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혁 기자 chokob@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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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부동산시장의 상승세는 한풀 꺾였다고 보고 있습니다. 내년부턴 본격적인 조정 국면에 들어갈 것으로 예상합니다."

심교언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사진)는 내년에는 서울 집값이 조정기에 들어갈 것으로 예상했다. 이미 많이 오른 상황인 데다 거시 경제환경도 좋지 않아서다. 그는 "작년 집값이 너무 빨리 움직이면서 적정 수준 이상으로 뛰어 오른 '오버슈팅' 국면에 진입했다"며 "과열 이후엔 반드시 조정이 오고, 지금이 바로 그 시점"이라고 말했다. 심 교수는 다음달 4일 ‘집코노미 콘서트’에서 '집값의 이해'를 주제로 강연한다.

▶앞으로 서울 집값이 내린다고 보나

"단기적으론 그렇다. 지난해 기준 서울 아파트값(KB국민은행 기준)은 13% 넘게 뛰었다. 최근 10년간 서울 집값이 4~5% 수준의 상승 흐름을 보여왔던 것과 비교하면 상승폭이 열 배 가까이 컸다. 일부 지역에선 18% 이상 오르기도 했다. 작년에 집값 상승을 부추기는 오버슈팅 분위기가 있었다. 이같은 과열 국면 이후엔 반드시 조정이 온다. 내년 서울 집값은 하향세를 보일 것이다. 이미 조정은 시작됐다. 올해 서울 아파트값 변동률(11일 기준)은 1.8%에 불과하다. 지난해 과열기 때와 견줘 크게 낮아졌다."

▶왜 조정기에 접어드나

"이번 정부 들어 집값은 규제가 나올 때 잠시 하락하는 듯 하다 다시 상승했다. '8·2 대책'에서 세금 대출 재건축·재개발 청약 등 전방위에 걸쳐 20여개에 달하는 규제를 내놨지만 잠시 주춤하다 폭등했다. '9.13 대책'이 나오면서 집값이 다시 출렁였다. 올해 상반기 들어 주춤했지만 '민간택지 분양가 상한제'가 발표되면서 새 아파트를 중심으로 가격이 또 치솟았다. 규제가 사람들의 불안 심리를 자극하면서 단기간에 시장이 과열되고 가격은 폭등했다. 이 같은 과정을 거치면서 지금은 집값이 오를만큼 다 올랐다. 그동안 가격 상승에 대한 피로감이 생길 때가 됐다. 집값이 빠르게 급등하면 열기도 그만큼 빠르게 식는다."

▶강남에서는 연일 신고가 단지가 나오고 있다. 강남도 조정세에 접어들었다고 볼 수 있나

"아니다. 강남은 더 오를 것으로 본다. 단 일부 단지만이다. 다주택자들에 대한 규제가 강화되면서 여러 지역에 복수의 아파트를 보유하기 보다는 강남권의 이른바 '똘똘한 한 채'로 갈아타는 현상이 두드러지고 있어서다. 반포 아크로리버파크 등 3.3㎡ 당 1억원 안팎에 거래되는 초고가 아파트가 강남에서 등장했다. 수요와 공급 논리에 따라 서울 아파트 공급이 정체를 빚는 상황에서 뛰어난 조건을 가진 아파트가 돈 있는 사람들 사이에서 비싼 가격에 팔리는 건 당연하다. 일부 고가 단지를 제외한 나머지 아파트들은 강남이라 할 지라도 수요가 별로 늘지 않을 것 같다. 최근 집값 추이를 보면 강남 안에서도 몇몇 아파트가 상승세를 주도하고 있을 뿐 나머지 단지들은 큰 움직임을 보이지않고 있다. 올해 강남4구(강남·서초·송파·강동구) 아파트 전체 지수 상승률(1.9%)은 1%대에 불과하다. 집값 양극화가 심화되고 있는 것이다."

▶분양가 상한제 시행을 앞두고 있는데

"정부가 강남 집값은 무조건 잡아야겠다고 결심한 듯한데 방법이 틀렸다. 가격 상한 제도가 시장에 나쁜 영향을 초래한다는 것은 경제학개론 교과서에 나온다. 분양가 상한제에 대해 연구한 논문 10개 가운데 8~9개는 효과가 없다는 주장을 한다. 선진국들의 경우 분양가 상한제 같은 제도가 시행된 적은 없다. 다만 '임대료 상한제' 등을 시행해 임대주택 공급이 줄어 가격이 폭등하는 실패를 경험한 적이 있다. 물량 공급이 제한된 상황에서 상한제가 도입되면 새로 나오는 아파트 가격이 주변 단지 시세에 따라 붙어 버린다. '로또 청약' 열풍만 부추길 것이다. 극소수 현금 부자만 로또를 거머 쥘 수 있을텐데 이는 바람직하지 않다."

▶정부의 부동산 정책이 실패했다는 얘기로 들린다

"실패했다. 강남 집값 잡겠다고 강한 정책을 연이어 내놨지만 비싼 아파트 가격은 더 비싸졌다. 주택 공급이 끊기니 희소성만 부각됐다. 따지고 보면 몇몇 단지의 움직임에 정부가 전방위적 대응을 하는 셈인 데 이게 옳은걸까. 세계 어느 정부가 특정 단지의 가격을 잡겠다고 정책을 내놓냐. 선진국에선 유례를 찾기 힘들다. 그렇다고 서민이나 중산층이 주택을 매매할 수 있는 기반은 마련됐나. 그것도 아니다. 실수요자들은 대출 규제로 집 살 돈을 마련하기 어려워졌다."

최혁 기자 chokob@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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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시장 개입에 나선 것이 오히려 강남 주택시장의 불안 요인으로 작용했다는 지적은 시장 곳곳에서 나온다. 심 교수도 "극히 일부 지역의 현상을 들어 규제 수위를 높인 것이 부작용을 낳았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오히려 정부는 서울 강남권·고가 주택을 중심으로 오름세가 나오면 더욱 강력한 추가 대책으로 대응하겠다는 뜻을 내비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정부는 여러 가지 (집값 안정화) 방안을 갖고 있다"며 "보다 강력한 방안들을 계속 강구해서라도 반드시 집값을 잡겠다"고 공언했다. 앞서 박원순 서울시장도 "어느 국가나 부동산 가격 안정에 정부가 깊이 개입한다"며 "(집값은) 자유시장에 맡기면 큰일 난다"고 말했다.

▶부동산 정책은 어떤 방향으로 가야하나

"시장경제에 맡겨야지. 부동산 가격이 오르면 공급이 빨라지고 이 과정에서 값이 내려가고 또 그러면서 공급 속도가 늦춰지는 시장의 자정 기능이 적정 수준의 가격을 찾아가게 만든다. 이 과정에서 사각지대가 생기면 임대주택을 늘린다든가 주거비를 보조해주는 등의 방안을 강구하면 된다. 하지만 지금은 일부 아파트가 최고점을 찍었다는 소식이 나오면 곧바로 규제책이 나와 지역 전체의 공급을 틀어막는다. 부동산 대책이 나올 때마다 강남 아파트가 더 오르는 이유가 뭐겠나. 재건축· 재개발 등 정비사업 추진을 어렵게해 공급을 막았기 때문이다. 오히려 재건축을 활발하게 해 물량을 확대했으면 가격이 이만큼 오르진 않았을 것이다. 이제는 억제 정책 보다 서민들이 원하는 아파트를 더 공급해 줘야 한다. 대출 규제도 풀 필요가 있다. 대부분의 선진국에선 주택담보대출비율(LTV)·총부채상환비율(DTI)을 금융권에 자율적으로 맡긴다. 가령 10억원짜리 집을 사려는 사람이 있다면 연봉이 높아 빚 갚을 여력이 충분할 경우 LTV를 110%로 적용해 11억원을 빌려주고 부채 상환 능력이 떨어진다고 보이면 40% 수준으로 낮게 설정해 4억원을 대출해주는 식이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선 모든 사람에게 동일하게 4억원만 빌려준다."

▶지금 집을 사는 게 맞을까

"상황에 따라 다른 전략을 세워야 한다. 거주할 목적이라면 지금 사도 된다. 장기적으로 보면 집값이 적어도 물가 상승률만큼은 오르는 게 일반적이다. 하지만 투자 목적으로 접근한다면 집값이 이미 꽤 오른 터라 자칫 '상투'를 잡을 수도 있다. 최근 거시경제 흐름이 좋지 않아 조정이 길어질 수 있다. 그나마 지금 집값이 빠지지 않고 버티는 이유는 공급 축소 등 정부 규제의 여파와 풍부한 유동성이 맞물린 덕이다. 유동성의 힘이 언제까지 이어질 지는 알 수 없지만 오래 영향을 미치진 못할 것이다. 올해에 이어 내년 경기전망도 어둡다. 부동산시장은 경기 흐름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물론 금리가 내리고 있어 부동산 가격이 오르지 않겠냐는 시각도 있다. 하지만 대출이 묶여있어 시장에 미치는 여파는 그리 크지 않을 것으로 본다."

◆심교언 교수의 2020년 부동산시장 전망은 12월 4일 오후 1시부터 서울 논현동 건설회관에서 열리는 '집코노미 부동산 콘서트'에서 들을 수 있습니다. 참가신청은 한경닷컴 홈페이지(event.hankyung.com/seminar/jipconomy191204/)에서 가능합니다. (02)3277-9986

안혜원 기자 anh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