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 60m면 단단한 경암층
GTX 운행시 진동, 규정 밑돌 듯
35층 하중도 아무런 문제 안돼
“산에 터널을 뚫어도 산이 무너지지 않는 것처럼 수도권광역급행철도(GTX) 터널을 뚫는다고 지반이 침하하진 않습니다. 산 밑에 빨대 두 개를 꽂는 것과 다를 바 없죠.”
전석원 서울대 공대 에너지자원공학과 교수(사진)는 29일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은마아파트 지하의 GTX 터널 공사가 위험하다고 보기 어렵다”며 이렇게 말했다. 전 교수는 작년 암반공학 분야 최고 권위 학회인 국제암반공학회(ISRM)에서 한국인 최초로 회장에 뽑힌 이 분야 전문가다.
서울 강남 최대 재건축 단지인 은마아파트 지하 GTX-C 노선은 국토교통부 장관까지 나서 안전성을 보증했지만 재건축추진위원회 등 일부 주민들이 불안감을 조성하며 반발하고 있다.
전 교수는 “지표면에서 깊이 내려갈수록 흙, 풍화암, 연암, 경암 순으로 단단해진다”며 “서울은 한강 주변의 일부 매립지를 제외하곤 30m만 내려가도 경암층(일반 콘크리트의 3배 강도 지반)이 나오는 지형”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은마아파트 밑 터널 깊이가 60m 경암층이라면 충분히 안전한 수준”이라고 덧붙였다.
향후 최고 35층 아파트가 재건축되면 무게가 늘어 위험하다는 주장에는 “하중은 전혀 문제가 안 된다”고 일축했다. 그는 “암반 속에 터널을 뚫는 것은 8m 직경의 점 두 개를 찍는 것”이라며 “산 밑에 빨대 두 개를 꽂는 것과 다를 바 없다”고 말했다. 2차원적으로 생각하면 지하가 모두 비어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3차원상으로는 빨대 모양의 터널 2개만 관통한다는 얘기다.
다만 35층짜리 아파트가 새로 지어지면 12m가량이 지하 주차장으로 파인다. 이럴 경우 기존 60m에서 50m로 깊이가 줄어든다. 설사 50m로 심도가 줄어도 안전한 수준이라는 게 전 교수의 판단이다.
그는 하중보다는 진동 수준이 중요하다고 봤다. 전 교수는 “은마아파트보다 오래된 문화재 진동 규정이 초당 0.2㎝ 수준인데 은마아파트의 경우엔 0.2㎝ 미만으로 추정된다”며 “지하 구간을 굴착하는 방법도 재래식 화약 발파가 아닌 기계식 공법이라 진동이 적다”고 했다. 현대건설은 은마아파트 하부 통과 구간에는 진동 및 소음이 발생하지 않는 대형터널굴착기(TBM) 공법을 적용할 계획이다. 이는 굴착장비 머리 부분의 커터를 회전시켜 암반을 잘게 부수며 나아가는 기계식 회전굴착 방식이다.
전 교수는 “전문가 입장에선 내 집 밑에 GTX가 지나가도 전혀 걱정하지 않겠지만 일반 주민들은 충분히 우려할 수 있다”며 “과거 시공 이력을 공유하거나 공사 현장에 계측기를 심어놓고 주민들이 상시 모니터링하는 등의 방식을 고안하면 불안감이 줄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서울 강남권 최대 재건축 단지 은마아파트의 재건축추진위원회를 대상으로 이례적 행정조사가 시작됐다. 장기수선충담금 유용 여부 등이 밝혀질지 관심을 끈다. 7일 국토교통부와 서울시 등에 따르면 정부 합동점검반은 이날부터 열흘 간 은마아파트 재건축추진위원회와 입주자대표회의 등을 대상으로 조사를 진행한다. 이번 조사는 국토부가 서울시, 강남구청, 한국부동산원, 회계사, 변호사 등과 함께 벌인다. 외부 전문가까지 동원해 이례적으로 개별 조합 추진위를 조사하는 것이다. 이번 조사는 수도권급행광역철도(GTX)-C 노선을 둘러싼 갈등이 시발점이 됐다. 은마아파트 입주민 중 일부인 재건축 추진위가 국책사업인 GTX-C 노선에 대해 변경을 요구하면서 국토부는 강경 대응을 예고했다. 원희룡 국토부 장관이 지난달 23일 직접 대화에 나서 "국가사업에 대해 막연한 불안감을 확산시키며 방해하고 선동하는 행동은 절대 용납할 수 없다"며 "행정조사권을 비롯해 국토부가 행사할 수 있는 모든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은마 재건축추진위는 기업인의 집 앞에서 한 달 가까이 시위를 벌이는 등 물러나지 않고 있다. 이번 조사에선 은마 재건축 추진위의 장기수선충담금 유용 여부가 핵심 쟁점이 될 전망이다. 재건축 추진위는 버스 대절, 참가비 지급 등 GTX-C노선 우회 시위에 필요한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공동주택 회계로 관리되는 장기수선충당금을 편법으로 유용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서울시 공동주택통합정보마당에 따르면 2014년부터 2021년까지 100억원 이상을 유지해온 은마아파트의 장기수선충당금 잔고는 지난 10월 말 기준 56억여원으로 감소했다. 정부 행정조사를 통해 장기수선충당금을 법정 용도 목적 외에 사용한 게 밝혀지면 업무상 횡령 또는 배임 등의 혐의로 10년 이하 징역에 처할 수 있다.앞서 강남구청은 지난 1월부터 8월까지 은마아파트 입주자대표회의와 관리 주체가 장기수선계획을 부적절하게 수립했다는 이유로 4건의 과태료가 부과됐다.일각에서는 은마 재건축 추진위가 재건축 사업에서 용적률 상향 등의 혜택을 받기 위해 GTX-C 노선 우회를 무리하게 주장하고 있다는 얘기도 나온다. 한 정비업계 관계자는 "'2040 서울도시기본계획'을 보면 최고 층수는 높일 수 있지만 연면적과 용적률은 동일하게 유지된다"며 "용적률 상향은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심은지 기자 summit@hankyung.com
은마아파트 재건축 추진위원회가 서울 용산구 한남동 주택가에서 벌이는 시위 현장 모습을 유튜브 등에 공개한 가운데, 일반 시민들의 개인정보 노출 피해가 우려되고 있다.5일 경찰, 서울시, 용산구 등에 따르면 은마아파트 재건축 추진위는 수도권광역급행철도(GTX) C 노선 수정을 요구하며 지난달 12일부터 서울 용산구 한남동 주택가에서 시위를 벌이고 있다. 주무부처인 국토교통부, 현대건설을 건너뛰고 한남동에 거주하는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에게 자신들의 주장을 전달하겠다는 이유다.은마아파트 주민 300여명으로 구성된 시위 참가자들은 현수막과 팻말을 들고 주택가를 행진했다. 시위 과정에서 확성기를 동원에 소음을 유발하면서 인근 주민들은 불편을 호소하고 있다. 주민들의 피해는 이뿐만이 아니다. 추진위 측이 시위 현장을 유튜브로 공개하면서 일반 시민들의 얼굴과 차량 번호 등도 고스란히 노출되고 있다.타인의 얼굴을 동의 없이 촬영하고 방송해 초상권을 침해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은마아파트 추진위가 공개한 영상에는 시위 소음을 항의하는 주민 얼굴이 공개되어 있다. 자신을 지역 주민이라고 밝힌 이 여성이 시위 모습을 스마트폰으로 촬영하자 은마 추진위는 "저 여자 뭐야", "찍지 마", "건설사 사람이냐"고 다그쳤다. 추진위의 항의에 이 여성은 "안 찍을게요"라고 답했지만, 추진위는 "어디 사냐", "주민 맞겠냐", "주민 아니다"라며 폭언도 쏟아냈다. 우연히 지나가던 행인의 얼굴이 영상에 노출되더라도 모자이크 처리 등의 기술적 조처를 해야 하지만, 이 여성의 얼굴을 유튜브 영상을 통해 그대로 공개했다.초상권 침해를 입은 피해자는 가해자에게 민법상 불법 행위에 대한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 욕설이나 비방이 포함됐다면 형법상 명예훼손, 모욕 등으로 처벌될 가능성도 있다. 다만 피해 당사자가 촬영 사실을 인지하기 쉽지 않고 증거 자료를 직접 제출해야 하기에 신속한 대처에 한계가 있다. 은마아파트 추진위는 이전에도 개인정보 노출과 관련해 물의를 빚은 바 있다. 추진위는 시위 홍보를 위한 전단에 기업인의 개인정보인 자택 주소를 적시해 공개된 장소인 엘리베이터에 부착했다. 해당 전단은 촬영돼 온라인상에 유포됐다.한남동 주민 박모씨는 "매일 시위대가 몰려와 거친 말을 쏟아내니 아이들이 밖을 나가기 무서워하고 있다"며 "자신들의 권리를 지키겠다며 다른 지역 주민들의 일상을 빼앗고 피해를 강요하는 게 정당한 일이냐"고 토로했다. 한편 은마아파트 추진위는 GTX-C 노선이 노후 아파트 지하를 관통하면 안전 문제가 발생한다며 다른 아파트 단지나 하천을 관통하는 우회안을 요구하고 있다. 다만 건설 전문가들은 지하 60m 아래 지어지는 대심도 터널이 주면 지역에 안전성 문제를 일으킬 가능성은 없다고 평가하고 있다. 또한 사업이 수정되면 적지 않은 비용과 시간이 추가될 것이라는 관측이다.오세성 한경닷컴 기자 sesung@hankyung.com
수도권 주요 지점을 연결하는 초대형 국책사업인 수도권광역급행철도(GTX) 사업이 지역 주민들의 다양한 요구에 몸살을 앓고 있다. 신규 정차역을 유치하려는 주민들과 이에 반대하는 주민들이 마찰을 빚는가 하면 문제가 없다는 전문가들의 분석에도 지하 터널 공사에 반대하는 시위도 벌어지고 있다.4일 국토교통부와 서울시에 따르면 강남구 대치동 '은마아파트' 재건축추진위원회와 입주자대표회의가 오는 7일부터 강남구청·한국부동산원 등 전문가로 구성된 합동점검반에게 운영실태 점검을 받는다. 장기수선충당금 등 공급을 GTX 공사 반대 집회에 사용했다는 의혹이 제기된 탓이다. 국토부와 서울시는 합동점검반을 통해 16일까지 은아아파트 운영 실태를 들여다보고 위법 사항이 적발되면 수사 의뢰 등 강경 처분한다는 방침이다.은마아파트 재건축 추진위 370여명은 지난달 12일부터 서울 용산구 한남동 주택가에서 현대건설이 수주한 GTX-C 노선 공사 반대 집회를 벌였다. GTX-C 노선이 주요 정차역인 양재역과 삼성역 사이 자리 잡은 은마아파트 지하 약 60m 아래를 관통한다는 이유에서다. 한남동은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의 자택이 있는 곳이다. 은마아파트 지하를 관통하는 공사를 막고자 기업 총수 거주지에서 피켓과 확성기 등을 동원한 시위에 나선 것이다.은마아파트 추진위는 노후 아파트 지하에서 발파 등의 작업을 하면 안전 문제가 발생할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다만 전문가들은 주거지 지하에서는 발파가 이뤄지지 않으며, 통상 지하 40m 아래 지어지는 대심도 터널은 주변 지역에 안전성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다고 평가한다. 강도가 콘크리트의 3배에 달하는 지하 암반에 작은 구멍을 뚫는 것이기에 재건축 등 재산권 행사는 물론 소음이나 진동 등에도 영향이 없다는 것이다. A 노선도, C 노선도…'GTX 관통 반대' 시끌현재 노선안에서 GTX-C 노선은 은마아파트 지하 60~66m 아래를 지날 예정이다. 추후 은마아파트가 재건축하더라도 GTX-C 노선 터널은 아파트 단지의 지하 55m 아래에 위치할 전망이다. 그런데도 일부 주민들이 반대를 거듭하면서 노선안 확정이 미뤄지고 있다. 설계 등 착공을 위한 제반 절차도 함께 지연돼 내년 2분기로 예정된 착공 계획이 불투명해졌다. 만약 사업이 수정될 경우 적지 않은 비용과 시간이 추가될 것으로 보인다.은마아파트와 같이 GTX 터널 관통에 반대하는 목소리는 이전에도 있었다. 2018년 건설에 착수한 GTX-A 노선은 전체 6개 공구 중 청담동 부근에서 공사를 멈춘 바 있다. 지역 주민들이 지반 침하와 건물 균열 등으로 인해 거주지의 안전에 심각한 문제가 생긴다고 주장하면서 강남구청이 굴착을 허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노선을 변경하려면 지질조사와 설계부터 다시 시작해야 했는데, 공사 지연은 물론 2000억원 이상의 공사비 추가가 예상됐다.시공사인 SG레일은 강남구청을 상대로 서울시 행정심판위원회에 행정심판을 청구했다. 강남구청의 부당한 굴착 허가 거부로 인해 피해를 보고 있으니 이를 해소해 달라는 내용이었다. 2020년 5월 서울시 행정심판위원회가 시공사의 손을 들어줘 공사를 시작할 수 있었다. 다만 이 과정을 겪으며 2023년이던 완공 시점은 2024년 6월로 늦춰졌다.GTX의 지하 관통뿐만 아니라 정차역 선정도 문제가 됐다. 지난 2월 GTX-C 노선 왕십리, 인덕원, 의왕, 상록수역 신설이 확정됐다. 당시 인근 역인 청량리역 주민들과 왕십리역 주민들이 갈등을 빚었다. GTX 정차역 두고는 "다른 곳 안돼…우리 동네로"청량리역 등 기존 10개 역 이외에 왕십리역 등이 신설 역으로 검토되자 왕십리역과 2.3km 거리에 불과한 청량리역 주민들이 정차역 증가로 GTX가 '완행열차'가 되고 개통도 지연될 것이라며 반대했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GTX 청량리역 유치로 집값이 상승했는데, 왕십리역이 생기면 청량리역의 위상이 떨어져 집값 상승세가 꺾일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라는 지적도 있다.사업자 선정에 계속 실패하며 어려움을 겪는 GTX-B 노선도 같은 문제를 겪고 있다. 지난달 열린 GTX-B 노선 민자사업 구간 입찰은 대우건설 컨소시엄만 단독 응찰하면서 경쟁이 성립되지 않아 유찰됐다. GTX-B 노선은 당초 한국개발연구원(KDI)이 진행한 민자 적격성 검토에서 두 차례 모두 부적격 판정을 받았다. 수요 부족으로 사업성이 나오기 어렵다는 판단에서다.이렇듯 사업성이 불투명한 상황에서 역위치를 놓고 갈등이 벌어지고 있다. 인천시는 '주안역 신설', 구리시는 '갈매역 신설', 춘천시는 '춘천역 연장'을 각각 요구하고 있다. 특히 구리시가 요구하는 갈매역은 이미 확정된 남양주시의 GTX-B 노선 별내역과 1.4km 거리에 불과해 주민들 간의 감정싸움으로 번지는 모양새다.업계 관계자는 "GTX 노선을 둘러싸고 무분별한 요구가 쏟아져 나오면서 다수 시민이 볼모가 되고 있다"며 "국책사업이 사적 이익에 휘둘리지 않고 공익을 우선하여 차질 없이 추진될 수 있도록 성숙한 시민 자세가 필요하다"고 말했다.오세성 한경닷컴 기자 ses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