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명·시흥 신도시가 들어설 부지를 LH 직원들이 조직적으로 사들였다는 의혹이 제기된 가운데 LH 직원 매수 의심 토지인 시흥시 과림동 현장에 묘목이 식재돼 있다. /연합뉴스
광명·시흥 신도시가 들어설 부지를 LH 직원들이 조직적으로 사들였다는 의혹이 제기된 가운데 LH 직원 매수 의심 토지인 시흥시 과림동 현장에 묘목이 식재돼 있다. /연합뉴스
”애초에 광명 주민들 중에선 신도시 지정을 반대하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신도시 개발로 교통대란과 베드타운화 등을 우려한 것이죠. 최근 LH의 땅투기 의혹이 불거지면서 아예 지정 취소를 하자는 목소리가 큽니다.“ (광명 노온사동 A공인 관계자)

한국토지주택공사(LH) 직원 땅 투기 의혹에 3기 신도시 지정을 반대했던 지역 주민들의 목소리에 힘이 실리고 있다. 12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시흥·광명 지역 주민단체들은 신도시 지정을 취소를 해달라는 취지의 행정소송을 준비하고 있다. 안익수 전 광명시흥주민연합체 대표는 “신도시 지정 취소 등 공공택지 사업 취소를 요구하는 주민들 반응이 많다”면서 “입장이 강경한 주민들을 중심으로 소송을 추진하고 있다”고 말했다. 단체는 시흥시 관계자 등과 차례로 만나 입장을 전달할 방침이다.

광명 주민 B씨는 “공공을 주도해야 할 사람들이 투기를 일삼았는데 이대로 사업을 추진한다는 것은 말이 안된다”며 “광명 내에 신도시를 반대하는 의견이 많았는데 개발을 밀어붙이더니 투기하려고 그런 것이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경기도 시흥시 과림동 도로에 개발을 반대하는 현수막이 걸려있다. /뉴스1
경기도 시흥시 과림동 도로에 개발을 반대하는 현수막이 걸려있다. /뉴스1
광명·시흥 일대는 과거 보금자리지구 지정을 비롯해 지속적으로 개발계획이 나온 지역이었다. 외지 투자자들의 관심이 꾸준히 높았던 곳이었다. 이에 개발계획을 기대하고 들어온 투자자들은 환영하는 분위기다. 시흥 과림동 C공인 관계자는 “이 곳은 개발계획에 대한 이야기가 계속 돌면서 몇 년 전부터 토지를 구매하려는 수요가 많았다”며 “공무원이나 공기업 직원들이 땅을 사들인다는 소문도 꽤 돌았다”고 전했다.

기존의 주민들은 개발을 반대하는 분위기다. 오랜 기간 이 일대에 거주해 온 주민들이나 영세업자들이 대부분이다. 과림동의 다른 공인 대표도 “고철·고물·폐기물 처리업과 중장비 등 영세공장을 운영하는 이들이나 오랜 기간 직접 거주하던 주민들은 마땅히 이주지를 찾기 어려워 반대가 심했다”며 “신도시 개발 이후 교통난 등을 걱정하는 사람들도 많았다”고 말했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지정 취소에 대한 의견이 조금씩 나오는 중이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책임연구원도 “광명은 KTX 역사 등 지방과 수도권을 연결하는 교통망이 있는 요충지로 주거지를 개발해 베드타운화하기 보단 산업단지를 만들고 기업을 유치해 자족기능을 높이는 편이 낫다”고 주장했다.
3기 신도시로 지정된 광명·시흥 신도시(왼쪽부터), 남양주 왕숙1 신도시, 부천 대장신도시, 고양창릉 신도시 예정부지. /뉴스1
3기 신도시로 지정된 광명·시흥 신도시(왼쪽부터), 남양주 왕숙1 신도시, 부천 대장신도시, 고양창릉 신도시 예정부지. /뉴스1
광명 시흥 외에도 신도시 개발에 반대하는 지역들에서도 감사원 청구 등 단체행동을 고려하는 움직임이 나오는 중이다.

경기도 고양 창릉신도시 인근 지역주민 단체는 감사원에 감사청구를 준비 중이다. 고양시 1기 신도시 주민들로 구성된 일산연합회는 최근 GTX창릉역 신설 의사결정 및 LH임직원 등 의사결정 관계인의 GTX창릉역·창릉 3기 신도시 인접 부동산 매입 과정에 관련한 감사 청원서를 우편으로 감사원에 보냈다.

연합회는 청원서에서 "GTX창릉역 신설의 시점은 창릉 3기 신도시 인접 부동산 가격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요소로 평가돼 왔다"며 "창릉역 신설 시기를 결정하는 창릉역 시설 비용 부담 주체와 관련한 의사결정에는 LH임직원 등이 필연적으로 관여하게 돼 있다"고 지적했다.

고양시 창릉동 일대는 앞서 2018년 LH를 통해 새어나간 개발 계획 도면 논란으로 경찰이 수사에 착수하는 등 한차례 진통을 겪었다. 정부는 해당 지역 개발을 고려하지 않는다며 진화에 나섰다. 그러나 1년 뒤 당시 개발 계획에 있던 상당 지역이 포함된 창릉 3기 신도시 계획이 공식 발표됐다. 당시 관련 내용을 접한 1·2기 고양·파주 신도시 주민들은 "유출로 이미 투기가 이뤄진 만큼 원천 무효"를 주장하며 집회 등을 열고 강한 반대 입장을 표출했다.

이미 보상절차가 일부 진행된 하남 교산신도시에서도 반대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토지 보상 협의가 진행 중인 하남 교산 신도시 주민대책위원회는 “3기 신도시 투기 전수조사가 끝날 때까지 보상 절차를 전면 중단하라”고 LH에 요구하고 나섰다. 대책위 측은 “교산 신도시에도 LH 직원이 투기했다면, 그 피해는 원주민에게 돌아간다”고 반발하고 있다.

현지 주민들의 강력한 반발에도 불구하고 정부의 입장은 단호하다. 정부는 공급 대책을 차질 없이 추진하는데 집중할 계획이다. 국토부와 LH에 대한 1차 조사결과가 발표된 후에도 공급대책을 이어갈 것이라는 입장을 밝히고 있다.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이날 "2·4 주택공급대책을 포함한 부동산 정책은 이미 발표한 계획, 제시된 일정에 따라 차질없이 추진해 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앞서 문재인 대통령은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단과의 오찬 간담회에서 “이번 사건에 흔들리지 않고 2·4 부동산 공급 대책을 차질 없이 진행해 부동산 시장을 조속히 안정시키고, 국민 주거권을 보장하는 것이 무엇보다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안혜원 한경닷컴 기자 anh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