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게티이미지뱅크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서울 강남지역의 아파트 단지 내 상가를 보유하고 있는 60대의 A씨. 그는 동네를 지날 때마다 속이 터진다. 조합원으로 아파트를 분양받고 은퇴자금을 모두 털어 상가를 분양 받았지만, 운영이 시원치 않아서다. 아파트 입주초기에는 공실로 놔두다가 작년초에 배달커피전문점이 들어왔지만, 임차인은 생각보다 장사가 안된다며 임대료를 2개월째 미루고 있다. 그는 "평생 일해서 편히 쉴 집 한채, 용돈 쓸 수 있는 상가 하나 이렇게 생각했다"며 "단지 내 상가든 어디든 안정적인 상가 투자는 없나보다"라고 토로했다.

중심상권 활성화 된다지만…강남 대단지 아파트 상가는 '휑'

방역지침이 전면 완화되고 날이 풀리면서 서울시내 주요 상권이 활기를 띄고 있다. 그러나 강남, 명동, 성수 등 중심상권만 뚜렷한 증가세를 보일 뿐, 단지 내 상가나 근린상가 등은 여전히 어려움을 겪고 있다. 물가와 배달비가 오르면서 외식을 찾는 이들이 줄었고, 높아진 금리에 임대료를 낮추기 어려운 상황이기 때문이다. 상가 주인들은 임대료를 올리기는커녕 공실이나 임대료 연체를 고민하고 있다.

그렇다보니 대단지 강남 아파트임에도 상가 투자자들의 발길은 뜸해지고 있다. 과거 아파트 단지내 상가는 '가성비 높은 투자'로 여겨지던 시절이 있었다. 상권이 자리만 잡게 되면 수십년은 안정적으로 따박따박 월세를 받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제는 경기상황을 예측하기 어려워진데가 분양가 높은 상가들이 나오면서 인기가 시들해지고 있다. 더군다나 100% 분양 상가의 경우 상권활성화가 쉽지 않다보니 임차인이 자주 바뀌거나 공실이 되곤 한다. 아파트 입주민이 고정수요층이지만, 이들의 충성도가 생기기도 전에 상권이 바뀐다는 얘기다. 이는 상권 안정화를 해치는 요인으로 꼽힌다.
최근 서울 중구 명동거리가 관광객들로 붐비고 있다. / 사진=뉴스1
최근 서울 중구 명동거리가 관광객들로 붐비고 있다. / 사진=뉴스1
최근 서초구 반포동 ‘래미안 원베일리’(2990가구) 단지 내 상가 일반분양 결과 조합원 분양을 제외한 117개 호실 중 절반 정도의 계약을 체결하는 데 그쳤다. 지하층의 일부 호실의 경우 최고 경쟁률이 66대 1에 달했지만, 분양가가 비싸거나 외진 곳들은 주인을 찾지 못했다. 현재 잔여 호실에 대해 선착순 계약을 진행 중이다.

원베일리 상가는 지하 1층~지상 5층 규모로 분양가는 3.3㎡당 최고 1억1000만원대까지 책정됐다. 입지와 고정수요를 강점으로 높은 분양가를 매겼고, 1층 호실 중 상가 주출입구와 가장 가까운 호실(전용면적 65.83㎡)의 경우 분양가가 46억8340만원에 달했다. 때문에 부담을 느낀 투자자들이 참여하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지난달 입주를 시작한 ‘개포자이 프레지던스’(3375가구)의 단지 내 상가인 ‘개포 자이스퀘어’도 잔여 물량을 분양중이다. 지하 3층~지상 4층, 총 102실 규모의 상업시설이다. 일대의 재건축 아파트들의 입주자 수요를 모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지만, 공실이 대부분인 상황이다. 준공 5년째인 송파구 '헬리오시티'(9510가구)는 최근까지도 상가 보류지 잔여분 4곳이 남아 있는 상태다.

시행사들 "팔면 그만" 에서 "상권활성화가 먼저"로

전문가들은 고금리 분양가까지 높은 상가를 투자하기는 어렵다면서도 상가 투자를 하려면 시행사나 건설사가 직접 운영하는 직영상가는 눈여겨 볼만하다고 말한다. 양지영 R&C연구소장은 "최근에는 상권활성화를 우선으로 두고 직영상가와 분양상가를 혼합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며 "상업시설을 분양받은 수분양자 입장에서는 상권활성화와 장기적인 자산가치 상승에 도움이 된다"고 설명했다.

과거 시행사들은 빠른 시일 내에 상가를 분양하는 데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팔면 그만"이라는 인식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주상복합단지나 대단지 아파트의 경우, 상가가 잘돼야 결국 수분양자의 자산가치로 이어졌다. 공실이 많으면 썰렁한 단지 분위기에 아파트 시세도 오르지 않는다는 얘기다.
초대형 업무복합단지 BIFCⅡ의 상가시설인 ‘BIFCⅡ 스퀘어가든’. 시행사는 저층만 분양하고 3층은 직접 운영할 예정이다. / 사진= BIFCⅡ
초대형 업무복합단지 BIFCⅡ의 상가시설인 ‘BIFCⅡ 스퀘어가든’. 시행사는 저층만 분양하고 3층은 직접 운영할 예정이다. / 사진= BIFCⅡ
시행사나 건설사들은 직접 운영하는 상가를 늘리기 시작했다. 규모있는 브랜드를 유치하거나 상권활성화를 위한 이벤트에도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이러한 노력이 결국 상가의 가치상승으로 이어진다고 보기 때문이다.

호반건설이 분양하지 않고 직접 운영하는 경기 판교신도시 판교역 인근 주상복합 상가인 ‘아브뉴프랑’이나 요진개발에서 운영하는 일산의 '밸라시타', 네오밸류에서 개발하고 네오밸류프라퍼티에서 운영하는 '앨리웨이 광교' 등이 대표적이다.

최근 분양하는 상가들도 이러한 점을 중점에 두고 있다. 부산 문현금융단지 내 부산국제금융센터에 4월에 분양하는 ‘BIFCⅡ 스퀘어가든’도 시행사가 분양과 대규모 직영을 동시에 진행하고 있다. 1~3층 상업시설 중 1~2층은 일반분양하고, 3층은 시행사가 직접 운영하게 된다. BIFCⅡ는 지하 5층~지상 45층, 연면적 14만6553㎡ 규모의 단지다. 오피스, 지식산업센터, 지원시설이 들어선다.

"분양 없이 사장님만 모십니다"

분양 없이 직접 임대만 하는 상가도 나온다. ㈜디케이아시아가 지은 ‘검암역 로열파크씨티 푸르지오’(4805가구)의 단지 내 상가인 ‘로열 아너스 애비뉴’다. 입주민의 편의성을 감안해 직접 MD(상품기획)에 나서서 임차인을 모집한다. 입주초기에 부동산만 입주한 단지 내 상가가 아닌 편리한 생활이 바로 가능하도록 상가를 구성한다는 방침이다.

‘로열아너스 애비뉴’는 지하 2층~지상 2층, 연면적은 7025㎡ 규모다. 50개의 점포에 들어갈 임차인을 모집하는데, 독점 영업권을 보장하면서 안정적으로 점포를 운영할 수 있도록 도울 예정이다. 상권활성화를 위해 전문가로부터 코칭(Coaching)을 받을 수 있는 시스템도 도입한다. 입점 후에도 지속적이고 전문화된 상권 분석을 제공한다.

DK아시아는 오는 6월 입주예정인 아파트 ‘검암역 로열파크씨티 푸르지오’(4805가구)의 단지 내 상가를 100% 직접 운영한다. 임차인만 들여 상가를 활성화할 예정이며 브랜드로 ‘로열 아너스 애비뉴’를 선보였다. / 자료=DK아시아
DK아시아는 오는 6월 입주예정인 아파트 ‘검암역 로열파크씨티 푸르지오’(4805가구)의 단지 내 상가를 100% 직접 운영한다. 임차인만 들여 상가를 활성화할 예정이며 브랜드로 ‘로열 아너스 애비뉴’를 선보였다. / 자료=DK아시아
김효종 DK아시아 대표는 "오는 6월 입주 예정인 ‘검암역 로열파크씨티 푸르지오’의 단지내 상가를 100% 직영임대 운영한다"며 "직영운영을 통해 입점 업체간 시너지를 창출하고, 임차인이 동반 성장할 수 있는 체계적인 시스템을 마련하겠다"고 말했다. 이어 "입주민은 물론 지역민들이 기존의 아파트에서 경험할 수 없었던 차별화된 가치를 제공하겠다"고 덧붙였다.

심지어 공공아파트를 공급하는 LH(한국토지주택공사)도 직영 임대에 나섰다. 2018년부터 도입된 ‘희망상가’다. 희망상가는 청년 및 영세소상공인 등의 안정적 경제 활동을 지원하기 위해 주변 시세보다 저렴한 임대조건으로 최대 10년간 제공되는 창업공간이다. 전국 공공임대주택단지 내 근린생활시설에 희망상가를 공급한다. 4월에만 인천검단, 인천서창2, 인천영종, 고양삼송, 고양지축, 구리수택, 김포마송, 김포양곡, 김포장기, 양주옥정, 경북도청이전신도시, 경산하양, 완주삼례 등에 예정됐다.

김하나 한경닷컴 기자 han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