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이 지난 16일 “수명이 다한 전세 제도에 대한 근본적인 개편 작업에 들어가겠다”는 입장을 밝히면서 전세 제도의 개편 방안에 시장 안팎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전세 사기와 깡통전세 확산 등 사회·경제적 논란에도 불구하고 서민의 ‘주거 사다리’ 역할을 해온 아파트 전세 수요는 여전히 많다. 업계에서는 전세 제도 개편 방향이 폐지에 준하는 급격한 변화보다 임대차 3법(전월세상한제·계약갱신청구권·전월세신고제) 개정을 통한 점진적인 개선에 무게가 실릴 것으로 보고 있다.

○임대료 인상폭 확대·에스크로 도입

전세 사라질까…"월세化 빨라져 비중 줄 듯"
17일 업계에 따르면 국토부는 현재 전세 제도의 각종 부작용이 과도한 가격·계약기간 규제에 있다고 보고 있다. 2020년 7월 말 임대차 3법이 시행되면서 계약갱신청구권(2+2년)과 전월세상한제가 도입됐다. ‘4년, 5% 인상’이라는 규제 탓에 집주인은 전세 물량을 앞다퉈 거둬들였다. 전셋값은 자연스럽게 급등했고 아파트를 구하지 못한 서민이 빌라 시장으로 대거 이동했다. 이 과정에서 빌라 매매 가격과 전셋값이 동시에 뛰었고, 전세 사기를 위한 여건이 형성됐다는 평가가 많다.

이런 상황에서 지난해 하반기 이후 한국은행이 가파르게 기준금리를 인상하자 집값 하락과 맞물려 깡통전세가 속출했다. 세입자를 구하지 못한 집주인이 보증금을 돌려주지 못하는 역전세도 확산했다. 업계 관계자는 “가격·계약기간 규제가 임대차 3법의 핵심”이라며 “시장 논리가 아니라 규제로 가격을 강제하니 중장기적으로 각종 부작용이 잇따르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로선 전월세 임대료 인상률을 직전 계약 대비 5% 이하로 제한한 내용을 10% 안팎 또는 주변 전셋값의 일정 수준 안에서 협의할 수 있도록 조정될 가능성이 예상되고 있다. 이와 함께 에스크로 계좌(제3기관에 전세보증금 예치) 도입 등도 거론되고 있다. 에스크로 계좌는 부동산 거래 시 이해관계가 없는 금융회사 등 제3자가 개입해 안전 결제를 보장하는 제도다. 기존처럼 집주인이 아니라 제3기관에 전세보증금을 맡겨 놓는 개념이다. 집주인의 반발이 예상되지만, 전세보증금 미반환 사고를 방지하는 데는 효과적이다. 전세보증금이 갭투자(전세 끼고 매매)에 흘러가는 부작용도 차단할 수 있다.

아울러 현재 수도권 7억원, 이 외 지역은 5억원 이하로 규정된 전세보증금 반환보증 보험 대상이 모든 주택으로 확대되는 방안도 고려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박원갑 국민은행 부동산수석전문위원은 “전세 관련 사고를 막기 위해 집주인이 전세보증금액, 실제 대출금액을 계약서에 첨부하도록 의무화해야 한다”며 “전세보증금을 받은 집주인의 차입 위험 등 사적 계약에 따른 차입통계 역시 관리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반전세·보증부월세 많아질 것”

업계에선 중장기적으로 임대차 시장에서 전세 비중이 30%대까지 낮아질 수 있다고 보고 있다. 2020년까지 60%를 오르내리던 전세 비중은 지난해 기준으로 48.1%를 기록해 절반 밑으로 떨어졌다. 전세 사기가 확산하면서 전세 제도의 실수요자 불신이 커진 데다 고금리와 세금 부담 등으로 전세에 대한 집주인의 실익이 감소한 영향이다.

다만 전문가들은 당장 전세 제도가 사라지긴 어렵다고 판단한다. 강남 등 상급지로 아파트를 사서 이주하기 어렵거나 월세 내는 것이 버거운 실수요자에겐 여전히 필요성이 있다는 이유에서다. 연립·다세대와 오피스텔보다 매매 가격은 높지만, 전세가율이 낮은 아파트 전세 수요는 꾸준해 전세 제도 전면 개편에 따른 여론의 반발이 만만치 않을 것이란 시각도 나온다.

함영진 직방 빅데이터랩장은 “월세화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는 건 사실이지만 전세 제도 자체가 소멸하긴 쉽지 않다”며 “교육이나 직장 등의 이유로 일시적인 거주를 원하는 세입자가 여전하고 집값 상승기엔 투자 수요가 생겨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전세 제도의 완전한 소멸보다 반전세나 보증부월세 시장이 커지게 될 것이란 얘기다.

김은정/이유정 기자 ke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