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안한 안식처였던 집이 지옥이 됐다. 게다가 그 지옥에서 벗어날 방법도 없다. 15년째 서울의 한 재건축 추진 아파트에서 살아온 A씨(45)가 그렇다. 오래된 아파트라서 아쉬운 점도 있었지만 지금까진 큰 불만 없이 지내왔다. 친구들의 새 아파트 집들이에 갈 때면 부럽긴 했다. 그래도 남편 직장과 친정, 딸 아이 학교를 생각하면 이 집이 딱이다 싶어 애써 참아왔다.

위층에 새 이웃이 이사 오면서 문제가 터졌다. 뉴스에서만 보던 층간소음. 처음엔 ‘새로 이사 와서 그러겠지’ 하고 넘어갔다. 중학생 딸 아이가 윗집 소리 때문에 공부를 못하겠다고 투덜거리면 이해하자고 달랬다. 몇 번을 망설이다 과일을 사들고 찾아가 정중히 부탁했다. 하지만 윗집의 배려는 없었다. 매사에 둔감한 편이라 층간소음은 남의 일로 여겼는데 이젠 밤낮으로 신경이 곤두서 힘든 나날이다.

결국 이사 가기로 결정했다. 전세를 내주고 전세로 가는 방법부터 알아봤다. 낡은 아파트라 전세금이 싼 탓에 그 돈을 받아 갈 곳을 찾기 어려웠다. 게다가 대출도 막혔다. 설상가상 전세에도 새 규제가 예고되면서 예전처럼 전세 내줬다간 코가 꿰일 판이었다.

매매도 녹록지 않았다. 정부가 집값 잡기 정책을 쏟아낸다는 뉴스를 흘려듣긴 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정부 규제로 재건축이 올스톱되면서 매수세가 실종 상태였다. 이 집을 장만했을 땐 딸 아이가 학교 가면 새 아파트에서 살 거란 기대를 했는데 이제는 딸 아이 시집갈 때도 가능할지 모를 지경이 됐다.

'대마잡기' 총력전 탓에 옴짝달싹 못하는 사람들
요새 주택시장에선 A씨처럼 집을 팔 수도, 살 수도, 세를 내주고 얻기도 어렵다는 호소가 빗발치고 있다. 여기에 보유세도 천정부지로 치솟아 집을 갖고 있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서울에서 올해 재산세 부담이 상한인 30%까지 늘어난 집이 58만 가구에 달한다. 정말 ‘어쩌라고’ 하는 탄식이 절로 나오는 상황이다.

정부 부동산 정책은 바둑의 대마 잡기를 연상시킨다. 22번의 규제를 쏟아낸 정부는 대마(집값)를 잡고야 말겠다고 무리수에 무리수를 더해가며 덤비는 바둑 기사와 닮았다. 대마불사라고 하지 않던가. 대마, 그러니까 집값을 잡기가 불가능하다는 얘기를 하려는 게 아니다. 대마 잡기 목표에 매달려 총력전을 벌이는 모습이 시장을 상대로 자존심 싸움을 하는 것 같아 걱정이다.

그렇게 해서 설사 대마를 잡는다고 쳐도 그 과정은 정당화될까. 대마를 잡느라 시장을 멈춰 세웠다면 도대체 뭘 위해서 대마를 잡았냐는 비난을 피할 수 없다. 정부가 대마 잡기를 위한 수를 둘 때마다 ‘매물잠김’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매물잠김이 단기간, 일부 지역에만 국한된다면 모를까, ‘거래절벽’과 시장 멈춤으로 이어지면 집값 잡기 성공에 박수를 보낼 사람을 찾기 힘들어진다.

시장은 대마를 ‘관리’하는 지혜를 원한다. 서둘러 잡겠다는 조급함으로 강하게, 더 강하게 밀어붙이기만 해선 부작용이 클 것이란 지적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살려주는 대신 더 세력이 커지지 못하게 대마 주변을 관리해가는 정책의 묘수를 기대하는 것이다.

우리는 한국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응 모범국가로 만든 공직자들과 정책을 가졌다. 예상하기 어려웠던 엄청난 질병 유행의 비상상황을 희생정신과 용기, 그리고 지혜로 이겨낸 영웅들이다. 부동산 문제에서도 그런 공직자와 정책이 절실하다. 멈춰 선 시장에선 아무도 승자가 될 수 없으니까.

'대마잡기' 총력전 탓에 옴짝달싹 못하는 사람들
A씨는 자칭타칭 진보 지지자다. 하지만 집 한 채 가진 게 전부인데 자신이 지지하는 정부가 자신의 삶을 옥죄는 정책을 쏟아내자 뒤통수 맞았다고 씁쓸해한다. 주택시장이 정상 작동해서 A씨가 층간소음 없는 아파트로 이사갈 자유라도 누릴 수 있기를 바란다.

장경영 한경 생애설계센터장 longr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