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대표 디벨로퍼들이 서울 알짜 부지에서 도시재생 프로젝트를 주도하고 있다. 신도시·택지지구 아파트 개발사업에서 자금을 축적한 디벨로퍼들이 서울의 조단위 초대형 도시재생 사업에 뛰어든 것이다. 이들은 주로 입지가 뛰어나지만 기존 건물이 낡아 발전이 정체된 곳을 사들여 다시 개발하는 방식으로 도시 풍경을 바꾸고 있다.
디벨로퍼 '兆단위 사업시대'…서울을 바꾼다
서울 노른자 땅 속속 개발

10일 부동산업계에 따르면 인창개발은 최근 1조원 규모의 강서구 가양동 CJ제일제당 바이오연구소 용지 매각의 우선협상자로 선정됐다. 시공을 맡은 현대건설과 함께 컨소시엄을 이뤘다. 부지 면적만 10만5762㎡로 삼성동 코엑스의 두 배 규모다. 김영철 인창개발 대표는 “디벨로퍼에 서울 한복판의 대규모 부지는 매우 희소성이 높다”며 “좋은 입지에 서울의 오피스 지도를 바꿀 수 있는 랜드마크를 짓고 싶다”고 말했다. 인창개발은 이곳에 주거시설이 아니라 문화·쇼핑·오피스 복합단지를 지을 예정이다. 일부는 분양하고 나머지는 보유해 운용할 계획이다. 김 대표는 “사업의 안정성을 고려하면 아파트가 들어가야 하지만 사업 전체의 그림을 봤을 때는 업무·문화시설을 짓는 게 낫다고 판단했다”며 “인근 마곡지구와 연결해 서울 서쪽에 코엑스와 같은 대형 복합문화공간을 짓는 게 목표”라고 강조했다.

엄석오 일레븐건설 회장은 이태원동 유엔군사령부 부지 개발 사업을 진두지휘 중이다. 이 회사는 2017년 6월 이곳 부지 5만1762㎡를 1조552억원에 매입했다. 엄 회장은 이곳을 주거와 업무, 판매, 숙박, 쇼핑, 문화시설 등을 갖춘 복합단지로 조성할 계획이다. 이태원동은 외국인 거주 비율이 높고 용산민족공원, 한강, 남산 등이 가까워 입지 가치가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한국판 롯폰기힐스’가 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용산구 관계자는 “시 건축심의를 받기 위한 절차를 진행 중”이라며 “교통영향평가 내용을 반영한 건축 배치 변경안을 지난달 시에 제출한 뒤 심의 날짜를 기다리고 있다”고 설명했다.

문주현 엠디엠(MDM)그룹 회장은 지난 5월 1조956억원에 매입한 서초동 정부사부지(옛 정보사령부 땅) 개발 사업에 대한 밑그림을 구상 중이다. 6년 전 공매로 나와 총 여덟 번 유찰된 땅이었다. 문 회장은 축구장 13개에 맞먹는 부지(9만1597㎡)를 친환경 오피스 단지로 조성할 계획이다. 그는 지난달 아이디어 구상을 위해 직원들과 열흘간 미국 샌프란시스코, 뉴욕, 시애틀 등 주요 지역으로 연수를 다녀오기도 했다. 신영은 NH투자증권·GS건설과 컨소시엄을 구성해 서울 여의도 옛 문화사옥(MBC) 부지에 주거복합단지인 ‘브라이튼 여의도’ 건설 사업을 진행 중이다. 1만7795㎡ 부지에 지하 6층~지상 49층(168m) 초고층 빌딩 등 4개 동을 짓는다. 지난 7월 말 오피스텔 849실을 분양했으며 아파트 454가구는 후분양을 검토 중이다.

지역 맞춤형 도시재생 나서

디벨로퍼가 구도심이나 나대지를 중심으로 도시재생 사업에 나서는 것은 시내 가용 택지가 갈수록 고갈되고 있기 때문이다. 주택 공급 일변도의 사업 구조에서 벗어나 도시재생 사업에서 미래 먹거리를 찾기도 한다. 탄탄한 자금력도 갖췄다. 최근 몇 년간 신도시와 택지지구 아파트 개발사업에서 수천억원대 현금을 확보했다. 디벨로퍼가 도시재생 사업의 적임자라는 평가도 나온다. 부동산 프로젝트 발굴부터 기획, 자금 투자, 시공, 마케팅, 운영 등의 모든 과정을 아우르기 때문이다.

지역 상황에 맞춘 중소 규모 개발에도 적극적이다. 유림개발은 최근 논현동에서 토지 두 필지를 매입했다. 올해 분양한 ‘펜트힐 논현’(도시형 생활주택, 오피스텔)처럼 고소득 전문직 종사자를 겨냥한 최고급 커뮤니티 시설을 갖춘 최고급 펜트하우스를 분양하겠다는 계획이다. 펜트힐 논현은 수영장, 클럽하우스, 피트니스센터 등을 갖췄다. 알비디케이(RBDK)도 논현동에서 주택전시관으로 쓰이던 건물을 매입했고, 미래인도 강남역 인근 건물 두 채를 매입했다. 디벨로퍼업계 관계자는 “시내에서 부지가 품귀현상을 보이고 있어 도심의 오래된 건물과 토지를 매입 후 재건축하는 사업에 공격적으로 나서고 있다”고 설명했다.

일각에선 국내 디벨로퍼들이 도시재생 사업을 하면서 분양에 치중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일본 디벨로퍼들은 개발한 프로젝트를 팔지 않고 보유·운영하면서 수익을 내고 있다.

최진석/윤아영 기자 iskr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