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약갱신요구권 효력이 사라져도 임차인의 권리금 회수 기회를 보호해야 한다는 취지의 대법원 판결이 나오면서 상가 투자심리가 얼어붙을 것이란 우려가 커지고 있다. 각종 점포가 모여 있는 서울 중구 명동 거리.  연합뉴스
계약갱신요구권 효력이 사라져도 임차인의 권리금 회수 기회를 보호해야 한다는 취지의 대법원 판결이 나오면서 상가 투자심리가 얼어붙을 것이란 우려가 커지고 있다. 각종 점포가 모여 있는 서울 중구 명동 거리. 연합뉴스
계약갱신요구권 효력이 끝났더라도 임대인이 임차인의 권리금 회수 기회를 보장해야 한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계약갱신요구권이란 임차인이 세를 얻은 점포에서 일정 기간 계속 장사를 할 수 있는 권리다. 상가건물 임대차보호법상 기존에는 5년이었지만 지난 4월 10년으로 늘어났다. 이에 따라 임대인은 앞으로 10년간 임대차 계약을 유지해야 할 뿐만 아니라 10년 후 임차인의 권리금 회수 기회도 보장해야 하는 처지가 됐다. 상가 전문가는 “임대인이 자기 마음대로 세입자를 고를 수도 없는 상황이 됐다”며 “상가 투자심리가 위축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계약 기간 끝나도 권리금 보호해야

17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1부는 자영업자 A씨가 건물주를 상대로 권리금 회수 방해로 인한 손해배상 등을 청구한 소송에서 ‘전체 임대차 기간이 5년을 초과했다는 이유로 피고가 권리금 회수기회 보호의무를 부담하지 않는다’고 판단한 원심 판결을 파기했다.

A씨는 2010년 10월부터 5년간 피고 B씨의 건물에서 음식점을 운영했다. 임대차 계약 만료 3개월 전인 2015년 7월 새 임차인과 권리금 1억4500만원을 받기로 하고 B씨에게 새 임차인과 임대 계약을 체결할 것을 요구했다. 하지만 B씨는 ‘노후화된 건물을 재건축하거나 대수선할 계획’이란 점을 들어 이 계약을 거부했다. A씨는 권리금을 회수할 기회를 놓쳤다.

A씨는 권리금 회수 방해를 이유로 한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냈다. 1·2심은 모두 A씨의 손해배상 청구를 기각했다. 2심 재판부는 “전체 임대차 기간이 5년을 초과해 임차인이 계약갱신요구권을 행사할 수 없는 경우 임대인에게 권리금 회수기회 보호의무가 발생하지 않는다”고 판시했다.

그러나 대법원은 “전체 임대차 기간이 5년을 초과하는지와 무관하게 임대인은 상인의 권리금 회수를 보장할 필요성이 있다”며 사건을 2심 법원으로 돌려보냈다. 대법원은 “상가 임차인에게 최소한의 영업기간을 보장하기 위한 조항과 임대차 계약이 종료된 경우에도 영업상 유·무형의 재산적 가치를 회수할 수 있도록 보장한 조항의 입법 취지와 내용은 서로 다르다”고 판단했다.

이번 판결은 2015년 도입된 ‘임대인의 권리금 회수기회 보장 의무’에 관한 대법원의 첫 판결이다. 대법원 관계자는 “계약갱신요구권 행사 기간이 지난 경우에도 권리금 회수 기회를 보장해야 한다는 점을 명확히 밝혔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고 말했다.

건물주 부담 커질 듯

이번 대법원 판결로 권리금 회수기회 보호조항 적용 범위에 대한 논란이 정리된 셈이다. 그동안 해당 조항 적용을 놓고 일선 법원의 판결이 엇갈린 탓에 혼란이 있었다. 최광석 법무법인 득아 변호사는 “입법 취지가 자영업자의 권리금 보호에 있는 만큼 임대차 기간에 관계없이 해당 법에 따라 권리금 회수 기회를 보호하는 게 당연하다”고 설명했다.

건물주들이 느끼는 부담은 커질 전망이다. 임대료 연체, 건물 훼손 등 계약을 파기할 정당한 사유가 없으면 임대 계약 기간이 끝난 뒤에도 기존 임차인의 의견에 따라 새 임차인을 들여야 할 공산이 커졌다. 권리금 회수기회 보호의무를 지키지 않은 건물주는 임차인이 제시한 권리금과 법원 감정평가로 산출한 권리금 중 낮은 금액을 손해배상 명목으로 지급해야 한다.

김재권 법무법인 효현 변호사는 “최초 임대차 계약을 맺을 때 재건축, 대수선 계획까지 세밀하게 명시해야 하는 등 임대인의 부담이 커졌다”며 “수익률이 더 높은 업종을 새로 들이거나 건물 리모델링을 통해 자산가치를 높이는 것도 이번 판례에 따라 어려워질 것”이라고 말했다.

상업용 부동산시장이 더 위축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왔다. 선종필 상가뉴스레이다 대표는 “상가 거래량 자체가 줄어드는 계기가 될 수 있다”고 내다봤다.

민경진 기자 mi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