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민 임대용으로 사용되는 다가구주택의 올해 공시가격이 이달 초 공개된 예정공시가격보다 대폭 하향 조정된 것으로 나타났다. 정부가 지난 24일 발표한 서울 지역의 표준단독주택 공시가격 상승률이 크게 낮아진 주요 원인도 다가구주택의 상승률 하락 때문인 것으로 분석됐다. 정부가 급격한 인상에 따른 지방자치단체와 주민들의 반발을 일부 수용한 것이지만, 공시가격을 자의적으로 매긴다는 점에서 ‘고무줄’ 산정이라는 비판이 그치지 않고 있다.
지자체·주민 반발하자 표준주택 공시가 10억 '뚝'
상승률 71%에서 14%로 조정되기도

27일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서울시 표준단독주택 공시가격의 상승률은 17.75%로 이달 초 의견 청취를 위해 공개한 예정공시가격 상승률 20.70%에 비해 3%포인트가량 떨어졌다. 강남·용산·마포·서초·성동구 등 5개 구의 주택 공시가격 상승률은 예정안보다 최대 7%포인트 낮아졌다. 강남구의 주택 공시가격 상승률은 42.8%에서 35.0%로 하향 조정됐다. 서초구도 30.7%에서 23.0%로 내려갔다. 마포(37.3%→31.2%), 용산(39.4%→35.4%), 성동(24.6%→21.7%)구 등도 조정됐다.

서민 임대용으로 많이 쓰이는 다가구주택의 공시가격 인하가 눈에 띈다. 마포구 공덕동의 한 다가구주택은 공시가격이 작년 8억8900만원에서 올해 15억2000만원으로 사전 통지됐으나 의견 청취를 거쳐 10억1000만원으로 낮췄다. 상승률이 70.9%에서 14.0%로 크게 떨어진 것이다. 강남구 신사동의 한 다가구주택은 지난해 공시가격이 17억원에서 올해 28억8000만원으로 69.4% 오를 것으로 예고됐으나 최종 27억1000만원으로 조정되면서 작년 대비 상승률도 59.4%로 낮아졌다.

당초 공시가격이 70%가량 오를 예정이던 연남동은 한 달 새 공시가격이 10억원씩 들쑥날쑥한 경우도 많았다. 연남동 2층 단독주택(387㎡) 공시가격은 한 달 새 32억3000만원에서 21억5000만원으로 바뀌었다. 올해 28억3000만원으로 예고된 연남동 한 단독주택(391㎡)의 공시가격은 20억8000만원이 됐다.

국토부 관계자는 “다가구주택은 서민 임대용으로 주로 쓰여 보유세가 크게 오르면 세입자 임대료 상승으로 이어질 수 있는 점을 고려해 인상폭을 하향 조정했다”고 말했다. 반면 공시가격 30억원이 넘는 고급 단독주택은 공시가격이 내려간 곳이 거의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실거래가 기준 ‘산정’ 한계

공시가격이 이처럼 왔다 갔다 하는 상황을 비판하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현실화율을 끌어올리겠다는 정책적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공시가격을 과도하게 높였다가 주민 반발 등으로 다시 큰 폭으로 낮추는 것 자체가 명확한 원칙과 충분한 현장조사 없이 공시가격 산정이 이뤄진 것 아니냐는 지적이다.

이달 강남구 부동산가격 공시위원회에 참석한 한 관계자는 “단독주택은 실거래 빈도가 낮아 가격 현실화가 상대적으로 어려운 데다 공시가격을 급격히 올리면 제도의 신뢰성도 낮아진다”며 “소득이 없는 고령자, 다가구주택 소유자 등을 중심으로 조세 저항이 만만치 않을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인상률을 낮춰달라고 요청했다”고 말했다. 한 대형 감정평가회사 대표는 “정부가 시세 15억원 이상인 주택을 고가주택으로 정한 것조차 법적 근거가 없다”고 지적했다.

단독주택은 공동주택에 비해 개별성이 강하고 거래량이 적기 때문에 실거래가를 기반으로 공시가격을 산정하는 것 자체가 형평성에 위배될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거래가 적은 고가주택의 가치 현실화율은 떨어질 수밖에 없고 상대적으로 거래가 자주 일어나는 중저가 주택의 시세 반영률은 높아지는 구조적 문제가 있어서다.

정수연 제주대 경제학과 교수는 “미국은 실거래신고가격이 아니라 감정평가사들이 평가한 시장가치를 바탕으로 공시가격을 매긴다”며 “한국은 단독주택의 거래 빈도가 낮은데도 실거래가격을 기준으로 삼다 보니 정확한 공시가격을 산정하기 어려운 구조”라고 비판했다.

서기열/양길성 기자 philos@hankyung.com