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시내 아파트 모습. 사진은 기사 내용과 관련이 없음. /연합뉴스
서울 시내 아파트 모습. 사진은 기사 내용과 관련이 없음. /연합뉴스
“공시가 1억 미만 아파트도 과세하면 앞으로 누가 물량을 받아주죠? 미리 매도를 해야하는 것 아닐까요?”

다주택자 투기 논란이 불거진 공시가격 1억원 미만 주택에 대해 정부가 과세 검토를 시사하자 투자자들 사이에서 불안감이 감돌고 있다. 공시가 1억원 미만 아파트가 취득세 중과를 적용받게 되면 투자 열풍이 사그라들면서 거래 위축과 시세 하락이 나타날 수 있어서다.

다주택자 몰린 1억 미만 주택…“과세 검토”

13일 부동산 업계에 따르면 노형욱 국토교통부 장관은 지난해 7·10 대책 이후 다주택자 등의 매수세가 집중된 공시가격 1억원 미만 아파트의 과세 문제 등을 세정 당국과 논의하겠다는 입장이다.

앞서 노 장관은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국회 국토교통위원회의 국토부 국정감사에서 ‘공시가격 1억원 미만 아파트에 대한 주택 수 합산이나 과세 등을 검토해야 하는 것이 아니냐’는 질의에 “(주택 매수 과정에서) 불법적인 부분은 없는지, 다주택을 보유한 사람에 대한 세제를 어떻게 할지 세정 당국과 논의해야 할 사항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노형욱 국토교통부 장관이 지난 5일 세종시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국정감사에서 위원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연합뉴스
노형욱 국토교통부 장관이 지난 5일 세종시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국정감사에서 위원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연합뉴스
현재는 다주택자나 법인이 공시가 1억원 미만 아파트를 사면 주택 수와 상관없이 기본 취득세율 1.1%(농어촌특별세 및 지방교육세 포함)가 적용된다. 비(非)규제지역이라면 양도소득세 중과도 피할 수 있다.

이에 따라 규제 틈새를 노린 다주택자들이 집중 매입하는 경우가 많았다. 공시가 1억원 미만 아파트를 269채 사들인 개인이 있는가 하면, 법인은 2000채 가까이 쇼핑한 사례도 있었다.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소속 장경태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국토교통부와 한국부동산원의 거래 자료를 분석한 결과 지난해 7월부터 올 8월까지 공시가 1억원 미만 아파트 26만555채가 거래됐다. 이는 7·10대책 발표 전 1년 2개월(2019년 5월∼2020년 6월)간 거래된 공시가 1억원 아파트(16만8130채)보다 55% 많은 수준이다.

2019년 이후 공시가 1억원 미만 아파트를 10채 이상 사들인 매수자는 1470명이었다. 이 가운데 한 개인이 269채를 매입한 경우도 있었다. 이 기간 공시가 1억원 미만 아파트를 1000채 이상 사들인 법인은 3곳으로, 가장 많은 아파트를 사들인 법인은 1978채를 매입한 것으로 나타났다.

"과세하면 물량 누가 받아주나" 볼멘소리

이처럼 투자 광풍이 불고 있는 공시가 1억원 미만 아파트에 대해서 과세가 이루어질 경우 단골고객이었던 다주택자들의 매수 수요가 크게 줄어들 것으로 예상된다. 자칫 매도 자체가 쉽지 않게 될 수 있다. 한 부동산 업계 관계자는 “취득세가 적어 다주택자들이 ‘묻지마 투자’를 하며 값이 뛴 아파트들이 과세 대상이 되는 순간 매수 시 시세차익 실현이 거의 불가능하게 된다”며 “이렇게 되면 매도 물량을 받아줄 매수자가 매우 드물 것”이라고 경고했다.
사진은 기사 내용과 관련이 없음. /게티이미지뱅크
사진은 기사 내용과 관련이 없음. /게티이미지뱅크
경남 김해와 진해, 강원도 원주, 충남 아산 등에서 저가 소형 아파트를 전세를 끼고 여러 채 사들였던 다주택자 선모 씨(34)도 과세 가능성을 주의깊게 관찰하고 있다. 선 씨는 “이들 아파트는 ‘취득세 절감’이라는 이점이 사라지면 가격이 하락할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며 “아직까지 구체적인 시행 움직임은 없어 상황을 지켜보고 있지만 만일 과세에 대한 검토에 본격적으로 들어가는 분위기가 감지되면 주택들을 모두 정리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통상 공시가 1억원 미만은 대부분 갭투자로 이뤄진다. 전세가 들어있는 물건을 사거나, 전세가 없어도 세입자를 새로 물색해 매매·전세 계약을 동시에 체결하는 식이다. 여유자금 1억원으로 매매가와 전세가 차액이 1000만원 수준인 저가 아파트 10채를 사들인 후, 아파트값이 오르면 단기간에 시세차익 수억 원을 얻게 된다고 보면 된다. 집값이 한 채당 조금씩만 올라도 쏠쏠한 시세차익을 거둘 수 있지만, 반대로 하락할 경우 피해는 투자자 뿐만 아니라 임차인에게도 전가될 수 있는 구조다.

안혜원 한경닷컴 기자 anh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