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서울 주요 정비사업장의 혼란이 가중되고 있다. 강남에서 재건축을 추진 중인 한 단지가 지난해 연 조합원 총회. /한경DB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서울 주요 정비사업장의 혼란이 가중되고 있다. 강남에서 재건축을 추진 중인 한 단지가 지난해 연 조합원 총회. /한경DB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되면서 갈길이 바쁜 서울 내 주요 정비사업장들이 몸살을 앓고 있다. 사업 진행에 필요한 주요 안건을 총회에서 통과시키기 위해서는 많게는 전체 조합원의 절반이 한자리에 모여야 하지만 여의치 않아서다. 강동구 둔촌주공, 강남구 개포주공1단지, 서초구 래미안원베일리(신반포3차·경남아파트) 등 다음달 28일까지 분양가 상한제 유예 적용을 받아야 하는 단지들은 직접 참여율 한시적 완화와 전자투표제 허용 등을 정부에 요구하고 나섰다.

1000명 한자리에…“직접 참석 줄여 달라”

6일 정비업계에 따르면 일부 시공사와 재건축·재개발 조합은 최근 국토교통부에 총회 직접 참여율을 한시적으로 완화해 달라고 건의했다. 현행법상 인허가와 관련한 총회에는 조합원의 20% 이상이 직접 출석하고, 조합원 과반수의 동의를 받아야 한다. 일반 총회는 10%, 시공사 선정 총회의 경우 이 비율이 무려 50%에 달한다. 이 비율을 낮춰서 서면으로 대체할 수 있도록 해달라는 게 조합의 요구다.

재개발·재건축 비상…"총회 참석비율 낮춰달라"
둔촌주공과 개포주공1단지, 래미안원베일리 등 4월 내 분양을 추진하던 단지들이 특히 비상이다. 이들 단지는 4월 28일 전까지 입주자모집공고를 해야 분양가 상한제를 피할 수 있다. 일정상 반드시 그 전에 관리처분변경총회를 완료해야 한다.

서울시클린업시스템에 따르면 사상 최대 규모 재건축으로 불리는 둔촌주공은 조합원 수만 6000명이 넘는다. 총회 직접 참석 인원이 1200명에 달한다. 개포주공1단지(조합원 5133명), 원베일리(2560명) 역시 600~1000명이 한자리에 모여야 한다. 둔촌주공은 이미 관리처분변경총회를 마쳤지만 분양가 협상 결과에 따라 추가 총회를 열어야 한다. 관리처분인가 당시 일반 분양가는 3.3㎡당 3550만원이었지만 주택도시보증공사(HUG)는 3000만원 전후를 요구하고 있다. 은평구 수색6구역과 수색7구역 등 4월 안에 관리처분총회변경총회를 해야 하는 정비사업장만 10여 곳이다.

사업시행인가와 시공사 선정을 앞둔 단지들도 속이 타기는 마찬가지다. 지난해 위법입찰 논란으로 시공사 선정이 무산됐던 은평구 갈현1구역이 이달 시공사선정총회를 추진하고 있다. 이미 반년 가까이 사업이 지체돼 있어 하루라도 빨리 시공사를 선정해야 한다는 여론이 거세다.

은평구 응암2구역은 사업시행변경총회를, 송파구 가락삼익·삼환가락 등은 자금차입총회를 앞두고 있다. 한 조합 관계자는 “정비사업은 기본적으로 대여금으로 사업을 운영하기 때문에 사업 속도가 생명”이라며 “단지에 따라서는 한 달만 늦어져도 수십억원의 사업비가 증가할 수 있다”고 말했다.

경미한 변경 등 묘안 찾기

조합들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다. 사태가 언제 잠잠해질지 예측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총회를 강행할 수도, 마냥 미룰 수도 없는 진퇴양난에 처했다. 갈현1구역 재개발 조합은 8일로 예정된 총회를 취소했다. 오는 20일 이후로 총회 일정을 다시 정할 계획이다. 이달 말 총회를 열 예정인 개포주공1단지도 내부에서 반대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개포동에선 2015년 6월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 사태 때 아파트 재건축조합 총회에 확진자가 참석해 조합원 등 총 1565명이 자택에 격리된 사례가 있었다. 한 조합원은 “감염병을 우려해 현장 참석을 꺼리는 조합원이 많다”며 “성원이 안 돼도 문제지만 성원이 된다고 해도 위험해서 문제”라고 했다.

일부 단지는 묘안 찾기에 나섰다. 변경 사항이 많지 않은 원베일리는 경미한 변경 가능성을 저울질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관리처분계획의 경미한 변경은 총회를 열지 않아도 된다. 개포주공1단지 조합원들은 넓은 실외 공간에서 총회를 개최해 안전성을 높이자는 주장과 상한제를 미루거나 전자투표로 대체할 수 있도록 민원을 넣어보자는 의견 등이 나온다.

시공사 관계자는 “직접 참석은 고사하고 서면 결의를 받으려고 해도 홍보요원과 조합원이 접촉해야 하기 때문에 쉽지 않다”며 “특수상황인 만큼 정부 차원의 결단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어 “장기적으로 이 같은 국가재난 사태에 대응할 수 있도록 전자투표제 도입 등도 고려돼야 한다”고 말했다. 국토부 관계자는 “직접 참여비율 변경 등은 법 개정 사항이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말했다.

이유정 기자 yj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