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한 은행 영업부에서 고객이 대출상담을 받고 있는 모습. 한경DB
서울의 한 은행 영업부에서 고객이 대출상담을 받고 있는 모습. 한경DB
사상 첫 제로금리 시대에 접어들었지만 시중은행 창구에서 이를 체감하긴 힘들다. 주택담보대출 금리는 되레 오르고 있어서다. 주담대 금리는 왜 역주행을 하는 걸까.

한국은행이 지난달 기준금리를 0.75%로 종전보다 0.5%포인트 낮췄지만 주요 은행 혼합형 주담대 금리는 소폭 오른 것으로 나타났다. 혼합형이란 고정금리를 5년 동안 적용한 뒤 변동금리로 전환하는 상품이다. 신한은행의 혼합형 주담대 금리는 2.81~3.82%로 지난달 첫주보다 0.26%포인트 올랐다. KB국민은행은 2.31~3.81%로, 0.06%포인트 상승했다. 하나은행과 우리은행 주담대 금리는 각각 0.18%포인트와 0.14%포인트 높아졌다.

주담대 금리가 오르는 건 이를 결정하는 구조 때문이다. 혼합형 주담대의 경우 은행 등 금융회사가 발행하는 금융채 금리에 가산금리를 더한다. 가산금리는 차주별 신용등급이나 부도율 등을 따져 결정되는 사실상 고정값이다. 하지만 금융채 금리는 날마다 변한다.

최근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금융채 금리가 오르고 있다. 경제위기 우려가 커지자 기관투자자들이 채권을 싸게 팔아 현금을 확보하고 있어서다. 채권 가격이 내린다는 건 금리가 오른다는 의미다. 최고등급인 AAA등급 5년물 금융채 금리는 2월 말 1.333%였지만 지난달 말엔 1.559%로 올랐다. 경기침체 극복을 위해 기준금리를 내렸는데 정작 차주들의 원리금상환 부담이 높아지는 기현상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변동형 주담대의 경우 금리가 내려가고 있다. 이 대출의 금리 기준이 되는 코픽스(COFIX·자금조달비용지수)는 수신상품 금리를 기준으로 산정하기 때문이다. 시중은행들이 예·적금 금리를 발빠르게 인하하면서 변동형 주담대의 금리도 소폭 내렸다. 은행연합회에 따르면 지난달 신규 잔액기준 코픽스는 1.44%로, 0.03%포인트 떨어졌다. 기존 잔액기준 코픽스도 1.72%로, 0.03%포인트 하락했다. 이달 15일 고시될 코픽스 또한 12개월 연속 하락세를 보일 전망이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과거엔 연 3%대도 낮은 금리라고 했지만 요즘은 2%대 중후반도 싸게 느끼지 않는 분위기”라고 설명했다.

기존에 고정금리로 대출을 받았던 이들은 분통을 터뜨리고 있다. 코로나 사태가 중장기화 할 조짐을 보이면서 한은이 기준금리를 추가 인하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어서다. 과거 정부와 시중은행의 권유대로 고정금리를 선택했다가 금리인하기에 피해를 단단히 보고 있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고정금리로 대출을 받았던 차주가 은행으로 찾아와 역정을 내는 사례도 있다”며 “갈아타기 수요가 크게 늘어날 수 있다”고 전했다. 다른 은행 관계자는 “정부가 변동금리 대출자들의 고정금리 갈아타기를 돕겠다며 출시했던 ‘서민형 안심대출’의 금리가 더 비싸지는 해프닝이 일어날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전형진 기자 withmol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