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은마아파트 일부 주민들이 GTX-C노선 공사에 반대하며 내건 대형 현수막. / 사진=온라인 커뮤니티
지난달 은마아파트 일부 주민들이 GTX-C노선 공사에 반대하며 내건 대형 현수막. / 사진=온라인 커뮤니티
수도권 주요 지점을 연결하는 초대형 국책사업인 수도권광역급행철도(GTX) 사업이 지역 주민들의 다양한 요구에 몸살을 앓고 있다. 신규 정차역을 유치하려는 주민들과 이에 반대하는 주민들이 마찰을 빚는가 하면 문제가 없다는 전문가들의 분석에도 지하 터널 공사에 반대하는 시위도 벌어지고 있다.

4일 국토교통부와 서울시에 따르면 강남구 대치동 '은마아파트' 재건축추진위원회와 입주자대표회의가 오는 7일부터 강남구청·한국부동산원 등 전문가로 구성된 합동점검반에게 운영실태 점검을 받는다. 장기수선충당금 등 공급을 GTX 공사 반대 집회에 사용했다는 의혹이 제기된 탓이다. 국토부와 서울시는 합동점검반을 통해 16일까지 은아아파트 운영 실태를 들여다보고 위법 사항이 적발되면 수사 의뢰 등 강경 처분한다는 방침이다.

은마아파트 재건축 추진위 370여명은 지난달 12일부터 서울 용산구 한남동 주택가에서 현대건설이 수주한 GTX-C 노선 공사 반대 집회를 벌였다. GTX-C 노선이 주요 정차역인 양재역과 삼성역 사이 자리 잡은 은마아파트 지하 약 60m 아래를 관통한다는 이유에서다. 한남동은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의 자택이 있는 곳이다. 은마아파트 지하를 관통하는 공사를 막고자 기업 총수 거주지에서 피켓과 확성기 등을 동원한 시위에 나선 것이다.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이 오는 6일부터 강남구 대치동 '은마아파트' 재건축추진위원회와 입주자대표회의 운영 실태 점검에 나선다고 밝혔다. 사진=뉴스1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이 오는 6일부터 강남구 대치동 '은마아파트' 재건축추진위원회와 입주자대표회의 운영 실태 점검에 나선다고 밝혔다. 사진=뉴스1
은마아파트 추진위는 노후 아파트 지하에서 발파 등의 작업을 하면 안전 문제가 발생할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다만 전문가들은 주거지 지하에서는 발파가 이뤄지지 않으며, 통상 지하 40m 아래 지어지는 대심도 터널은 주변 지역에 안전성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다고 평가한다. 강도가 콘크리트의 3배에 달하는 지하 암반에 작은 구멍을 뚫는 것이기에 재건축 등 재산권 행사는 물론 소음이나 진동 등에도 영향이 없다는 것이다.
A 노선도, C 노선도…'GTX 관통 반대' 시끌
현재 노선안에서 GTX-C 노선은 은마아파트 지하 60~66m 아래를 지날 예정이다. 추후 은마아파트가 재건축하더라도 GTX-C 노선 터널은 아파트 단지의 지하 55m 아래에 위치할 전망이다. 그런데도 일부 주민들이 반대를 거듭하면서 노선안 확정이 미뤄지고 있다. 설계 등 착공을 위한 제반 절차도 함께 지연돼 내년 2분기로 예정된 착공 계획이 불투명해졌다. 만약 사업이 수정될 경우 적지 않은 비용과 시간이 추가될 것으로 보인다.

은마아파트와 같이 GTX 터널 관통에 반대하는 목소리는 이전에도 있었다. 2018년 건설에 착수한 GTX-A 노선은 전체 6개 공구 중 청담동 부근에서 공사를 멈춘 바 있다. 지역 주민들이 지반 침하와 건물 균열 등으로 인해 거주지의 안전에 심각한 문제가 생긴다고 주장하면서 강남구청이 굴착을 허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노선을 변경하려면 지질조사와 설계부터 다시 시작해야 했는데, 공사 지연은 물론 2000억원 이상의 공사비 추가가 예상됐다.

시공사인 SG레일은 강남구청을 상대로 서울시 행정심판위원회에 행정심판을 청구했다. 강남구청의 부당한 굴착 허가 거부로 인해 피해를 보고 있으니 이를 해소해 달라는 내용이었다. 2020년 5월 서울시 행정심판위원회가 시공사의 손을 들어줘 공사를 시작할 수 있었다. 다만 이 과정을 겪으며 2023년이던 완공 시점은 2024년 6월로 늦춰졌다.
수도권광역급행철도(GTX) 노선도. 사진=한경DB
수도권광역급행철도(GTX) 노선도. 사진=한경DB
GTX의 지하 관통뿐만 아니라 정차역 선정도 문제가 됐다. 지난 2월 GTX-C 노선 왕십리, 인덕원, 의왕, 상록수역 신설이 확정됐다. 당시 인근 역인 청량리역 주민들과 왕십리역 주민들이 갈등을 빚었다.
GTX 정차역 두고는 "다른 곳 안돼…우리 동네로"
청량리역 등 기존 10개 역 이외에 왕십리역 등이 신설 역으로 검토되자 왕십리역과 2.3km 거리에 불과한 청량리역 주민들이 정차역 증가로 GTX가 '완행열차'가 되고 개통도 지연될 것이라며 반대했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GTX 청량리역 유치로 집값이 상승했는데, 왕십리역이 생기면 청량리역의 위상이 떨어져 집값 상승세가 꺾일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라는 지적도 있다.

사업자 선정에 계속 실패하며 어려움을 겪는 GTX-B 노선도 같은 문제를 겪고 있다. 지난달 열린 GTX-B 노선 민자사업 구간 입찰은 대우건설 컨소시엄만 단독 응찰하면서 경쟁이 성립되지 않아 유찰됐다. GTX-B 노선은 당초 한국개발연구원(KDI)이 진행한 민자 적격성 검토에서 두 차례 모두 부적격 판정을 받았다. 수요 부족으로 사업성이 나오기 어렵다는 판단에서다.

이렇듯 사업성이 불투명한 상황에서 역위치를 놓고 갈등이 벌어지고 있다. 인천시는 '주안역 신설', 구리시는 '갈매역 신설', 춘천시는 '춘천역 연장'을 각각 요구하고 있다. 특히 구리시가 요구하는 갈매역은 이미 확정된 남양주시의 GTX-B 노선 별내역과 1.4km 거리에 불과해 주민들 간의 감정싸움으로 번지는 모양새다.

업계 관계자는 "GTX 노선을 둘러싸고 무분별한 요구가 쏟아져 나오면서 다수 시민이 볼모가 되고 있다"며 "국책사업이 사적 이익에 휘둘리지 않고 공익을 우선하여 차질 없이 추진될 수 있도록 성숙한 시민 자세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오세성 한경닷컴 기자 ses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