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비구역 지정 절차를 밟고 있는 서울의 한 재개발 예정구역. 전형진 기자
정비구역 지정 절차를 밟고 있는 서울의 한 재개발 예정구역. 전형진 기자
민간택지 분양가 상한제가 부활하면서 남모르게 웃는 이들이 늘고 있다. 재건축·재개발이 직격탄을 맞으면 반사이익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정비사업에서 중도하차할 예정인 현금청산자나 인근 신축 단지 소유자 등이 대표적이다. ‘로또’를 노리는 무주택자나 이들에게 전세를 놓고 있는 집주인도 마찬가지다.

◆남몰래 웃는 현금청산자들

13일 정비업계에 따르면 재개발구역 현금청산자들이 분양가 상한제로 인한 수혜를 입을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상한제로 일반분양 수입 감소가 예상될 경우 조합원 분양가를 올려야 하는데 이 과정에서 청산자들의 청산금도 자연스레 오를 수밖에 없는 구조여서다. 통상 청산자의 비율은 재건축보다 재개발사업이 높은 편이다.
[집코노미] "땡큐"…분양가 상한제에 웃는 사람들
정비사업은 통상 적정 개발이익비율인 비례율을 100% 기준으로 맞추고 사업계획을 세운다. 비례율이란 일반분양과 조합원분양을 합친 수입금에서 총사업비를 뺀 뒤 이를 모든 조합원들의 부동산 가치로 나눈 비율이다. 분양가 상한제 적용으로 일반분양 수입이 떨어질 경우 비례율이 하락하기 때문에 이 비율을 종전대로 맞추려면 조합원분양가를 올려야 한다.

분양가 상한제 영향을 줄이려 할 경우에도 조합원분양가 인상이 불가피하다. 원가로 인정되는 땅값을 올려야 상한제 충격이 덜한데 이때 조합원분양가도 연동돼 올라서다. 땅값이 오르면 비례율 계산식의 분모인 종전자산평가액(조합원들의 건물과 땅에 대한 감정평가액)이 커진다. 분자인 조합원분양가도 그만큼 올라야 비례율을 맞출 수 있다.

조합 입장에서 땅값은 분양가 상한제 체제에서 유일한 돌파구다. 상한제는 택지비와 건축비, 적정 이윤을 합친 금액으로 아파트 분양가격을 제한한다. 여기서 택지비의 비중이 가장 높다. 분양가를 결정할 요인으로서의 변수도 크다. 건축비의 경우 정부가 매년 두 차례 표준 건축비를 고시한다. 이달 기준 3.3㎡당 644만원으로 강남권 신축 단지 공사비의 절반 수준이다. 고분양가 논란으로 상한제 카드가 나온 점을 고려하면 적정 이윤은 낮은 수준으로 책정될 가능성이 높다. 결국 땅값인 택지비를 얼마나 높게 책정하느냐에 따라 향후 분양가 상한선이 달라지는 셈이다.

택지비는 정비사업 구역 내 모든 땅의 감정평가액이다. 사업시행계획인가를 받은 조합이 조합원들에 대한 종전자산평가를 할 때 정해진다. 한 정비업계 관계자는 “분양가 상한제로 택지비를 높여야 할 필요성이 생기면 과거에 했던 종전자산평가를 다시 진행하면서 오른 지가를 반영하려는 곳들도 생겨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 경우 새 아파트 입주권을 받을 생각이 없던 청산자들의 자산 평가액도 오른다. 결국 이들은 초기 예상보다 짭짤한 수익을 남기고 사업에서 빠질 수 있게 되는 셈이다. 재개발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서울 A공인 관계자는 “결과적으론 조합이 치러야 할 비용도 늘어난다”며 “사업 리스크가 커진 상황에서 감정평가액이 높게 나오면 청산자는 더욱 늘어날 가능성이 크다”고 전했다.
서울 대치동 청실아파트를 재건축해 2015년 입주한 ‘래미안대치팰리스’. 한경DB
서울 대치동 청실아파트를 재건축해 2015년 입주한 ‘래미안대치팰리스’. 한경DB
◆신축 집주인·다주택자도 수혜

신축 단지 소유주들도 분양가 상한제로 인한 수혜를 입을 전망이다. 주변 재건축·재개발사업이 멈추면서 새 아파트 희소성이 부각되면 ‘풍선효과’가 나타날 수 있어서다. 서울 대치동 일대 중개업소들에 따르면 래미안대치팰리스 전용면적 84㎡는 이달초 26억원에 손바뀜했다. 지난달 같은 면적대가 25억5000만원에 최고가 거래된 뒤 한 달도 지나지 않다 고점을 갈아치웠다. 주변에서 재건축을 추진 중인 은마아파트와 우성·선경·미도 등의 사업성이 악화한 영향이다. A공인 관계자는 “최저가가 25억5000만원 선”이라며 “대형인 전용 114㎡는 비선호 동·향이 32억을 호가한다”고 말했다. 지난 4월 28억5000만원에 거래된 주택형이다.

예비 청약자들에겐 상한제가 기회다. 주택도시보증공사(HUG)가 분양가를 통제하는 현재보다 더 저렴한 가격에 새 아파트를 분양받을 수 있어서다. 하지만 ‘로또’ 경쟁은 더욱 치열해질 전망이다. 과거에도 상한제 아파트 당첨은 하늘의 별 따기에 가까웠다. 경쟁률은 치솟았고 가점 만점자 당첨도 속출했다. 최고 106 대 1의 청약경쟁률을 기록한 은평뉴타운 2지구의 경우 중대형 면적대의 청약가점 ‘커트 라인’이 60점대를 넘길 정도였다. 낙첨한 실수요자들이 다시 로또를 노리는 동안 전셋값은 또 올랐다. 올해 서울에서 분양한 단지들의 최저 가점이 30점대 초반인 것과 대조적이다.

낙첨한 실수요자들이 다시 로또를 노리기 위해 전세로 눌러앉는 동안 공급 감소까지 겹치면서 전세난이 심화될 가능성도 있다. ‘갭투자’ 등으로 보유 주택 숫자를 늘린 다주택자들이 상한제로 인한 수혜를 입는 셈이다. KB국민은행에 따르면 전국 아파트 전세가격 변동률은 민간택지 분양가 상한제가 시행된 2007년 2.74%에서 2년 뒤 4.27%로 높아졌다. 수도권엔 외환위기 이후 가장 많은 미분양 아파트가 쌓여 있었지만 저렴한 상한제 아파트에 청약하기 위해 전세를 택하는 실수요자들이 많았다. 전셋값 상승률은 2011년 15.38%로 역대 최고를 기록했다. 같은 해 서울 전세가격은 12.96% 올랐다. 박원갑 KB국민은행 부동산수석전문위원은 “분양가 상한제가 시행되면 저렴한 분양 아파트의 매력이 커지면서 구매력이 있는 수요자들도 당장 집을 매수하기보단 전세를 선호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전형진 기자 withmol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