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텔인듯, 공원인듯…3세대 아파트 '주거의 品格'을 높이다
신축 아파트가 주택시장의 대세로 떠오르고 있다. 단순히 ‘새것’에 대한 선호도를 넘어 너도나도 신축 아파트에 쏠리는 경향이 뚜렷하다는 점에서 ‘메가트렌드’라고 부를 만하다. 신축 아파트가 수요자들에게 폭발적인 주목을 받는 배경은 무엇일까. 이 시대의 신축 아파트에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성냥갑 아파트 시절엔…

1970~1990년대의 아파트는 주택 공급 확대라는 정책 목표 아래 지어졌다. 정부가 직접 시행에 나서거나 민간 업체에 인센티브를 제공하면서 양방향으로 아파트 공급을 적극 추진했다. 제한된 공사 비용으로 가능한 한 많은 주택 공급을 이뤄내기 위해선 외관 디자인을 단순화하고 자재 설비와 부대 시설을 간소화할 수밖에 없었다. 분양가도 정부가 통제했다. 어디에서나 똑같은 외관의 주공아파트가 대량 공급된 시기도 이때다. 민간 건설사들의 아파트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가격 상한에 묶여 품질의 차이를 기대할 수 없었던 까닭이다. ‘성냥갑 아파트’라는 오명을 얻은 배경이다.

2000년대 들어 국내 아파트는 ‘퀀텀 점프’를 했다. 촉매제는 ‘분양가 자율화’였다. 아파트 값을 민간 업체가 자유롭게 책정하면서 건설사마다 차별화한 아파트를 들고나왔다. 아파트의 개성은 성냥갑 시절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다양해졌다. 이른바 ‘1세대 아파트’가 출현한 시기다.

1세대, 초고층 주상복합, 브랜드 아파트 등장

1세대 아파트(2000년대 초반) 서울 도곡동 타워 팰리스. 초고층 아파트 등장, 탑상형 배치, 브랜드 아파트 등장
1세대 아파트(2000년대 초반) 서울 도곡동 타워 팰리스. 초고층 아파트 등장, 탑상형 배치, 브랜드 아파트 등장
서울 아파트는 그야말로 2000년대 들어 완전히 새롭게 탈바꿈했다. 당시 김대중 정부는 외환위기로 무너진 건설경기를 살리기 위해 분양가를 전면 자율화했다. 공사비가 대폭 늘면서 강남권을 중심으로 초고층 아파트가 속속 들어서기 시작했다. 도곡동 타워팰리스가 대표적이다. 2002년 입주한 이 단지는 최고 69층으로 한국 최초의 초고층 주상복합 단지로 꼽힌다. 최고급 시설답게 각 동 중간층에는 연회장, 체육시설, 옥외정원을 설치했다. 2층에는 독서실, 놀이방 등 입주민만 이용할 수 있는 편의시설을 설치했다.

건설사의 아파트 브랜드 경쟁이 시작된 것도 이 무렵이다. 롯데건설은 1999년 서울 서초구 ‘롯데캐슬 84’에서 롯데캐슬 브랜드를 선보였다. ‘낙천대’라는 아파트 브랜드가 있었지만 주거 문화의 고급화를 추구하면서 그에 걸맞은 새 브랜드를 내놨다. 이듬해 대림산업은 경기 용인시 보정동에 들어서는 단지에 ‘e편한세상’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공원에 사는 듯한 편안한 느낌을 선사하는 주거 환경을 부각하기 위해 이 브랜드를 선보였다. 삼성물산의 ‘래미안’, GS건설의 ‘자이’ 등 우리에게 친숙한 아파트 브랜드가 이때 등장했다.

2세대, 평면 다양화·단지 고급화 본격화

2세대 아파트(2005~2015년)  서울 반포동 반포래미안퍼스티지. 커뮤니티 시설 진화, 평면 구성 다양화, 조경 고급화
2세대 아파트(2005~2015년) 서울 반포동 반포래미안퍼스티지. 커뮤니티 시설 진화, 평면 구성 다양화, 조경 고급화
2000년대 중반 아파트 역사에서 또 한 차례 중요한 변곡점이 도래한다. 2005년 12월 정부가 ‘발코니 확장’을 허용하면서다. 분양가 자율화 이후 도입된 신평면 개발 움직임은 발코니 확장 이후 날개를 달았다. 발코니 확장으로 주거 공간을 늘린 데다 설계 과정에서도 주거 편의성을 대폭 높일 수 있게 됐다.

이 무렵부터 ‘2세대 아파트’가 본격적으로 지어졌다. 부동산 시장 침체로 분양 시장도 고전하는 상황에서 건설사들은 특화 평면, 친환경 시스템, 첨단 편의시설 등을 도입해 상품 차별화를 추구했다. 이 시기 단지 입주민을 위한 커뮤니티 시설도 다양화·고급화됐다.

서초구 반포자이(옛 반포주공3단지), 래미안퍼스티지(옛 반포주공2단지) 등이 2세대 아파트의 선두주자로 꼽힌다. 두 단지는 1세대 신축 단지를 뛰어넘는 고급 커뮤니티 시설과 조경을 내세웠다. 2009년 입주한 래미안퍼스티지는 경북 고령에서 수령이 1000년을 넘은 느티나무를 가져와 단지에 심었다. 이 나무 한 그루 가격만 10억원에 달했다. 3976㎡ 규모 연못에는 1급수에만 서식하는 쉬리를 넣었다. 2008년 준공한 반포자이는 서울 도심에서 드물게 녹지율을 40%로 끌어올렸다. 단지 곳곳에 고급 소나무 1200여 그루를 심었다.

커뮤니티 시설도 확충됐다. 단지 내 어린이 영어학원, 수영장, 피트니스센터 등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휴대폰으로 가전제품이나 현관 잠금 조명 등을 원격 제어하는 시스템도 이때부터 모습을 드러냈다. 건물 외관에도 공을 들이기 시작했다. 2011년 준공한 서울 성동구 갤러리아포레는 외관을 오피스빌딩처럼 통유리로 마감했다. 230~380㎡의 대형 주택형으로 구성해 고급화 전략을 추구했다.

스마트홈, 조식서비스… 3세대는 ‘소프트웨어 혁신’

3세대 아파트(2015년 이후)  서울 성수동 트리마제. ICT 적용, 커뮤니티·조경 고급화, 조식 서비스 등 다양화
3세대 아파트(2015년 이후) 서울 성수동 트리마제. ICT 적용, 커뮤니티·조경 고급화, 조식 서비스 등 다양화
아파트 주거 문화는 2010년대 들어 다시 한 번 업그레이드됐다. 2010년대 중반 이후에는 첨단 정보통신기술(ICT)이 아파트에 적용돼 주거 편의성과 안전성이 대폭 높아졌다. 3세대 아파트의 등장이다. 2세대 아파트가 가구 평면 다양화, 단지 내 주차장 지하화 등 구조적 개선을 이뤘다면 3세대 아파트는 첨단 정보기술(IT)을 활용해 주거 편의성을 한껏 끌어올렸다는 점을 주된 특징으로 꼽을 수 있다. 음성인식 기술을 활용한 ‘스마트홈’ 기술이 대표적이다. 입주민의 음성 명령을 인공지능(AI) 스피커가 받아 가구 안팎의 조명, 난방, 가스, 가전기기, 엘리베이터 등을 조작할 수 있는 시스템이다. 단지 전체에 네트워크망을 구성하면서 무인택배 시스템, 외부 모니터링이 가능한 폐쇄회로TV(CCTV) 등 단지 내 보안도 한층 강화했다.

3세대 아파트는 입주민만을 위한 특화 서비스까지 도입하면서 입주민의 주거 만족도를 끌어올리고 있다. 2017년 서울 성수동 트리마제가 최초로 도입한 조식 서비스가 대표적이다. 서울 서초구 아크로리버파크, 반포리체, 반포래미안퍼스티지, 강남구 래미안대치팰리스 등도 조식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서울 강남권 고가 아파트의 전유물로만 여겨지던 조식 서비스는 최근 광주, 대구, 세종 등 지방 신축 아파트에서도 속속 도입하고 있다.

대형 건설업체 관계자는 “서울 강남권 고가 아파트에서 시작된 커뮤니티 시설과 주거 문화가 아파트 주거 트렌드를 선도하고 있다”며 “커뮤니티 시설의 수요와 활용도가 커지면서 단지 설계 단계에서부터 커뮤니티 시설 건축 비중을 늘리는 추세”라고 전했다.

갤러리 같은 아파트로 진화

주거문화에 대한 수요자의 눈높이가 갈수록 높아지면서 단지 시설도 더 고급화하는 추세다. 강남구 개포주공3단지를 재건축한 디에이치아너힐즈는 유명 예술가의 작품으로 단지 조경을 꾸몄다. 단지 중앙광장에 설치한 영국 설치예술 작가 신타 탄트라의 작품을 비롯해 이탈리아 유명 디자이너 할레산드로 멘디니, 이스라엘 산업디자이너 론 아라드 등의 작품이 단지 곳곳에 있다. 아파트 리모델링을 추진 중인 서초구 잠원동아는 리모델링 설계안에 옥상 인피니티풀을 담았다. 인접한 신반포4차도 한강 조망이 가능한 인피니티풀을 스카이브리지에 설치할 계획이다.

권대중 명지대 부동산대학원 교수는 “지난 10년간 공동주택의 트렌드는 성냥갑 아파트라는 인식을 탈피해 특급 호텔을 방불케 하는 고급 주거시설로 나아가고 있다”며 “더 나은 주거 환경에 대한 소비자의 눈높이가 높아진 결과”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분양가 상한제가 도입되면 약 20년간 진행된 아파트의 진화가 후퇴하거나 제자리걸음을 할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대형 건설사 관계자는 “아파트 분양가격이 통제되면 설계 단계부터 조경, 커뮤니티 시설 등에 대한 고려가 줄어들 수밖에 없다”며 “정부 규제가 지속되면 품질 경쟁력이 있는 기존 신축의 희소성이 더욱 커질 것”이라고 말했다.

민경진/양길성 기자 mi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