텅 빈 신도시 대형상가…공매 쓰나미
21일 찾은 인천 송도동의 대형 상업시설인 해온프라자. 한의원 현수막이 나붙은 건물 내부는 텅 비어 있었다. 이 건물은 대규모 미분양에 시공사가 자금난에 몰리면서 마무리 공사를 남긴 채 지난달 375억원에 공매로 나왔다. 이달 초까지 여덟 차례 유찰 끝에 243억원으로 가격이 내려갔지만 주인을 찾지 못하고 있다. 상가를 분양받은 한의원은 결국 입주를 포기했다. 인근 B공인 관계자는 “건물에 들인 돈이 500억원인데 200억원대에도 인수할 곳이 없다는 게 놀랍다”고 말했다.

금리 상승에 미분양 상가 줄줄이 공매

신도시의 대형 상업시설이 줄줄이 공매 매물로 나오고 있다. 미분양과 급등한 금리 부담으로 시행·시공사가 사업을 포기하거나 이자·원금 상환에 실패하자 프로젝트파이낸싱(PF) 대출을 해준 저축은행과 농협·신협, 새마을금고 등이 자금 회수에 나서고 있어서다. 경매·공매 정보업체 탱크옥션에 따르면 이달 들어서만 한국토지신탁과 KB부동산신탁 등 13개 부동산신탁사에서 22건의 근린상가 공매 물건이 새로 나왔다.

상업시설 공매는 신도시마다 쏟아지고 있다. 경기 화성시 동탄2신도시 에이스케이씨티타워는 상가 64개, 오피스텔 22실 등 총 351억원 규모의 공매가 이달 진행된다. 2020년 준공됐지만 편의점과 음식점 한 곳, 골프연습장을 빼면 모두 공실이다. 인근의 Y공인중개소 관계자는 “유동 인구가 적고 경기도 좋지 않아 상가에 들어오려는 자영업자가 거의 없다”고 전했다.
텅 빈 신도시 대형상가…공매 쓰나미
4~5년간 미분양 상가 할인 분양으로 버티던 곳도 금리 부담에 쓰러지고 있다. 경기 의정부시 민락지구 제이맘타워(사진)는 2017년부터 병원과 산후조리원 등을 입주시켜 활성화를 노렸다. 하지만 대출 연장에 실패하면서 교보자산신탁이 42개 미분양 상가를 222억원에 통째로 공매에 넘겼다.

공매를 통한 매각도 이뤄지지 않는 실정이다. 지난 1월 공매에 나온 신축 상업시설인 대구 동구혁신도시 연세병원 토지·건물은 이달까지 다섯 차례 유찰되면서 최저 입찰가가 531억원에서 35%가량 내린 348억원까지 떨어졌으나 매각에 실패했다. 신탁사 관계자는 “경기가 좋을 땐 미분양 사업장도 인수하겠다는 곳이 줄을 서 공매까지 가지 않았다”며 “지금은 불투명한 전망 때문에 30~40% 떨어진 입찰가에도 매수자가 없다”고 했다.

부동산이 헐값에 팔리거나 매각에 실패하면 PF대출을 해준 금융회사들의 타격이 불가피하다. 상가 29개가 330억원에 공매에 나와 유찰을 거듭하고 있는 구리갈매지구 다인로얄팰리스 대주단에는 서울 왕십리와 경기 광명·양평 등지의 12개 지역 새마을금고가 얽혀 있다. 대구 동구혁신도시 연세병원 건립에는 동서울신용협동조합이 돈을 댔다.

“유동성 과신 저수익 상가의 예견된 실패”

부동산 개발 및 금융업계에선 상가 미분양과 공실은 수년 전부터 예상됐다고 지적한다. 신도시·택지지구의 상업용지 비율이 수요에 비해 높은 탓에 상가 과잉 공급으로 분양·임대에 실패한 전례가 많다. 입주 초기 상가가 과잉 공급된 세종시는 작년 말 기준 중대형 상가 평균 공실률이 22.9%에 이른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2019~2021년 코로나19 사태로 유동성이 풀리자 그전까지 은행과 대형증권사가 사업성이 낮다고 여겨 대출을 거절한 사업들이 대거 현실화했다”며 “저금리로 수익을 낼 곳이 마땅치 않던 저축은행과 새마을금고 지역 농협·신협 등 2금융권 금융사들이 활발하게 PF대출을 일으켰다”고 설명했다.

미분양 매물이 쏟아지고 가격이 폭락하는 악순환이 심각해질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김승배 부동산개발협회장은 “과거 일본 사례와 같이 정부가 상가를 주거시설로 용도 전환하도록 허용하는 등의 대책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현일/박시온/안정훈 기자 hiunea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