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급화 vs 사업 속도' 딜레마…조합원 대상 설문
"1~2년 지체 감수"…"희망 고문으로 비용 증가"
서울 한남동 한남뉴타운3구역 일대. 한경DB

서울 한남동 한남뉴타운3구역 일대. 한경DB

총 사업비 3조원 규모인 서울 한남뉴타운3구역의 사업 진행이 더 늦어질 가능성이 대두되고 있다. 조합에서 사업시행계획 변경 검토에 들어가서다. 지난 3월 인가를 받은 지 3개월 만이다. 단지 명품화를 위한 설계 변경이 불가피하다는 게 조합 입장이다. 이 과정에서 짧게는 1~2년가량 사업이 더 지연될 가능성이 높아 벌써부터 조합원들 의견이 갈리고 있다.

◆“1~2년 더 지연될 수도”

12일 정비업계에 따르면 한남3구역 조합이 최근 조합원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시작했다. 사업 지연을 감수할 의사가 있는지 묻는 게 주요 내용이다. 조합이 사업시행계획 변경을 검토하고 있어서다. 통상 다시 인가를 받는 과정에선 재개발이 1~2년가량 지체된다. 이번 설문은 사업이 지연되더라도 고급화를 진행할지, 고급화보단 빠른 사업 추진을 원하는지 조합원들의 의견을 묻는 절차다.

[집코노미] 명품단지 '딜레마' 빠진 한남3구역…사업 1~2년 지연되나

조합이 먼저 나서 사업 지연 가능성을 언급하는 건 이례적인 일이다. 어렵사리 얻은 사업시행계획인가를 다시 받으려는 건 현재 계획으론 명품 아파트 단지 조성이 어렵다고 봐서다. 높은 건폐율에 대한 지적이 조합 안팎에서 끊이지 않고 있다. 건폐율이란 건축물 바닥면적을 전체 부지 면적으로 나눈 비율이다. 건폐율이 높다는 건 건축물이 빽빽하게 들어섰다는 의미다. 한남3구역의 건폐율은 42%다. 수도권 신축 아파트가 20% 안팎인 점과 비교하면 두 배 이상 높은 수준이다.

이 때문에 조합은 설문을 통해 건폐율 하향 등을 담은 대략적인 사업시행계획 변경안을 제시했다. 핵심은 층수를 높이는 대신 197개 동으로 계획된 건물 수를 줄여 동(棟) 간격을 넓히는 것이다. 이 경우 건폐율이 내려간다. 이 밖에도 한남뉴타운 한복판인 보광로변 상가를 확충하고 구역 내 한강 조망 가구수를 늘리는 내용이 포함됐다. 고급화를 위해 중소형 면적대 중심인 테라스 하우스를 대형 면적대에 적용하는 안도 검토된다.
[집코노미] 명품단지 '딜레마' 빠진 한남3구역…사업 1~2년 지연되나

재개발·재건축 단지들의 경우 통상 시공사를 선정한 뒤 기본설계를 바꿔 건설사의 대안설계를 적용한다. 하지만 대안설계는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에서 정한 ‘경미한 변경’ 안에서만 가능하다. 한 대형 건설사 정비사업팀 관계자는 “통상 사업 지체를 최소화 하기 위해 입찰 시점부터 경미한 변경의 틀 안에서 대안설계를 제시한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한남3구역처럼 건축물의 숫자나 층수를 바꾸는 경우 경미한 변경 범위를 벗어난다. 이 때문에 사업시행계획인가를 아예 다시 받아야 한다. 오는 21일 설문이 마감되면 변경인가 추진 여부에 대한 대략적인 윤곽이 나온다. 고급화로 주민 의견이 모아질 경우 이주와 철거가 진행되는 동안 사업시행계획변경인가 신청이 진행될 전망이다. 다만 한남3구역조합 관계자는 “변경인가 추진과 관련한 구체적 내용은 확인해 줄 수 없다”고 선을 그었다.

◆“명품 단지” vs “희망고문”

설문지를 받은 조합원들 사이에선 갑론을박이 벌어지는 중이다. 조합원 A씨는 “현재 계획으론 명품 단지를 만들 수 없다”며 “사업이 다소 지연되더라도 그동안 덮어뒀던 문제점을 개선해 나가는 게 모두에게 이익”이라고 주장했다.

반대 논리도 만만찮다. 20년 가까이 걸린 사업을 더 지체할 이유가 없어서다. 한남3구역이 지난 3월 사업시행계획인가를 받은 건 2003년 재정비촉진지구(뉴타운) 지정 16년 만의 일이다. 조합원 B씨는 “가이드라인 변경 등 서울시의 모든 요구를 수용했는데도 기본계획 변경부터 사업시행계획인가까지 3년이 걸렸다”며 “변경을 추진하다 서울시가 또 제동을 건다면 앞으로 얼마나 더 걸릴지 알 수 없다”고 말했다.
[집코노미] 명품단지 '딜레마' 빠진 한남3구역…사업 1~2년 지연되나

최악의 시나리오는 사업시행계획변경이 인가되지 않아 사업이 멈춰서는 것이다. 변경 시도 자체가 무리수라는 주장이 나오는 이유다. 이주와 철거를 끝낸 뒤에도 다시 인가를 받지 못하면 착공과 분양을 접고 마냥 기다릴 수밖에 없다. 이 기간 동안 조합원의 이주비 등 각종 대출 이자가 쌓인다. 모두 조합원의 분담금으로 돌아오는 돈이다. 조합은 정상 사업기간 동안의 시공사 대여금 이자(1377억원·4년 가정)와 이주비 이자(2232억원·5년 가정)만 해도 3600억원가량이 들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사업시행계획변경이 결정되면 2024년 목표였던 입주 시점은 뒤로 밀릴 가능성이 높다. 조합은 한남동 일대 약 38만㎡ 땅에 새 아파트 5816가구를 지을 계획이다. 공사비만 1조8700억원, 총 사업비는 2조9800억원에 달해 ‘재개발 최대어’라는 평가를 받는다. 시공사 선정은 오는 11월로 예정됐다.

전형진 기자 withmold@hankyung.com

ⓒ 한경닷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