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재건축 ‘2년 실거주 의무’ 규제를 철회하자 재건축 단지에서 전세 매물이 늘고 호가가 떨어지고 있다. 서울 대치동 은마아파트.  /한경DB
정부가 재건축 ‘2년 실거주 의무’ 규제를 철회하자 재건축 단지에서 전세 매물이 늘고 호가가 떨어지고 있다. 서울 대치동 은마아파트. /한경DB
정부·여당이 작년 ‘6·17 부동산 대책’을 통해 발표한 재건축 아파트 조합원의 ‘2년 실거주 의무’ 규제를 백지화하면서 주택시장 혼란이 가중되고 있다. 당정은 전세시장 안정화를 위해 실거주 규제를 철회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시장에서는 ‘임대차 3법’ 등 여파로 이미 오를 대로 오른 전셋값을 내리긴 어려울 것으로 보고 있다.

반면 조합 설립 인가를 받지 않은 재건축 초기 단계 단지는 안도하는 분위기다. 이들 단지를 중심으로 투자 수요가 몰리면서 매매가와 전셋값이 가파른 상승세를 이어갈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정책 혼선에 혼란 커진 재건축

정부가 지난해 6·17 대책을 발표한 뒤 서울 재건축 아파트 소유주 상당수는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낡은 아파트에 입주했다. 규제가 전면 백지화되면서 재건축 소유주들 사이에선 “낡은 집에 수천만원을 들여 인테리어 공사까지 했는데, 결과적으로 ‘헛돈’만 썼다”는 성토가 빗발치고 있다.

조합 설립 전인 서울 강남구 대치동 은마아파트 소유주 김모씨(55)는 작년 입주를 위해 3000만원을 들여 인테리어 공사를 했다. 인근 신축 단지에 전세로 살던 김씨는 실거주 2년을 채워야 재건축 후 입주권을 받을 수 있다는 정부 발표에 부랴부랴 이사했다. 그는 “정부 말만 듣고 세입자를 내쫓고 인테리어 공사비와 이사비까지 썼는데, 이제 와서 정책을 뒤집으니 허탈하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지난 12일 실거주 규제가 백지화된 뒤 은마아파트에선 실거주하려던 일부 집주인이 전세 매물을 내놓고 있다. 부동산 빅데이터업체 아실에 따르면 이달 초 70여 건에 불과했던 이 단지 전세 매물은 지난 15일 110건까지 늘었다.

재건축 안전진단을 최종 통과한 서울 양천구 ‘목동신시가지 6단지’에서도 입주권을 받기 위해 이사했다가 낭패를 본 집주인이 적지 않다. 이 단지 관계자는 “작년까지만 해도 세입자가 주로 이사를 왔는데, 올해 이사 온 가구 중 3분의 1은 집주인이었다”며 “인테리어 공사 차량도 부지기수로 드나들었다”고 전했다. 임대사업자 중에선 실거주 요건을 채우느라 등록임대주택이던 재건축 아파트의 임대 등록을 말소해 수천만원의 벌금을 문 사례도 있다. 김예림 법무법인 정향 변호사는 “집수리·이사 비용 지출 등으로 재산상 손해를 봤다 하더라도 정부 정책 변화에 고의나 과실이 있다고 보긴 어렵기 때문에 손해배상 같은 구제를 받긴 어렵다”고 말했다.

“전셋값 잡기엔 역부족”

전문가들은 실거주 규제 철회로 재건축 단지에서 일부 전세 매물이 나올 수는 있지만, 임대차 3법 등 겹겹이 쌓인 규제 탓에 전셋값 상승세를 꺾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실거주 규제' 없앴지만…"전셋값 안 내릴 것"
국민은행 시세에 따르면 지난달 강남구 아파트 평균 전셋값은 11억5687만원으로, 작년 6월(8억8625만원)보다 2억7000만원 넘게 올랐다. 같은 기간 양천구와 영등포구 전셋값도 각각 1억4000만원, 1억원가량 뛰었다. 은마아파트 전용 84㎡는 10억5000만원에 전세 매물이 나와 있다. 지난달 전세 실거래가(10억원)보다 5000만원 올랐다. 대치동 G공인 관계자는 “상당수 집주인이 입주를 마친 만큼 지금보다 매물이 더 늘어나긴 힘들 것”이라며 “집수리를 새로 한 곳이 많아 향후 나오는 매물은 전셋값이 비싸질 가능성이 크다”고 강조했다. 목동 C공인 관계자도 “목동은 학군이 좋아 전세 수요가 많은 만큼 전셋값이 내려가긴 어려울 것”으로 내다봤다.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묶여 실거주 의무 규제가 있는 대치동, 압구정동, 여의도동, 목동 등은 전세 물량이 더더욱 늘기 어려울 것이란 관측이다.

일각에서는 조합 설립 전 재건축 단지를 중심으로 투자 수요가 증가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압구정동에선 전체 6개 구역 중 1, 6구역이, 여의도에선 ‘시범’ ‘광장’ 아파트를 제외한 13개 재건축 단지가 조합 설립인가를 받지 않았다. 목동신시가지도 14개 단지 모두 조합 설립 문턱을 넘지 못한 상태다. 영등포구 여의도동 삼부아파트 재건축 추진위원회 관계자는 “현금 청산 위험이 없어지면서 재건축 사업을 정상적으로 추진할 수 있게 됐다”고 밝혔다.

박주연/이혜인/맹진규 기자 he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