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달만 일찍 분양할 걸"
현대·두산 등 원주서 8~9월 공급
시장 침체에 계약 포기 잇따라
한 달 먼저 분양한 단지는 완판
평택·음성도 미분양 대폭 늘어
수도권 규제 완화에 지방 '싸늘'
작년 수도권 침체장에서도 선전하던 지방 분양시장이 2~3개월 사이 급격히 냉각되면서 미분양 물량 급증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미분양 주택 ‘제로(0)’를 나타내며 완판 행진을 벌였던 강원 원주가 대표적이다. 수도권 규제 반사 효과를 누리던 충북 음성, 충남 천안 등 충청 지역에서도 미분양 물량이 가파르게 늘고 있다. 분양업계에선 “두 달만 빨리 분양에 들어갔더라면 이 정도는 아니었을 것”이라는 얘기까지 나온다.
원주 너마저…대형 건설회사도 속수무책
8일 분양업계에 따르면 작년 9월까지 미분양 물량이 단 한 가구도 없었던 원주 분양시장이 새로운 미분양의 무덤으로 떠오르고 있다. 이 지역 미분양 물량은 작년 말 기준 1255가구지만 올 들어 누적 2000가구 이상 쌓였을 것이라는 얘기가 나온다.
현대건설, 두산건설, 롯데건설 등 내로라하는 대형 건설사들도 속수무책일 정도다. 분양 당시 높은 경쟁률을 보인 단지조차 계약 불발에 따른 미분양 물량이 쌓이고 있다. 현대건설이 원주 관설동에 짓는 ‘힐스테이트 원주 레스티지’(총 975가구)는 작년 9월 분양 당시 5.1 대 1의 경쟁률을 나타냈다. 하지만 작년 하반기 분양시장이 냉각되면서 미분양 물량을 걱정하는 처지가 됐다. 작년 8월 공급에 나선 두산건설의 ‘두산위브더제니스 센트럴 원주’(1167가구)와 12월 분양한 롯데건설의 ‘원주 롯데캐슬 시그니처’(922가구)도 마찬가지다.
반면 몇 개월 앞서 분양한 단지들은 모두 완판됐다. 작년 7월 분양한 제일건설의 ‘제일풍경채 원주 무실’(997가구)과 4월 공급된 반도건설의 ‘초혁신도시 반도유보라 마크브릿지’(476가구) 등은 성황리에 계약을 마쳤다.
천안, 음성 등 분양시장에 훈풍이 불었던 지역도 강원 원주와 분위기가 비슷하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음성은 작년 8월까지 미분양 물량이 105가구에 불과했지만 12월 말 기준 1999가구로 급증했다. 천안도 같은 기간 121가구에서 4145가구로 미분양 아파트가 가파르게 늘었다.
건설업계 관계자는 “분양시장이 급격히 냉각되면서 한두 달 차이로 완판 단지와 미분양 단지가 엇갈렸다”며 “이렇게 빠른 속도로 분위기가 반전될지 아무도 몰랐을 것”이라고 말했다.
풍선효과 노린 투자자, 서울로 흡수
지방과 더불어 규제 풍선 효과를 누리던 수도권 외곽 지역도 미분양 물량이 급증세다. 지방과 수도권 외곽 지역은 실수요자보다는 투자 수요가 많은 지역으로 꼽힌다. 안성은 작년 8월 565가구에 불과하던 미분양 물량이 12월 말 1239가구로 늘었고, 평택 지역의 미분양 물량도 같은 기간 27가구에서 1684가구로 증가했다.
그나마 작년 말까지 조금씩 소화되던 미분양 물량도 수도권 부동산 규제가 대폭 완화된 올 들어선 제자리걸음이다.
김효선 농협은행 부동산수석전문위원은 “작년 상반기까지만 해도 지방 혁신도시나 택지지구 분양은 투자자에게 ‘로또 분양’으로 불렸다”며 “하지만 정부의 ‘1·3 부동산 대책’ 이후 서울과 수도권 청약시장으로 전국 투자자들이 진입하는 길이 열리면서 지방 투자 수요가 사라지고 있다”고 말했다.
찬바람 부는 지방 분양시장도 시간이 갈수록 옥석 고르기가 이뤄질 것이란 전망이다. 장재현 리얼투데이 리서치본부장은 “지금 당장은 모든 지역이 냉각되는 것 같지만 실수요, 브랜드, 금융 혜택 등에 따라 차츰 지역별, 단지별 차별화가 이뤄질 것”이라며 “예컨대 충청도 내에선 음성보다는 실수요가 많고 대도시인 천안 쪽에 새 아파트 수요가 몰릴 것”이라고 전망했다.
최근 부동산 거래량이 늘어나고 있지만, 집값이 바닥을 치고 반등했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분석이 제기됐다.부동산시장 분석업체 부동산인포는 거래량, 가격변동률, 분양가구, 미분양가구 등을 분석한 결과 집값 바닥론은 시기상조라고 16일 밝혔다.2006년 이후 전국 아파트 매매거래량을 살펴보면 거래량과 가격은 유사한 흐름을 보이지만, 종전보다 오른 가격의 물건이 거래돼야 가격이 오른다는 것이 부동산인포의 지적이다. 거래량이 늘어도 급매나 저가매물 위주라면 가격은 하락한다는 것이다.거래량도 아직은 부족하다는 평가다. 서울부동산정보광장에 따르면 서울 아파트 월 평균 거래량은 2020년 6749건이었고 2021년 3498건, 지난해 1000건이었다. 지난달 1220건으로 반등했지만, 과거와 비교하면 여전히 적다고 부동산 인포는 설명했다.부동산인포는 "현 주택시장은 고금리, 거래량 감소, 미분양 증가, 신규분양 감소, 기준금리 추가 인상 가능성 등 악재가 많다"며 "최근 거래 증가는 저가, 급매물 일부가 일시적으로 소진된 것이다. 거래 분위기가 계속되기는 쉽지 않다"고 지적했다. 또 "일부에서 매도자들이 매물을 거두고 호가를 높이려는 움직임도 분위기를 꺾는 일"이라고 꼬집었다.다만 정부가 부동산 시장 연착륙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점은 고무적이라고 평가했다. 정부는 시중 대출금리보다 낮은 특례보금자리론을 출시했고 1기 신도시를 비롯한 노후계획도시 정비를 위한 특별법의 주요 골자도 발표했다.권일 부동산인포 리서치팀장은 "바닥은 지나봐야 알 수 있지만, 현재의 거래 수준으로 바닥을 논하긴 이르다"며 "상반기 전후로 거래량이 지난해(29만8000건)의 70% 수준까지 늘어야 하고 급매물도 사라지기 직전이어야 바닥이라고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수요자들은 바닥에 집중하기 보다 저가 매물을 중심으로 매수 여부를 결정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조언했다.오세성 한경닷컴 기자 sesung@hankyung.com
경기도 화성시에 입주를 앞둔 아파트 가격이 곤두박질치고 있다. 2~3년 전 집값 상승기에는 청약 경쟁률도 높아졌고, 이에 따른 풍선효과로 비인기 지역 아파트 분양 수요도 증가했다. 하지만 정작 새 아파트에 입주할 시기가 되자 부동산 시장이 침체로 돌아섰고 화성시 집값도 급락했다. 매입 당시보다 집값이 더 내려간 비인기 지역 아파트 수분양자들은 스트레스를 호소하고 있다. 집값 상승기에는 내 집 마련에 성공했다는 안도감이 컸지만, 지금은 당시의 선택을 후회하는 모습이다.2020년 경기도 군포시에 거주하던 박씨는 치솟는 집값을 피해 그해 말 화성시 남양읍 남양뉴타운에서 청약을 받은 지역주택조합 아파트(지주택) '화성시청역 서희스타힐스 4차 숲속마을'을 분양받았다. 분양가는 전용 84㎡가 3억5202만원이었다. 당시만 하더라도 그가 살고 있는 아파트 전셋값과 집값이 두 배로 치솟고 있었다. 청약 가점도 낮은 탓에 수도권 외곽이라도 내 집을 마련할 수 있다면 다행이라는 생각이 컸다. 하지만 내 집 마련의 기쁨은 짧게 끝났다. 그의 아파트 조합원 입주권 가격이 추락했기 때문이다. 향남읍 인근 개업중개사는 "현재 2억9000만원대에 나온 전용 84㎡ 입주권 무피(프리미엄이 붙지 않은 매물) 매물이 여럿 있다"며 "거래만 이뤄진다면 마이너스 프리미엄을 감수하겠다는 조합원도 있다"고 말했다. 그는 "나 혼자 바보가 된 기분"이라고 토로했다.경쟁률이 높았던 아파트도 입주를 앞두고는 분양권 가격이 하락하고 있다. 화성시 반월동 '신동탄 포레자이' 전용 84㎡ 분양권은 지난달 5억4802만원에 매매됐다. 최고 분양가 대비 1200만원가량 낮은 가격이다. 이 단지는 2020년 4월 분양 당시 평균 경쟁률이 30.2대 1에 달할 정도로 인기가 높았다.유독 화성시에서는 분양가보다 낮은 가격에 입주권과 분양권이 거래되고 있다. 집값 하락세가 다른 지역보다 더 가팔렀던데다 잔금 마련에 시달리는 원분양자가 늘어났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입주 잔금을 내지 못하면 일반적인 대출 이자보다 더 높은 금리의 연체 이자를 치러야 한다.고금리 상황이다보니 수분양자들은 분양권 등을 팔기 위해 매물을 내놓고 있는데, 워낙 매물이 많다보니 가격이 떨어지고 있다. 실제 거래가 이뤄지려면 주변 집값 대비 낮은 가격을 제시해야 하는 상황이 됐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화성시 집값은 지난해에만 13.2% 하락했고 올해 들어서도 5.7% 떨어졌다. 2년 전과 비교해도 4.21% 낮은 수준이다.분양업계 관계자는 "집값이 상승하던 1~2년 전에는 상대적으로 저렴한 분양가였지만, 최근 집값이 하락하면서 분양가가 주변 시세보다 비싸지는 역전 현상이 발생한 곳이 많다"며 "연체 이자를 피하려면 분양권을 팔아야 하는데, 주변 시세를 반영하다 보니 분양가 보다 가격이 떨어지는 '마피(마이너스 프리미엄)'도 발생하고 있다"고 말했다.오세성 한경닷컴 기자 sesung@hankyung.com
서울 민간 아파트 분양가격이 8개월 만에 3.3㎡당 3000만원대로 올라섰다. 가파르게 치솟은 원자재 가격과 인건비로 인해 미분양이 쌓이는 와중에도 분양가는 지속적으로 오르는 상황이다. 올해 분양예정 아파트의 절반가량이 재건축·재개발단지 물량인 점을 감안하면 분양가 오름세가 더욱 가팔라질 수 있다는 전망까지 나온다.○아파트 분양가, 1년 새 10.90% 뛰어15일 HUG(주택도시보증공사)에 따르면 올 1월 말 기준 전국 민간 아파트의 평균 분양가격(분양보증서 발급된 민간 사업장 기준)은 3.3㎡당 1571만4600원을 기록했다. 작년 12월(1546만500원)에 비해 1.65% 올랐으나 작년 1월과 비교하면 오름폭이 10.90%에 달했다.서울의 1월 민간 아파트 평균 분양가격은 3063만600원으로 전월에 비해 2.86% 올랐다. 서울 민간 아파트의 3.3㎡당 분양가격은 지난해 5월(2821만5000원)부터 2000만원대를 유지해왔지만 8개월 만에 3000만원대로 다시 올라섰다.수도권 민간 아파트의 3.3㎡당 평균 분양가격도 2149만6200원으로, 전월 대비 1.40% 올랐다. 5대 광역시와 세종은 1662만2100원으로 지난해 12월과 비교했을 때 2.93% 상승했다. 기타 지방도 1286만6700원으로 한 달 새 0.60% 올랐다.전국 미분양 아파트가 7만 가구에 육박하는 상황이지만 건설 원자재와 인건비 상승분을 반영한 분양가는 계속 오르고 있다. 대형 건설사 관계자는 “철근 등 자재값이 정점을 찍으면서 가장 최근에 공사비를 산정한 사업장은 3.3㎡당 공사비가 700만원대 중반으로 책정됐다”며 “지난해 상반기까지만 해도 500만원대 중후반이었다”고 말했다.한국건설기술연구원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건설공사비지수(2015년=100)는 148.60을 기록했다. 1년 새 6.99% 올랐다. 2년 전에 비해선 22% 뛰었다. 건설공사비지수는 건설공사에 투입되는 재료, 노무, 장비 등 직접공사비의 가격 변동을 측정하는 지수다.○기본형 건축비 인상, 정비사업 물량↑당분간 아파트 분양가 인상은 불가피할 전망이다. 이미 연초부터 분양가상한제 적용 아파트의 분양가격 기준이 되는 기본형 건축비가 1% 넘게 올랐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이달 초 ㎡당 기본형 건축비(16~25층 이하, 전용면적 60㎡ 초과~85㎡ 이하 기준)는 지난해 9월 고시된 190만4000원에서 192만5000원으로 1.1% 올랐다. 이달 10일 이후 입주자 모집 승인을 신청하는 단지부터 적용된다.기본형 건축비는 매년 3월과 9월 정기적으로 조정되는데 최근 레미콘 가격이 15% 이상 급등하자 선제적으로 반영했다. 국토부는 다음달 2일 건설자재와 노무비 등의 가격 변동을 종합 반영한 기본형 건축비를 추가로 인상할 예정이다.재개발·재건축 예정 물량이 2000년 이후 최대인 점도 분양가 상승을 부추기는 요인이다. 부동산R114에 따르면 올해 분양 예정인 재개발·재건축 아파트는 전국 12만8553가구다. 올해 전체 예정물량(임대 제외) 27만390가구의 47.5%에 달한다. 수도권이 7만5114가구(56.0%)로 지방 5만3439가구(39.2%)에 비해 많다. 정비 사업장 아파트는 조합 수익성 확보 때문에 일반 아파트 분양가보다 높게 책정되는 경향이 있다.전문가들은 최근 금리·집값 여건을 봤을 때 고분양가 단지 위주로 미분양 물량이 늘어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여경희 부동산R114 수석연구원은 “위축된 청약 수요가 살아나지 못하고 있어 건설사들이 분양가 책정에 고심이 클 것”이라고 말했다.김은정/유오상 기자 ke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