삽도 안 떴는데…건축허가 직후 입주권 선점
'재개발 붐' 타고 활황…안전장치 없어 우려도
재개발을 다시 추진하고 있는 서울 염리동 옛 염리5구역 일대의 모습. 한경DB

재개발을 다시 추진하고 있는 서울 염리동 옛 염리5구역 일대의 모습. 한경DB

정부가 추진하는 공공재개발과 가로주택정비사업 등으로 재개발 기대감이 고조되자 빌라 선분양이 늘고 있다. 개발 가능성이 높은 곳에서 건축허가만 받은 뒤 바로 분양하는 방식이다. 전문가들은 입주권을 선점하는 효과가 있지만 건축주의 파산 등에 따른 피해가 발생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13일 서울 석관동 일대 중개업소들에 따르면 최근 이곳에서 선분양을 진행한 빌라 한 채가 반나절 만에 모두 팔렸다. 건축허가만 받은 뒤 삽도 뜨지 않은 상태에서 분양했지만 물량이 순식간에 동난 것이다. ‘미니 재개발’로 불리는 가로주택정비사업이 속도를 내는 영향이다. A공인 관계자는 “계약금 3000만원만 내고 잔금은 준공 후 치르는 조건”이라며 “사업이 본격화하면 짓자마자 부수게 될 빌라”라고 설명했다.

머지않아 철거가 예정된 신축 빌라가 팔리는 건 새 아파트 분양자격과 관련 깊다. 투자자 입장에선 개발이 본궤도에 오르기 전 사둬야 원주민 자격으로 새 아파트를 분양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사업이 본격화할수록 가격이 오른다는 점도 선분양을 입질하는 이유다.

재개발 재추진 바람이 불고 있는 도심 주변도 마찬가지다. 재개발 재추진 바람이 불고 있는 염리동과 대흥동 일대의 신축 빌라는 대부분 선분양이다. 정비구역에서 해제됐다가 구역 재지정이 가시권에 들고 있는 옛 염리5구역의 경우 지분 12㎡ 안팎 신축 예정 빌라의 분양가가 5억원 초반대다. 2억원대에 세입자를 들이면 실투자금을 3억원대로 줄일 수 있다는 게 일선 중개업소의 얘기다. 염리동 B공인 관계자는 “마용성(마포·용산·성동구)에서 3억원대로 투자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며 “입주권을 원하는 이들 때문에 공사도 하기 전에 분양이 모두 끝난다”고 말했다.

재개발구역의 경우 구역지정 전 행위허가제한과 권리산정일이 고시된다. 단독주택을 허물고 빌라를 지어 분양 대상자를 늘리는 ‘지분 쪼개기(신축 쪼개기)’가 금지될 뿐더러 이 같은 빌라를 매수하더라도 새 아파트를 주지 않는다는 의미다. 이 때문에 구역지정 전 건축허가를 받아 짓는 빌라들이 불티나게 팔릴 수 있는 것이다. 재개발을 전문으로 다루는 C공인 관계자는 “건축주 입장에선 선분양을 통해 자금조달이 가능해 대출을 받는 것보다 낫다”며 “한 채를 지을 때마다 10~15%가량의 수익을 남긴다”고 설명했다.

일반 빌라시장에선 후분양이 보편화 돼 있다. 아파트와 비교하면 공기(工期)가 짧은 데다 수분양자의 가격 부담도 낮아서다. 하자분쟁에서도 선분양보다 자유롭다. 그러나 재개발시장에선 정반대다. 2003년을 전후로 선분양 방식이 등장했다.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 개정으로 단독주택을 전환다세대 방식으로 바꾸는 지분 쪼개기가 막히자 아예 집을 허물고 빌라를 짓는 ‘신축 쪼개기’가 등장하면서부터다. 2007~2008년 절정기를 보이다 최근 다시 늘고 있는 것으로 부동산업계는 보고 있다.

문제는 뚜렷한 안전장치가 없다는 점이다. 아파트 선분양의 경우엔 분양보증이 의무화 돼 있다. 건설사가 공사 중 파산하더라도 보증기관이 수분양자들의 돈을 돌려준다. 하지만 빌라는 이 같은 의무가 없다. 건축주가 허가를 받은 직후 빌라를 팔아놓고 사라지거나 자금 융통이 막힌다면 피해는 고스란히 투자자에게 돌아온다. 한 정비업계 관계자는 “빌라를 선분양 받았다면 공정이 제대로 이뤄지고 있는지 수시로 확인해야 한다”며 “공사가 중단됐을 땐 토지만으로도 분양자격을 얻을 수 있지만 권리가액에 밀려 원하는 주택형을 배정받지 못할 수 있다”고 말했다.

전형진 기자 withmold@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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