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들어 지방 부동산시장에 충격적인 청약 성적표가 줄을 잇고 있다. 대전(0.1 대 1) 충북(0.2 대 1) 등 소수점에 그친 청약경쟁률이 무더기로 나오고 있다. 수도권 규제를 대거 푼 정부의 ‘1·3 대책’이 지방 부동산시장을 악화시키는 ‘구축효과’가 나타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수도권 규제를 대거 푼 ‘1·3 대책’ 이후 지방 부동산시장이 더 깊은 침체에 빠진 가운데 중소형 건설사의 폐업이 줄을 잇고 있다. 사진은 최근 미분양이 급증한 포항 장성동 지역 아파트 모습. /뉴스1 26일 업계에 따르면 1·3 대책 이후 지방 부동산시장은 고사 위기에 내몰렸다. 수도권 규제에 따른 ‘풍선효과’가 사라지면서 청약률과 계약률 모두 곤두박질치고 있다. 지난 25일 1순위 청약을 받은 충남의 ‘서산 해미 이아에듀타운’에는 단 한 명만 신청했다. 11일 2순위까지 마감한 대구의 ‘힐스테이트 동대구셀트럴’에는 28명이 신청했다. 일부 지역에서는 가계약자가 1·3 대책 이후 계약을 취소하는 사례도 나오고 있다. 지방 미분양 물량을 판매 중인 한 건설사는 예비 계약자가 “다른 지역에 투자하겠다”며 취소해 비상이 걸렸다.
지방 중견·중소 건설사의 폐업도 급증하고 있다. 국토교통부는 올 1월 폐업했거나 폐업 예정인 건설사를 총 480개로 추산했다. 지난해 월간 최고를 기록한 12월의 401개를 뛰어넘는다. 2010년(420개) 후 13년 만에 최대(1월 기준)가 될 전망이다. 대부분 전남·경북·충남에 있는 지역 건설사다.
여경희 부동산R114 수석연구원은 “취득세 감면 등 지방 내 갈아타기 수요를 늘리거나 미분양 주택 매수자에게 한시적으로 인센티브를 주는 대안 등이 없다면 침체의 골이 한층 깊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부동산 거래량 감소로 지난해 경기도의 도세 징수액이 2021년에 비해 1조원가량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3일 도에 따르면 2022년 걷힌 경기도세는 15조7369억원으로 전년 도세 징수액(16조7987억원)보다 6.3%(1조618억원) 줄었다. 작년 징수결정액 15조9481억원 중에서 미수액(1877억원)과 결손처분(235억원)을 제외한 실징수액이다. 지난해 금리가 대폭 올라가면서 경기도에서 부동산 ‘거래절벽’이 심화했고, 지방세 중 50~60%가량을 차지하는 취득세 수입도 급감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지난해 세목별 징수액을 보면 부동산 거래세인 취득세 징수액이 8조7555억원으로 전년 징수액(10조9301억원)보다 19.9%(2조1746억원) 급감했다. 2022년 도내 부동산 총거래량이 23만2729건으로 2021년 43만5426건 대비 46.6% 급감한 영향이다. 경기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등록·면허세도 5327억원 걷혀 전년보다 13.1%(806억원) 감소했다. 광역자치단체들이 등록세와 면허세를 통합해 집계한 2011년 이후 처음 줄었다.경기도에서 전체 도세 징수액이 줄어든 건 2013년 이후 9년 만이다. 당시에도 부동산 시장 침체가 주요 원인이었다. 도 관계자는 “2013년보다 작년의 도세 징수액 감소폭이 훨씬 크다”며 “부동산 거래절벽이 이대로 지속된다면 하반기께 감액 추경을 해야 할 만큼 위기 상황”이라고 말했다.수원=김대훈 기자 daepun@hankyung.com
“어차피 전세 보증금을 2년 전보다 깎아줘야 하는 상황이라 굳이 세입자가 계약갱신청구권을 쓸 필요가 없어졌습니다.”(서울 마포구 아현동 A공인 관계자)급격한 전셋값 인상을 막고 임차인을 보호하자는 취지에서 만든 ‘전·월세 계약갱신청구권’ 제도가 무색해지고 있다. 전셋값 하락 여파로 임차인 우위 시장이 형성되면서다. 갱신요구는 급감하고 감액계약과 전세를 월세로 전환하는 비율이 늘고 있다.○머쓱해진 계약갱신청구권3일 부동산중개업체 집토스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서울·경기·인천 등 수도권 주택(아파트, 오피스텔, 연립, 다가구, 단독주택 포함)의 갱신청구권 사용은 역대 최저치인 6574건을 기록했다. 지난해 1월(1만4119건) 대비 53.4% 감소했다. 12월 사용 비중은 전체 전·월세 갱신계약의 36%를 차지했다. 나머지 64%는 합의에 의한 재계약이었다.전·월세 계약갱신청구권은 임대차 기간이 끝나기 6개월 전부터 2개월 전까지 임차인이 계약갱신을 청구할 수 있도록 한 제도다. 임차인은 청구권을 한 번만 쓸 수 있고 임대인이 청구권을 접수하면 전세금을 5% 이상 올릴 수 없도록 한 것이 골자다. 전셋값 상승 압박이 거셌던 2020년 7월 제도 도입 직후 전세 매물이 급감하면서 전세 가격이 급등하는 부작용을 낳기도 했다.하지만 가격 하락이 본격화된 지난해 하반기부터 사용률이 크게 떨어지고 있다. 지난해 1월 청구권을 사용한 계약은 1만4119건(전체의 58%)에 달했다. 2월 1만6255건으로 올랐다가 3월부터 계속 감소세를 보였다. 9월에는 합의재계약과 청구권 사용 비율이 50 대 50으로 같아졌고 10월부터는 합의갱신 비율이 더 높아졌다. 진태인 집토스 아파트팀장은 “역전세난 속에서 갱신을 원하는 세입자가 청구권을 사용하지 않아도 임대인과의 협의가 원만하게 이뤄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계약 해지 쉬워 감액 갱신계약도 32%세입자들은 갱신청구권을 종전 계약 임대료보다 금액을 낮춰 재계약하는 데 사용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갱신청구권을 사용하면 5% 이내에서 전세금 증감이 이뤄지는데 감액한 경우가 늘어난 것이다.12월 갱신청구권을 사용한 갱신계약 중 종전보다 임대료를 감액한 계약은 1481건으로 전년 동월(76건) 대비 19배 이상 급증했다. 갱신청구권 사용 계약의 32%가 감액계약인 것으로 나타났다.보증금 증액이 아닌 감액을 하는데도 갱신권을 쓰는 임차인이 나오는 이유는 합의 계약보다 유리한 조건 때문이다. 세입자가 언제든 해지 통지 3개월 후 이사할 수 있는 조항이 있어서다. 큰 폭으로 보증금을 깎기는 어려워도 세입자가 계약해지권을 좀 더 자유롭게 쓸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전세를 월세로 바꾸는 갱신계약도 증가하는 추세다. 지난해 하반기(6~12월) 수도권 전·월세 재계약 중 전세를 월세로 변경한 재계약은 5971건으로, 전년 동기(3572건) 대비 67%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집값 하락세에 전세보증금을 지키기 어렵게 되면서 전세보다 월세를 택하고 있다는 분석이다.월세 거래 증가도 두드러진다. 서울부동산정보광장의 ‘서울 아파트 월세 거래량’은 보합 후 소폭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지난해 1월 8229건이었던 월세 거래량은 7월 8901건으로 소폭 늘었고, 10월 7701건으로 떨어졌다가 12월에 다시 8831건을 기록했다. 아파트 월세 거래량이 큰 변동 없이 월 7000~8000건대를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진 팀장은 “올해 수도권에 대규모 공급이 예정돼 있는 만큼 주택 임대 시장의 감액 갱신 및 갱신청구권 감소 흐름은 당분간 계속될 것”이라고 전망했다.박종필 기자 jp@hankyung.com
수도권에서 ‘신탁 방식’으로 사업을 추진하는 소규모 정비사업장이 늘고 있다. 신탁 방식 재건축은 주민이 설립하는 조합 대신 부동산 신탁사가 시행사를 맡아 사업비 조달부터 분양까지 모든 절차를 진행한다. 전문성을 갖춘 신탁사가 시행을 맡아 투명하게 사업을 관리할 수 있고, 시공사 선정도 보다 쉽다는 게 장점으로 꼽힌다.3일 정비업계에 따르면 경기 남양주시 다산동 신우가든 소규모 재건축 조합은 최근 한국토지신탁을 사업 대행자로 지정하고 본격적인 재건축 절차에 들어갔다. 신우가든 소규모 재건축은 다산동 4026의 16 일대에 아파트 149가구를 짓는 사업이다.소규모 정비사업은 일반 재개발·재건축 사업과 달리 정비구역 지정이 생략되고 사업시행 인가와 관리처분계획 인가 단계를 통합해 복잡한 인허가 과정을 줄일 수 있다. 그러나 일반 정비사업에 비해 사업성이 낮아 시공사의 참여가 저조하고 조합원 간 이견을 조율할 조합 집행부의 전문성이 떨어진다는 한계가 있다. 정비업계 관계자는 “신탁사가 사업을 대행하면 조합 내분 등으로 인한 사업 중단 리스크(위험)가 낮아져 건설사가 시공에 참여할 가능성이 높아진다”고 설명했다.경기 부천시 원종동 진주·남양·롯데·선진 가로주택정비사업 조합도 최근 우리자산신탁과 우선협상대상자 선정을 위한 협의를 진행하고 있다. 조합 관계자는 “신탁사를 통해 초기 금융 비용을 쉽게 조달할 수 있어 신탁사에 맡기는 게 낫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충남 보령시 죽정동 가로주택정비 사업은 시행자로 대한토지신탁을 선정해 지정 고시를 기다리고 있다.하헌형 기자 hh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