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산정비창 1만가구 공급 '삐걱'…딜레마 빠진 정부
서울 금싸라기 땅인 용산정비창 부지에 1만 가구 주택을 짓기로 한 정부의 공급 계획이 하향 조정될 가능성이 커졌다. 인허가권자인 서울시가 해당 부지를 ‘국제업무지구’로 개발해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어서다. 경기 과천 등에 소형으로 공급된 신혼희망타운 물량이 미달되는 등 정부 입장에서도 가구수 달성을 위해 주택 규모를 줄이기가 부담스러워졌다는 분석도 나온다.

14일 국토교통부와 서울시 등에 따르면 시는 상반기에 용산정비창 개발과 관련한 가이드라인(마스터플랜)을 마련해 공개할 예정이다. 마스터플랜은 규모가 크거나 주변에 미치는 영향이 큰 개발사업에 대해 민간의 아이디어를 참고해 개발 밑그림을 그리는 절차다.

오세훈 서울시장이 이달 초 신년 기자회견에서 “(용산정비창을) 지역 경제를 활성화하고 도시 경쟁력을 높이는 방향으로 개발하겠다”고 재차 강조한 만큼 가이드라인에서 1만 가구를 밑도는 주택 공급 규모가 제시될 가능성이 크다는 관측이 나온다. 한 정부 관계자는 “국제업무지구에 방점을 찍어 개발하면서 1만 가구나 되는 주택 숫자를 가져가기는 쉽지 않다”며 “최종 개발 계획은 가이드라인을 고려해 정부와 서울시, 부지 소유자인 코레일 등의 협의를 거쳐 확정될 것”이라고 말했다.

업계에선 소형을 기피하는 소비자들의 선호도 등을 감안해도 가구수 축소는 불가피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정부는 최근 임대주택과 신혼희망타운 내에 공급되는 주택 규모를 전용 84㎡ 이상 등으로 키우겠다고 발표했다. 더 많은 주택을 공급하기 위해 전용 46㎡, 55㎡ 등으로 설계하다 보니 주거 선호도가 높은 과천 신혼희망타운에서조차 미달이 나오는 등 문제가 불거진 데 따른 것이다. 한 시행사 관계자는 “학교설립 의무 등을 피해 용산정비창 부지에 1만 가구를 채워넣기 위해선 소형이 상당히 포함돼야 한다”며 “이는 실수요자 등을 위해 공급 규모를 늘리겠다고 한 정책의 취지와도 맞지 않다”고 지적했다.

모자란 주택 공급을 채우기 위해 용산전자상가 등 주변 지역을 활용하는 방안 등이 검토될 가능성이 있다. 앞서 용산정비창과 마찬가지로 1만 가구 공급을 계획했던 노원구 태릉골프장 역시 주민 반대 등으로 가구수가 6800가구로 줄었다. 정부는 줄어든 가구수를 수락산 역세권 도심복합사업과 인근 도시재생사업 등을 통해 충당하기로 했다. 과천청사 부지 역시 공급 계획이 비슷한 방식으로 전면 수정됐다. 다만 연계 개발 등을 통해 전체 공급 규모가 유지되더라도 “실현 가능성 등에 대한 충분한 고려 없이 뻥튀기 숫자를 제시했다”는 비판을 피해가기는 어려울 전망이다. 국토부 관계자는 “정부와 서울시 모두 도심 내 충분한 규모의 주택 공급이 필요하다는 데 공감하고 있다”며 “가이드라인 등을 따르되 전체 주택 공급 계획이 차질을 빚지 않도록 협의 중”이라고 밝혔다.

이유정 기자 yj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