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 김모씨(30)는 지난달 부동산 앱(응용프로그램)을 검색하다가 서울 관악구 봉천동에 지하철역과 도보로 5분 거리에다 월세가 30만원대인 집이 매물로 나온 것을 발견했다.

그는 다음날 매물을 올린 중개업소를 방문했지만 허탕을 쳤다. 중개업자는 “그 집은 좀 전에 나갔다”며 다른 집을 소개해줬다. 인근 다른 중개업소를 찾아갔더니 “30만원대에 나온 매물은 ‘미끼’”라며 “부동산 앱은 참고만 해야 한다”고 귀띔했다.

이처럼 부동산 앱 허위 매물에 속아 헛걸음하거나 의도치 않는 계약으로 피해를 보는 사례가 급증하고 있다. 부동산중개업체들은 손님을 끌어들이기 위해 수백 명의 중개보조원을 동원해 경쟁적으로 허위 매물을 올리고 있다. 그런데도 마땅한 처벌 규정조차 없어 소비자 피해만 커지고 있다는 지적이다.

3명 중 1명 ‘허위 매물 경험’

'허위 매물' 수백 건 올려도 제재 안 받는 부동산 중개업체
8일 한국소비자원에 따르면 지난해 네이버, 다방, 직방 등 부동산거래 플랫폼을 이용한 성인 1200명 중 409명(34.1%)이 부동산 허위 매물에 속은 경험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매물을 보고 찾아가면 “그건 팔렸으니 다른 것을 사라”고 권유하는 게 대표적인 수법이다. 가격, 옵션, 층수, 주차공간 등을 속이는 경우도 많다.

허위 매물이 느는 것은 부동산 시장의 침체로 중개업체 간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서울부동산정보광장에 따르면 서울 지역 아파트 매매 건수는 지난 2월 1575건으로 전년 동기(1만1111건)보다 86% 급감했다. 또한 서울 지역 공인중개사 수는 지난해 11월 5년 만에 처음으로 폐업자 수가 개업자 수를 웃돌았다. 서울 구로디지털단지역 인근에 있는 공인중개사 A씨는 “거래는 줄었는데 손님은 끌어들어야 하니 지푸라기 잡는 심정으로 허위 매물을 올리는 게 아니겠냐”고 말했다.

중개업체들이 중개보조원을 무분별하게 늘린 것도 허위 매물이 증가한 요인으로 지목된다. 공인중개사는 중개 업무를 돕기 위해 중개보조원을 고용할 수 있다. 고용할 수 있는 인원과 자격 요건은 제한이 없다.

중개보조원은 계약 건수에 따라 인센티브를 받기 때문에 이들 입장에선 허위 매물이라도 올려 무조건 고객을 많이 끌어들이는 게 이득이다. 한국공인중개사협회 관계자는 “대학가나 오피스텔 수요가 많은 지역에서는 한 공인중개소가 중개보조원을 100명 이상 두기도 한다”고 말했다.

제재 조치는 한 건도 없어

중개업소들이 온라인상에 허위 매물을 올리더라도 제재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공인중개사법에는 허위 매물 시정을 강제할 수 있는 명확한 규정이 없다. ‘표시·광고의 공정화에 관한 법률(표시광고법)’에 따라 공정거래위원회가 부동산 허위광고를 제재할 수 있지만 사실상 사문화됐다는 게 업계의 지적이다. 가장 강력한 제재는 민간기구인 한국인터넷자율정책기구(KISO)가 최대 2주간 해당 온라인 플랫폼에 광고를 금지하는 정도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업체마다 허위 매물을 거리낌 없이 올리고 있다.

KISO 관계자는 “매달 악성 중개업소 명단을 공정위에 보내고 있지만 제재 조치는 단 한 건도 없었다”며 “공정위는 인력도 부족한 데다 민간 영세업자를 상대로 단속한다는 걸 부담스러워하는 것 같다”고 전했다.

이주현 기자 dee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