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재개발 후보지로 선정된 서울 흑석동 흑석뉴타운2구역 일대의 모습. 연합뉴스
공공재개발 후보지로 선정된 서울 흑석동 흑석뉴타운2구역 일대의 모습. 연합뉴스
“제가 왜 불안에 떨어야 하는 건지 이유를 모르겠습니다.”

한 독자의 말입니다. 이분은 서울의 한 재개발구역에서 빌라를 짓고 있죠. ‘지분 쪼개기’를 하는 빌라업자가 아니냐고 생각하시겠지만 이곳은 예전에 정비구역에서 해제된 곳입니다. 재개발사업이 엎어졌으니 낡은 집을 허물고 새집을 짓는 건 너무 당연한 일이죠. 문제는 이 동네가 이번에 정부가 추진하는 공공재개발을 신청했다는 점입니다.

왜 문제라고 지적했는지는 지분 쪼개기와 권리산정기준일의 개념을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지분 쪼개기는 재개발구역에서 새 아파트를 받을 수 있는 분양 대상자를 늘리는 수법입니다. 단독주택을 허물고 10가구짜리 빌라를 지으면 조합원이 한 명에서 10명으로 늘어나니까요. 모두가 이렇게 지분 쪼개기를 한다면 새 아파트가 그만큼 빽빽해지겠죠. 그래서 등장한 게 권리산정일입니다. 이날 이후 새로 지어진 집은 새 아파트를 안 주겠다는 기준일입니다. 일종의 지분 쪼개기 금지일이죠. 권리산정일은 구역별로 다르게 정해집니다.

그런데 정부는 공공재개발 사업지를 선정하면 이 권리산정일을 통일할 계획입니다. 공모를 시작했던 9월 21일로 말이죠. 예를 들어서 아직 정비구역 지정을 받지 않은 지역이 이번에 공모를 신청해서 내년 구역지정을 받더라도 권리산정일은 올해 9월 21일이 된다는 이야기입니다. 이날부터 구역지정일까지 지어진 빌라들은 새 아파트를 받지 못하기 때문에 ‘재개발 붐’을 노린 투자자들은 모두 현금청산하게 되는 거죠.

사실 공공재개발의 신규 정비구역에 권리산정일을 일괄 적용한다는 건 굉장히 파격적인 발상입니다. 재개발 지역의 투기 수요, 특히 신축 빌라를 지어서 노후도와 사업성을 떨어뜨리는 부작용을 선제적으로 차단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하면 투기를 완전히 틀어막을 수 있을지 고심한 국토교통부와 서울시 당국자들의 치열함이 느껴지는 부분입니다.

아까 말씀드린 문제라는 게 바로 여기서 발생합니다. 정부는 ‘5·6 대책’에서 공공재개발 도입을 발표할 때 해제된 정비구역은 사업 대상지에서 제외하겠다고 못 박았습니다. 하지만 이어진 ‘8·4 대책’에선 해제구역도 포함하기로 했죠. 그러니까 해제구역이 공공재개발을 신청해 다시 구역지정을 받는다면 권리산정일은 9월 21일이 되는 것입니다. 해제구역은 당초 주민들이 원하거나 서울시의 판단으로 재개발을 접었던 곳이죠. 개발 가능성이 없어진 곳에서 짓는 빌라들까지 뭉뚱그려 모두 재개발을 노린 투기 수요로 볼 수 있을까요.

사실 그동안 정부와 서울시의 기조는 전면 철거방식의 재개발 추진을 억제하는 것이었습니다. 사업 재추진 가능성이 낮았던 만큼 신축 빌라를 말 그대로의 건설사업으로 접근한 이들도 많았죠. 그런데 갑자기 아무도 사지 않을 빌라를 짓는 꼴이 돼버렸으니 마른 하늘에 날벼락인 셈입니다. 신축 빌라가 재개발구역의 노후도를 떨어뜨리고 사업성을 해치는 건 주지의 사실입니다. 그러나 애초부터 목적이 지분 쪼개기가 아니었다면 이들은 선의의 피해자가 됩니다. 경제활동을 하면서 불안에 떨어야하는 이유를 모르겠다는 하소연에 공감하는 이유입니다. 건축허가를 내줄 땐 언제고 이제 와 청산 대상이 될 수도 있다는 거죠.

사실 국토부와 서울시 모두 이 문제에 대해 명확한 기준을 마련하지는 못했습니다. 아직 어떤 곳에서 공공재개발 시범 사업을 할지 결정되지도 않았죠. 그런데 제도가 급변할 땐 언제나 경과조치가 나왔습니다. 서울시는 2010년 7월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조례’를 개정해 권리산정일이란 개념을 도입했습니다. 그럼 이날 이전 구역지정을 받아 지분 쪼개기 금지일이 없는 구역은 어땠을까요. 지금처럼 단독주택을 허물고 신축 빌라를 짓는 지분 쪼개기(신축 쪼개기)는 2008년 8월부터 일괄적으로 막아 왔습니다. 다만 이 조례를 개정 시행하기 직전인 2008년 7월 31일까지 건축허가를 받아 지은 빌라라면 새 아파트 분양 자격을 인정했죠. 그러니까 경과조치에 따라 예외적으로 지분 쪼개기를 인정해줬다는 이야기입니다. 이날 이후 건축허가를 받았더라도 면적이나 가격 기준에 따라 분양 자격을 인정합니다.

정부가 투기를 막기 위한 묘안을 마련한 건 칭찬할 만한 일입니다. 그러나 선의의 피해자를 구제할 경과조치가 수반되지 않은 건 아쉬운 대목입니다. 결국 후속 발표가 있기 전까지는 현장의 혼란이 극심할 테니까요. ‘땜질 처방’이란 게 최근 2~3년 동안의 부동산 정책에서 계속 반복된 문제여서 더욱 그렇습니다.

전형진 기자 withmol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