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비구역에서 해제된 곳이 많은 서울 성북구 장위뉴타운 일대의 모습. 한경DB
정비구역에서 해제된 곳이 많은 서울 성북구 장위뉴타운 일대의 모습. 한경DB
공공재개발 추가 후보지 선정이 3월로 예정된 가운데 이들 지역에서 ‘지분 쪼개기’를 통해 1000가구가량이 늘어난 것으로 파악됐다. 지분 쪼개기란 단독주택을 허물고 빌라 등을 지어 분양 대상자를 늘리는 수법이다. 집값이 과열된 상황에서 급조된 뒷북 공급대책이 투기 바람을 몰고왔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분 쪼개기’ 바람

27일 집코노미가 공공재개발 시범사업 2차 후보지 47곳의 건축허가 내역을 전수조사한 결과 지난해 이들 지역에서 99건의 빌라 등 다세대주택 신축허가가 이뤄진 것으로 나타났다. 빌라 한 채당 10가구 안팎 규모인 것을 감안하면 단기간에 총 1000가구 정도 불어난 셈이다.
재개발 얘기 나오자마자 삽시간에 1000가구 늘어난 곳 [집코노미]
지하철 1호선 남영역 인근인 용산구 원효로1가 30 일대는 10건의 빌라 신축 허가가 이뤄졌다. ‘뉴타운 출구전략’의 직격탄을 맞았던 성북구 장위뉴타운도 상황은 다르지 않다. 옛 장위11구역(장위동 66 일대)과 옛 장위9구역(장위동 238 일대)에서 각각 10건과 7건의 다세대주택 건축허가가 이뤄진 것으로 조사됐다. 길 하나를 사이에 두고 마주보고 있는 옛 장위8구역(장위동 77의 22 일대)도 6건으로 집계됐다.

건축허가가 가장 많았던 곳은 강동구 고덕동 옛 고덕1구역(고덕동 501 일대)이다. 모두 11건의 건축허가가 이뤄졌다. 과거 단독주택재건축구역으로 묶였다가 해제된 곳이다. 주변에 ‘고덕래미안힐스테이트’와 ‘고덕그라시움’ 등 재건축 아파트가 줄지어 입주하자 일부 주민들이 공공재개발을 하겠다고 나섰다.

일선 중개업소들은 정부가 공공재개발 도입을 발표한 이후 지분 쪼개기가 증가세를 보였다고 입을 모은다. 공공재개발은 지난해 5·6 대책을 통해 윤곽이 드러났다. 후보지역들의 빌라 건축허가는 지난해 1~4월 25건에서 5~8월 27건, 9~12월엔 47건으로 증가했다. 장위동 A공인 관계자는 “가로주택정비사업 정도를 고려하다 공공재개발이란 선택지까지 생기면 빌라는 불티나게 팔릴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재개발 얘기 나오자마자 삽시간에 1000가구 늘어난 곳 [집코노미]
그러나 정부가 이달 초 발표한 공공재개발 시범사업 1차 후보지 선정에선 지분 쪼개기 문제가 수면 위로 드러나지 않았다. 기존 정비구역 중에서 대상지를 선정했기 때문이다. 정비구역에선 건축행위허가제한으로 빌라 등의 신축이 불가능하다. 그러나 3월 발표할 2차 후보지는 정비구역에서 해제된 곳과 아예 정비구역으로 지정되지 않았던 지역이 대상이다. 각 구청에서 선제적으로 건축행위를 막은 일부 지역을 제외하면 첨예한 갈등이 예상되는 이유다.

40%는 청산 위험

문제는 ‘지분 쪼개기 금지일’의 개념인 권리산정일이다. 공공재개발로 새롭게 구역지정을 받는 지역의 권리산정일은 지난해 9월 21일이다. 정부가 후보지 공모를 시작한 날이다. 일반 재개발구역이라면 구역지정이 이뤄지는 시점에 권리산정일이 함께 고시된다. 그러나 공공재개발은 언제 구역지정을 받게 되든 후보지 공모일로 권리산정일이 앞당겨진다.

2차 후보지 47곳의 건축허가 99건 가운데 40건은 허가 시점이 지난해 9월 21일 이후다. 신축 빌라의 40%가량은 매수하더라도 새 아파트를 받지 못하고 현금청산할 위험이 있는 셈이다. 자칫 대량 청산 사태가 나타날 가능성도 있다. 성북동 B공인 관계자는 “허가는 사전에 받았지만 준공이 9월 21일 이후”라며 “경과조치가 뚜렷하게 나오지 않아 매수자들의 문의가 빗발치고 있다”고 말했다. 강영훈 부동산스터디 카페 대표는 “시장이 한껏 달궈진 상황에서 뒤늦게 정비사업을 활성화하려다 보니 부작용이 속출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섣부른 투자는 독이 될 수도 있다. 정부는 공공재개발로 지정되는 구역의 조합 정관을 변경해 원주민이 아닌 승계조합원들의 분양가를 높일 계획이다. 조합원 분양가나 일반분양가가 아닌 주변 시세대로 새 아파트를 받도록 한다는 것이다. 입주권 투자 수요를 원천 봉쇄하기 위해서다. 김제경 투미부동산소장은 “입주권을 승계하려는 이들이 없기 때문에 중도 매각이 사실상 불가능해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전형진 기자 withmol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