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 허송세월한 세운3구역
세운상가 일대를 개발하는 서울 을지로 ‘세운 재정비촉진지구 3구역’ 재개발 사업이 재개된다. 서울시가 을지면옥 등 노포(老鋪)를 보존하겠다며 사업을 중단시킨 지 1년3개월여 만이다. 정작 을지면옥은 소유주 의사에 따라 철거될 예정이다. 사업이 멈춰선 동안 남겨진 것은 1500억원에 달하는 추가 사업비용뿐이다. 토지주들은 한숨을 쉬고 있다. 주택난과 부동산값 상승으로 신규 분양만 바라보던 청약자들도 최소 1년반을 더 기다려야 할 판이다.

세운 재정비촉진지구(43만8585㎡)에서 재개발 얘기가 나온 것은 1979년부터다. 이곳을 광역개발하는 계획은 2004년 세워졌다.

2011년 취임한 박원순 서울시장은 2014년 새로운 계획안을 내놨다. 당초 8개 구역을 대규모 통합 개발하는 대신 171개 중소 규모 구역으로 쪼개 분할 개발하는 내용이다. 이런 구상은 지난해 1월 또다시 번복됐다. 을지면옥과 양미옥 등 생활유산으로 지정된 오래된 음식점의 보존이 필요하다며 이를 반영해 정비계획을 다시 짜겠다는 이유에서다. 을지면옥이 속한 3구역이 정상적인 절차를 통해 사업시행 인가까지 완료한 시점에서 나온 ‘일방적 통보’였다.

서울시는 지난 4일에야 ‘세운상가 일대 도심산업 보전 및 활성화 대책’을 내놨다. 152개 구역을 정비구역에서 해제해 주민 협의를 통한 재생 방식의 관리로 전환하고, 산업거점 공간을 새롭게 조성한다는 내용을 담았다. 그렇게 강조한 노포 보존은 정작 이뤄지지 않았다. 을지면옥 등이 보존보다는 새 건물에 입주하기를 선호한 까닭이다. 서울시는 궁색한 해명을 내놨다. 서울시 관계자는 “새로 짓는 건물 입주 등 을지면옥이 제시한 대안을 사업자와 협의하는 과정에서 서울시가 중재자 역할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토지주, 시행자 모두 ‘사업이 중단된 1년여의 시간은 누구를 위한 희생이었냐’고 반문하고 있다.

손바닥 뒤집듯 바뀌는 서울시의 행정 때문에 고통을 호소하는 곳은 한두 곳이 아니다. 옥바라지 골목으로 잘 알려진 종로구 무악2구역, 한양도성 역사가치 보존을 이유로 직권해제된 사직2구역 등도 정상적인 인허가 절차를 밟으며 사업을 진행하다가 서울시의 갑작스러운 입장 변화로 된서리를 맞았다. 이번에도 “30년 조금 넘은 맛집 한 곳을 지키자고 서울의 경쟁력 향상을 위해 활용해야 할 도심 알짜 땅 개발을 막고, 수백 명 원주민의 일방적인 희생을 강요했다”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다.

세운지구의 소유주들은 33㎡ 남짓 땅을 가진 영세 토지주들이다. 곧 성사될 듯하던 재개발이 강산이 네 번 바뀔 동안 지연돼 파산한 원주민도 여럿이다. 생활고 등으로 자살한 사람만 둘이다. 또 딴죽이 걸릴지 모를 돌발 행정에 원주민들은 여전히 밤잠을 설치고 있다.

yj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