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만희 부동산금융투자포럼 회장

교수 꿈 접고 들어선 공무원 길
국토부서 33년…주택토지 전문가
김범준 기자 bjk07@hankyung.com

김범준 기자 bjk07@hankyung.com

“지구상에 부동산 시세를 거의 실시간 중계하는 국가는 한국밖에 없어요. 한 달에 한 번 조사해도 충분한데 조사 업체들이 경쟁적으로 1주일에 한 번 통계를 발표합니다. 부동산시장은 증시와 달리 매일 바뀌는 시장이 아닌데 통계가 오히려 집값을 자극하는 부작용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한만희 한국부동산금융투자포럼 회장(서울시립대 국제도시과학대학원 교수·64)은 국내 부동산시장 과열 논란에 대해 이같이 말했다. 한 회장은 1980년 행정고시에 합격한 뒤 2013년 국토해양부(현 국토교통부) 제1차관으로 퇴임할 때까지 33년가량 국토부에 근무한 주택과 토지, 도시계획 분야 전문가다. 1기 신도시 개발부터 토지공개념, 국민임대주택, 행정중심복합도시(세종시) 건설까지 그의 손길이 닿지 않은 분야가 없을 정도다. 온화한 성품과 꼼꼼한 일 처리로 국토부에서는 ‘선비’ ‘영국 신사’ 등으로 통했다.

지난 13일 서울 용산전자상가 인근 만두 맛집 용산국수만두공장에서 한 회장을 만났다. “스마트도시건축학회 회장을 하면서 알게 된 음식점인데 교수 월급으로 후배를 만나도 부담 없이 갈 수 있는 식당”이라고 했다.

국토부 33년 근무…신도시 산증인

만두전골이 끓기 시작하자 한 회장은 맥주와 소주를 섞어 반주로 권했다. 멸치로 우려낸 국물이 시원해 반주하기 딱 좋다고 했다. 국토부 근무 시절 그는 소문난 애주가였다. 격무를 마치고 늦은 시간에도 후배들과 어울리는 일이 잦았다. 한 회장은 “일복이 많아 큰일이 있는 시기에 가장 바쁜 부서에 있었다”며 “퇴근 후 술 한잔이 낙이었다”고 설명했다.

한 회장은 집값이 폭등하던 1980년대 후반 택지개발과에 근무했다. 정부는 집값을 잡기 위해 주택 200만 가구 공급 계획을 추진했다. 전국 읍·면·동사무소를 돌아보며 주택을 지을 수 있는 토지를 다 정리했다. 보안 문제상 마지막 2개월간 여관에서 한국토지공사, 지방자치단체 관계자 등과 작업했다. 전국의 개발 가능한 토지를 정리하자 두꺼운 책 한 권 분량이 나왔다. 한 회장은 “이들 지역이 공개되면 전국이 투기판이 된다며 윗선에 보고할 두 부만 남기고 집에서 다 태웠다”며 “아직도 어느 지역 어떤 지구들인지 다 기억한다”고 말했다.

1989년 일산 분당 등 수도권 1기 신도시 다섯 곳이 정해졌다. 한 회장은 발표 전까지 6개월간 관계부처와 논의하며 보고서를 수시로 수정했다. 2년간 공휴일도 없이 자정 넘어 퇴근하는 게 일상이었다. 신도시 작업이 끝난 뒤 일상으로 복귀할 줄 알았다. 하지만 바람과 달리 중책이 주어졌다. 당시 정부는 부동산 투기 열풍으로 땅값이 치솟자 토지초과이득세 택지소유상한제 개발이익환수제 등 개인의 토지소유권을 제한하는 ‘토지공개념 3법’ 제정을 추진했다. 토지공개념 제도를 맡고 있던 옆 부서에서 일손이 달리자 그에게 일이 넘어왔다. 또다시 밤늦게까지 업무를 하는 생활이 1년가량 이어졌다.
[한경과 맛있는 만남] 한만희 "1주일마다 통계 발표, 집값 자극…인프라 제때 공급해야 신도시 성공"

영국에서 석·박사 마친 ‘영국 신사’

한 회장은 국토부 소속으로 1986~1988년, 1991~1993년 두 차례에 걸쳐 영국 버밍엄대에서 석사와 박사(도시·지역계획학) 학위를 받았다. 국토부 업무에 영국의 노하우를 접목하기 위해서다. 국토부 출신 중 버밍엄대 석사를 마친 건 그가 처음이었다.

한 회장은 만두를 권하며 대화를 이어나갔다. 그는 “아내가 만두를 참 잘 빚는데 이곳 만두도 그만큼 맛있다”며 “당일 직접 만들어 파는 게 맛의 비결인 것 같다”고 했다. 부인은 손맛이 좋다고 했다. 영국 유학 시절에는 소문을 듣고 다른 유학생들이 집에 와서 한 번씩은 먹고 갔을 정도였다고 했다.

그는 영국을 ‘제2의 고향’이라고 부르곤 한다. 오래된 건물이 많고 제도 등이 한국과 유사한 데다 국민 성향도 비슷해서다. 국토부에서의 별명도 ‘영국 신사’였다. “영국인들이 쌀쌀맞아 보이지만 한 꺼풀 들어가 친구라는 생각이 들면 마음을 열어줍니다. 룰을 정해 놓고 그 범위 안에서 화끈하게 노는 게 영국인 기질이죠.”

국토부에서 한 회장 추천으로 버밍엄대에서 석사과정을 마친 공무원은 추병직 전 국토부 장관(주택산업연구원 이사장), 최재덕 전 국토부 차관, 김경식 전 국토부 차관 등으로 이어졌다.

세계 50개국에 300명의 제자 둬

만두전골에 이어 따끈한 잔치국수와 숯불 맛이 나는 제육볶음이 나왔다. 한 회장은 국수를 한 젓가락 먹으며 “면발이 쫄깃하다”고 했다. 어느새 탁자에는 빈 소주병이 2병으로 늘어났다. 그는 공무원 퇴직 후 학계로 진출했다. 서울시립대에서 국제도시과학대학원장을 맡았다. 다른 공무원들이 산하기관 임직원으로 경력을 이어가는 것과 다른 행보다.

그의 어릴 때 꿈은 교수였다. 농업협동조합 지역 기관장이던 부친은 다섯 아들 중 한 명은 공무원이 되길 바랐다. 네 명의 형 중 아무도 공무원에 뜻이 없었다. 고교 때 이과였던 그는 대학 입시 때 아버지에게 행정고시를 쳐서 공무원이 될 테니 공대 대신 상대로 가겠다고 했다. “아버지가 항상 하신 말씀이 남에게 손을 벌리지 않는 ‘깨끗한 공무원’이 되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술값이 꽤 나갔습니다.”(웃음)

버밍엄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뒤 교수가 되고 싶어 국내 대학에 지원한 적이 있다. 서울의 한 사립대에서 정식 교수 제의도 들어왔다. 하지만 주변 반응이 좋지 않았다. “아내에게 이야기했더니 ‘공무원도 괜찮은데’라고 딱 한 마디만 하더라고요. 완곡한 거절의 뜻이었죠. 친구들도 쓸데없는 생각 말고 공무원 생활 열심히 하라고 했습니다.”

그의 꿈은 공무원 생활을 마친 뒤 실현됐다. 그가 초대 원장을 맡았던 서울시립대 국제도시과학대학원은 탄탄하게 자리를 잡았다는 평가다. 2013년엔 한국인 정원 39명, 외국인 정원 20명에 불과했다. 6년이 흐른 지난해 외국인 정원은 85명으로 불어났다. 세계 50개국에서 도시계획 관련 업무를 하는 300명의 공무원이 한 교수의 제자다.

가장 기억에 남는 학생으로 캄보디아에서 온 공무원을 꼽았다. “엄청 부지런하고 활발한 학생이었는데 학위를 받고 돌아가서 3~4년 사이에 지역발전으로 성과를 내서 말단 공무원이 국장으로 승진했어요. 배운 것을 현장에 접목해 성과를 내줘 대견스럽습니다.”

인프라 투자로 유동자금 돌려야

‘신도시 전문가’에게 3기 신도시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지 물었더니 “주민들이 가장 필요로 하는 시설을 넣어줘야 한다”고 답했다. 2기 신도시가 아직 교통 인프라와 생활 편의시설이 제대로 구축되지 않아 주민 불만이 크다는 것이다. 그는 “정부가 지방자치단체와 긴밀히 상의해 필요한 시설을 적기에 넣어주지 않으면 2기 신도시와 같은 불만이 나올 것”이라고 지적했다.

어느새 국물만 남은 만두전골을 보며 한 회장은 “이 정도면 소주 두 병은 더 마실 수 있겠다”며 유쾌하게 웃었다. 요즘 관심을 두고 있는 분야를 물었더니 활동하고 있는 5개 학회와 포럼에 대해 술술 풀어놨다. 그는 한국스마트도시건축학회, 아름다운주택(아가)포럼, 소통포럼 등의 회장직을 맡고 있다. 한국교통문화포럼은 지난해 회장직을 넘겼다. “공무원 퇴직 후 더 바쁜 것 같다”는 말에 “즐거운 마음으로 학회와 포럼 활동을 하고 있다”고 답했다.

한 회장의 대외 활동은 모두 무보수다. 그가 맡은 단체들은 걸음마 단계인 곳이 많다. 발전의 마중물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한 회장은 “부동산금융과 스마트시티는 융복합 분야”라며 “주거 환경에 맞는 정보기술(IT)을 접목하고 사회간접자본(SOC)에 적절한 금융구조를 짜주는 것이 선진 부동산 시스템으로 가는 지름길”이라고 설명했다.

이들 분야는 공공성과 관련이 깊은 만큼 정부 지원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싱가포르와 같은 시기에 리츠(부동산투자회사)가 도입됐는데 현재 시장 규모는 60배 차이가 난다”며 “최근 공모 리츠에 세제 혜택이 주어졌지만 미국 등 다른 나라와 비교하면 여전히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또 “서울 강남 아파트 등 실물 부동산으로 몰린 유동성을 상업용 부동산과 인프라 투자로 돌리려면 막대한 수준의 혜택을 줘야 한다”고 덧붙였다.

그는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과 부동산 투자금융 과목을 강의하고 있다. 새로운 기술, 새로운 금융구조가 끊임없이 나오고 있어 접목할 부분이 많다고 했다. “새로운 이론은 아직 현실에 적용되지 않고 있습니다. 정책이 만들어지는 원리를 직접 겪어본 만큼 이런 이론이 현장에 활용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게 제 역할이 아닌가 합니다.”

■ 부동산금융투자포럼은…

한만희 회장은 사단법인 한국부동산금융투자포럼과 스마트도시건축학회 등 다양한 학술단체를 이끌고 있다. 부동산금융투자포럼은 부동산 금융투자시장을 활성화하기 위해 2018년 설립됐다. 리츠(부동산투자회사), 부동산펀드 등 부동산 간접투자상품 연구와 제도 개선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한 회장은 “부동산 간접투자가 활성화되면 일반인도 빌딩, 물류센터, 공장 등 다양한 부동산 상품에 투자할 기회가 생긴다”며 “시중 유동자금을 흡수해 집값 안정에도 기여할 수 있다”고 말했다.

■ 한만희 부동산 금융투자포럼 회장 약력

△1956년 대전 출생
△1974년~1978년 연세대 경영학 학사
△1980년 23회 행정고시 합격
△1986~1988년 영국 버밍엄대 석사
△1991~1993년 영국 버밍엄대 박사
△2001년 건설교통부 주택정책과장
△2003년 국민임대주택건설지원단장
△2007년 국토해양부 혁신정책조정관
△2008년 국토해양부 국토정책국장
△2009년 국토해양부 주택토지실장
△2010년 행정중심복합도시건설청장
△2011년 국토해양부 제1차관
△2013년 서울시립대 국제도시과학대학원 원장
△2018년 한국부동산금융투자포럼 회장
△2019년 스마트도시건축학회 회장
[한경과 맛있는 만남] 한만희 "1주일마다 통계 발표, 집값 자극…인프라 제때 공급해야 신도시 성공"

한만희 회장의 단골집 용산국수만두공장

당일 직접 빚은 손만두·육수 맛이 깔끔한 잔치국수 '일품'

[한경과 맛있는 만남] 한만희 "1주일마다 통계 발표, 집값 자극…인프라 제때 공급해야 신도시 성공"

손으로 빚은 만두가 일품인 만두·국수 전문점. 가게에 만두공장이 따로 있어 그날 판매하는 만두를 당일 빚는다. 만두는 만두피부터 소에 들어가는 김치까지 직접 만든다. 김치만두와 고기만두가 들어가는 깔끔한 만두전골이 일품이다. 멸치와 각종 채소를 넣어 세 시간 이상 우린 육수를 사용한다. 특제 양념장으로 맛을 낸 비빔국수, 달인만의 비법이 숨어 있는 깔끔한 잔치국수, 불맛이 나는 제육볶음도 인기다. 비빔장은 배를 넣어 사흘 이상 숙성해 만든다.

저녁에는 용산전자상가 인근 직장인들이 삼겹살과 안창살 등을 먹기 위해 자주 찾는다. 제주산 돼지고기만 취급한다. 평일은 오전 11시부터 오후 10시, 토·일요일(공휴일)은 오전 11시부터 오후 8시까지 영업한다.

윤아영/구민기 기자 youngmoney@hankyung.com

ⓒ 한경닷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