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착공한 수인선(수원~인천) 복선전철 사업은 사업비 부족과 시공사 법정관리로 공사 중단을 반복하며 15년째 공사를 진행 중이다. 경기 수원시 오목천동 일대 수인선 오목천역 공사 현장.   김범준 기자 bjk07@hankyung.com
2004년 착공한 수인선(수원~인천) 복선전철 사업은 사업비 부족과 시공사 법정관리로 공사 중단을 반복하며 15년째 공사를 진행 중이다. 경기 수원시 오목천동 일대 수인선 오목천역 공사 현장. 김범준 기자 bjk07@hankyung.com
1995년 계획한 수인선(수원~인천) 복선전철 사업은 공사만 15년째다. 2004년 착공에 들어갔지만 아직 공사 중이다. 그동안 우여곡절을 수차례 겪었다. 2011년 지역 주민들이 당초 지상으로 계획된 고색~오목천동(2.99㎞) 구간의 지하화를 요구해 2년 넘게 멈췄다. 수원시가 예산(1122억원)을 마련하지 않아서다. 2013년 수원시가 부랴부랴 사업비를 전액 부담하기로 하면서 공사가 재개됐다. 하지만 2년 뒤 공사가 또 중단됐다. 2015년 4월 1공구 공사를 맡은 시공사(경남기업)가 법정관리에 들어갔다. 개통일은 2013년에서 2017년으로 미뤄진 뒤 2021년까지 연기됐다. 그동안 사업비는 5710억원에서 2조5억원으로 네 배 넘게 급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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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간접자본(SOC) 예산 부족으로 교통 인프라 건설이 줄줄이 미뤄지고 있다. 관련 예산은 부족한데 주민 민원을 의식해 이곳저곳에 추진하다 보니 예산 집행이 제때 되지 않고 있다. 정부가 건설 중인 철도사업 4분의 3가량은 당초 계획보다 개통이 지연됐다.

만연한 공기 지연

강훈식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이 한국철도시설공단에서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건설 중인 일반·광역철도 사업 27개 중 20개의 사업 기간이 기존보다 늘어났다. 이 중 예산 부족으로 늦어진 사업이 8건으로 가장 많다. 2003년 착공한 부산~울산 복선전철(65.7㎞)은 재정투입 효율성을 고려해 단계별 개통을 추진하면서 공사가 11년이나 지연되고 있다. 개통일은 2010년에서 2021년으로 미뤄졌다. 지난해 준공 예정이던 서해선 홍성(충남)~송산(화성) 90㎞ 구간도 같은 이유로 개통이 2018년에서 2022년으로 늦춰졌다.

도로도 마찬가지다. 2004년 완공 예정이던 국도 3호선 의정부 자금~양주 화천 구간(12.6㎞)은 예산 부족으로 공사가 지연돼 2015년 완공됐다. 지난해 말 개통한 강원 지방도 403호선 춘천 지내~고성 구간 사업은 새밑터널 2.11㎞를 포함한 폭 10m, 연장 3.76㎞ 도로를 공사하는 데 7년이 걸렸다. 2011년 착공해 2016년 개통 예정이었으나 예산이 적어 2년 지연됐다. 2016년엔 배정받은 사업비가 6억원에 그쳤다. 지난해 124억원을 확보해 겨우 완공했다.

한국건설산업연구원이 발표한 ‘공공공사비 산정 및 관리 실태와 제도적 개선 방안’을 보면 2011~2013년 총 821개 공공공사 현장 중 254개 현장에서 공사기간 연장이 발생했다. 박용석 한국건설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그나마 배정된 예산도 매년 2~3개월씩 늦게 나오고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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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정낭비 심각

예산 부족으로 인한 공기 지연은 도리어 재정 낭비를 유발한다. 일반철도와 국도 사업은 100% 국가 돈으로 추진되기 때문이다. 2008년 첫삽을 뜬 동해선 포항~삼척 구간(166.3㎞) 건설사업은 준공일이 2014년에서 2022년으로 연기됐다. 예산이 부족해 포항~영덕(2008년), 영덕~삼척(2014년) 두 구간으로 나눠 공사한 탓이다. 그 사이 사업비는 2조4410억원에서 3조3141억원으로 1조원가량 증가했다. 이렇게 공기가 지연된 철도 사업 20개에 정부가 추가 투입한 나랏돈은 9조4000억원에 달한다. 2006년에서 2013년으로 개통이 미뤄진 국도 42호선 원주시 관설~봉산 구간(7.4㎞)은 공기 연장으로 사업비가 1144억300만원에서 1273억5800만원으로 11% 넘게 불어났다.

건설업체도 공기 지연에 따른 사업비 증가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건설사와 발주처인 정부, 지방자치단체는 ‘장기계속계약’ 제도에 따라 공공공사 계약을 맺는다. 2년 이상 소요되는 공사 대부분이 포함된다. 이 제도에 따라 계약은 통상 해마다 차수별로 이뤄진다. 사업비도 그때그때 지급된다. 이렇다 보니 차수별로 적정 예산이 확보되지 않으면 공사가 지연될 수밖에 없다. 늘어나는 공기만큼 시공사는 인건비, 사무실 운영비 등 간접비를 고스란히 지출해야 한다. 한 중소 건설사 대표는 “시공사는 현장에서 철수할 수 없기 때문에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비용을 부담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사업 숫자는 계속 늘어

매년 예산이 제때 나오지 않는 이유는 너무 많은 사업을 한꺼번에 진행하고 있어서다. 올해 정부 SOC 예산은 19조8000억원이다. 2015년 24조8000억원에서 지난해 19조원으로 급감하다 올해서야 소폭 올랐다. 지난해 국토교통부 SOC 예산 중 신규사업 예산은 383억원에 그쳤다. 2012년(5624억원) 대비 15분의 1 수준이다.

교통 전문가들은 ‘정치권의 표심 얻기 경쟁’과 ‘허술한 수요예측 제도’가 재정 부족을 더 부추긴다고 지적한다. 일반철도와 국도는 전액 나랏돈으로 짓는다. 이 때문에 지역구 의원과 지자체는 적자 여부를 따지지 않고 사업을 따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손의영 서울시립대 교통공학과 교수는 “선거 때만 되면 지역구 의원들이 SOC 사업을 추진해달라고 정부에 압박하니 SOC 사업 수가 늘어날 수밖에 없다”며 “기획재정부로선 중요 사업에 집중 투자하려고 해도 쉽지 않다”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재정 운용 상황을 고려해 경제성이 낮은 사업을 걸러내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태일 고려대 행정학과 교수는 “재정 사업이 정치권에 휘둘리지 않으려면 예비타당성 조사의 독립성이 보장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유정훈 아주대 교통시스템학과 교수는 “사업별로 일일이 예산을 편성할 것이 아니라 철도 도로 등 덩어리로 예산을 편성해 각 부처가 유동적으로 재정을 운용하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

양길성 기자 vertig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