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남산에서 바라본 서울 용산구, 서초구 일대 아파트 모습. /연합뉴스
서울 남산에서 바라본 서울 용산구, 서초구 일대 아파트 모습. /연합뉴스
“정부의 정책 목적이 집값 안정이 맞긴 하나요? 정부 말 믿으면 손해만 보는군요.”

정부가 지난해 6·17 대책 중 핵심사항으로 발표한 ‘재건축 2년 실거주 규제’가 백지화되자 부동산 관련 커뮤니티에선 정부의 부동산 정책을 비판하는 글로 게시판이 도배됐다. “재건축 2년 실거주 규제를 언급해 집값만 들쑤셨다”, “앞으로 정부가 하는 부동산 정책을 누가 믿고 따르겠는가” “여태껏 정부는 각종 방식으로 집값을 띄우고 세금 장사만 했다” 등 여러 글이 올라왔다. 업계 관계자는 “정부와 여권이 계속해 잘못된 정책 시그널로 시장의 불안을 부추기고 있으니 그 피해가 서민들에게 고스란히 돌아가는 상황”이라고 했다.

정부의 부동산정책이 오락가락하면서 시장의 혼선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정부가 지난해 6·17 대책 중 핵심사항으로 발표한 ‘재건축 2년 실거주 규제’가 백지화되면서 갈짓자 부동산 정책이 집값 불안을 부추기는 주범이라는 비난이 커지고 있다.

이 뿐만이 아니다. 정부는 올해만해도 이번 재건축 실거주 규제 외에 주택임대사업자 제도, 종합부동산세 등을 놓고도 우왕좌왕하는 모습을 보였다. 정책 시그널이 일관되지 않은 탓에 주택을 가진 자나 가지지 못한 자나 애꿎은 피해만 보고 있는 것이다.

오락가락 부동산 정책에 집값만 '들썩'

13일 정부와 국회 등에 따르면 국회 국토교통위원회는 전날 국토법안소위를 열고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 개정안 중 재건축 조합원에게 실거주 의무를 부여하는 내용을 빼기로 했다. 이는 지난해 6·17 대책에서 제시된 내용으로, 지나친 규제라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이후 시행된 임대차법과 충돌할 소지가 있으며 토지거래허가제 등 더욱 강력한 규제가 작동하고 있다는 판단도 반영했다는 것이 국회측 설명이다.
 서울 마포구 한 부동산중개업소 시세판. /연합뉴스
서울 마포구 한 부동산중개업소 시세판. /연합뉴스
정부가 섣부르게 재건축 2년 실거주 규제를 언급한 탓에 그동안 집값과 전셋값은 잔뜩 튀어올랐다. 서울 강남권 재건축 단지의 경우 2년 실거주 규제가 도입된다는 소식에 집주인들이 부랴부랴 재건축 단지로 돌아가면서 세입자들이 쫓겨난 사례가 다수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 강남구 대치동의 O공인 대표는 “재건축 2년 실거주 규제 때문에 집주인이 들어온다고 해서 급하게 전세나 상황이 여의치 않을 경우 월세까지 얻어 이사를 간 세입자가 적지 않다”며 “전셋값이 뛰면서 매매가도 동반 상승했으며 개발 기대감까지 더해지면서 매도 물건은 잠기고 매수세는 최대치로 늘었다”고 전했다.

정부의 부동산 정책이 오락가락 행보를 보인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주택임대사업자 제도가 대표적이다. 등록임대사업자 제도의 경우에도 임기 초에는 서민 주거안정을 이유로 임대사업자 등록을 권장했다가 지난해 7·10 대책에서는 단기임대(4년)와 아파트 매입임대(8년)를 폐지했다. 지난 5월에는 한발 더 나아가 더불어민주당 부동산특별위원회가 모든 주택 유형에 대한 매입임대 신규 등록을 받지 않는 등 제도 폐지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가, 시장의 반발이 거세지자 최근 원점에서 재검토하겠다고 말을 바꿨다.

공급 방안도 발표와 취소를 반복하면서 신뢰를 잃었다. 정부과천청사 유휴 부지 4000가구 주택 공급 계획은 취소됐다. 주민 반발이 컸다. 태릉골프장에 1만가구를 짓는다는 계획도 공급 물량 축소로 사실상 확정되는 분위기다. 주민과 지방자치단체가 반대하면 공급 계획도 무산될 수 있다는 선례를 남긴 것이다. 강남구 서울의료원 부지(3000가구), 마포구 서부면허시험장(3500가구), 상암DMC 미매각 부지(2000가구), 용산 캠프킴 부지(3100가구), 여의도 LH 부지(300가구) 등에서도 주민들의 거센 저항이 잇따르고 있다.

"정부 말 듣다간 손해만 본다"

문제는 정부의 정책이 신뢰를 잃으면서 매물은 잠기고 매수 수요는 최대치로 끌어올려졌다는 점이다. 다주택자들은 쏟아지는 규제 속 매물을 내놓기보다는 증여를 통한 '버티기'에 들어갔다. 무주택자들은 언제 새로운 대책이 나와 매매는 물론이거니와 전세 매물이 줄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시달린다. 주거 불안이 커진 것이다. 이들은 '지금이 아니면 평생 못 산다' 공포 속에 ‘패닉바잉’(공황구매)에 들어갔다. 다주택자나 무주택자 모두 “정부 말 들으면 손해 본다”는 인식을 하고 있다.
서울 강남구 압구정 현대아파트 전경. /한경DB
서울 강남구 압구정 현대아파트 전경. /한경DB
대치동 은마아파트를 소유한 한 집주인은 “그동안 이 정부의 말을 들은 사람은 '벼락거지'가 됐고, 반대로 한 사람은 '벼락부자'가 됐지 않느냐”며 “이번에도 정부 말 믿고 실거주에 들어갔던 사람들만 리모델링 비용을 쓰고 이사 비용도 버렸다. 정부의 원칙 없는 부동산 규제가 한 둘이 아닌데 바보같이 또 정부를 믿고 금전적인 손해만 봤다”고 호소했다.

각종 지표가 주택시장의 불안을 반영한다. 올해 상반기 서울 아파트값은 평균 1억원 가까이 올랐다. KB국민은행 리브부동산의 월간KB주택시장동향 시계열 자료에 따르면 6월 서울의 아파트 평균 매매가격은 11억4283만원으로, 지난해 12월(10억4299만원) 이후 6개월 만에 1억원 가깝게(9984만원) 올랐다. 반기 기준으로 아파트값이 1억원 수준으로 오른 것은 KB가 이 통계를 내기 시작한 2008년 12월 이후 작년 하반기(1억1790만원 상승)를 포함해 딱 두 번이다.

이젠 정부의 정책 전환을 기대한 일말의 희망도 사라지고 있다. 종부세는 더 복잡해졌고, 양도세가 대폭 강화되면서 시중에 나오는 매물은 더 줄어들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전문가는 “정부는 대책이 시장에 먹히는 지는 관심이 없는 듯 하다”며 “규제를 내거는 데 있어 시장 분위기를 고려하기보단 정치적 이해관계를 먼저 살피니 자꾸 실수가 나오고 수요자들의 불안감만 높아지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이 정도면 정부의 부동산 정책의 목적은 주택 안정이 아니라 지지율을 얻고 세수나 늘리기 위한 것이 아니냐”라고 덧붙였다.

안혜원 한경닷컴 기자 anh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