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권해제 소송 이겨 구역 부활했지만
재개발 추진 사안마다 서울시와 갈등
낡은 주택이 밀집한 서울 사직동 사직2구역. 2017년 서울시가 정비구역에서 직권해제했지만 지난 4월 대법원이 조합의 손을 들어주면서 기사회생했다. 전형진 기자

낡은 주택이 밀집한 서울 사직동 사직2구역. 2017년 서울시가 정비구역에서 직권해제했지만 지난 4월 대법원이 조합의 손을 들어주면서 기사회생했다. 전형진 기자

“노숙자들도 이 동네 빈집에선 잠을 안 잡니다. 언제 무너질지 모르니까요.”

지난 10일 서울 사직동 사직2구역에서 만난 주민 이가경(가명) 씨는 “구역 안에 들어선 집 가운데 태반은 폐가”라면서 이같이 말했다. 지난달엔 폭우를 견디지 못한 낡은 집이 무너지기도 했다. 강풍을 동반한 태풍 ‘링링’이 덮쳤을 때도 주민들은 가슴을 쓸어내렸다. 하지만 재개발은 멈춰선 지 오래다. 서울시와의 갈등 때문이다. 이씨는 “시에선 오히려 ‘알박기’로 사업을 방해하고 있다”며 “박원순 시장은 옥탑방만 갈 게 아니라 이 지역 폐가 체험도 해봐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소송 끝났지만 ‘장외 2차전’

사직2구역조합과 서울시의 갈등이 봉합되지 않고 있다. 대법원이 조합의 손을 들어준 뒤에도 현안마다 대립하고 있어서다. 조합은 “인·허가권을 쥔 관청에서 조직적으로 재개발을 막고 있다”며 반발하고 있다.

발단은 2년 전 서울시가 사직2구역을 정비구역에서 직권해제하면서부터다. 정비구역 해제는 토지 등 소유자들의 신청과 동의를 거쳐야 하지만 서울시는 일방적으로 이를 결정했다. 한양도성에 인접한 역사문화적 가치를 보전해야 한다는 게 이유였다. 조합은 즉각 반발해 소송을 냈고, 지난 4월 대법원에서 최종 승소하면서 정비구역과 조합 지위를 유지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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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사업 정상화는 요원하다. 조합은 서울시가 알박기를 하고 있다고 주장 중이다. 서울시가 대법원 판결 닷새 만인 지난 4월30일 구역 한복판에 들어선 캠벨 선교사주택을 우수건축자산으로 등록했기 때문이다. 조합이 재개발을 추진하면서 사들였다가 사업비 압박 등으로 서울시에 매각한 곳이다. 문제는 우수건축자산으로 등록되면 구역 내 존치 등이 결정될 수 있다는 점이다. 선교사주택 부지는 사직2구역 전체 사업면적(2만7329㎡)의 14%가량(3765㎡)을 차지한다.

사직2구역조합 관계자는 “2012년 사업시행계획인가 당시 철거하기로 했지만 2013년 인가를 변경 신청하면서 다른 장소에 옮겨 짓기로 합의했다”며 “문화재청 심의까지 끝났는데도 4년 넘게 심의를 하지 않더니 이제와서 옮겨 짓는 것조차 막으려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서울시도 조목조목 반박하고 있다. 서울시 관계자는 “선교사주택 이축 계획을 담은 사업시행변경인가안은 반려됐기 때문에 시와 협의하거나 결정된 내용은 없다”면서 “재개발을 막기 위해서가 아니라 2015년부터 만들어 온 역사도심관리 기본계획에 따라 등록한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 사직동 사직2구역의 한 폐가. 천장이 무너져내린 뒤 보수가 이뤄지지 않은 이 집은 현재 아무도 살지 않는다. 전형진 기자

서울 사직동 사직2구역의 한 폐가. 천장이 무너져내린 뒤 보수가 이뤄지지 않은 이 집은 현재 아무도 살지 않는다. 전형진 기자

양측은 대여금 문제를 두고도 충돌하고 있다. 대여금이란 시공사가 조합에 빌려주는 돈을 말한다. 조합으로선 일반분양 전까지 마땅한 수익이 없기 때문에 운영비 등을 대여금으로 충당한다. 사직2구역은 대법원 판결이 나온 지난 4월부터 시공사의 자금대여가 끊겼다. 조합 관계자는 “사업이 멈춰있을 때도 빌려주던 대여금이 갑자기 끊긴 배경엔 서울시의 압력이 있었다고밖에 볼 수 없다”며 “최악의 경우 시공사 교체까지 검토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서울시 관계자는 “대여금 지급 여부는 시에서 관여할 수 없는 사항”이라고 선을 그었다.

◆곳곳 암초…갈 길 먼 재개발

설상가상으로 지난 6월 선출된 새 임원들은 아직 명함조차 찍지 못하고 있다. 이번엔 조합장 교체 등의 내용을 담은 조합설립변경인가가 나지 않고 있어서다. 쟁점은 정비구역에서 해제된 기간 동안 소유권을 넘겨받은 이들을 조합원으로 볼 수 있는지 여부다. 국토교통부는 서울시의 이 같은 질의 내용에 “새로운 권리자가 토지나 건축물을 인수한 시점에 정비구역이 아니었다면 정비사업을 목적으로 소유권을 취득한 것으로 보기 곤란하다”며 “조합은 정비구역 해제 당시 양수자들에게 정비사업 동의 여부를 확인해야 한다”고 답했다.

서울 사직동 사직2구역의 골목길. 안쪽에 집이 있지만 아무도 살지 않아 진입로엔 성인 허리춤까지 풀이 자랐다. 전형진 기자

서울 사직동 사직2구역의 골목길. 안쪽에 집이 있지만 아무도 살지 않아 진입로엔 성인 허리춤까지 풀이 자랐다. 전형진 기자

사직2구역은 직권해제됐던 2017년 3월부터 대법원 판결이 나온 올봄까지 2년여 동안 조합원 260명 가운데 51명이 바뀌었다. 이들에게 재개발 동의 여부를 확인받아야 한다는 게 국토부 유권해석의 요지다. 그러나 대법원에서 정비구역 해제 자체를 무효로 했기 때문에 조합원 지위를 정상 승계한 것으로 봐야 한다는 해석도 나오고 있다. 종로구청은 지난달 상반되는 두 가지 해석에 대해 국토부에 다시 질의했지만 국토부는 같은 내용을 유지하면서 “추가 동의 여부를 어느 수준으로 받아야 하는지는 관할 구청이 합리적 수준으로 결정하라”고 답했다.

장진철 사직2구역 조합장은 “법제처에 법령 해석을 요청해 정확한 판단을 받아낼 예정”이라고 말했다. 종로구 관계자는 “직권해제 기간 동안의 거래를 정상 조합원지위 승계로 볼 경우 조합설립변경인가가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2009년 정비구역으로 지정된 사직2구역은 당초 일대 단독·다가구 주택을 허물고 새 아파트 12개 동, 486가구를 짓겠다는 재개발 밑그림을 그렸다. 구역 내 건물 대부분이 준공 40~50년차 노후 주택이어서다. 그러나 서울시는 개발 방향을 도시재생으로 정하고 이미 300억원 가까운 예산을 쏟아부은 것으로 알려졌다. 소송이 진행되는 동안 마을회관과 도서관 등을 사들이고 보수하는 데 썼다. ‘뉴타운 출구전략’의 일환이다. 사직2구역 조합 관계자는 “집이 무너지고 불이 나도 소방차가 들어올 수 없어 전소하는 판국에 도시재생이란 뜬구름만 잡고있다”며 “그동안 고의로 재개발사업 정상 진행을 막은 박원순 시장과 관련 공무원들을 업무방해 혐의로 검찰에 고발했다”고 말했다.

전형진 기자 withmold@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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