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시내 아파트 전경(사진=뉴스1)
서울 시내 아파트 전경(사진=뉴스1)
세계적으로 유래가 없는 '전세제도'에 4년동안 거주를 사실상 보장해주는 '4년 전세'가 시행된다. 기존 2년 계약이 끝나면 추가로 2년 계약을 연장할 수 있도록 '2+2년'을 보장하는 내용을 골자로한 '임대차 3법'이 국회 상임위를 통과했기 때문이다.

집주인이 4년을 제대로 보장하지 않거나 거짓으로 세입자를 내보낼 경우 손해배상을 해야한다. 내 집을 갖고도 내 맘대로 하지 못하는 시대가 열리게 됐다. 다주택자를 압박하고 세입자를 보호하자고 내놓은 법안이지만, 집주인 입장에서는 '징벌적'이라는 주장이 나오는 이유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는 29일 전체회의를 열어 '임대차 3법' 중 계약갱신청구권·전월세 상한제를 도입하는 내용을 골자로한 주택임대차보호법 개정안을 의결했다. 국토교통위원회가 전날 전체회의에서 전월세신고제를 도입하는 내용의 부동산 거래신고 등에 관한 법 개정안을 처리했기에 이날 법안 통과로 임대차 3법은 모두 상임위를 통과하게 됐다.

"집주인 직접 살겠다" 허위일 경우 손해배상해야


세입자(임차인)를 보호하자는 의도에 따라 나온 이번 개정안은 집주인(임대인) 보다는 세입자에게 전월세 계약이 유리할 전망이다. 집주인은 세입자를 내보내기 위해서는 직접 들어가 살아야 하며, 허위로 밝혀질 경우 손해배상을 해야 한다.

개정안에 따르면 세입자가 기존 2년 계약이 끝나면 추가로 2년 계약을 연장할 수 있도록 '2+2년'을 보장하게 된다. 사실상 4년짜리 계약이 가능해진 셈이다. 임대료 상승 폭은 직전 계약 임대료의 5% 내에서 지방자치단체가 조례를 통해 상한을 정하도록 했다.
29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미래통합당 의원들이 임대차보호법 상정에 항의하고 있다.(김범준기자 )
29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미래통합당 의원들이 임대차보호법 상정에 항의하고 있다.(김범준기자 )
4년 계약이지만 집주인이나 직계존속·비속이 주택에 실거주할 경우 계약 갱신 청구를 거부할 수 있다. 집주인이 실거주하지 않는데도 세입자를 내보낸 뒤, 갱신으로 계약이 유지됐을 기간 내에 새로운 세입자를 받으면 기존 세입자는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

집주인 입장에서는 한번 세입자를 들이면 4년이 되기 전까지는 쉽사리 보증금을 올리거나 새로운 세입자를 들이기 어렵게 될 전망이다. 더군다나 전세 보증금 제도가 한국에만 있는 독특한 방식이다. 4년 간의 상승분을 미리 반영해 전세금을 높게 내놓거나, 월세를 받는 식으로 전환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세입자 입장에서는 집을 구하기는 어렵지만, 일단 한번 들어가면 안정적인 주거환경이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다. 그러나 집주인이 직접 들어와 사는 경우에는 대항력이 떨어지다보니 사실상 효력이 없다는 분석도 나온다.

야당없이 통과된 법안처리…"제 2의 민식이법 될라"

정부 여당은 이번 법안 처리를 속전속결로 강행했다. 미래통합당은 소위에서 법안을 심사해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받아들이지 않았고 결국 퇴장한 채로 의결이 진행됐다. 이해찬 민주당 대표는 29일 국회에서 법안을 논의 중인 ‘임대차보호 관련 3법’ 등 부동산 관련 입법들에 대해 “국회 추가 논의보다 ‘(입법 처리) 속도’가 더 중요하다”고 강조한 바 있다.

이처럼 임대차 3법이 집주인의 손해배상까지 포함된 내용으로 통과되면서 시장 안팎에서는 '제 2의 민식이법'이 될 것을 우려하고 있다. 민식이법은 어린이 보호구역에서 어린이 치사상의 가중처벌을 담을 조항이다. 2019년 12월 24일에 신설되어 2020년 3월 25일부터 시행됐다. 이후 어린이 보호구역을 피해가는 내비게이션이 나오거나 가중처벌에 대해 억울함을 호소하는 등의 사례가 나오고 있다.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29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사진=뉴스1)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29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사진=뉴스1)
임대차 3법 또한 세밀한 검토없이 추진이 확정되면서 민식이법과 같이 '회피'의 방향으로 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대표적인 회피 방법은 세입자를 들이지 않는 것이다. 신축 아파트의 경우가 이런 경우다. 새 아파트는 자금이나 이사 문제 등으로 낮은 가격의 전세물건이 많은 편이다. 하지만 한번 세입자를 들였다가 4년 전세계약으로 이어질 수 있다보니 최초 전셋값을 높이 받기 위해 공실기간이 길어질 수 있다는 전망이다. 실거주 요건강화와 맞물려 전월세 물량 자체가 감소할 것으로 보인다.

기존 아파트의 경우 집주인이 직접 들어가 살지 않으면 매매로 전환되는 경우가 예상되고 있다. 이런 경우 정부가 의도한 대로 다주택자들의 매물이 시장에 나오면서 집값 하락이 예상되는 시나리오다. 그러나 시장에서는 좋은 매물들은 나오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시장에서는 매매가 전월세 시장 모두 새 아파트를 원하는데, 시장에 나오는 매물들은 구축이나 미래가치가 떨어지는 것들이 나올 것으로 보인다"고 예상했다.

앞서 이 대표는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민주당이 21대 국회를 온전히 책임진 지금이야말로 부동산 입법과 제도개혁의 적기”라며 "지금 상황에서는 신속한 입법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했다.

김하나 한경닷컴 기자 han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