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연합뉴스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연합뉴스
사상 초유의 전셋값 안정화대책 발표가 임박했습니다. 그간 정부가 내놨던 부동산 종합대책은 집값 안정이 목표였습니다. 법령과 세제, 대출을 전방위적으로 손봤죠. 이번엔 다소 결이 다릅니다. 공공과 민간통계를 가릴 것 없이 전세수급지수가 최악을 경신하고 있으니까요.

사실 전세가격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요인은 수급입니다. 통상 새 아파트 입주가 줄어드는 해는 전세가격이 오르고, 늘어나는 해는 전세가격이 내리죠. 문제는 이 수급을 조절하기 위해선 물리적인 시간이 필요하다는 점입니다. 오늘 당장 새 아파트를 더 짓기 위해 삽을 뜨더라도 완공까지는 보통 2년 6개월이 걸립니다. 대책의 약효가 2년도 더 지나서 나타난다면 사후약방문이나 다름없겠죠.

그래서 정부가 우선적으로 검토하고 있는 게 매입임대 물량 확대입니다. LH(한국토지주택공사) 등이 공급하는 공공임대는 크게 두 가지 유형이 있습니다. 국민임대나 행복주택처럼 새집을 지어서 임차인을 들이는 건설임대가 대표적이죠. 그리고 공공이 기존 주택이나 미분양주택, 부도주택 등을 사들여 임대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게 바로 매입임대죠.

사실 매입임대 유형 가운데 아파트는 많지 않습니다. 대부분은 다가구주택이나 원룸이죠. 물량을 늘린다고 하지만 실적을 보면 폭발적으로 늘어날 수 있는 수준은 아닙니다. 2004년 이 제도가 만들어진 이래 LH가 지금까지 공급한 실적이 11만가구 남짓이니까요.

중요한 건 이 같은 유형의 주택이 전셋값을 얼마나 빠르게 안정화시킬 수 있는지 여부입니다. 지역과 연식을 가리지 않고 아파트 전셋값이 하루아침에 수억원씩 오르는 상황에서 공공빌라와 원룸이 아무리 늘어난들 불길을 잡을 수 있을까요. 아파트의 비중을 늘린다고 해도 공공임대는 까다로운 기준이 있습니다. 매입임대 역시 마찬가지인데요. 유형별 차이는 있지만 대부분 일정 소득 요건을 둬 취약계층에게 혜택이 돌아가도록 하고 있죠.

또 거론되는 건 전세임대입니다. 전대차(轉貸借)라고도 하죠. LH가 집주인과 전세계약을 맺은 뒤 세입자에게 다시 임대를 주는 방식입니다. 물론 그만큼 비용을 보전해 싸게 공급하는 것이죠. 당연히 자격이 더 까다롭습니다. 신혼부부나 청년 계층의 경우 자격 요건이 좀 완화되긴 하는데요. 문제는 대상 주택의 임대료 한도가 서울과 수도권 기준 1억2000만원이라는 점입니다. 이렇게 전셋값이 오른 상황에서 가격에 맞는 전셋집을 찾는 것도 어려운 일입니다.

‘질 좋은 중형 공공주택’ 얘기도 나옵니다. 공공임대의 전용면적 기준을 종전 60㎡에서 국민주택규모(전용 85㎡)로 늘리고 고급화를 하자는 이야기죠. 역사엔 이런 시도가 왜 없었겠습니까. 오세훈 전 서울시장의 ‘시프트(장기전세주택)’가 바로 이런 주택이었습니다. 이재명 경기지사가 구상하는 ‘경기도 기본주택’도 같은 맥락인데요. 사실 시프트는 실패한 정책으로 받아들여지며 정리 수순을 밟고 있습니다. 신규 공급물량은 행복주택 등으로 대체하고 기존 물량의 공가(空家)에 대해서만 새 임차인을 들이고 있죠.

원인은 여러 가지입니다. 우선 중산층을 위한 임대주택을 표방한 만큼 중형 주택의 임대료 수준은 소형 주택보다 높을 수밖에 없습니다. 결국 주변 임대시세의 일정 비율을 따르니까요. 부동산시장의 상승장에서 소외된다고 느낀 임차인들이 계속 이탈하는 것도 공가가 늘어나는 이유입니다. 같은 부서에 있다 최근 결혼한 한 선배는 일생일대의 실수 가운데 하나로 시프트에 입주했던 걸 꼽았습니다. 그래도 가장 큰 이유는 사업주체의 재정적 부담입니다. ‘질 좋은 주택’을 임대로 돌리는 만큼 어느 시점 가면 수지타산이 맞지 않을 수밖에 없습니다. 서울주택도시공사(SH)가 겪은 문제이기도 하고요. 공기업들이 총대를 메고 이 같은 주택을 공급하다 나중에 재정 문제가 터진다면 그때 가선 방만 경영을 탓할 텐가요?

월세 세액공제 확대 방안도 논의되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결국 전세의 월세화를 당국이 염두에 두는 포석이죠. 그런데 당국자들이 월세살이를 해보긴 한 건가 의문도 들긴 합니다. 대부분의 월세입자들은 집주인과 마찰을 일으키지 않기 위해 세액공제를 포기합니다. 제도를 몰라서 신청 비율이 낮은 게 아니란 거죠. 세액공제를 신청해 집주인의 임대소득이 노출되면 그만큼의 부담이 결국 자신에게 전가될 게 뻔하니까요. 한도가 늘어난다고 한들 달라질 게 있을까요.

부동산시장의 불안 요인은 복합적이지만 정부의 정리는 명쾌합니다. 앞선 정부가 “빚 내서 집 사라”고 권유했던 것 때문에 집값이 올랐고, 이 때문에 매매수요를 강하게 억제하다 보니 전세수요가 늘어나 전셋값마저 오르고 있다는 것이죠. 그런데 앞선 정부들이 재개발·재건축을 강하게 밀어붙이지 않았다면 지금은 더 끔찍한 상황이었을지 모릅니다. 현 정부가 슬그머니 재개발·재건축의 고삐를 풀고 있다는 건 지금까지의 처방이 틀렸다는 방증 아닐까요.

전형진 기자 withmol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