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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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달 새 외지에서 투자자들이 얼마나 많이 몰려왔는지 몰라요. 5월에는 정점을 찍으면서 매물로 나와 있는 집은 거의 다 쓸어 갔어요.”

4일 김해 율하동의 한 부동산 중개업소 대표는 이같이 말했다. 그는 “가격이 싼 매물은 서울 등에서 온 외지인들이 휩쓸어 거의 소진됐고 지금은 값이 서서히 뛰고 있다”고 했다.

6·17 부동산대책으로 서울과 수도권 아파트에 규제가 집중되면서 투자자들이 지방 아파트 시장으로 몰려가고 있다. 특히 그동안 시장에서 주목받지 못해 매매가가 많이 내린 경북 구미, 경남 김해, 전북 정읍, 충북 청주 등 지방 중소도시에서 외지인 거래량이 크게 늘었다. 이들 지역은 매매가와 전세가격 사이의 격차, 이른바 ‘갭’이 적게는 수백만원대에 불과하기도 하다. 강력해지는 규제 속에서도 넘치는 유동성은 또다른 투자처를 향해 흘러가고 있는 셈이다.

◆경북 구미·경남 김해 등 지방 중소도시 '들썩'

한국감정원에 따르면 지난 5월 전국 아파트 거래는 24만5776건으로 전달(22만4823건)보다 9.3% 증가했다. 이 중 서울 거주자의 원정투자가 많이 늘었다. 서울 거주자의 타 지역 아파트 매입 건수는 2만1423건으로 전달(1만8944건) 대비 13% 증가했다. 서울 거주자를 포함해 관할 시도 외 거주자의 아파트 매입 건수는 6만7260건에서 7만8563건으로 16.8% 뛰었다. 비중으로도 전체의 31.9%로 4월(29.7%)보다 커졌다.

투자자들이 계속된 부동산 대책으로 서울 및 수도권 아파트를 매수하기 어려워지자 지방으로 눈을 돌리고 것으로 해석된다. 서울이나 인천·경기 지역의 아파트 값이 이미 많이 오른 탓도 있다. 한 부동산업계 관계자는 “지방 소도시에는 아파트 값이 아직 수천만원대에 머무는 물건도 여럿 있다”며 “투자자들이 여러 건의 물건을 한 번에 매수하기에 부담이 없어 박리다매 식으로 매물을 쓸어가는 경우도 많다”고 말했다.

경남 김해 중개업소들에 따르면 김해 외동 한국1차 전용 40㎡의 최근 매매 거래는 대부분이 갭투자용이다. 지난 5월 거래된 2층 매물은 8300만원에 팔렸으며, 당시 7500만원의 전세 계약도 함께 이뤄졌다. 매수자의 실제 투자비용은 800만원이 든 셈이다. 이 단지는 매매가와 전셋값 사이의 차이가 적어 많은 투자자들이 몰리면서 최근 호가는 1억2200만원까지 뛰었다. 지난해 말 7000만원 중반대 가격을 보였던 점을 감안하면 3000만원가량 올랐다.

삼계동 화정마을6단지부영 전용 49㎡도 지난 5월 전세를 낀 계약이 이뤄졌다. 매맷가는 8500만원, 전세가격은 8000만원으로 실투자금이 500만원에 그쳤다. 인근의 S공인 대표는 “지난달까지 전세 낀 저가 매물이 급격히 소진됐다”며 “매매가격 자체도 낮고 전세를 끼면 실투자금이 1000만원도 안되니 서울 등 외지인들이 매물을 거의 쓸어갔다”고 말했다.

경남 김해지역은 동남권 신공항 호재가 언급되면서 외지 투자자가 몰리는 중이다. 김해의 지난 5월 외지인 매입 아파트는 1511가구로, 전달(219가구)과 비교해 7배가량 뛰었다. 거래량이 늘면서 집값도 뛰는 중이다. 한국감정원 통계 기준 올 초 대비 집값은 2.45% 상승했다.
충북 청주의 한 아파트단지 전경. 게티이미지뱅크
충북 청주의 한 아파트단지 전경. 게티이미지뱅크
경북 구미에도 외지 투자자들이 밀려 들어오면서 집값이 치솟고 있다. 이달 구평동 부영1단지 45㎡는 7700만원에 팔렸다. 지난 3월만 하더라도 4250만원까지 값이 떨어졌지만 몇 개월새 3500만원가량 상승했다. 이 단지는 최근까지 전세가가 매맷가보다 높은 거래도 이뤄졌다. 지난 5월 5600만원에 팔린 매물은 6500만원짜리 전세를 껴 갭이 마이너스(-) 900만원였다. 투자자가 오히려 900만원을 가져간 셈이 됐다.

외지인 투자자들 사이에선 분양권도 인기다. 9월 입주하는 ‘e편한세상 금오파크’(총 1210가구)는 최근 서울 등 외지 투자자들이 대거 몰리면서 ‘마이너스 프리미엄’이던 분양권에 1500만~3500만원의 웃돈이 붙었다. 인근 A공인 관계자는 “지난 5월 연휴 기간에만 미분양 물건 100개 정도가 팔렸다”며 “매수자는 대부분 외지 투자자“라고 전했다.

◆"6·17 대책 이후 원정투자 더 늘 것"

이곳들 외에도 집값이 하락세를 멈출 것으로 예상되고 갭투자 비용이 적게 드는 지역 역시 외지인의 매입이 치솟았다. 충북 청주는 5월 1087건을 기록해 3월 369건, 4월 475건에서 크게 늘어나 2017년 6월 이후 가장 많았다. 청주는 이번 6·17대책으로 조정대상지역으로 지정됐지만, 직전까지도 갭투자가 몰린 것으로 확인됐다.

전북 정읍도 지난 5월 440건이 외지인에게 거래돼 올해 내내 10~20여건에 불과하던 외지인 투자가 급격히 치솟았다. 강원 원주도 3월(264건), 4월(172건)보다 많은 337건을 기록했다. 강원 원주의 한 중개업소 대표는 “수도권 투자자들이 규제가 비교적 덜하다고 생각해 지방도시로 남하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지방은 워낙 아파트값이 저평가 돼 있어 값이 싸고 최근 입주물량이 많지 않은 지역들의 중심으로 전세는 부족한 편”이라며 “갭이 적고 여러채를 사도 세금 부담이 없어 당분간 외지인 투자자들이 몰릴 것으로 보고 있다”고 전했다.

이처럼 지방 원정투자와 늘어나면서 한국감정원에 따르면 전국 아파트값은 오름세가 확대되고 있다. 6월 넷째주 전국 아파트 가격은 0.22% 오르며 한국감정원이 주간 통계를 발표한 2012년 5월 이후 가장 높은 상승세를 보였다. 이후에도 상승세가 줄긴 했지만 여전히 높은 상승률을 기록하는 중이다.

갈 곳 잃은 시중의 뭉칫돈이 전국구 부동산 원정투자에 몰리고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이같은 현상은 당분간 이어질 것이라는 전망도 속속 나온다. 6·17 대책 서울 및 수도권지역에선 갭투자가 어려워져서다. 최근 정부는 자기 주택이 있는데도 서울 등 투기과열지구에서 전세대출을 받은 뒤 3억원 초과 주택을 구입할 경우 전세대출을 회수하는 강력한 갭투자 대책을 내놨다. 서울이나 인천과 경기 일부 지역, 대전, 세종 등 투기과열지구로 지정된 곳에선 규제가 강화된다.

한 부동산 업계 관계자는 “최근 잇따른 대책에 수도권 투자가 어려워지자 전국 각지의 투자자들이 그간 많이 내린 지방 중소도시에서 시세차익을 노리고 ‘아파트 쇼핑’에 나서고 있다”며 이같은 현상은 6·17 대책 이후 더욱 심화될 것으로 보인다“고 내다봤다.

안혜원 한경닷컴 기자 anh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