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잠실의 한 상가 중개업소 매물 정보란이 비어 있는 모습. 연합뉴스
서울 잠실의 한 상가 중개업소 매물 정보란이 비어 있는 모습. 연합뉴스
전·월세상한제와 계약갱신청구권이 전격 시행되면서 임대차시장 격변이 불가피해졌다. 주요 선진국들의 경우엔 이 같은 제도를 도입했다가 부작용으로 폐지한 사례도 있다. 일본의 경우엔 집주인이 세입자에게 합의금을 주면서 계약갱신을 거절하는 게 보편적인 것으로 조사됐다.

정부는 31일 오전 정부서울청사에서 정세균 국무총리 주재로 임시 국무회의를 열고 주택임대차보호법 개정안을 심의·의결했다. 임대료 증액을 제한하는 전·월세상한제와 계약갱신을 강제하는 계약갱신청구권 도입이 골자다. 이들 제도는 이날 즉시 시행에 들어갔다.

전·월세상한제의 경우 영국에선 더 강력한 제도를 시행하다 없앴다. 1965년 공정임대료 제도를 도입했지만 1988년 폐지했다. 임대료사정관이 정한 범위에서 물가지수와 연계해 인상할 수 있도록 해오다 아예 민간의 순기능에 맡기기로 한 것이다.

프랑스와 미국은 영국이 시행하던 공정임대료와 비슷한 제도가 있다. 프랑스의 경우엔 국가통계경제연구원이 발표하는 비교기준임대료지수를 기준으로 임대료 증액이 이 수준을 넘지 못하도록 하고 있다. 지수는 물가지수 변동 등을 고려해 산정한다. 다만 최초 임대차계약에서 임대료 산정은 자유롭게 할 수 있다.

미국 뉴욕주는 임대료통제와 임대료안정화제도를 두고 있다. 임대료통제는 1947년 2월 이전 건축된 주거용빌딩 대상이다. 임대료위원회가 최대기본임대료를 2년 단위로 고시한다. 최대 인상률은 7.5%다. 임대료안정화제도는 1947년 2월 이후부터 1974년 1월 사이 지어진 다가구주택에 적용된다. 위원회가 매년 공시하는 최대임대료상승분에 따라 차임 인상이 가능하다.

독일은 임대료 인상에 법적 제한이 있지만 국내보단 기준이 널널하다. 임대차계약기간 중이라도 임대인과 임차인이 합의하면 인상이 가능하고, 합의가 없더라도 주변의 4년 평균 임대료와 비교해 인상을 요구할 수 있다. 다만 한 번 책정한 임대료는 15개월이 지나야 올릴 수 있다. 3년 동안의 인상률은 20%를 넘지 못한다. 임차수요가 높은 일부 지역은 한도가 15%로 제한된다. 통상 계약을 맺을 땐 임대차기간 중 임대료를 계단식으로 인상하거나 물가지수에 연동해 상승하도록 약정한다.

일본은 이번에 시행된 전·월세상한제와 비슷한 제도를 이미 시행하고 있다. 약정한 차임의 인상률은 5%로 제한된다. 일정 기간 증액하지 않겠다는 특약을 체결한 경우엔 증액 청구 또한 불가능하다.

계약갱신청구권의 경우엔 일본의 사례가 늘어날 가능성이 높다. 일본도 정당한 사유가 인정될 때만 계약갱신 거절이 가능하다. 이 경우 임대인이 지급하는 퇴거료도 인정된다. 여러 판례는 집주인이 퇴거료 지급을 조건으로 갱신을 거절할 경우 정당성이 인정된다고 봤다. 다음 임차인에게서 퇴거료를 보전받는 사실상의 권리금제도가 시행되고 있는 것이다. 국내에서 이번에 도입된 계약갱신청구권도 합의금을 인정하고 있다.

영국엔 3가지 임대차 형태가 있다. 규제임대차와 보장임대차, 단기보장임대차다. 규제임대차가 가장 강력한 임차인 보호 조치다. 세입자가 임대료 연체를 하거나 불법으로 주택을 사용하는 상황에서 법원이 인도명령을 해야 임대인이 집을 되찾을 수 있다. 하지만 1989년 이후 임대차계약에선 찾기 어렵다는 게 법무부의 지난해 연구용역 조사 결과다. 보장임대차는 일정한 사유와 절차가 없으면 임대차기간이 만료돼도 계약을 종료시킬 수 없는 제도다. 단기보장임대차는 집주인이 2개월 전에 통지만 하면 아무런 사유 없이 세입자를 내보낼 수 있다. 현재는 이 제도가 가장 보편적이다.

프랑스는 임대차계약기간을 3년으로 인정한다. 만료 6개월 전 통지를 하지 않을 경우 묵시적 연장으로 인정한다. 계약이 만료될 때 임대인이나 임대인의 가족이 거주하려는 경우엔 갱신 거절이 가능하다. 또 해당 집을 파는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다만 임차인이 고령이거나 저소득층일 땐 대체 주택을 제공해야 계약을 해지할 수 있다.

미국 뉴욕주는 계약갱신이 원칙이다. 세입자가 임대료를 계속 지급하는 한 임대인이 갱신거절이나 퇴거를 통보할 수 없다. 다만 임차인이 위법 행위를 하거나 임대인의 입주, 자선 목적 사용 등의 사유가 있을 땐 거절이 가능하다.

독일은 가장 강력한 임대차보장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특별한 사유가 없는 한 기간을 정하지 않는 게 원칙이다. 이때 임대인이 계약을 해지하려면 정당성을 인정받아야 한다. 임차인이 의무를 위반하거나 임대인이 입주해야 하는 경우, 해당 토지를 이용하는 데 불이익이 발생하는 경우 정당성이 인정된다. 그러나 이 같은 사유가 임차인에게 너무 가혹하다면 세입자가 이의를 제기할 수 있다.

즉시 해지 규정도 있다. 임차인이 권한 없이 제3자에게 해당 집을 전대하거나 2기 연속으로 임대료를 미납할 때다. 이 경우 중대한 사유로 보고 임대인의 계약 해지를 인정한다.

전형진 기자 withmol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