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강남구 은마아파트 상가에 입주한 공인중개사 사무소에 매물 가격이 표시돼 있다. 사진=뉴스1
서울 강남구 은마아파트 상가에 입주한 공인중개사 사무소에 매물 가격이 표시돼 있다. 사진=뉴스1
집값 낙폭이 커지고 금리마저 고공행진을 거듭하면서 '똘똘한 한 채'로 선호되거나 개발 호재를 품은 아파트 매매가도 속절없이 하락하고 있다. 수요자들 사이에 '집값은 오늘보다 내일이 더 싸다'는 공감대가 형성됐고, 이자 부담도 주택담보대출 금리 상단이 8%를 넘어설 정도로 많이 늘어나면서 어떤 호재도 소용없다는 자조마저 나온다.

17일 한국부동산원이 발표한 주간 아파트가격동향에 따르면 11월 둘째 주(14일) 서울 아파트값이 0.46% 떨어졌다. 한 주 전 0.38% 하락하며 2012년 5월 부동산원이 시세 조사를 시작한 이후 주간 기준 가장 큰 낙폭을 기록했는데, 한 주 만에 기록을 갈아치웠다.

자치구별로는 '노·도·강'으로 불리는 노원·도봉·강북구가 각각 0.74%, 0.67%, 0.63% 떨어져 낙폭이 컸고, 송파구도 0.6% 하락했다. 전국과 수도권 아파트값도 0.47%, 0.57% 떨어졌다. 이 역시 역대 최대 낙폭이다. 인천은 0.79%, 경기는 0.59% 내렸다.

전국 0.47%·서울 0.46% 하락…역대 최대 낙폭

집값 낙폭이 커지면서 재건축 등의 호재도 힘을 쓰지 못하고 있다. 강남구 대치동 '은마아파트' 전용 76㎡는 지난 8일 17억7000만원(1층)에 팔렸다. 지난달 8일 19억9000만원(2층)에 매매돼 20억원 선이 무너졌는데, 한 달 만에 2억2000만원에 더 떨어졌다. 지난해 11월 26억3500만원(11층)과 비교하면 낙폭이 8억6000만원에 달한다.

은마아파트 재건축 계획안은 지난달 19일 서울시 도시계획위원회 심의를 통과했다. 2003년 재건축 조합 설립 추진위원회를 꾸린 지 19년 만이다. 하지만 호가는 점차 낮아지고 있다. 서울시 도시계획위원회 심의를 통과할 당시에도 대부분 매물 호가가 20억원을 넘었지만, 현재는 전용 76㎡ 호가가 18억5000만원까지 내려왔다.

인근 중개사무소 관계자는 "심의 통과 이후 문의가 늘어났지만, 다들 실거래가보다 저렴한 매물만 찾는다"고 말했다. 다른 개업중개사도 "수요자 사이에 '오늘보다 내일이 싸다'는 심리가 만연하다"며 "가격이 내려갈수록 수요자들이 바라는 금액은 더 낮아진다"고 꼬집었다.
서울 양천구 목동 '목동신시가지 10단지' 전경. 사진=한경DB
서울 양천구 목동 '목동신시가지 10단지' 전경. 사진=한경DB
양천구 목동 '목동신시가지 10단지'도 전용 105㎡가 지난 9일 17억2000만원(2층)에 매매됐다. 이날 지구단위계획 결정안이 통과되면서 4년여 만에 재건축 밑그림이 확정됐지만, 가격은 지난해 12월 20억7500만원(12층)에 비해 3억5500만원 떨어졌다.

목동 중개사무소 관계자는 "집주인들 사이 재건축 기대감이 높지만, 매수 문의는 없다"며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지정돼 갭투자는 불가능하고 실수요자가 들어와야 하는데, 지금 금리에서는 쉽지 않은 이야기"라고 설명했다.

시중은행 주택담보대출 금리 상단은 8%를 돌파했다. 전일 하나은행의 변동형 주택담보대출 금리 상단은 은행채 1년물 기준 8.154%에 달했다. KB국민은행과 신한은행 등의 주담대 금리 상단도 8% 돌파를 목전에 두고 있다. 은행 주담대 금리가 8%를 넘어선 것은 2008년 금융위기 이후 14년 만이다.

주담대 8% 시대 열려…'똘똘한 한 채'도 옛말

은행 대출금리가 내년 상반기에는 9%대에 진입할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한국은행은 오는 24일 금융통화위원회를 개최하고 기준금리를 추가 인상할 예정이기 때문이다. 30년 만기 주택담보대출 4억원을 9% 금리로 받으면 월 상환액은 322만원에 달한다. 지난해 같은 금액을 2% 금리로 빌렸다면 월 148만원만 상환하면 됐지만, 이자 부담이 늘어나면서 이제는 2배 넘는 금액을 내야 하는 것이다.

올해 들어서도 인기가 높았던 '똘똘한 한 채' 역시 힘을 내지 못하고 있다. 송파구 잠실 아파트 대장주 '엘·리·트'는 3년 전 가격으로 돌아갔다.
서울 시내 한 시중은행에 내걸린 대출 현수막. 사진=연합뉴스
서울 시내 한 시중은행에 내걸린 대출 현수막. 사진=연합뉴스
잠실동 '잠실엘스' 전용 84㎡는 지난 12일 최고가(27억·14층)보다 7억2000만원 낮은 19억8000만원(14층)에 팔렸다. 3년 전인 2019년 10월에도 14층 매물이 19억8000만원에 팔린 바 있다. '트리지움' 전용 84㎡도 지난 14일 최고가 대비 5억8000만원 저렴한 18억3000만원(5층)에 손바뀜됐는데, 마찬가지로 3년 전인 2019년 10월과 비슷한 가격이다.

한국부동산원 관계자는 "금리 인상 기조가 유지될 것으로 예상됨에 따라 매수 관망세가 지속됐다"며 "추가 하락 조정된 급매물에만 간헐적으로 매수 문의가 들어오는 등 시장 상황이 악화했다"고 설명했다.

윤지해 부동산R114 수석연구원도 "1년 전만 하더라도 국민 10명 중 5명은 집값이 오를 것으로 내다봤지만, 현재는 10명 중 6명이 집값 하락을 점치는 상황"이라며 "경기 침체 가능성에 대한 우려와 금리 인상으로 늘어난 대출 이자가 주택 수요 이탈을 불러오고 있다"고 진단했다.

전국 주간 아파트 전셋값은 0.53% 하락하며 전주(-0.43%) 대비 낙폭이 확대됐다. 서울은 0.59%, 수도권은 0.7% 주저앉았다. 서울 자치구별로는 성북구(-0.81%)와 송파구(-0.77%), 서초구(-0.74%), 강북구(-0.72%) 등에서 낙폭이 상대적으로 컸다. 인천과 경기도 전셋값도 각각 0.85%, 0.73% 내렸다.

오세성 한경닷컴 기자 ses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