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변을 따라 조성되어 있는 강남 일대의 아파트 단지들(사진=게티이미지뱅크 )
한강변을 따라 조성되어 있는 강남 일대의 아파트 단지들(사진=게티이미지뱅크 )
"그 분은 이 바닥에서 신과 같습니다", "모셔와서 얘기를 들어야하는데 시간이 없다고 하시더라구요"….(재건축 조합원들)

서울 강남 재건축 수주전은 언제나 뜨거웠다. 강남임에도 낡은 아파트 때문에 제값을 못 받는다는 집주인들은 재건축을 위해서라면 물불을 안 가렸다. 건설사들도 그랬다. 서울의 다른 재개발이나 다른 지역과는 다르게 화려한 설계와 금융조건들을 내걸었다. 강남 재건축은 제 값(?)을 받을 수 있는데다 여러모로 상징성이 있어서다.

조합원들은 시공사에 늘 불만이 많았다. 수주전 중에는 간이라도 빼줄 것처럼 굴더니 막상 시공사가 선정되면 '나 몰라라'하는 느낌이 들어서다. 잡아놓은 물고기 취급을 당하는 것 같았다. 실제 건설사들은 지난 수십년간 조합을 가두리에 가둬두다시피 했다. 심지어 조합장이 말을 안듣는다 싶으면 비상대책위원회(비대위)를 꾸리는데 뒤에서 힘을 보태면서 조합장을 갈아치우기도 했다. 바뀐 새 조합장은 건설사의 꼭두각시 노릇을 하면서 사업을 원활하게 헤쳐갔다. 일반 조합원들이 보고 있자면 건설사와 큰 분쟁없이 일을 잘하는 조합장으로 보이지만 말이다.

최근에는 이러한 분위기가 달라지긴 했다. 시공사 선정과정에서 판쳤던 각종 매표행위와 불법행위는 거의 없어지다시피 했다. OS요원이라고 불렸던 외부인력을 동원한 대면 영업도 금지됐다. 수주전에서 겉으로 보이는 거품은 빠졌지만, 안을 뜯어보면 여전히 께름직한 구석들이 눈에 띈다.

문제로 떠오른 건 스타조합장들이다. 그들은 조합원들이 갖고 있는 불만의 틈새를 파고들었다. 조합들은 성공사례가 있는 스타조합장을 모셔와 '이렇게 해야 성공한다'는 강의를 경청했다. 강의의 요점을 이렇다. '받을 수 있는 건 다 받아야 한다', '옆 단지 재건축과 비교해 여러분의 단지는 이게 문제다', '나 같으면 이렇게 안한다' 등이다. 스타조합장은 재건축 전문가로 통했다. 누구하나 쉽게 설명해주지 않았는데 조합원 입장의 얘기를 해주니 이해가 쉽게 됐다. 조합들이 스타조합장 모시기에 열을 올리는 것도 이 때문이다. 시공사 선정 전이라면 이러한 조언은 십분 도움이 된다. 시공사들에게 미리 조건을 주고 수주전에 참여하라는 가이드라인을 줄 수 있어서다.

그러나 이미 시공사를 선정하고 사업이 추진되는 중이라면 조언이 아니라 방향타를 틀어버리기도 한다. 조합은 시공사와 계약조건을 조정하거나, 나아가 시공사와의 계약까지 해지하기도 한다. 사업이 한창 진행되는 와중에 비대위나 일부 조합원은 스타조합원을 초청한다. 조합장이 초청하는 경우는 드물다. 스타조합장은 현장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건설사를 탓한다. 건설사들이 스타조합장에 꼼짝을 못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서울의 아파트 단지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
서울의 아파트 단지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
최근 수주전이 벌어지고 있는 재건축 단지들도 이러한 경우다. 조합이 시공사와의 계약을 해지통보하고, 시공사를 재선정하는 현장들이다. 기존 시공사들은 현장을 점유하고 있거나 법원에 소를 제기하는 등의 조치를 취하고 있다. 조합은 새로운 건설사들을 끌어들이면서 판을 벌이고 있고, 이 가운데에 숨어있는 조력자는 스타조합장이다.

자문역할을 자처하는 스타조합장은 재건축 사업장의 조합원으로 들어가 수억 내지 수십억의 포상금을 받기도 한다. 시공사를 재선정하는 과정에서는 시공사를 직접 불러들이기도 한다. 표면적으로는 조합을 위한다고 하지만, 수주판에서 새롭게 떠오른 '큰손'이 된 셈이다.

이러한 스타조합장들 중 대표적인 인물인 A씨. 그가 한 조합 집행부를 질타하는 내용의 녹취록이 SNS상에 공개됐다. A씨는 자신이 현재의 집행부를 구성하고 사업을 원활히 돌아가도록 기여를 했는데, 현재 비협조적으로 나오고 있다며 연신 언성은 높였다. 특정 건설사를 반복해 언급하기도 했고, 다른 조합들을 예로 들면서 자신의 영향력이 크다는 점을 과시했다. 이 녹취록은 집행부 중 한 명이 A씨의 과도한 개입을 폭로하기 위해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물론 A씨의 말이 담긴 녹취로만 가지고서는 진위여부를 판단할 수는 없다. 사실관계는 수사가 있어야 하지만, A씨의 발언으로만 조사를 하기에는 무리가 있다는 게 관계자들의 얘기다. 하지만 조합 내부에서는 조합 집행부와 건설사를 불신하는 목소리는 나오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조합원은 "강의도 직접 찾아가 듣고 유튜브의 동영상도 보면서 믿음이 생겼던 분이다"라면서도 "막상 우리 조합에서 활동하는 걸 보니 건설사의 브로커같은 모습이어서 실망스럽다"고 말했다.

정비업계 관계자는 "법의 심판에도 수십년간 재건축·재개발 수주판에서 불법행위는 계속되지 않았느냐"라며 하루 아침에 투명해지기 어렵다고 털어놨다. 그러면서 "금주령이 내려지면 밀주가 만들어지듯이, 정부가 불법 수주전을 말릴수록 물밑 경쟁이 치열해질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김하나 한경닷컴 기자 han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