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대출이 쉬워지면서 서민주택인 빌라·오피스텔 밀집 지역의 전셋값이 상승하고 있다. 서울 동작구 사당동의 다세대주택 밀집 지역.  /한경 DB
전세대출이 쉬워지면서 서민주택인 빌라·오피스텔 밀집 지역의 전셋값이 상승하고 있다. 서울 동작구 사당동의 다세대주택 밀집 지역. /한경 DB
지난달 서울 관악구 신림동에서 신축 빌라 전세를 알아보던 김씨(30)는 2년 전에 비해 약 2000만원 가까이 오른 전셋값을 보고 깜짝 놀랐다. 김씨는 “전셋값이 1억500만원 수준이었는데 집주인이 전세자금대출이 나오는 신축 빌라라는 이유로 1억3000만원으로 올렸다”며 “인근의 신축 원룸 전세 가격도 비슷한 이유로 대부분 2년 사이 2000만원 가까이 상승했다”고 말했다.

아파트에 이어 서민주택인 빌라·오피스텔촌의 전셋값이 줄줄이 상승하고 있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들이 주거 안정 차원에서 제공하는 전세자금대출 상품이 전셋값 상승을 부추긴다는 지적이 나온다. 저리의 대출을 이용해 월세에서 전세로 갈아타는 임차인이 크게 늘고 있어서다.

1인 가구 밀집 지역 전세가 ‘껑충’

28일 국토교통부 실거래가시스템에 따르면 관악구 신림동 다세대주택 전용 20~30㎡의 전세보증금은 2018년 1억8416만원에서 올 1~2월 2억915만원으로 2500만원 가까이 뛰었다. 신림동의 H빌라 전용 27㎡(원룸) 전세는 2년 전 대비 4000만원 오른 1억6000만원에 거래됐다. 인근 전용 73㎡ 구축 다세대주택의 전세보증금도 2018년 1억7000만원에서 지난해 12월 1억8300만원으로 약 1300만원 올랐다. 신림동 K공인 관계자는 “월세를 살던 세입자들이 중소기업 종사자가 이용할 수 있는 대출을 받고 전세로 옮겨가면서 주변 시세가 대폭 상승했다”며 “구축 원룸의 전셋값도 1억원대에서 최근 1억2000만~1억3000만원 선으로 뛰었다”고 전했다.

아파트 이어…다세대·오피스텔도 전셋값 급등
동작구 사당동 일대도 사정이 비슷하다. 전용 20~30㎡ 다세대주택 전세보증금은 2018년 1억9434만원에서 올 1~2월 2억727만원으로 약 1300만원 뛰었다. 사당동 H공인 관계자는 “2년 전에 비해 전셋값이 1000만원 이상 올랐다”며 “오는 3월 대학교 개강에 앞서 이사 수요가 겹치면서 본격적으로 전셋값이 상승하고 있다”고 현장 분위기를 전했다. 사당동의 전용 40㎡ 이상 다세대주택 전세 매물은 2억5000만원 안팎에 거래되고 있고, 전용 30㎡ 이하 원룸 전세가는 1억5000만~1억6000만원 선에 형성돼 있다.

오피스텔의 경우 전세 가격이 매매 가격을 추월하는 ‘역전현상’까지 등장했다. 송파구 문정동 ‘송파한화오벨리스크’ 전용 26㎡는 지난달 1억8000만원에 매매됐지만, 전세는 이보다 1000만원 높은 1억9000만원에 거래됐다. 선종필 상가레이더연구소 대표는 “오피스텔 월세 수익률이 낮아져 차리리 전세보증금으로 목돈을 굴리겠다는 집주인이 늘고 있는 것”이라며 “매매 가격이 전세 가격보다 낮아 세입자가 전세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하는 ‘깡통전세’ 위험이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아파트 이어…다세대·오피스텔도 전셋값 급등
전세자금대출이 상승 부추겨

부동산 전문가들은 서민이 많이 거주하는 1인 가구 밀집 지역에서 전셋값이 급상승한 원인으로 ‘중소기업 청년 전세자금 대출’ 등 정부와 지자체의 전세자금대출 제도를 꼽았다. 연 1~2%대 고정금리로 1억원까지 대출받으면 월 10만원의 이자만 부담하면 된다. 이자 비용이 적다 보니 너도나도 대출받으면서 전세 가격이 올라가는 부작용을 낳고 있다. 조건이 가장 좋은 ‘중기 청년 전세자금 대출’은 연봉 3500만원 이하 중소기업 종사자(부부 합산 연소득 5000만원 이하)에게 최대 1억원을 전세금으로 대출해주는 제도다. 흑석동 J공인관계자는 “요즘 전셋집을 구하는 사회 초년생의 99%는 전세대출을 활용한다”고 했다. 연봉이 3500만원을 초과하는 청년 세입자는 이를 이용할 수 없어 전셋값 상승에 이중고를 겪는 일도 벌어지고 있다.

주택도시보증공사(HUG)에 따르면 중소기업 취업청년 전월세보증금 대출 금액은 2018년 7484억원에서 2019년 7조2658억원으로 9배 급증했다. 같은 기간 대출 건수는 1만1702건에서 9만6504건으로 1년 사이 8배 증가했다.

지자체들도 이 같은 전세자금 대출제도를 적극 운영하고 있다. 서울시는 지난 1월부터 전세보증금을 최대 2억원까지 저리로 융자해주는 ‘신혼부부 임차보증금’ 접수를 시작했다. 연소득이 적을수록 금리가 낮으며, 최저 금리는 연 1.2% 수준이다.

박원갑 국민은행 부동산 수석위원은 “아파트 세입자의 70% 이상이 전세보증금반환 보증보험에 가입한 반면 다세대 세입자는 13%밖에 가입하지 않았다”며 “전세 가격이 하락하면 세입자가 보증금 손실을 볼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배정철 기자 bjc@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