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강동구 둔촌주공 재건축 현장 모습. 사진=연합뉴스
서울 강동구 둔촌주공 재건축 현장 모습. 사진=연합뉴스
거래절벽 장기화에 서울 집값이 하락을 거듭하면서 청약 대기자들의 원성도 높아지고 있다. 집값이 급등하던 시기에는 신규 아파트 분양가가 주변 기축 아파트보다 저렴해 '로또 청약'으로 통했지만, 이제는 주변 아파트 가격이 낮아지면서 분양가가 시세와 비슷하거나 더 높아졌기 때문이다.

문제는 분양가가 떨어질 가능성은 거의 없다는 점이다. 인건비, 자잿값 등의 인상으로 분양가를 압박하는 요인은 되레 늘어나고 있다. 분양가 떄문에 미분양이 발생하게 되고, 이 물량이 늘어나게 되면 전반적인 경기침체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26일 한국부동산원 청약홈에 따르면 서울 강동구 둔촌동에 분양하는 '둔촌주공' 재건축 단지 '올림픽파크 포레온'의 분양가는 최고가 기준으로 전용 59㎡ 10억5190만원, 전용 84㎡ 13억2040만원이다. 여기에 발코니 확장 등의 옵션을 더하면 1억원가량 추가된다.

청약 대기자들 "분양가 너무 비싸…차라리 청약 포기"

집값이 떨어지면서 부동산 커뮤니티에서는 고분양가라는 지적이 나온다. '강동구 전용 84㎡가 사실상 14억원', '분양 받으면 손해볼 것 같다', '이번에 청약통장을 쓰기에는 아깝다' 등의 반응이 나오고 있다.

분양가가 비싸다는 주장의 근거는 인근 지역 시세다. 둔촌주공이 위치한 강동구의 주요 아파트인 고덕동 '고덕그라시움' 전용 84㎡는 이달 13억9000만원(5층)에 거래됐다. 지난해 최고가 19억원(17층)에 비해 5억원 넘게 하락했다. 12억2000만원(12층)까지 올랐던 '고덕 센트럴푸르지오' 전용 59㎡도 지난 20일 4억원 내린 8억2000만원(17층)에 팔렸다.
수도권의 한 아파트 건설현장 모습. 사진=오세성 한경닷컴 기자
수도권의 한 아파트 건설현장 모습. 사진=오세성 한경닷컴 기자
상일동 '고덕 롯데캐슬 베네루체' 전용 84㎡도 최고가 대비 6억원가량 낮은 10억8500만원(28층)에 이달 매매됐다. 자치구 내 주요 아파트 가격이 수억원씩 하락하면서 둔촌주공 분양가가 상대적으로 비싸게 느껴지고 있다.

강북에서 나오는 대규모 분양 물량의 사정도 마찬가지다. 성북구 장위동 장위뉴타운 장위4구역을 재개발하는 '장위 자이 레디언트'는 최고가 기준 전용 59㎡ 7억9840만원, 전용 84㎡ 10억2350만원에 나왔다. 발코니 확장 등의 옵션을 더하면 약 8000만원이 늘어난다.

장위동 '래미안장위퍼스트하이' 전용 59㎡는 지난해 11억원(23층)에 매매됐지만, 지난달에는 7억7000만원(7층)에 팔렸다. 지난해 13억3000만원까지 올랐던 전용 84㎡ 역시 지난달 9억5000만원에 손바뀜됐다. 인근 개업중개사는 "전용 59㎡는 7억원대, 전용 84㎡는 8억원대부터 매물이 있다"고 귀띔했다.

거래절벽에 인근 시세 내렸지만…"건축비는 계속 상승"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서울 아파트 매수심리는 10년 전 주택시장 침체기 수준으로 꺾였다. 11월 셋째 주 서울 아파트 매매수급지수는 67.9에 그쳤다. 매매수급지수가 기준선인 100보다 낮을수록 시장에 집을 사려는 사람보다 팔려는 사람이 많다는 의미다. 수급지수는 조사 기간 내 상대 비교지만, 단순 수치만 보면 2012년 8월 첫 주(67.5) 이후 10년 3개월 만에 가장 낮아졌다.
아파트 건설현장에 들어가기 위해 줄을 선 레미콘 차량들. 사진=오세성 한경닷컴 기자
아파트 건설현장에 들어가기 위해 줄을 선 레미콘 차량들. 사진=오세성 한경닷컴 기자
매수심리가 얼어붙으면서 거래량도 급감했다. 서울부동산정보광장에 따르면 지난달 서울 아파트 거래량(계약일 기준)은 545건에 불과하다. 1년 전인 지난해 10월 2195건의 4분의 1도 되지 않는다. 11월 신고 건수도 179건에 그치고 있다. 거래절벽이 이어지면서 집값은 낮아지는 추세다. 지난해 6.54% 올랐던 서울 집값은 올해 들어 4.14% 하락했다.

다만 주택 가격 하락에 발맞춰 분양가도 낮아지긴 어렵다는 것이 중론이다. 원자잿값과 인건비가 올랐고 금리마저 상승하면서 건설사들의 자금 조달 비용이 늘어났기 때문이다. 실제 원자잿값과 인건비 상승으로 인해 아파트 분양가 산정 기준이 되는 기본형 건축비는 올해만 3월 2.64%, 7월 1.53%, 9월 2.53%로 3차례 상승했다. 레미콘과 철근 등의 주요 자잿값 상승이 기본형 건축비에 반영되는 속도도 과거보다 빨라졌다.

주택도시보증공사(HUG)의 분양가 상한제 개선도 영향을 줬다. HUG는 분양가 결정에 인근 시세를 참고하는데, 비교 단지 선정 기준을 기존 '준공 20년 이내'에서 '10년 이내'로 낮췄다. 정부는 지난 6월 이 개선안을 발표하면서 분양가가 즉시 0.5% 오를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전에는 분양가 산정에 반영되지 않던 세입자 주거 이전비, 영업손실 보상비, 명도 소송비 등도 이제 반영된다.

한 대형 건설사 관계자는 "철근값은 다소 진정됐지만, 시멘트·레미콘값은 지속해서 오르고 있다. 인건비 부담이나 금융 비용도 마찬가지"라며 "건축비 증액 추세가 이어지고 있어 분양가가 낮아지긴 어려울 것"이라고 내다봤다.

오세성 한경닷컴 기자 ses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