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책 파트너 서울시가 정작 핵심 내용 공공재건축에 '반기'

정부가 공공재건축을 활성화하는 내용 등을 골자로 한 수도권 주택 13만2천가구 공급 방안을 내놓았지만 실제로 시장에서 확보될 수 있는 물량일지에 대해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정책 내용도 내용이지만 무엇보다 긴밀히 협력해야 하는 서울시가 정부 보도자료의 잉크도 마르기 전에 가장 핵심 내용인 공공재건축에 대해 사실상 반대 입장을 표명해 대책 전체가 흔들리는 모양새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달 2일 김현미 국토부 장관을 청와대로 불러들여 주택 공급을 늘릴 것을 주문한 지 한달여만에 나온 대책이기에 무엇보다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해 두 자릿수(10만가구)를 넘길 수 있을지에 대해 미심쩍은 시각이 많았지만 정부는 이날 오히려 이보다 더 많은 13만2천가구를 제시했다.

[8·4대책] 13만2천가구 공급한다는 정부…실현가능성에는 물음표(종합)
대책 내용 중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공공이 사업에 참여하는 공공재건축에 대한 파격적인 용적률·층수 규제 완화였다.

부족한 시간에 신규 택지 발굴만으론 시장을 만족시킬 만한 파급력 있는 공급 대책이 나오기 어렵다는 현실적인 판단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공공재건축에 대해 용적률을 준주거지역 최고 수준인 500%까지 보장하고 층수도 50층까지 올릴 수 있게 했다.

강남구 압구정동과 송파구 잠실 등 한강변 중층 재건축 단지를 노린 조치로 풀이됐다.

하지만 정부 대책 발표 서너시간 만에 판이 뒤집혔다.

서울시가 별도 브리핑을 열고 "공공재건축에 민간이 참여할지 의문"이라며 정책의 효과에 대해 심각한 의문을 제기했기 때문이다.

서울시는 "공공재건축 방안에 대해 반대 의견을 냈지만 정부가 강행했다"고도 했다.

특히 35층 층수제한 완화 방안에 대해선 거부 의사를 명확하게 했다.

순수 주거용 아파트만 지으면 기존대로 35층 이상 층수를 높이게 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가뜩이나 부동산시장에선 공공재건축 제도 내용에 대한 의문이 제기된 터였다.

이 제도가 성공하려면 재건축 조합이 조합원들의 뜻을 모아 공공재건축이라는 '목걸이'를 걸어야 한다.

용적률 완화 혜택을 위해선 곳간 문을 열고 한국토지주택공사(LH) 등 공공기관을 시행에 참여시켜야 한다.

게다가 공공재건축을 하면 용적률 인센티브를 받고 추가로 확보한 주택의 절반 이상을 떼어내 기부채납해야 한다.

정부는 기부채납 받은 주택의 50% 이상은 장기 공공임대로, 나머지는 공공분양으로 활용한다는 방침이다.

[8·4대책] 13만2천가구 공급한다는 정부…실현가능성에는 물음표(종합)
홍남기 부총리는 대책을 발표하면서 용적률 증가에 따른 기대수익률 기준으로 90% 이상을 환수하겠다고도 했다.

건물을 높이, 크게 지을 수는 있겠지만 과연 이를 통한 수익을 볼 수 있을 것이냐를 두고 조합들의 셈법이 복잡해질 수밖에 없다.

정부 브리핑에선 정부가 공공재건축을 통해 확보하겠다고 밝힌 목표치를 두고도 물음표가 이어졌다.

정부는 공공재건축을 통해 향후 5년간 5만가구를 공급하겠다고 했다.

5만가구는 정부의 주택 공급 목표치의 38%에 달한다.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정부의 공급 목표일 뿐, 아직은 구체화되지 않았다.

정부는 5만가구의 근거에 대해 서울에 정비구역으로 지정됐지만 사업시행 인가를 받지 못한 사업장 93개, 약 26만가구를 대상으로 약 20%가 공공재건축에 참여하는 경우를 가정해 5만가구를 산정했다고 밝혔다.

26만가구의 20%인 5만2천가구가 재건축에 참여해 용적률을 250%에서 500%로 두배가량 받으면 5만여가구를 더할 수 있다는 계산이다.

하지만 참여하는 재건축 조합이 20%라는 것은 아직은 정부의 추산이고, 이때 부여되는 용적률 수준도 정부가 제시한 최대치다.

강남구 압구정동이나 송파구 잠실 등지의 재건축 조합들은 미온적인 태도를 보인다.

이와 함께 정부는 과거 뉴타운 사업이 좌초된 지역에 대해서도 공공재개발 사업을 벌여 주택을 2만가구 추가하겠다고 밝혔다.

뉴타운 등 정비구역으로 지정됐다가 사업 지연 등으로 해제된 곳은 서울에 176곳이 있고 이중 145곳(82%)이 노원과 도봉, 강북 등 강북 지역에 있다.

정부는 이미 5·6 공급대책을 통해 LH 등 공공이 참여하는 조건으로 재개발 사업의 사업성을 보장해주는 공공 재개발 방안을 제시하고 이를 통해 2만가구를 공급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5·6 대책을 통한 공급물량 2만가구와 이번에 제시된 2만가구 중 겹치는 내용이 있지 않을까 의문이 제기되는 대목이다.

[8·4대책] 13만2천가구 공급한다는 정부…실현가능성에는 물음표(종합)
이에 대해 국토교통부 관계자는 "5·6 대책 때는 서울시 의견을 반영해 정비구역에서 해제된 지역은 계산에 넣지 않았기에 숫자가 중복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하지만 5·6 대책 이후 석달이 되도록 공공재개발에 참여하겠다고 나서는 재개발 단지가 있다는 소식은 좀체 들리지 않는다.

앞서 제시한 공공재개발 방식에 대한 재개발 조합의 반응이 확실치 않은데 사업 대상을 사업 추진이 더 어려운 재개발 좌초 지역으로 확대한 것이다.

이번 대책에 포함된 노후 공공임대단지의 재건축을 통한 주택 3천가구 공급 방안은 기본 방침이 이미 2017년 주거복지로드맵 이후 여러 차례 제시되고 실제 사업도 추진되고 있어 새로운 내용이라 할 수 없다.

13만2천가구 공급 계획 중에서 구체성을 띠는 것은 서울 노원구 태릉골프장 등 신규 택지 발굴을 통해 공급하는 3만3천가구와 3기 신도시 등 기존 택지 용적률 상한 등을 통해 추가 확보하는 2만4천가구 등 5만7천가구가량이다.

한달 남짓한 짧은 시간이 주어졌다는 점에서 정부가 5만7천가구 이상 추가 공급 물량을 뽑아낸 것도 선방했다는 시각이 많다.

하지만 부동산 시장에서 무엇보다 심리가 중요하다는 점에서 정부의 13만2천가구 공급 계획에 대한 시장의 신뢰가 흔들리게 되면 정책 효과보다 더 큰 부작용을 일으킬 수 있다.

권대중 명지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재건축 단지의 용적률을 높여 고밀개발하겠다는 것이지만 개발이익의 최대 90%까지 환수한다면 조합원이나 소유자들이 할지 의문"이라며 "이번 공급대책이 시장에 영향을 주겠지만 발표한 대로 100% 공급량을 채우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고 말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