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주택이 아닌 아파트에 살 수밖에 없는 여건이지만 집에서 정원을 누리고 싶은 한국인의 욕구를 만족시키기 위해 아파트의 조경은 해마다 발전해왔다. 조경 관련 기술은 2000년대 초반 주차장을 지하로 넣고 지상을 공원으로 꾸미기 시작한 이후 더욱 빠르게 발전했다. 조경에 대한 수요자들의 관심이 높아지면서, 예전엔 3%내외 였던 공사비 중 조경의 비중이 부동산 호황이 절정이던 2020~2021년 무렵엔 약 5%까지 올라갔다. 조경 공사비 중에서도 가장 비중이 큰 항목은 나무값이다. 아파트 조경의 가장 기본인 나무에 대해서 알아봤다.

3억원짜리 팽나무 심은 서초그랑자이

'정원이 갖고 싶었어'…서초 아파트 '3억짜리 나무'의 정체 [이현일의 아파트 탐구]
GS건설이 지은 재건축 아파트 서울 서초그랑자이의 입주가 시작된 2021년 여름 무렵. 단지 가운데 자리한 큰 팽나무(사진) 앞에 나무의 안녕을 비는 고사상이 차려졌다. 몸값 3억원으로 알려진 팽나무가 죽으면 낭패가 아닐 수 없기 때문이다.

서울 강남권 재건축 단지 입구와 중앙광장 등에는 최소 1억원이 넘는 소나무 몇 그루가 필수적으로 들어간다. 비싼 나무는 대부분 거북이 등껍질 모양 등 아름다운 모양으로 키운 나무다. 집값이 가장 비싼 일반아파트인 반포동 아크로리버파크의 중앙에도 3억원짜리 소나무가 식재돼 있다. 단지의 대표 조경수는 아파트 단지에서 사람을 제외한 가장 비싼 생명체인 셈이다.

2000년대 이후 강남권 재건축 단지에선 비싼 소나무가 단지 주민들의 수준이자 부의 척도로 여겨지며 소나무 심기 경쟁이 벌어지기도 했다. 단풍나무 벗나무 등 활엽수는 몇 십만원 수준이나 소나무는 비싼 것들은 보통 수 억원을 호가한다.
'정원이 갖고 싶었어'…서초 아파트 '3억짜리 나무'의 정체 [이현일의 아파트 탐구]
조경수로 쓰이는 소나무의 모양도 다양하다. 현대건설은 2019년 입주한 개포동 디에이치아너힐즈(개포주공3단지)에는 브로콜리 모양의 반송 소나무(사진)를 공수해 심기도 했다. 현대건설 관계자는 "일반적인 반송보다 훨씬 높은 키의 특별한 나무"라고 설명했다. 중앙광장에는 시가 수억 원의 서산 소나무와 부여산 금송을 식재했다.

지금도 대부분 아파트의 조경 공사비 가운데 20% 가량은 나무를 사오는 비용이다. 약 1000가구 아파트에는 보통 140그루 이상의 소나무가 들어가며 이 가운데 20~30그루는 1000만원이 넘는 가격의 나무를 심는다고 알려졌다.

대우건설이 '과천푸르지오써밋' (과천주공1단지 재건축·2020년 입주)을 지을 때는 재건축 조합이 자체적으로 조경팀을 꾸려 단지에 심을 나무를 고르기 위해 원정을 다니기도 했다. 조경 전문건설업체 삼성물산 리조트 부문(옛 에버랜드)은 용인 등지에 다양하고 우수한 품질의 나무를 많이 보유하고 있다는 점 때문에 최고 수준의 경쟁력을 인정받고 있다.

1000년 느티나무 죽는 등 시행착오 끝에, 기술 일취월장

지상을 공원화하고 조경수를 식재하는 과정에서 건설사들은 시행착오도 많이 겪었다. 삼성물산은 15년 전 반포동 래미안퍼스티지에 10억원을 들여 1000년 된 느티나무 고목을 가져와 심었으나 불과 몇 해만에 죽고 말았다. 결국 시멘트 등 소재를 활용해 죽은 나무를 박제했다. 지금도 입주 후 2~3년 사이에 나무들이 고사하면서 주민들과 건설사 사이에 분쟁이 벌어지기도 한다. 대형건설사들과 조경시공 전문건설사들은 단지에 심은 수목 관리를 위한 팀까지 두고 사후관리를 하기도 한다.
'정원이 갖고 싶었어'…서초 아파트 '3억짜리 나무'의 정체 [이현일의 아파트 탐구]
나무를 지하주차장 상부 인공지반에 심는 것도 어렵다. 하단부 지름이 1m에 달하는 거대한 나무는 보통 입구쪽 등 단지 가장자리 자연지반에 식재하지만 대부분 나무는 인공지반에 심는다. 모 중견 건설사는 걸핏하면 지하주차장에 물이 새는 바람에 입주민과 소송전을 벌이는 등 곤혹스러운 상황에 몰리기도 했다. 처음부터 방수시공이 제대로 안되거나 나무 뿌리가 자라면서 균열을 내면 물이 샌다. 지금은 골조콘크리트 위에 방수시트나 매스틱시트를 깔고 무근콘크리트를 덮고 다시 자갈배수층을 깔고 부직포를 덮은 뒤 1.2m정도 깊이를 흙으로 덮어 지반을 만드는 등 안정적인 시공 방식이 보편화됐다. 기술도 많이 발전해 어지간히 큰 나무도 인공지반 위에 2~3m 지반 깊이를 확보할 수 있는 언덕을 만들어 심는다. 대우건설이 지은 과천푸르지오써밋(사진)에선 건물 돌출부 2층 지붕에도 나무를 심기도 했다.

메타세퀘이어 나무는 줄기와 뿌리가 빠르고 곧게 자라기 때문에 인공지반위에 심는 것는 금물이다. GS건설은 그러나 개포자이단지프레지던스(개포주공4단지 재건축)에선 단지 경계쪽 자연지반을 활용해 200m 길이의 메타세퀘이어 산책로를 조성하기도 했다.

아파트 건물로 그늘지는 곳과 볕이 잘 드는 곳도 정교하게 구분해야한다. 볕이 드는 곳엔 소나무 같은 나무를 심고 그늘진 곳에는 단풍나무나 이팝나무 등을 심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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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일 기자 hiunea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