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주인 "어차피 보증금 낮춰야"
수도권 계약갱신권 사용 급감
작년 12월 6547건 사상 최저
갱신권 사용 32%가 '감액 계약'
해지 통보 3개월후 이사 가능
“어차피 전세 보증금을 2년 전보다 깎아줘야 하는 상황이라 굳이 세입자가 계약갱신청구권을 쓸 필요가 없어졌습니다.”(서울 마포구 아현동 A공인 관계자)
급격한 전셋값 인상을 막고 임차인을 보호하자는 취지에서 만든 ‘전·월세 계약갱신청구권’ 제도가 무색해지고 있다. 전셋값 하락 여파로 임차인 우위 시장이 형성되면서다. 갱신요구는 급감하고 감액계약과 전세를 월세로 전환하는 비율이 늘고 있다.
○머쓱해진 계약갱신청구권
3일 부동산중개업체 집토스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서울·경기·인천 등 수도권 주택(아파트, 오피스텔, 연립, 다가구, 단독주택 포함)의 갱신청구권 사용은 역대 최저치인 6574건을 기록했다. 지난해 1월(1만4119건) 대비 53.4% 감소했다. 12월 사용 비중은 전체 전·월세 갱신계약의 36%를 차지했다. 나머지 64%는 합의에 의한 재계약이었다.
전·월세 계약갱신청구권은 임대차 기간이 끝나기 6개월 전부터 2개월 전까지 임차인이 계약갱신을 청구할 수 있도록 한 제도다. 임차인은 청구권을 한 번만 쓸 수 있고 임대인이 청구권을 접수하면 전세금을 5% 이상 올릴 수 없도록 한 것이 골자다. 전셋값 상승 압박이 거셌던 2020년 7월 제도 도입 직후 전세 매물이 급감하면서 전세 가격이 급등하는 부작용을 낳기도 했다.
하지만 가격 하락이 본격화된 지난해 하반기부터 사용률이 크게 떨어지고 있다. 지난해 1월 청구권을 사용한 계약은 1만4119건(전체의 58%)에 달했다. 2월 1만6255건으로 올랐다가 3월부터 계속 감소세를 보였다. 9월에는 합의재계약과 청구권 사용 비율이 50 대 50으로 같아졌고 10월부터는 합의갱신 비율이 더 높아졌다. 진태인 집토스 아파트팀장은 “역전세난 속에서 갱신을 원하는 세입자가 청구권을 사용하지 않아도 임대인과의 협의가 원만하게 이뤄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계약 해지 쉬워 감액 갱신계약도 32%
세입자들은 갱신청구권을 종전 계약 임대료보다 금액을 낮춰 재계약하는 데 사용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갱신청구권을 사용하면 5% 이내에서 전세금 증감이 이뤄지는데 감액한 경우가 늘어난 것이다.
12월 갱신청구권을 사용한 갱신계약 중 종전보다 임대료를 감액한 계약은 1481건으로 전년 동월(76건) 대비 19배 이상 급증했다. 갱신청구권 사용 계약의 32%가 감액계약인 것으로 나타났다.
보증금 증액이 아닌 감액을 하는데도 갱신권을 쓰는 임차인이 나오는 이유는 합의 계약보다 유리한 조건 때문이다. 세입자가 언제든 해지 통지 3개월 후 이사할 수 있는 조항이 있어서다. 큰 폭으로 보증금을 깎기는 어려워도 세입자가 계약해지권을 좀 더 자유롭게 쓸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전세를 월세로 바꾸는 갱신계약도 증가하는 추세다. 지난해 하반기(6~12월) 수도권 전·월세 재계약 중 전세를 월세로 변경한 재계약은 5971건으로, 전년 동기(3572건) 대비 67%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집값 하락세에 전세보증금을 지키기 어렵게 되면서 전세보다 월세를 택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월세 거래 증가도 두드러진다. 서울부동산정보광장의 ‘서울 아파트 월세 거래량’은 보합 후 소폭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지난해 1월 8229건이었던 월세 거래량은 7월 8901건으로 소폭 늘었고, 10월 7701건으로 떨어졌다가 12월에 다시 8831건을 기록했다. 아파트 월세 거래량이 큰 변동 없이 월 7000~8000건대를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진 팀장은 “올해 수도권에 대규모 공급이 예정돼 있는 만큼 주택 임대 시장의 감액 갱신 및 갱신청구권 감소 흐름은 당분간 계속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부동산 거래량 감소로 지난해 경기도의 도세 징수액이 2021년에 비해 1조원가량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3일 도에 따르면 2022년 걷힌 경기도세는 15조7369억원으로 전년 도세 징수액(16조7987억원)보다 6.3%(1조618억원) 줄었다. 작년 징수결정액 15조9481억원 중에서 미수액(1877억원)과 결손처분(235억원)을 제외한 실징수액이다. 지난해 금리가 대폭 올라가면서 경기도에서 부동산 ‘거래절벽’이 심화했고, 지방세 중 50~60%가량을 차지하는 취득세 수입도 급감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지난해 세목별 징수액을 보면 부동산 거래세인 취득세 징수액이 8조7555억원으로 전년 징수액(10조9301억원)보다 19.9%(2조1746억원) 급감했다. 2022년 도내 부동산 총거래량이 23만2729건으로 2021년 43만5426건 대비 46.6% 급감한 영향이다. 경기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등록·면허세도 5327억원 걷혀 전년보다 13.1%(806억원) 감소했다. 광역자치단체들이 등록세와 면허세를 통합해 집계한 2011년 이후 처음 줄었다.경기도에서 전체 도세 징수액이 줄어든 건 2013년 이후 9년 만이다. 당시에도 부동산 시장 침체가 주요 원인이었다. 도 관계자는 “2013년보다 작년의 도세 징수액 감소폭이 훨씬 크다”며 “부동산 거래절벽이 이대로 지속된다면 하반기께 감액 추경을 해야 할 만큼 위기 상황”이라고 말했다.수원=김대훈 기자 daepun@hankyung.com
수도권에서 ‘신탁 방식’으로 사업을 추진하는 소규모 정비사업장이 늘고 있다. 신탁 방식 재건축은 주민이 설립하는 조합 대신 부동산 신탁사가 시행사를 맡아 사업비 조달부터 분양까지 모든 절차를 진행한다. 전문성을 갖춘 신탁사가 시행을 맡아 투명하게 사업을 관리할 수 있고, 시공사 선정도 보다 쉽다는 게 장점으로 꼽힌다.3일 정비업계에 따르면 경기 남양주시 다산동 신우가든 소규모 재건축 조합은 최근 한국토지신탁을 사업 대행자로 지정하고 본격적인 재건축 절차에 들어갔다. 신우가든 소규모 재건축은 다산동 4026의 16 일대에 아파트 149가구를 짓는 사업이다.소규모 정비사업은 일반 재개발·재건축 사업과 달리 정비구역 지정이 생략되고 사업시행 인가와 관리처분계획 인가 단계를 통합해 복잡한 인허가 과정을 줄일 수 있다. 그러나 일반 정비사업에 비해 사업성이 낮아 시공사의 참여가 저조하고 조합원 간 이견을 조율할 조합 집행부의 전문성이 떨어진다는 한계가 있다. 정비업계 관계자는 “신탁사가 사업을 대행하면 조합 내분 등으로 인한 사업 중단 리스크(위험)가 낮아져 건설사가 시공에 참여할 가능성이 높아진다”고 설명했다.경기 부천시 원종동 진주·남양·롯데·선진 가로주택정비사업 조합도 최근 우리자산신탁과 우선협상대상자 선정을 위한 협의를 진행하고 있다. 조합 관계자는 “신탁사를 통해 초기 금융 비용을 쉽게 조달할 수 있어 신탁사에 맡기는 게 낫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충남 보령시 죽정동 가로주택정비 사업은 시행자로 대한토지신탁을 선정해 지정 고시를 기다리고 있다.하헌형 기자 hhh@hankyung.com
‘배짱 가격’에 내놓은 재건축 아파트 보류지 매각이 연이어 무산되면서 조합원이 추가 분담금을 내야 하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3일 정비업계에 따르면 서울 강남구 개포자이프레지던스(개포주공4단지 재건축) 조합은 최근 조합원에게 추가 분담금 납부를 통보했다. 조합 보류지 매각이 실패한 데다가 최근 금리 인상 등으로 추가 이자 비용이 발생해서다. 전용 84㎡를 분양받은 조합원은 평균 2500만원을 더 내야 하는 것으로 전해졌다.보류지는 조합이 조합원 수 변동 등에 대비해 분양하지 않고 유보해 놓은 주택이다. 조합이 보유 주택을 매각해야 분담금을 확정해 청산 절차를 진행할 수 있다. 보류지 매각에 성공하면 고지된 추가 분담금을 환급받을 수 있지만 당장 추가로 자금을 확보해야 하는 게 부담이다. 한 조합원은 “기존에 내야 하는 잔금에 추가 분담금까지 겹쳐 5000만원을 더 대출해야 하는 상황이 됐다”며 “대출 금리가 높은 상황에서 보류지 매각 불발은 아쉽다”고 했다.개포자이프레지던스조합은 작년 10월 15가구에 대한 보류지 매각 공고를 냈는데 전용 84㎡의 최저 입찰가는 27억원이었다. 동일 면적의 분양권 매물이 24억원에 나오고 있어 추가 할인 없이는 매각이 어려운 상황이다.사정은 서울 내 다른 재건축 단지도 마찬가지다. 보류지 매각이 유찰돼 다시 공고를 내놓는 조합이 속출하고 있다. 하지만 시세보다 비싼 가격에 실제 매매는 거의 이뤄지지 않고 있다. 강남구 대치동의 대치르엘은 지난달 네 번째 보류지 매각 공고를 내며 전용 59㎡의 입찰 기준가를 19억2600만원으로 정했다. 앞선 공고 때보다 4억원 이상 낮춘 가격이지만 여전히 주변 시세보다 비싸다는 평가가 나온다.영등포구 신길동의 더샵파크프레스티지 역시 조합이 전용 84㎡ 보류지를 16억원에 내놨다. 같은 주택형이 12억9000만원에 매물로 나오고 있어 업계에서는 매각이 쉽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은평구 응암동의 녹번역e편한세상캐슬은 지난 1일 전용 59㎡ 보류지를 6억9000만원에 매각한다고 재공고했다. 지난해 4월 같은 주택형이 10억3000만원에 매각 공고됐는데 연이어 유찰되며 3억4000만원 낮은 가격에 다시 매물로 나왔다.응암동의 한 공인중개사무소 대표는 “지난해부터 높은 가격 때문에 유찰이 반복되던 단지로, 이제야 실거래가 이하로 매각 공고가 이뤄졌다”며 “경기 침체 탓에 매각이 이뤄질지는 미지수”라고 말했다.유오상 기자 osy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