열린 ‘프리즈 LA’에선 30대의 국내 작가 한 명이 이변을 일으켰다. ‘꽃 정물’ 20여 점을 아트페어 시작 2시간 만에 모두 매진시킨 것. 주요 작품 3점은 2분도 안 돼 팔려나갔다. 이 그림의 주인공은 10년간 꽃에 빠져 지낸 김성윤 작가(39·사진)다.프리뷰 때부터 사람들은 웅성거렸다. 창립 54년 된 갤러리현대가 30대 젊은 작가에게 단독 부스를 내준 것도 최초였고, 그의 그림을 멀리서 보면 마치 17세기 플랑드르 화가들의 정물화를 모사한 듯 보였기 때문이다. 미국 전역에서 몰려든 컬렉터들은 이렇게 평가했다. “익숙한 꽃 정물인데, 가까이서 보면 완전히 새로운 해석이다. 화병은 동양적이면서도 모던한 분위기가 매혹적이다.” 다르게, 치열하게 바라보기그의 꽃 정물 시리즈인 ‘Arrangement(꽃꽂이)’는 2015년께 시작됐다. 이전까지 그는 인물화를 중심으로 작업해왔다. 그의 그림은 두 가지 면에서 시선을 사로잡는다. 우선 화병에 꽂힌 꽃이 다르다. 어떤 꽃봉오리는 뭉개져 있고, 어떤 꽃잎은 막 떨어지는 중이다. 꽃 대신 풍선이 자리하거나 폭삭 시든 상태인 것도 있다.이보다 더 눈길을 끄는 건 화병. 누구나 아는 세계적인 통조림의 상표 또는 유리병 브랜드가 화병을 대신하거나 한국의 도예가 유의정 작가의 작품들이 그대로 반영되기도 한다.“꽃에는 아름답다, 예쁘다는 수식어가 습관처럼 붙지만 오히려 꽃을 아름답게 하는 건 그걸 담고 있는 화기라고 생각했어요. 물을 담을 수 있는 모든 것이 화기가 될 수 있는데, 무
전 세계 갤러리들이 컬렉터들을 매혹하기 위해 한 자리에 모이는 아트페어. 지난 달 29일부터 나흘 간 미국 로스앤젤레스 산타모니카 공항에서 열린 '프리즈LA'에선 30대의 국내 작가 한 명이 이변을 일으켰다. '꽃 정물' 20여 점을 아트페어 시작 2시간 만에 모두 매진시킨 것. 주요 작품 3점은 2분도 안돼 팔려나갔다. 이 그림의 주인공은 10년 간 꽃에 빠져 지낸 김성윤(39) 작가다. 프리뷰 때부터 사람들은 웅성거렸다. 창립한 지 54년된 갤러리현대가 30대 젊은 작가에게 단독부스를 내준 것도 최초였고, 그의 그림을 멀리서 보면 마치 17세기 플랑드르 화가들의 정물화를 모사한듯 보였기 때문이다. 미국 전역에서 몰려든 컬렉터들은 하나같이 이렇게 평가했다. "익숙하고 화사한 꽃 정물인데, 가까이서 보면 완전히 새로운 해석이다. 꽃을 꽂아둔 화병은 동양적이면서도 모던한 분위기가 매혹적이다." 다르게, 치열하게 바라보기 그의 꽃 정물 시리즈인 'Arrangement(꽃꽂이)'는 2015년께 시작됐다. 이전까지 그는 인물화를 중심으로 작업을 해왔다. 그의 그림은 두 가지 면에서 시선을 사로 잡는다. 우선 화병에 꽂힌 꽃이 다르다. 어떤 꽃봉오리는 뭉개져있고, 어떤 꽃잎은 막 떨어지는 중이다. 꽃 대신 풍선이 자리하거나 폭삭 시든 상태인 것도 있다. 이보다 더 눈길을 끄는 건 화병. 누구나 아는 세계적인 통조림의 상표, 또는 유리병 브랜드가 화병을 대신하거나 한국의 도예가 유의정 작가의 작품들이 그대로 반영되기도 한다. "꽃에는 아름답다, 예쁘다는 수식어가 습관처럼 붙지만 오히려 꽃을 아름답게 하는 건 그걸 담고 있는 화기라
홍상수 감독이 신작 '여행자의 필요(A Traveler's Needs)'로 제 74회 베를린영화제에서 심사위원대상을 받았다. 베를린영화제 경쟁 부문 심사위원단은 24일(현지시간) 오후 베를리날레 팔라스트에서 홍상수 감독의 '여행자의 필요'를 은곰상 심사위원대상 수상작으로 발표했다. 홍 감독이 은곰상 심사위원대상을 받은 건 지난 2022년 이후 두번째. 2022년 당시 홍 감독은 '소설가의 영화'로 은곰상 심사위원 대상을 받았다. 은곰상 심사위원 대상을 받은 한국 감독은 홍상수 감독이 유일하다. 베를린영화제에서 은곰상 심사위원대상(Silver Bear Grand Jury Prize)은 최고의 영화 작품에게 주는 황금곰상 다음으로 높은 상이다. 이번 수상으로 홍 감독은 2회의 은곰상 심사위원대상을 포함, 베를린영화제 경쟁 부문에 7차례 진출해 부문별 작품상인 은곰상만 모두 5번 수상하는 기록을 세웠다. 홍 감독은 2021년 '인트로덕션'으로 은곰상 각본상, 2020년 '도망친 여자'로 은곰상 감독상, 2017년 '밤의 해변에서 혼자'로 김민희가 은곰상 여우주연상을 받았다. 그는 이날 시상대에 올라 "심사위원단에 감사하다"며 "내 영화에서 뭘 봤는지 모르겠다. 궁금하다"고 소감을 밝혔다. '여행자의 필요'는 홍 감독의 31번째 장편이다. 프랑스에서 한국으로 온 이리스가 두 명의 한국 여성에게 불어를 가르치고, 막걸리를 마시면서 고된 삶 속에서도 평온을 찾아가는 이야기다. 칸 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두 차례 받은 프랑스 배우 이자벨 위페르가 이리스를 연기했다. 이자벨 위페르가 홍 감독과 호흡을 맞춘 건 2012년 '다른 나라에서', 2018년 '클레어의 카메라'
북미와 남미의 통로인 플로리다주 마이애미. 1990년대 마약과 총격이 빈번하던 범죄도시가 지금은 전 세계 부호의 초호화 별장지이자 글로벌 기업 본사가 몰려드는 명품과 예술의 도시로 탈바꿈했다. 지난 20년간 마이애미의 얼굴을 바꾼 수많은 조력자의 중심은 크레이그 로빈스 다크라 회장(61·사진)이다.마이애미 노스이스트 42번가는 1920년대 파인애플 농장 지대였고, 2000년대 초까지 쇠락의 길을 걸었다. 마이애미의 대표적 낙후 지역이던 이곳은 부동산 개발사 다크라가 2010년부터 ‘디자인 디스트릭트’로 개발하면서 명품 숍과 디자인 가구 쇼룸, 고급 레스토랑, 130여 개 미술관과 갤러리가 한데 모인 명품 지구가 됐다. 건축물과 간판에도 디자인 요소를 입혀 길을 걷는 누구나 예술적 감성을 느낄 수 있는 공공예술의 명소가 된 것.앞서 1999년 그가 추진한 앨리스 섬 재개발은 민간 주거 커뮤니티에 초대형 벽화를 내거는 등 디자인과 건축에 이르는 공공 예술 프로젝트로 화제를 모았다. 지금도 도시 재생의 롤모델로 꼽힌다.살바도르 달리 등의 그림 7000여 점을 보유한 컬렉터이자 현대미술 작가들의 후원가로, 아트바젤 마이애미 기간에 ‘디자인 마이애미’라는 아트페어를 기획해 파리로 수출한 그를 인터뷰했다.▷부동산 개발에 어떻게 예술 접목했나.“1982년 스페인 바르셀로나대에서 잠시 유학했다. 그때 고야, 피카소 등의 매혹적인 작품을 접하며 예술에 빠져들었다.경이로운 건축물들 자체로 도시 전체가 최고의 예술 작품이었다. 예술과 디자인, 문화적 경험이 그 도시에 사는 사람들에게 얼마나 큰 영향을 끼치는지 깨닫고, 모든 기준이 바뀌었다. 부동산 개발의 접근법
미국에서 가장 큰 미술관이자 뉴욕의 상징 메트로폴리탄미술관. 고대 이집트부터 유럽과 미국, 아시아에서 모인 300만 점 이상의 작품을 소장하고 있어 흔히 영국 대영박물관, 프랑스 루브르박물관과 함께 세계 3대 미술관으로 꼽힌다.대영박물관과 루브르박물관이 왕실 보관품이나 제국주의 시대 다른 나라에서 가져온 예술품들을 토대로 국가 차원에서 건립했다면 메트로폴리탄미술관은 철저하게 민간의 기증으로 세워졌다. 1866년 파리에 살던 미국인들이 미국 독립기념일을 축하하기 위해 모인 자리에서 “미국에도 이제 명품 미술관 하나쯤은 있어야 하지 않겠냐”고 뜻을 모은 게 계기였다. 1870년 그 뜻에 동참한 변호사, 사업가, 예술가들은 십시일반으로 기금과 기증품을 모아 뉴욕에 메트로폴리탄미술관을 개관했다.메트로폴리탄미술관의 등장은 미국의 국격을 높이는 분기점이 됐다. 20세기 초 산업화 시기 막대한 부를 거머쥔 미국인들을 (유럽에 대한) 문화적 열등의식에서 벗어나게 했고, 부를 가진 자들이 더 많은 미술관을 짓게 했다. ‘메트로폴리탄미술관 효과’는 뉴욕을 세계 문화의 중심지로 만드는 데 큰 몫을 했고, 쇼 비즈니스와 상업 예술의 메카였던 도시를 ‘영원불멸의 명화 한 점을 보러 찾아오는’ 명품 도시로 만들었다. 서부엔 게티, 동부엔 구겐하임미국 최대 석유 재벌이던 J. 폴 게티(1892~1976)는 다른 영역에선 소문난 구두쇠였지만 미술품은 광적으로 수집했다. 20대 초 이미 막대한 부를 거머쥔 그는 로스앤젤레스(LA)에 게티빌라와 게티센터라는 두 개의 보석 같은 미술관을 남겼다. 당시 건축비만 13억달러 이상(약 1조7000억원)을 투입해 규모 7.5 지진에
“사우디아라비아를 세계 최대의 ‘벽 없는 갤러리’로.”지난해 11월 30일 건조한 바람이 휘몰아치는 사우디아라비아 수도 리야드에는 화려한 빛을 뿜어내는 예술 작품 120여 점이 들어섰다. 고층 빌딩과 모래사막 곳곳에 세계 35개국 100명의 현대미술가가 펼쳐놓은 대형 작품들. 리야드 시내는 물론 금융지구, 공원 등 도심을 둘러싼 5개 주요 장소가 누구나 즐길 수 있는 빛의 축제 ‘누어 리야드’의 중심으로 떠올랐다. 이 축제에는 베를린에서 활동하는 프랑스계 스위스 예술가 줄리안 사리에르의 ‘현기증’, 코펜하겐에 기반을 둔 예술집단 슈퍼플렉스의 ‘수직이동’ 등이 출품돼 17일간 ‘빛으로 물든 사막 도시’가 연출됐다. 총감독은 파리를 대표하는 현대미술관 ‘팔레 드 도쿄’를 만든 제롬 상스.사막과 석유, 마천루의 이미지가 전부였던 중동은 지금 세계 문화예술의 중심으로 탈바꿈하고 있다. 중동 각국은 문화예술 산업을 마르지 않는 ‘22세기 유전’으로 보고 2030년까지 수천억달러의 예산을 투입할 계획이다. 미술관 하나 잘 지어 해당 지역의 국내총생산(GDP)만큼 수익을 벌어들이는 ‘제2의 빌바오 효과’를 노리는 것도 있지만, 문화 인프라 발전 정도가 그 나라의 국격을 높이고 국민 삶의 질을 끌어올리는 결정적인 요인으로 평가받고 있는 게 그 배경이다. 아부다비 간 루브르, 연 100만명 찾는다중동의 문화예술 투자는 일회성 축제에 그치지 않는다. 유럽과 미국, 아시아의 예술가나 기관, 단체와 적극적으로 손을 잡는 한편 자신들의 전통 문화와 자연유산, 현지 예술가들과 융합시키는 영리한 전략으로 승부한다. 사우디,
‘세계화는 끝났다. 새로운 세계 질서는 무엇이 재편할 것인가.’글로벌 무역과 정보기술(IT)이 주도한 세계화 속도가 둔화하는 가운데 각국이 고심하는 화두다. 20세기는 세계화의 시대였다. 인류의 모든 문명이 자본과 기술을 가진 소수 국가에 의해 하나의 체계로 수렴했다. 국가 간 경계와 문화적 다양성은 자연스럽게 흐려졌다. 세계화는 ‘위기의 세계화’이기도 했다. 2008년 금융위기와 코로나19 팬데믹이 결정적 증거다.‘그다음은 무엇인가’에 대한 해답을 각국은 문화예술에서 찾고 있다. 숫자가 보여준다. 글로벌 시장조사기관 리서치앤드마켓에 따르면 세계 예술시장 규모는 2022년 4410억달러(약 588조원)에서 지난해 5795억달러(약 772조원)로 커졌다. 박물관과 공연장, 문화예술 관련 축제와 박람회 등을 합친 수치다. 세계 반도체시장 규모(약 800조원)에 육박한다.코로나 팬데믹은 ‘문화예술이 미래의 핵심 자본이자 국격을 좌우하는 힘’이라는 믿음을 국경을 넘어 퍼뜨린 도화선이 됐다. 2021년 전 세계에 등장한 문화 시설 관련 프로젝트는 211건, 총금액은 112억달러를 넘어섰다. 2022년엔 150억달러 이상 규모의 문화예술 시설이 전 세계 도시에 들어섰다.문화전쟁엔 국경이 없다. 석유로 막대한 부를 쌓은 중동은 이제 마천루 경쟁에서 벗어나 미술관과 박물관, 콘서트홀 등 문화예술 인프라 투자에 천문학적 예산을 쏟아붓고 있다.이미 탄탄한 문화예술 인프라를 갖춘 미국과 유럽도 마찬가지다. 지난해 새로 지어진 문화예술 시설 투자 중 상위 3개는 미국 플로리다의 올랜도 필립스공연예술센터(약 8128억원), 노르웨이 오슬로 국립박물관(약 7675억원), 미국 뉴욕 링컨센터
“당신을 ‘취향의 집(House of Taste)’으로 초대합니다.”지난 22일 서울 한남동 뉴스프링프로젝트 갤러리. 전날 내린 눈이 소복이 쌓인 이태원의 언덕을 조금 오르자 ‘House of Taste’라는 붉은 팻말이 등장했다. YG엔터테인먼트의 자회사 YG플러스가 기획한 첫 미술 전시회의 오프닝. 문을 열고 들어서자 8명의 작가가 마치 자신의 작업실에 초대하듯 관람객들을 맞이했다.이 전시는 두 가지 측면에서 기존 갤러리 전시들과 달랐다. 하얀색 벽이나 넓은 공간에 작업을 걸거나 놓아두는 방식이 아니라 공간 곳곳을 마치 ‘누군가의 집’처럼 꾸몄다는 점. ‘그룹전’이지만 도예, 가구 디자인, 회화, 공예를 넘나드는 다양한 장르의 1980~1990년대생 스타 작가들을 한데 모아 서로 경계를 허물고 협업하게 했다는 점이다. YG플러스의 아트레이블 진출, 왜?YG플러스는 그동안 음악 관련 지식재산권(IP) 사업에 주력해온 회사다. YG 소속 음악가들, 음원, 음반의 캐릭터 사업이나 음악 플랫폼 운영 대행, 음원 투자 유통 등을 맡았다. 1996년 설립돼 2013년 YG엔터의 자회사로 공식 편입됐다.이날 공식 출범한 ‘아트 레이블’의 이름은 피시스(PEECES). K팝의 글로벌 수출 시스템을 구축한 노하우를 미술 시장에 접목하겠다는 취지다. 엔터테인먼트 회사가 순수 예술 작가의 매니지먼트에 나선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기존 미술 시장은 전통적으로 주요 갤러리가 전속 작가를 두고 전시회를 열거나 아트페어에 작품을 출품해 컬렉터들과 연결하는 역할을 해왔다. YG는 순수 예술 영역과 대중 예술 영역의 접점을 찾아 미술 시장에 대한 진입장벽을 낮추고 ‘국경 없이 모두가 즐길 수 있는
미국에서 가장 큰 미술관이자, 뉴욕의 상징 메트로폴리탄미술관. 고대 이집트부터 유럽과 미국, 아시아에서 모인 300만 점 이상의 작품을 소장하고 있어 흔히 영국 대영박물관, 프랑스 루브르박물관과 함께 세계 3대 미술관으로 꼽힌다. 메트로폴리탄미술관이 다른 두 곳과 차이점이 하나 있다면 그 태생이다. 대영박물관과 루브르박물관이 왕실 보관품이나 제국주의 시대 다른 나라에서 가져온 예술 작품들을 토대로 국가 차원에서 건립했다면, 메트로폴리탄미술관은 철저하게 민간의 기증으로 세워졌다. 1866년 파리에 살던 미국인들이 미국독립기념일을 축하하기 위해 모인 자리에서 "미국에도 이제 명품 미술관 하나쯤은 있어야 하지 않겠냐"고 뜻을 모은 게 계기였다. 그로부터 4년 뒤인 1870년 그 뜻에 동참한 변호사, 사업가, 예술가들은 십시일반으로 기금과 기증품을 모아 소규모로 뉴욕에 메트로폴리탄미술관을 개관했다. ‘더 메트’의 등장은 미국의 국격을 높이는 분기점이 됐다. 20세기 초 산업화 시기 막대한 부를 거머쥔 미국인들을 (유럽에 대한) 문화적 열등 의식에서 벗어나게 했고, 부를 가진 자들이 더 많은&nbs
북미와 남미의 통로인 플로리다주 마이애미. 1990년대 마약과 총격이 빈번하던 범죄도시가 지금은 전 세계 부호들의 초호화 별장지이자 글로벌 기업 본사들이 몰려드는 명품과 예술의 도시로 탈바꿈했다. 지난 20년 간 마이애미의 얼굴을 바꾼 수 많은 조력자들 중 크레이그 로빈스 다크라 회장(61)이 그 중심에 있다. 마이애미 노스이스트 42번가는 1920년대 파인애플 농장 지대였고, 2000년대 초까지 쇠락의 길을 걸었다. 마이애미의 대표적인 낙후 지역이었던 이곳은 부동산 개발사 다크라가 2010년 부터 '디자인 디스트릭트'로 개발하면서 명품 숍과 디자인 가구 쇼룸, 고급 레스토랑, 130여 개 미술관과 갤러리가 한 데 모인 명품 지구가 됐다. 건축물과 간판에도 디자인 요소를 입혀 길을 걷는 누구나 예술적 감성을 느낄 수 있는 공공예술의 명소가 된 것. 앞서 1999년 그가 추진한 앨리스섬 재개발은 민간 주거 커뮤니티에 초대형 벽화를 내거는 등 디자인과 건축에 이르는 공공 예술 프로젝트로 화제를 모았다. 지금도 도시 재생의 롤모델로 꼽힌다. 살바도르 달리 등 그림 7000여 점을 보유한 큰손 컬렉터이자 현대미술 작가들의 후원가로, 아트바젤 마이애미 기간 ‘디자인 마이애미’라는 아트페어를 만들어 파리로도 수출한 그를 인터뷰했다. 부동산 개발
‘세계화는 끝났다. 새로운 세계 질서는 무엇이 재편할 것인가.’ 글로벌 무역과 정보기술(IT)이 주도한 세계화 속도가 둔화하는 가운데 각국이 고심하는 화두다. 20세기는 세계화의 시대였다. 인류의 모든 문명이 자본과 기술을 가진 소수 국가에 의해 하나의 체계로 수렴했다. 국가 간 경계와 문화적 다양성은 자연스럽게 흐려졌다. 세계화는 ‘위기의 세계화’이기도 했다. 2008년 금융위기와 코로나19 팬데믹이 결정적 증거다. ‘그 다음은 무엇인가’에 대한 해답을 각국은 문화예술에서 찾고 있다. 숫자가 보여준다. 글로벌 시장조사기관 리서치앤드마켓에 따르면 세계 예술시장 규모는 2022년 4410억달러(약 588조원)에서 지난해 5795억달러(약 772조원)로 커졌다. 박물관과 공연장, 문화예술 관련 축제와 박람회 등을 합친 수치다. 세계 반도체시장 규모(약 800조원)에 육박한다. 코로나 팬데믹은 ‘문화예술이 미래의 핵심 자본이자 국격을 좌우하는 힘’이라는 믿음을 국경을 넘어 퍼뜨린 도화선이 됐다. 2021년 전 세계에 등장한 문화 시설 관련 프로젝트는 211건, 총금액은 112억달러를 넘어섰다. 2022년엔 150억달러 이상 규모의 문화예
"당신을 '취향의 집(House of Taste)'으로 초대합니다." 지난 22일 오후 한남동 뉴스프링프로젝트 갤러리. 전날 내린 눈이 소복히 쌓인 이태원의 언덕을 조금 오르자 'House of Taste'라는 붉은 팻말이 등장했다. YG엔터테인먼트의 자회사 YG플러스가 기획한 첫 미술 전시회의 오프닝. 문을 열고 들어서자 8명의 작가들이 마치 자신의 작업실에 초대하듯 관람객들을 맞이했다. 이 전시는 두 가지 측면에서 기존 갤러리 전시들과 달랐다. 하얀색 벽이나 넓은 공간에 작업들을 걸거나 놓아두는 방식이 아니라, 공간 곳곳을 마치 '누군가의 집'처럼 꾸몄다는 점. '그룹전'이지만 도예, 가구 디자인, 회화, 공예를 넘나드는 다양한 장르의 80년대~90년대생 스타 작가들을 한 데 모아 서로 경계를 허물고 협업하게 했다는 점이다. YG플러스의 아트레이블 진출, 왜? YG플러스는 그 동안 음악 관련 IP(지적재산권) 사업에 주력해온 회사다. YG 소속 음악가들, 음원, 음반의 캐릭터 사업이나 음악 플랫폼 운영 대행, 음원 투자 유통 등을 맡았다. 1996년 설립돼 2013년 YG엔터의 자회사로 공식 편입됐다. 이날 공식 출범한 '아트 레이블'의 이름은 피시스(PEECES). K팝의 글로벌 수출 시스템을 구축했던 노하우를 미술 시장에 접목하겠다는 게 큰 취지다. 엔터테인먼트 회사가 순수 예술 작가의 매니지먼트에 나선 것은 이번이 처음. 기존 미술 시장은 전통적으로 주요 갤러리가 전속 작가를 두고 전시회를 열거나 아트페어에 작품을 출품해 컬렉터들과 연결하는 역할을 해왔다. YG는 순수 예술 영역과 대중 예술 영역의 접점을 찾아 미술 시장에 대한 진입장벽을 낮추고
손가락 몇 번만 움직이면 전 세계 어디서든, 무엇이든 살 수 있고 한밤중에 주문한 물건이 해 뜰 무렵 집 앞까지 배달되는 시대다. “한 번쯤 갖고 싶다”는 간절한 마음과 기나긴 고민 따위는 사라진 요즘, 타인에게 주는 선물의 의미와 그 과정도 당연히 달라졌다. 수 세기에 걸쳐 ‘아날로그 소비’를 고집하는 문화가 남아있는 곳이 있다면 일본이다. 여행을 떠나 그곳의 추억과 행복을 담아와 가까운 사람들에게 직접 전하는 작은 선물 ‘오미야게’.오미야게 문화는 해외여행마저 흔해진 지금의 세대에 더 특별한 것이 됐고, 일본의 관광산업을 떠받치는 연 9조원대의 황금알이 됐다. 도쿄 바나나, 후쿠오카 병아리빵, 홋카이도 시로이 코이비토 등 ‘한입 간식’은 지역 명물에서 전국구 명물이 됐고 이제 세계인의 입맛을 사로잡은 일본의 대표 먹거리로 자리 잡았다. 작고 사소한 것들을 오랜 시간 지켜나가는 것을 미덕으로 삼는 일본인의 특성 때문일까. 오미야게의 기준을 규정하고 연구하는 ‘오미야게학회’도 있고 매년 철도회사 JR이 선정하는 ‘오미야게 그랑프리’ 대회도 열린다.일본 각 지역을 오가는 여행자마다 두 손 가득 담아 오는 오미야게에는 특별한 이야기들이 숨어 있다. 야생 다람쥐가 많은 지역인 가라쿠마 지역의 특징을 담은 호두 파이 과자 ‘구루밋코’, 눈이 많이 내리는 일본의 대표 낙농왕국 홋카이도의 화이트초콜릿 ‘시로이 고이비토’, 100년 전 한 제과점 사장이 잠을 자다 병아리에 파묻히는 꿈을 꾼 뒤 만든 ‘히요코 만주’까지…. 섬세하고 개성 있는 모양, 하나씩 정성껏 포장된 오미야게를 받아 든 이들
말발굽 모양으로 넓게 펼쳐진 초가집, 어깨 위에 쟁반줄을 단단히 매고 사탕을 파는 조선의 어린 소년들, 일제강점기 때 광희문 밖 꼭꼭 숨어있던 빈민굴, 노량진의 무녀촌, 그리고 1884년 경희궁에 서서 파노라마로 찍은 서울…. 한국인들도 잘 몰랐던 옛날 서울의 모습들이 책으로 엮여 나왔다. 서울역사박물관은 미국 워싱턴 D.C. 의회도서관의 판화·사진분과 자료 등을 조사해 학술총서 <미국 의회도서관 소장 서울 사진: 네 개의 시선>을 발간했다고 12일 밝혔다. 140년 전 미국에서 온 외교관, 여행가, 조선총독부, 외신 자료를 총망라한 이 책엔 1880년대부터 80여 년 간 격동의 서울을 포착한 163점의 사진이 담겼다. 특히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 '생활상태조사'의 기초자료 일부는 미 의회에서도 공개한 적 없는 희귀본들이다. <네 개의 시선>에는 조선 말기부터 1960년대까지 4개의 컬렉션이 담겼다. 미국 외교관, 여행 저널리스트, 조선총독부, 미국 언론사 등이 각각의 시선으로 바라본 서울이 주제다. '조지 C.포크 컬렉션'은 통역사로 조선에 온 보빙사 일행을 수행한 뒤 이를 계기로 조선의 미국 공사관에서 외교 무관으로 파견된 미국 해군 장교 조지 포크(1856-1893)가 촬영한 사진들이다. 포크는 고종의 근대화 사업 자문 역할을 맡으며 남산에서 본 서울 전경과 숭례문과 성벽 밖 민가의 사진 등 현존하는 숭례문 사진 중 가장 이른 시기의 사진들을 남겼다. 1884년 부임 후부터 1년간 찍은 사진들로 그가 머물던 정동과 경희궁 일대 1880년대 서울 풍경을 상세히 담았다. 책은 '프랭크 G.카펜터 컬렉션'으로 이어진다. 그는 세계 곳
미국 애니메이션 ‘월E’처럼 엉성한 로봇들이 서울 삼청동 국립현대미술관 ‘올해의 작가상 2023’ 제4전시장을 배회하고 있다. 외나무다리에서 고개를 젓거나 수도승이 절을 하듯 전시장을 걷는다. 멈춰 서서 노래하는가 하면, 곧 반대편 로봇이 부채를 펼쳤다가 접는다.이들의 몸짓은 느리고, 또 느리다. 어두운 공간 속 절제된 조명과 사운드만으로 서서히 몰입하게 한다. 전시장 한구석, 이 모든 시퀀스를 섬세하게 제어하는 한 사람이 있다. 지난해 10월 20일부터 전시장을 지키고 있는 작가, 권병준(53)이다. 직접 만든 로봇으로 가장 서정적이고 명상적인 공간과 연극적 전시를 창조해낸 그는 반전의 이력을 갖고 있다. 1990년대 ‘삐삐롱스타킹’이라는 밴드의 보컬 ‘고구마’라는 이름으로, 악동 가수 반열에 올랐던 뮤지션이다.그는 돌연 대중의 눈에서 멀어졌다. 새 앨범을 내고 한창 활동을 이어가던 1997년 공영방송 MBC의 한 음악 프로그램에서 타이틀곡 ‘바보버스’를 부르다가 손가락 욕을, 다른 멤버는 카메라에 침을 뱉으며 방송 정지 처분을 받기도 했다. (지금까지 ‘역대급 방송사고’ 톱10에 남아 있다). 이후 그는 네덜란드로 떠났다. 서울대 불문과 출신인 권 작가는 헤이그 왕립음악원에서 소리학과 아트사이언스를 배운 뒤 사운드 엔지니어와 소리 관련 하드웨어 연구자로 일했다. 9년간의 해외 생활을 마치고 돌아온 그는 미술관과 연극 무대를 넘나들며 ‘소리와 공학이 결합된 예술’을 꾸준히 선보였다.이번 전시된 작품은 ‘외나무다리를 건너는 로봇’(2023), ‘일어서는 법’(2023·사진), ‘오체투지 사다리봇’(2022) 등
천사의 도시 로스앤젤레스(Los Angeles)는 예술의 도시다. ‘영화의 성지’ 할리우드를 품고 있어서만은 아니다. 미국 전역을 통틀어 가장 많은 미술관과 박물관이 있다.서부의 심장인 LA는 동부에 비해 미술관이 훨씬 늦게 지어졌지만, 미국의 다른 주에서 볼 수 없는 예술 생태계가 있다. 서부 지역 부호들의 기부금과 기증으로 설립된 미술관들에는 고흐, 세잔, 드가, 마그리트, 마네, 모네, 피카소 등 역사적인 명화는 물론 동시대를 이끌어가는 ‘지금의 예술’들이 한데 모여 있다. 19세기 후반부터 아시아계 등 수많은 국적의 이민자를 받아들이며 성장한 도시여서일까. LA 예술계가 받아들이는 문화의 스펙트럼은 다른 어느 주보다 넓고도 깊다. 그런 LA에서 올해 유난히 많은 예술 행사가 열린다. 세계 최대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의 역사와 문화를 알리는 ‘데스티네이션 크렌쇼’가 2.1㎞ 대로를 따라 펼쳐진다. 그래미상을 받은 아티스트이자 유명 컬렉터인 드레이크는 문화예술계에 전설처럼 회자하던 ‘루나 루나’를 다운타운LA에 복원했다. 루나 루나는 1987년 독일 함부르크에 혜성처럼 등장했던 예술 놀이공원으로 장 미셸 바스키아, 데이비드 호크니, 로이 리히텐슈타인, 살바도르 달리, 키스 해링 등 당대 최고 예술가 30여 명이 참여한 프로젝트다.9월에는 미국 최대 아트페어인 ‘PST아트: 예술과 과학의 충돌’이 도시 전역에서 열린다. 818명이 넘는 아티스트가 참여하는 50개 이상의 전시가 예정돼 있다. 무엇보다 LA를 특별하게 만드는 것은 도심과 근교에서 만나는 수많은 미술관이다. 자신의 이름이 예술과 함께 영원히 기억되길 바란 미국 석유 재벌 폴 게티의 미술관
로스앤젤레스(LA)의 간판 미술관이자 15만 점 이상의 작품을 소장한 로스앤젤레스카운티미술관. “라크마(LACMA)”란 애칭으로 불리는 이곳의 전시와 작품들은 하루 온종일 둘러봐도 시간이 모자랄 지경이지만, 그 중에서도 사람들이 30분 이상 머물다 가는 작품이 하나 있다. LA를 기반으로 활동했던 아티스트 크리스 버든(1946~2015)의 ‘메트로폴리스Ⅱ’다. 6차선 고속도로, 18개 도로가 수 많은 빌딩 숲을 지나고 그 위를 1100대의 미니카가 시속 약 386㎞로 질주한다. 이 차들은 멈추는 법이 없다. 경사로를 슬금슬금 올라가 롤러코스터를 타듯 내리막길을 미끄러져 내린 뒤 그저 달린다. 미술관이 쉬는 수요일을 제외하고, 하루 5~6회. 매시 정각 출발해 30분간 굉음을 내며 움직인다. 미니카의 질주에 리듬감을 부여하는 건 다소 천천히 돌아다니는 13대의 기차. 레고 블록과 통나무, 아크릴 등으로 제작된 200여 개의 건물은 전 세계 도시의 랜드마크 건물들을 옮겨놓은 듯 미로처럼 얽혀 있다. 시끄러운 소음과 복잡하게 얽힌 도시의 모습은 처음 보는 이들에게 낯설고 두렵기까지 하지만, 계속 들여다보면 나름의 규칙적
천사의 도시 로스앤젤레스(Los Angeles)는 예술의 도시다. ‘영화의 성지’ 할리우드를 품고 있어서만은 아니다. 미국 전역을 통틀어 가장 많은 미술관과 박물관이 있다. 서부의 심장인 LA는 동부에 비해 미술관이 훨씬 늦게 지어졌지만, 미국의 다른 주에서 볼 수 없는 예술 생태계가 있다. 서부 지역 부호들의 기부금과 기증으로 만들어진 미술관들엔 고흐, 세잔, 드가, 마그리트, 마네, 모네, 피카소 등 역사적인 명화는 물론 동시대를 이끌어가는 ‘지금의 예술’들이 한 데 모여있다. 19세기 후반부터 아시아계 등 수 많은 국적의 이민자들을 받아들이며 성장한 도시여서일까. LA의 예술계가 받아들이는 문화의 스펙트럼은 다른 어느 주보다 넓고도 깊다. 그런 LA에선 올해 유난히 많은 예술 행사들이 열린다. 세계 최대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의 역사와 문화를 알리는 ‘데스티네이션 크렌쇼’가 2.1㎞ 대로를 따라 설치된다. 그래미상을 받은 아티스트이자 유명 컬렉터인 드레이크는 문화예술계 전설처럼 회자되던 ‘루나 루나’를 다운타운LA에 복원했다. 루나 루나는 1987년 독일 함부르크에 혜성처럼 등장
장 미셸 바스키아의 드로잉으로 가득한 대관람차, 키스 해링이 만든 회전목마, 데이비드 호크니와 로이 리히텐슈타인이 외벽을 가득 채색한 파빌리온…. 미술을 좀 안다는 사람들의 꿈 속 이야기가 아니다. 독일 함부르크 한복판에 잠시 존재했던, 전설이 된 30여 명의 아티스트가 실제 참여했던 테마파크 이야기다. 때는 바야흐로 1987년. 오스트리아 출신 예술가 안드레 헬러(75)는 당대 최고의 예술가들을 한 곳에 모아 놀이기구로 가득한 예술 테마파크 '루나 루나'를 만들었다. 예술가들에게 지급되는 금액은 고작 1만달러. 헬러는 “루나 루나는 어린 시절로 돌아갈 수 있는 여행이다. 누구나 자신만의 놀이공원을 디자인할 수 있다”고 설득했다. 꼬박 10년이 걸렸다. 독일 한 잡지사가 50만달러를 투자해 문을 연 '루나 루나'엔 그해 여름에만 25만 명이 다녀갔다. 언론들은 “지구상에서 가장 아찔하고 눈부신 예술 쇼”라고 평가했고, 맥도날드가 인수 제안을 하는 등 몸값도 치솟았다. 사람들은 열광했지만, 현실은 혹독했다. 한 계절을 넘기지 못하고 문을 닫았다. 예술 축제를 지향하던 이 카니발은 유럽과 미국 투어를 계획했다가 소유권 변경과 계약 분쟁으로 소송에 휘말리며 해체됐다. 작품들은 44개의 컨테이너에 담겨 창고에 들어갔다. 30년 넘게 텍사스주 한가운데 방치돼 잠들어 있었다. 모두가 루나루나의 잊고 있던 지난해 12월 15일, 로스앤젤레스 한복판에 '루나루나'가 깨어났다. LA다운타운의 1601 이스트 6번가 '에이스 미션 스튜디오'에서다. '루나 루나 : 잊혀진 판타지'라는
수천만 번의 망치질로 고정한 셀 수 없이 많은 단추, 겹겹이 이어져 입체적인 색을 뿜어내는 실들. 이것들은 벚나무가 되고, 꽃봉오리가 되고, 새가 되고, 궁궐이 된다. 한국보다 해외에서 더 이름난 설치 작가, 황란(64)의 작품들이다.황란의 전시 ‘Ascent of Eternity, a Requiem(영원 속으로 승천하는, 진혼곡)’이 지난 20일 서울 반포동 채빛섬 애니버셔리 뮤지엄에서 개막했다. 이번 전시는 라이팅 아티스트 크리스 공(공경일)과 협업했다. 작품 활동 전환점이 된 9·11 테러‘Another moment of rising(비상하는 또 다른 순간, 2023)’에선 붉은 날개를 힘차게 뻗어낸 검은 독수리가 용맹하게 날아오르는 모습이 펼쳐진다. 높이 4m, 넓이 16m의 타원형 설치 작품에 빛과 향이 혼합해 주변을 돌며 감상할 수 있다. ‘Dreaming of Joy(행복을 꿈꾸며, 2008)’는 새장 안의 붉은 새가 흩날리는 붉은 장미꽃잎, 꽃봉오리들과 어우러진다.황 작가는 원래 ‘단추의 아티스트’로 잘 알려져 있다. 일상적인 재료이자 아주 작은 소품인 단추는 그의 손에서 스펙터클한 건축물과 형상으로 진화한다. 미국 뉴욕에서 작품 활동을 시작해 뉴욕 퀸즈미술관, 브루클린미술관에서 작품을 선보인 그는 유럽과 아랍에미리트, 아시아 주요국에서 전시를 열었다. 뉴욕 휴스턴미술관과 브루클린미술관, 국립현대미술관, 아부다비 왕립미술관 등이 영구 소장했고, 테니스 스타 로저 페더러 등 다수의 개인 소장가도 그의 작품을 품었다. 2021년엔 페이스북 뉴욕에서 전시해 화제를 모았다.부산 출생인 그는 남들보다 늦은 나이인 30대 후반 뉴욕으로 유학을 떠났다. 1997년부터 SVA(스쿨 오브 비주얼아트)에서 공부하던 그에게 200
19세기 말 문화 혁명가이자 오스트리아 빈의 모더니즘을 이끈 예술가, 세계인이 사랑하는 '황금의 화가' 구스타프 클림트. 클림트 연구자들 사이엔 지난 100년간 풀리지 않는 미스테리가 있었다. 25장의 흑백 스케치로만 남아있는, 한 여인의 초상이었다. 클림트 말년의 유작이자 화려한 색을 입혀 완성한 '리제르양의 초상'(Portrait of Fräulein Lieser, 1917) 그림은 세상에 딱 한번, 1926년 5월 오스트리아 노이에 갤러리에의 전시회를 끝으로 자취를 감췄다. 클림트 사후 8년 뒤에 잠시 전시회에 나왔다가 사라진 그림의 행방은 이후 묘연했다. 빈 미술계는 '영원히 사라진 것'으로 간주했다. 1918년 클림트가 사망한 후 오스트리아는 나치 정권의 탄압과 전쟁으로 암울한 시기를 보냈고, 다수의 클림트 그림이 해외로 반출, 훼손되거나 경매에 부쳐졌기 때문이다. 100년간 사라졌던 '리제르양의 초상'이 25일(현지시간) 오스트리아 빈의 경매회사 '임 킨스키'에서 공개됐다. 오는 4월 24일 경매를 앞두고 소수의 컬렉터와 일부 미디어에 선공개한 것. 이 그림이 공개되자 오스트리아는 물론 유럽 전역이 들썩이고 있다. 이유는 두 가지다. 당연히 해외 반출됐을 거라 생각했던 그림을 오스트리아의 한 가문이 소유하고 있었다는 점, 지난해에 이어 클림트의 그림이 또다시 유럽 경매 사상 최고가 기록을 깰 것이라는 기대감 때문이다. 지난해 런던 소더비 경매에서 비슷한 시기에 그려진 '부채를 든 여인(Lady with a Fan)'이 1억800만달러(약 1440억원)에 팔리며 유럽 경매 사상 최고가 기록을 깬 점을 감안하면 이 그림의 추정가는 최소 1500억원을 넘을 것으로 보인다
19세기 말 문화 혁명가이자 오스트리아 빈의 모더니즘을 이끈 예술가, 세계인이 사랑하는 ‘황금의 화가’ 구스타프 클림트(사진). 클림트 연구자들 사이엔 지난 100년간 풀리지 않는 미스터리가 있었다. 25장의 흑백 스케치로만 남아 있는 한 여인의 초상이었다.클림트 말년의 유작이자 화려한 색을 입혀 완성한 ‘리제르 양의 초상’(Portrait of Frulein Lieser, 1917)은 세상에 딱 한 번 보여졌다. 1926년 5월 오스트리아 노이에갤러리에서의 전시회를 끝으로 자취를 감췄다. 클림트가 뇌졸중으로 갑작스레 사망한 지 8년 후 잠시 전시회에 나온 뒤로 그림의 행방은 묘연했다. 빈 미술계는 ‘영원히 사라진 것’으로 간주했다. 1918년 클림트가 사망한 뒤 오스트리아는 나치 정권의 탄압과 전쟁으로 암울한 시기를 보냈고, 다수의 클림트 그림이 해외로 반출·훼손되거나 경매에 부쳐졌기 때문이다.100년간 사라졌던 리제르 양의 초상이 25일 빈의 경매회사 임 킨스키에서 공개됐다. 오는 4월 24일 경매를 앞두고 소수의 컬렉터와 일부 미디어에 선공개한 것. 이 그림이 공개되자 오스트리아는 물론 유럽 전역이 들썩였다. 이유는 두 가지다. 당연히 해외 반출됐을 것으로 생각했던 그림을 오스트리아의 한 가문이 소유하고 있었다는 점, 지난해에 이어 클림트의 그림이 또다시 유럽 경매 사상 최고가 기록을 깰 것이라는 기대 때문이다.지난해 런던 소더비 경매에서 비슷한 시기에 그려진 ‘부채를 든 여인’(Lady with a Fan)이 1억800만달러(약 1440억원)에 팔리며 유럽 경매 사상 최고가 기록을 경신한 점을 감안하면 이 그림의 추정가는 최소 1500억원을 넘을 것으로 보인다. 100년의 미스터리…
미국 애니메이션 스튜디오 픽사가 2008년 만든 영화 '월E'. 텅 빈 지구에서 수백년 동안 혼자 쓰레기를 수거하는 호기심 많고 사랑스러운 로봇이 주인공이다. 어딘가 고장난 것 같고 여기저기 부서져 엉성한 월E. 이 로봇은 다른 SF영화에서 보여준 '완벽에 가까운 로봇'이 아니라서 오히려 수 많은 '사람' 관객들로부터 공감을 얻었다. 월E의 추억을 닮은 로봇들이 지금 서울 삼청동 국립현대미술관 '올해의 작가상 2023' 제 4전시장을 배회하고 있다. 외나무 다리에서 고개를 젓거나, 수도승이 절을 하듯 전시장을 걷는다. 멈춰서서 노래를 하는가 하면, 곧 반대편 로봇이 부채를 펼쳤다 접는다. 이들의 몸짓은 느리고, 또 느리다. 어두운 공간 속 절제된 조명과 사운드만으로 서서히 몰입하게 만든다. 전시장 한 구석, 이 모든 시퀀스를 섬세하게 제어하고 있는 한 사람이 있다. 지난해 10월 20일부터 전시장을 지키고 있는 작가, 권병준(53)이다. 직접 만든 로봇으로 가장 서정적이고 명상적인 공간과 연극적 전시를 창조해낸 그는 반전의 이력을 갖고 있다. 1990년대 '삐삐롱스타킹'이라는 밴드의 보컬 '고구마'라는 이름으로, 악동 가수 반열에 올랐던 뮤지션이다. 그는 돌연 대중의 눈에서 멀어졌다. 새 앨범을 내고 한창 활동을 이어가던 1997년, 공영방송 MBC의 한 음악 프로그램에서 타이틀곡 '바보버스'를 부르다가 손가락 욕을, 다른 멤버는 카메라에 침을 뱉으며 방송 정지 처분을 받기도 했다. (지금까지 '역대급 방송사고' 톱10에 남아있다). 이후 그는 네덜란드로 떠났다. 서울대 불문과 출신인 권 작가는 헤이그 왕립음악원에서 소리학과 아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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