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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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실이 19일 수도권 1기 신도시 재정비 사업에 속도를 내겠다고 밝힌 것은 지난 ‘8·16 부동산 대책’ 발표 이후 1기 신도시 주민들의 반발이 예상보다 거세게 일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는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시절부터 1기 신도시 재정비 사업을 속도감 있게 추진하겠다고 약속했지만, 8·16 대책에선 2024년에야 중장기 개발 계획을 내놓겠다고 밝혔다. 여기에 한덕수 국무총리가 이날 한 라디오방송에서 1기 신도시 재정비 공약 파기 논란과 관련해 “국민들이 잘 이해할 수 있는 상황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하면서 반발이 더욱 거세지자 대통령실이 직접 진화에 나선 것으로 풀이된다.

정치권과 부동산업계에서는 “부동산 정책은 워낙 민감해 신중할 수밖에 없지만, 정부가 단기적 시장 변화나 여론을 지나치게 의식해 갈팡질팡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주민 반발에 화들짝 놀란 대통령실

정부는 8·16 대책에서 2024년까지 분당, 일산, 평촌, 산본, 중동 등 1기 신도시 재정비를 위한 중장기 개발 계획(마스터플랜)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지난 5월 대통령직 인수위원회가 “올해 말이나 내년 초 마스터플랜을 통해 종합 발전 계획을 구상할 것”이라고 밝힌 것보다 1년 넘게 시기가 늦춰진 것이다. 심교언 주택공급혁신위원회 민간 대표는 “지역마다 사업 여건이 다르고 3기 신도시 등 주변 택지에 미치는 영향 등을 고려해야 해 시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러자 1기 신도시 주민들의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2024년이면 총선을 앞두고 계획을 발표하려는 것 같은데, 주민들을 총선 볼모로 잡겠다는 것이냐”, “대선 주요 공약인 것처럼 하더니 이번 정부에서 재건축은 물 건너간 것 아니냐”는 항의 글이 쏟아졌다.

이에 대해 최상목 대통령실 경제수석은 이날 브리핑에서 “신도시 같은 도시 재창조 수준의 마스터플랜은 5년 이상 걸리는 게 일반적”이라며 “마스터플랜 수립에 1년6개월 정도 소요되는 게 물리적으로 가장 빠르게 추진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국토교통부 고위 관계자도 “다양한 변수를 고려해 최대한 앞당긴 일정이 2024년”이라며 “이 일정대로 종합 발전 계획을 수립할 것”이라고 말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대선 당시 30여 만 가구의 1기 신도시 용적률을 높여 재건축, 10만 가구를 추가 공급하겠다고 공약했다. 1기 신도시는 지난해 분당을 시작으로 2026년까지 총 27만여 가구가 재건축 가능 연한인 ‘입주 30년 차’를 넘기게 된다. 그러나 대부분 관할 지방자치단체가 도시 과밀을 막기 위해 만든 지구단위계획의 용적률 제한에 묶여 있어 현재로선 재건축 추진이 불가능하다. 이 때문에 재건축 추진 아파트들은 현행 지구단위계획을 뛰어넘는 1기 신도시 재정비 특별법을 하루빨리 제정 해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마스터플랜 발표 왜 연기됐나

정부는 인수위 시절부터 1기 신도시 재정비와 관련해 지속적으로 엇갈리는 메시지를 내는 등 오락가락하는 모습을 보였다. 인수위가 지난 4월 1기 신도시 재정비에 대해 “중장기 국정 과제로 검토할 것”이라고 밝힌 데 대해 1기 신도시 주민들 사이에서 “공약을 번복하는 거냐”는 반발이 나오자 서너 번 추가 입장을 발표하며 “차질 없이 추진하겠다”고 해명했다.
"총선 볼모냐"…1기 신도시 반발에 '화들짝' 놀란 대통령실
정부가 출범 석 달이 지나도록 1기 신도시를 비롯한 부동산 정책에 갈팡질팡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은 자칫 규제를 대폭 완화했다가 하향 안정세를 보이는 집값이 재차 과열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성난 ‘부동산 민심’을 등에 업고 대선에서 승리한 윤 대통령으로선 집값 과열에 따른 민심 이반을 우려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부동산업계에서는 “공급 확대에 따른 중장기적 시장 안정 효과가 훨씬 큰 만큼 단기적 부작용을 너무 의식하기보다는 일관성 있는 정책 기조를 유지하는 게 중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애초에 십수 년이 걸리는 대규모 신도시 사업에 대해 ‘속도’를 운운한 것 자체가 논란을 불러일으켰다는 비판도 있다. 30만 가구인 1기 신도시를 10년에 걸쳐 재건축할 경우 연간 3만 가구씩 착공해야 한다. 공사 기간이 3년 정도임을 감안하면 9만 가구의 이주 수요가 한꺼번에 발생할 수 있다. 서울시도 재건축, 재개발 규제를 완화하기 시작한 만큼 신도시 재건축 이주와 맞물리면서 전세 대란이 발생하고 집값을 자극할 수 있다. 이 때문에 이주 수요를 감당할 수 있는 주택을 미리 공급하고 재건축 착공 물량을 조정하는 등 정교한 준비 작업이 필요하는 게 전문가들 설명이다. 김효선 NH농협은행 부동산수석위원은 “정비사업으로 늘어난 인구를 소화할 수 있는 교통, 학교 등 인프라 확충 계획을 세우는데도 적지 않은 시간이 걸린다”고 말했다.

하헌형/이혜인 기자 hh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