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으로 일정 횟수 이상 ‘줍줍(무순위 청약)’을 했어도 판매가 완료되지 않은 잔여물량은 거주 지역 및 주택 보유 여부와 관계없이 누구나 매입할 수 있게 될 전망이다. 잇단 미계약 사태로 이른바 ‘선당후곰(일단 청약에 당첨된 후 고민한다는 뜻)’ 피해가 늘어나고 있어서다.
10일 청약업계에 따르면 이 같은 내용의 ‘주택공급에 관한 규칙’ 개정이 검토되고 있다. 지금은 규제지역에서 30가구 이상 신규분양을 한 공동주택은 부적격·계약 해지 등으로 잔여물량이 생겼을 때 부동산원 청약홈을 통해 공개적으로 계약자를 찾아야 한다. 해당 거주지역의 무주택 세대주·세대원만 자격이 있다.
앞으로는 세 번에서 다섯 번가량 무순위 청약을 시행하고도 잔여물량을 모두 매각하지 못했다면 건설사업주체가 알아서 물량을 처분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이 검토된다. 사적 거래이기 때문에 누구나 이 주택을 매입할 수 있다. 이미 집을 보유한 유주택자나 거주 지역이 다른 외지인도 이른바 투자목적 매입이 가능해지는 것이다. 매각 가격은 입주자 모집공고에 기재된 금액을 준수해야 한다.
업계에선 개정이 이뤄지면 무순위 청약 미계약에 따른 피해가 줄어들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내 집 마련에 불안을 느끼는 신혼부부나 청년층이 무순위 청약 물량에 무턱대고 청약했다가 당첨된 후 포기하는 경우다. 주택공급에 관한 규칙 개정으로 지난해 5월부터 무순위 청약이라도 당첨 지위를 포기하면 ‘재당첨 제한’(투기과열지구 10년, 조정대상지역 7년)이 적용된다. 권일 부동산인포 본부장은 “잦은 제도 변경에 따른 혼란과 내 집 마련에 대한 불안 때문에 ‘묻지마 청약’을 했다가 내 집 마련 계획에 큰 차질을 빚는 사례가 많다”고 말했다.
청약홈에 따르면 전국에서 올 들어 무순위 청약을 한 단지 38곳 중 18곳이 추가 청약을 했다. 막상 청약에선 수십 대 1의 경쟁률로 마감하고도 당첨자 상당수가 뒤늦게 이를 포기해 추가 무순위를 반복적으로 진행하는 식이다. 경기 수원시 팔달구 만강아파트는 지난해 7월 이후 11차례, 부산 남천 세원 수와 경기 의정부 리버카운티는 각각 여섯 차례 무순위 청약을 했다. 서울에서도 종로구 에비뉴 청계Ⅰ(여섯 번), 동대문구 브이티스타일(네 번), 관악구 신림스카이(네 번) 등 나홀로 단지 위주로 무순위 청약을 수차례 했다.
분양업계 관계자는 “잔여물량에 대한 잠재 매수자군이 사실상 전국구 다주택자까지 확대되면 미분양 물량 해소 가능성도 높아질 것”으로 예상했다.
지난해 말 1순위 청약에 2만 명이 넘게 몰렸던 인천 연수구 ‘송도 자이더스타’가 무순위 청약에서 9.1 대 1의 경쟁률을 기록했다. ‘줍줍’이란 신조어가 나올 정도로 큰 인기를 끌었던 수도권 무순위 청약에서도 한 자릿수 경쟁률이 나오는 등 청약시장 분위기가 빠른 속도로 가라앉고 있다.4일 한국부동산원 청약홈에 따르면 송도 자이더스타는 전날 진행한 무순위 청약에서 84가구 모집에 765명이 신청해 평균 경쟁률 9.1 대 1을 기록했다. 주택형별로 1가구를 모집한 전용 104㎡T는 93.0 대 1을 기록한 반면 나머지 84㎡타입에서는 대부분 한 자릿수 경쟁률에 그쳤다.이 단지는 지난해 11월 본 청약에서 1533가구 모집에 2만4057명이 몰려 평균 경쟁률 15.7 대 1을 나타냈다. 대단지 ‘자이 브랜드’ 아파트인 데다 바다와 워터프론트호수 조망권을 갖춰 청약에 흥행했다.하지만 총공급 물량의 35%인 530가구에서 미계약분이 발생했다. 예비 당첨자들마저 청약을 고사해 84가구가 잔여 물량으로 남았다. 무순위 청약이 마감되기는 했지만 일부는 계약으로 이어지지 않을 가능성도 있다고 전문가들은 예상했다.이 단지가 미계약된 이유 중 하나는 높은 분양가라는 지적이 나온다. 최고가 기준으로 모든 주택형 분양가가 9억원을 넘겨 주택도시보증공사(HUG)의 중도금 대출 보증을 받을 수 없다. 정부가 대출 여력을 죄고 있는 데다 향후 부동산경기가 꺾일 수 있다는 불안감도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지난 1년간 고공행진하던 연수구 집값은 지난주 -0.01%로 하락 전환한 데 이어 이번주 -0.04%로 하락폭을 키웠다.매매시장에서도 1억~2억원가량 하락한 가격에 손바뀜이 나타나고 있다. 송도SK뷰 전용 84㎡는 지난달 5일 8억5000만원에 거래돼 지난해 9월(10억4500만원)보다 1억9500만원 빠졌다. 지난달 6일 송도푸르지오월드마크1단지 전용 156㎡는 5억2000만원에 매매됐다. 이전 최고가보다 2억6000만원 낮은 수준이다.이유정 기자 yjlee@hankyung.com
올 1분기 전국 분양시장에 12만1143가구의 아파트가 공급된다. 분양가 규제 등으로 지난해 예정됐던 분양이 대거 미뤄지면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두 배가량 많은 물량이 쏟아진다. 정부가 3기 신도시 등에서 대대적인 사전청약을 진행하는 것도 물량이 늘어난 요인이다.1분기 청약시장은 예년보다 변수가 많고 불확실성이 높다는 관측이다. 3월 대통령 선거가 예정돼 있고, 대출규제 금리인상 등에 따른 자금조달 불확실성도 크다. 집값 하락세가 국지적으로 나타나기 시작하면서 지방과 수도권 외곽 등에서 미분양·미계약 리스크 역시 커지고 있다. 지난해와 같은 ‘묻지마 청약’보다는 실수요 목적이면서 자금 사정에 맞는 선별적 청약이 여느 때보다 중요하다는 조언이 나오는 이유다. 서울 4000여 가구 공급부동산R114와 분양업계에 따르면 올해 1분기 전국에서 분양이 계획된 물량은 12만1143가구(총가구 기준)다. 지난해 1분기 분양 물량(6만4001가구)보다 두 배 가까이로 늘어난 수준이다.1분기에는 올해 전체 분양예정 물량(38만6786가구)의 3분의 1가량이 몰려있다. 지역별로 서울 4452가구, 경기 5만1231가구, 인천 1만1723가구 등 수도권이 절반가량을 차지한다. 극심한 공급가뭄을 겪었던 서울이 지난해 같은 기간(1469가구)보다 세 배가량 늘어날 전망이다. 광역시의 경우 △부산 5525가구 △대구 4712가구 △광주 4562가구 △대전 3072가구 등의 순으로 물량이 많다. 도 단위 광역지자체는 충남이 1만113가구로 가장 많고, 경북(8160가구) 경남(7269가구) 등에서도 많은 분양이 예정돼 있다.연초는 통상 공급 비수기다. 올해 대규모 분양이 이뤄지는 이유는 지난해 분양을 계획했던 정비사업 중 상당수가 분양가 규제 등으로 시기가 늦춰졌기 때문이다. 서울에서만 총 1만2000가구가 넘는 강동구 둔촌주공을 비롯해 서초구 반포동 래미안 원펜타스, 서초구 방배5구역, 동대문구 이문1구역 등 2만5000여 가구가 올해로 이연된 것으로 분양업계는 추산하고 있다.정부가 뒤늦게 ‘공급확대 전략’으로 선회하면서 대규모 사전청약도 이뤄진다. 지난해 세 차례에 이어 네 번째로 이뤄지는 공공사전청약을 통해 이달 중에만 1만3552가구가 공급된다. 남양주왕숙·부천대장·고양창릉·인천계양 등 3기 신도시 6214가구와 서울 대방·구리갈매역세권·안산 장상 등 수도권 주요 입지 7338가구 등이다. 4차 공공 사전청약은 21일은 경기도 및 수도권 거주자를 대상으로 1순위 청약을 받는다. 오는 24일에는 2순위 청약이 예정돼 있다. 분양가 규제 완화된 지방도 ‘숨통’지방만 놓고 봐도 지난해보다 공급물량이 크게 늘어날 전망이다. 1분기 지방 광역시와 기타 지방도시 등에서 예정된 물량은 5만3747가구다. 지난해 같은기간(2만8555가구)에 비해 88.2% 증가한 수치다. 주택도시보증공사(HUG) 분양가 규제를 받는 광역시에서 밀려난 물량이 많았고 기타 지방은 이른바 ‘비규제 지역’ 효과로 분양성이 좋아진 곳 중심으로 공급이 늘어난다. 함영진 직방 빅데이터랩장은 “주택도시보증공사가 분양가 산정 기준을 바꾸면서 일부 단지의 사업성이 높아졌다”며 “멈춰 있던 공급이 재개되는 분위기”라고 말했다.광역시 중에선 대전과 부산의 물량 증가가 두드러진다. 대전의 1분기 예정물량은 3072가구로 지난해 같은 기간 418가구보다 7배 이상 많다. 상당수가 2월 중 분양을 예정하고 있다. 부산은 5525가구가 예정돼 전년 같은 기간(1377가구)보다 4배가 늘어난다. 공급과잉 우려가 제기되는 대구는 지난해와 비슷한 4712가구가 계획물량으로 잡혀있다.기타 지방도시 중에선 경남과 전남 충북 등의 물량 증가가 눈에 띈다. 경남은 1분기 6661가구, 전남은 3654가구가 각각 예정돼 있다.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3배, 5배가 더 많은 규모다. 지난해 1분기 1311가구가 분양됐던 충북은 올해 1분기엔 6898가구가 쏟아진다. 2020년 집값이 급등했다가 지난해 큰 조정을 받은 세종시는 분양이 급감한다. 1분기 예정물량은 660가구로 전년 같은 기간(2450가구)의 4분의 1 수준이다. 미계약 주의보 … “통장 아껴라”전문가들은 수도권 등 규제지역에선 자금계획에 맞는 청약전략을 짜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미계약에 따른 기회비용이 너무 크기 때문이다. 권일 부동산인포 리서치본부장은 “어떤 이유에서건 투기과열지구에서 공급되는 무순위 물량에 당첨됐다가 포기하면 10년(조정대상지역은 7년)의 재당첨 제한을 적용받는다”며 “대출 관련 불확실성이 클뿐더러 거래가 얼어붙어 있어 기존주택 처분 등에 차질을 빚을 가능성도 충분히 감안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실제 지난해 11월 청약을 받은 인천 연수구 ‘송도자이더스타’는 계약금 등 문제로 1533가구 중 530여 가구가 미계약분으로 나오기도 했다.수도권 외곽이나 지방은 단지별로 청약 경쟁률이 낮거나 미분양도 나올 가능성이 있다. 인구 대비 공급이 많은 지역, 교통여건이 좋지 않은 단지 등은 주의할 필요가 있다. 임병철 부동산R114 리서치팀장은 “지나치게 과열됐던 지난해와 비교하면 청약시장 열기가 한풀 꺾이고 있다”며 “당첨만을 노리고 맹목적으로 입지가 떨어지는 곳에 도전하기보단 가점을 높이면서 내 여건이나 필요가 가장 잘 맞는 단지가 나오길 기다리는 게 낫다”고 말했다. 권일 본부장은 “통장을 쓰지 않고도 무순위 등을 통한 매입 기회가 늘어날 수 있는 점도 고려해 볼 수 있다”고 조언했다. 전문가들은 다만 교통대책과 인프라 등이 확보된 3기 신도시 사전청약은 적극 노려볼 만하다고 분석했다.이유정 기자 yjlee@hankyung.com
서울 등 수도권에서 ‘나홀로 아파트’ 등에 청약 당첨된 뒤 계약을 포기하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입지 여건이나 자금 상황을 제대로 따져보지 않고 무턱대고 청약을 넣었다가 낭패를 보는 사례도 적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4일 한국부동산원 청약홈에 따르면 서울 관악구 신림동에 들어서는 신림스카이아파트(43가구)는 이날 네 번째 무순위 청약을 진행했다. 이 단지는 총 18가구를 모집한 직전 무순위 청약에서 699명이 참여해 경쟁률이 무려 38.8 대 1에 달했다. 하지만 당첨자는 물론 예비당첨자까지 모두 계약을 포기하면서 결국 14가구나 다시 미계약으로 나왔다.서울에선 100가구 이하 소단지를 중심으로 이 같은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종로구 숭인동 에비뉴청계1(99가구) 역시 오는 10일 미계약 3가구를 무순위 청약한다. 이 단지도 네 번째 무순위 청약이 된다. 지난달 잔여 5가구를 대상으로 진행한 무순위 청약에서 경쟁률이 97.4 대 1에 달했지만 경쟁률이 무색하게 절반 이상이 다시 미계약분으로 나왔다.동대문구 장안동 브이티스타일(75가구)도 지난달 7일 세 번째 무순위 청약을 했다. 이 단지는 18가구를 모집한 직전 무순위 청약에서 경쟁률이 69 대 1에 달했지만 17가구가 미계약됐다.‘줍줍’으로 불리는 무순위 청약은 정당계약을 한 이후 계약 취소·해지 물량이나 미분양 물량에 대해 진행된다. 순위 없이 청약을 받아 추첨으로 당첨자를 뽑기 때문에 가점 등이 낮은 20~30대 사이에서 인기가 많다.그러나 일단 넣고 보자는 식의 무분별한 청약이 많다는 지적이다. 지난해 5월 ‘주택 공급에 관한 규칙’이 일부 개정돼 투기과열지구에서 공급되는 무순위 물량에 당첨됐다가 포기하면 10년(조정대상지역은 7년)의 재당첨 제한을 적용받는다.권일 부동산인포 리서치팀장은 “내집 마련에 대한 불안감이 커지면서 자금도 없는데 무작정 청약을 넣었다가 덜컥 당첨되자 계약을 포기하는 사례가 많다”며 “무순위 청약이라도 포기하면 향후 청약에 큰 제약을 받기 때문에 주의해야 한다”고 말했다.전문가들은 향후 ‘묻지마 청약’으로 인한 피해가 더 늘어날 수 있다고 입을 모은다. 집값이 사실상 고점이란 인식이 짙어지고 있는 데다 정부의 강력한 대출 규제로 계약금을 마련하지 못할 가능성이 커져서다.지난해 11월 청약을 받은 인천 연수구 ‘송도자이더스타’는 1533가구 중 530여 가구가 넘는 미계약분이 나왔다. 분양가상한제 비적용 지역으로 분양가가 높은 데다 대출이 막혀 계약금을 마련하지 못한 사람이 많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10월 분양한 송도센트럴파크리버리치(96가구)도 1순위 청약에서 최고 207 대 1의 경쟁률을 기록하고도 미계약분이 발생해 지난달 두 번이나 무순위 청약을 진행했다.이유정 기자 yj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